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 에포크 Sep 15. 2022

누구도 실패작이란 없어

요즘 유행한다는 10대들의 밈

요즘 초등학생 사이에서 유행하는 밈(mm)이 있다며 첫째 아이 이야기에 보여준 짧은 영상을 보고 첫째도 나도 마주 보며 함께 엄청 충격을 받았다.

최근 초등학생 사이에서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퍼포먼스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고 한다.

유튜브, 틱 통 등 동영상 플랫폼에 ‘실패작이래’라는 10초 정도의 짧은 영상들이 다수 업로드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머리를 감싸 앉고 어디론가 뛰어들거나, 모형 칼 소품으로 자신을 찌르는 등의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동안 영상에는 “숨 쉬기 힘들어”, “나는 필요 없는 아이래”, “나는 실패작이래”, “아파, 아프다고” 등의 자막도 함께 달렸다.

출처_유튜브 캡처

영상에는 공통적으로 일본 보컬로이드 캐릭터 ‘하츠네 미쿠(初音ミク)’의 ‘실패작 소녀(失敗作少女)’의 특정 배경음악이 사용됐다.

2022년 8월 초에 은구술 TV가 만든 영상들을 기점으로 초등학생들 사이 유튜브 쇼츠에서 자신이 침대에서 쓰러지는 영상에 실패작 소녀 MARETU 어레인지 버전을 BGM으로 사용하는 게 유행이 되고 있다.(네이버 나무 위키 참조)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실패작’ 관련 영상은 한 달도 되지 않아 26일 기준 조회수 163만 회를 넘긴 상태다.

자살, 자해행위를 모방한 영상까지 있어 이러한 유행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서울신문, 2022. 8.26일 자 기사 인용)

얼마 전'민식이법'이 재정되고 나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달리는 자동차에 갑자기 뛰어드는 '민식이법 놀이'가 유행하기도 했다.

임명호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장난으로도 극단적인 행위를 모방하는 유행은 실제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교육당국의 엄중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때  초등학생 사이에서 유행한 민식이법 놀이. (출처_유튜브 한문철 TV 캡처.)

혹자는 사춘기 나이에 누구나 한때 할 수 있는 '이불 킥 흑역사 생성기'이니 못 본 척 지나가 주자는 주장도 있다. 나도 어릴 때 한때 한참 유행했던 '싸이월드'에서 감성에 젖어 써 내려갔던 흑역사를 기억한다.

같은 흑역사이긴 하지만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학대하는 요즘 실태와 과연 비교할 수 있는 상황일까.

싸이월드 시절 흑역사.(출처_ 네이버)

이러한 놀이 문화의 대상들이 대부분 아직 초등학생이란 사실이 더욱 놀랍다. 이 아이들은 점점 더 클수록 '저러다 말겠지'하는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아이들은 계속해서 자극적인 문화에 길들여지고 더 자극적인 것을 찾아 헤맬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오로지 넷상에서 좋아요와 더 많은 조회수를 위한 아이들의 철없는 치기일 뿐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저 유행하다 말 거라는 혹자의 말에 반박하고 싶다.

한참 세상이 아름다워야 할 나이에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거나, 자살을 흉내 내고 자신을 실패작이란 생각을 잠시라도 한다는 현실이 한없이 안타깝고 씁쓸해진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왜 이토록 자극적인 영상에 열을 올리고 소비하는 것일까.

무엇이 이들이 이런 자극적인 문화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과연 우리는 그저 그 아이들만을 비판하고 책임을 물을 자격이 있을까.



‘하츠네 미쿠(初音ミク)’의 ‘실패작 소녀(失敗作少女)’ 원곡 가사 전문( 출처_나무 위키 참조)

