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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 에포크 Sep 17. 2022

나의 아름다운 시절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보며

누구에게나 기억에 오랫동안 머무는 영화 몇 편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인생영화'라고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명작들 말이다.

내게도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라는 영화가 가장 기억에 남아 소재로 글을 써볼까 한다.

이 영화는 내게 인생의 중심축을 세울 수 있게 해 준 나만의 인생영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간략 줄거리.
주인공인 길은 약혼녀인 이네즈와 예비 장인 부부와 파리로 여행을 온다. 본래 할리우드의 각본가인 길은 소설가로 전향을 하려고 하고 이네즈는 그 계획에 대해 부정적이다. 길은 1920년 황금시대의 흔적이 녹아있는 파리에 살고 싶어 하지만 이네즈는 말리부에서 살고 싶어 하는 등 사사건건 맞지 않아, 결국 따로 여행을 하게 된다. 어느 날 밤 길은 술에 취해 호텔로 걸어가던 중 길을 잃었다. 어딘지 모를 계단에 앉아 쉬던 중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길은 자신을 초대하는 오래된 푸조 차량을 탄다. 그리고 어느 파티에 갔는데 근현대를 풍류했던 유명한 문학가들을 만나게 된다. 1920년대로 타임 트립이 된 걸 알게 된 길은 그곳에서 당대 여러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을 만나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그곳에서 만난 아드리아나와 교감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지만 아드리아나와 함께 1890년, 벨 에포크 시대로 다시 타임트립된다.


우리는 언제나 끊임없이,
또 다른 세상에 대한 향수병을 앓는다.

-비타 색빌 웨스트, '더 가든'중에서-


이 무슨 선물세트같은 장면인지. 저 예술가 무리안에 내가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졌다.

영화에서는 내가 동경한 여러 예술가들이 많이 등장한다.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 가수 콜 포터,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화가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비평가이자 예술을 후원하고 살롱까지 운영했던 거트루드 스타인, 사진작가 만 레이, 벨 에포크 시절의 화가 앙리 툴루즈 로트렉, 에드가 드가와 폴 고갱 까지.

평소에도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모두 출동하니 나오는 장면마다 인물퀴즈 하듯 알아맞히는 쾌감과 알고 나면 그 인물과의 내적 친밀감에 아는 사람 만난 듯 반가운 마음마저 들어, 보는 내내 연신 신이 나고 즐거웠다. 심지어 예술가들을 연기하는 실제 배우들 모두 지금 보면 대단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서 그 모습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영화는 프랑스 파리의 명소, 예술가들의 묘사뿐만 아니라 시대적 소품이나 패션, 그리고 음악까지 프랑스 예술의 시대의 동경이 잘 담겨 있어 감상하는 내내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디 알렌 감독의 프랑스의 옛 시대에 대한 동경과 존경이 듬뿍 담겨있는 마치 당대 예술가들을 위한 세레나데와 같이 만든 영화라고 느껴졌다.

대문호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부부/ 화가 달리,피카소/ 소설가이자 비평가, 예술 살롱 운영까지 한 거트루드 스타인
화가 로트렉, 고갱, 드가/ 사진작가 만레이/ 스페인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 가수 콜포터 까지.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은 서사는 극 후반부터이다. (극초반 서사는 줄거리 참조 부탁드립니다)

마침 여주인공 아드리아나는 사귀던 헤밍웨이와 사이가 깨지고 돌아왔고, 길과 만나서 친해지며 키스까지 하는데 갑자기 두 사람의 눈앞에 벨 에포크 시대풍 마차가 멈춘다. 아드리아나는 길처럼 과거를, 정확히는 벨 에포크 시대를 늘 동경했고 그 마차는 1920년대로 길을 초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드리아나가 동경하던 1890년대로 가는 것이었다.

벨 에포크라고 불리는 시대였던 1890년대로 간 길과 아드리아나는 앙리 툴루즈 로트렉, 에드가 드가와 폴 고갱이라는 벨 에포크 시대의 예술가들을 만난다. 그 시대에 머물길 원하는 아드리아나를 본 길은 자신이 동경하는 황금시대가 사실은 현재에 대한 거부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는다. 정작 길은 자신이 동경하던 시대를 사는 아드리아나는 길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시대를 거부했고, 아드리아나가 동경하는 벨 에포크를 살고 있는 드가나 고갱 같은 인물도 오히려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벨 에포크 시대에 머무려고 하는 아드리아나에게 길은 만류하며  말한다.


여기서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극 중, 길이 아드리아나에게-

영화를 빗대어, 아이를 낳기 전 나의 과거 모습을 떠올려본다.

육아에 지쳐 허덕일 때는 결혼 전 내 모습이 그렇게 그리웠다. 유행 따라 화장도 하고, 높은 굽의 구두도 신고, 지금보다 예쁜 옷을 입으며 친구들과 자유롭게 만나고, 여행 가고 싶은 생각이 들면 막힘없이 이곳저곳을 떠나보기도 했던 시절.

 근데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그렇게 그리운 나의 20~30대는 사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그때까지도 끝나지 않는 앞으로의 수많은 현실적 고민들, 그리고 늘 실수로 우왕좌왕했던 말 많은 인간관계로 혼란스러운 일상이었었다.

교감을 나누며 대화중인 길과 아드리아나.

극 중 현대를 사는 길이 1920년대'황금시대'를 그리워하고, 황금시대에서 사는 아드리아나가 1890년대의 '벨 에포크'시대를 그리워하고, 벨 에포크 시대 사람들이 '르네상스'시대를 그리워하듯, 내가 지금 가진 것에 대한 좋은 점들을 보지 못한 채 과거나 지나가버린 다른 것에만 그리워하고 동경한다면 지금 인생이 또 얼마나 헛헛하고 허무한 염증을 느낄까.

사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을 하찮게 여기거나 스쳐 지나가기만 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옛 시절의 영광만 그리워한다면 아마 그저 인생의 겉만 헛돌다 불만 가득하고 후회만 하는 인생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덧 인생의 절반을 향해 깊숙이 들어온 나에게는 우리 가족이 인생의 그 어떤 것 보다도 중요한 요소이자 존재들임을 깨닫곤 한다.

결혼을 하고, 나와 전혀 다른 존재와의 다른 점을 느끼며 살기 시작하면서, 아이를 낳고 나서야 평범한 것들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음을 깨달았고,

부모들이라면 모두 그러하듯, 아이들을 통해 인생의 많은 것들을 배우기도 다.

가족은 나의 인생의 스승이자, 조력자이고, 함께 나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주인공 길은 결국 현재를 선택했다. 지금 자신의 시대로 돌아와 지금의 행복을 찾는다. 자신과 맞지 않았던 약혼녀와도 과감하게 헤어진다. 그리고 자신과 진심이 통했던 서점 아가씨인 가브리엘과 만나,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나는 이 비가 길이 앞으로 만나게 될 고난이나 역경의 은유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럴지언정, 길은 그 비를 기꺼이 맞길 원했고 가브리엘도 같이 비를 맞으며 둘이 웃으며 나란히 걸어간다. 그 모습이 마치 앞으로 어떤 어려움도 함께 헤쳐나가며 같이 웃을 수 있는 진정한 의미로서의 동반자, 가족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면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고, 더 진한 감동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함께 기꺼이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길과 가브리엘

《미드나잇 인 파리》영화는 어떤 이에게는 그냥 그런 통속적인 판타지 로맨스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남다른 영감과 강렬한 메시지를 주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지나고 나서야 그 시절이 아름다웠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바로 지금'이라고. 지금이야 말로 나의 황금 시절이라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지금이 많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낄 때면, 나는 이 영화를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어쩌면 오히려 나의 가장 황금시대일지 모르는 '바로 지금'을 소중히 하자고 되뇌게 된다. 함께 비를 맞으며 웃어주는 나의 가족도 함께 있으니 힘내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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