あぁほらまた間違えたこれで何度?何度目?(아아 봐 또다시 틀려버렸어 이걸로 몇 번? 몇 번째지?)
ねえほら 塞いでたってぽっかり浮き出る傷跡 (봐 틀어막고 있어도 떡하니 드러나있는 상처 자국)
あぁほらまた誤魔化した 見て見ぬ振りお上手ね  (아아 봐봐 다시 속여 버렸어 보고도 못 본 척은 능숙하네)
もうほら 何言われたって 誰もわたしを望まない(이제 봐 무슨 말을 해도 누구도 나를 원하지 않아)
むき出して痛い痛い (드러내 져서 아파 아파)
強がって 痛い痛い(강한 척해서 아파 아파)
息詰まって痛い痛いんだよ(숨이 막혀서 아파 아파와)
わたしって失敗作だってさっていらない子なんだって(나는 실패작이라서 필요 없는 아이래)
何やったって 頑張ったって ダメ らしいや (무슨 짓을 하며 노력해 봐도 글러먹은 것 같아)
愛 愛 愛されたくて 偽って (사랑 사랑 사랑받고 싶어서 거짓말을 해)
もっともっと笑顔でいればいいかな(조금 더 웃는 얼굴로 있으면 되는 걸까)
あぁほらまた擦りむいたこれで何度? 何回目?(아아 봐 또다시 다쳐버렸어 이걸로 몇 번? 몇 번째지?)
ねえほら 隠してたってじわり浮き出る トラウマ (자 봐 숨겨봐도 서서히 드러나는 트라우마)
あぁほらまた飲み込んだ 澄まし顔がお上手ね (아아 봐 또다시 참았어 새침한 표정 짓기는 능숙하네)
もうほら 何言われたって 嘲られ 痣だらけ (이제 봐 무슨 말을 해도 조롱당하고 멍 투성이야)
閉塞感に ユラユラ(폐색감에 흔들흔들)
劣等感に クラクラ(열등감에 어질어질)
息詰まって カラカラ なの(숨이 막혀서 말라가고 있어)
わたしって失敗作だってさっていらない子なんだって(나는 실패작이라서 필요 없는 아이래)
何やったって 頑張ったって 無駄みたいだ (무슨 짓을 하며 노력해 봐도 쓸모가 없대)
生まれてきた意味が欲しくて(태어난 것의 의미가 필요해)
もっともっと自然に 笑えばいいかな (조금 더 자연스럽게 웃으면 되는 걸까)
神様 もしも生まれ変わることが出来たら (신님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愛される子になれますように(사랑받는 아이가 될 수 있기를)
泣き止んだ鼓動を子守歌に(울음을 그친 고동 소리를 자장가로)
きっときっと明日は 笑えるよね (분명 내일은 웃어넘길 수 있을 거야)
間違いだらけに オヤスミナサイ (실수투성이로 안녕히 주무세요)

사실 이 노래의 노래 가사를 끝까지 본다면 태어난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찾아고자하는 노래이다. 비록 현실은 척박하지만 내일은 웃어넘길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가지고 살자는 의지를 가진 노래라는 걸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노래를 만든 가수나 작곡가도 이 노래를 듣고 사람들이 자살을 생각하게 하기 위해 만든 노래는 절대 아닐 것이다. 자신의 노래로 아이들이 자살을 생각한다거나 자신을 학대하는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쓰고 있다는 것을 이 가수가 안다면 이 또한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

‘실패작소녀(失敗作少女)’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 유발을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미디어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 언론진흥재단의 2019년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플랫폼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이라고 한다. 유튜브, 넷플리스, 틱톡과 같은 동영상 플랫폼이다. 특히 초등학생의 경우는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비율이 50.3%로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청소년들은 많은 영상 미디어에 노출되어있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화제중인 K드라마들. 그러나 폭력ㆍ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들로 넘쳐난다

세계적으로 작품성과 화제성을 인정받으며 중심 문화로 이끄는 우리나라의 훌륭한 각종 드라마나, 영화 등의 미디어로서의 K-컬처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안의 중심적 메시지보다 자극적인 장면의 부각들이 점점 수위가 높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작품의 힘은 생각보다 더 강력하기 때문이다. 작품은 대중문화를 형성하고 대중문화는 지배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또한 작품은 사회 분위기, 대중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작품은 사회 문제를 고찰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부모 된 입장에서 그 아이들을 마냥 혀를 차며 세대 탓을 하고 비판하기에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을 느끼게 다.

그렇다고 무조건 못 보게 한다는 건 환경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쉽게 노출되는 미디어 환경 속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즐길만한 놀이문화와 콘텐츠가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절실하다. 가정 내뿐 만 아니라, 학교 등에서의 적극적인 현장교육이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미디어나 콘텐츠를 만드는 생산자의 책임의식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계속 이런 자극적인 문화 속에서 앞으로 살아야 한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어른들의 관심과 아이들의 자존감이라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를 실패작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아이야, 넌 실패작이 아니란다.

실패작이란 일단 완성하고 나서의 문제라고 생각해. 너희는 아직은 미완성일 뿐이지 실패작이 아니야.

사실, 이 세상 누구든 모두가 미완성이라고 생각해.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아서, 어른이라고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나도 어른이 되었지만 늘 뉘우치고 새롭게 배우며 고쳐나가는 과정 중인걸.

혹여 스스로가 실패작은 아닐까  의심이 된다면 시간과 노력으로 ''라는 존재를 그리 살펴보렴.

애정을 가지고 고쳐 쓰고, 닦아주고, 매일 들어다 보는 그 어떤 애장품이 그러하듯. 그러다 보면 더 애정이 생기고 소중하게 느껴질 수 있지 않겠니.

어른이 되었지만 나도 그러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될 거야.

나는 참 소중하다는 걸.

그래, 너는 참 소중한 존재란다.





작가의 이전글 낙인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