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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 에포크 Sep 08. 2022

낙인에 대하여

<정상은 없다>를 읽고

로이 리처드 그린커,정혜영 옮김/메멘토 출판사


저자인 로이 리처드 그린커는 정신보건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이다. 그린커 집안은 4대째 대를 잇는 정신과 의사 집안이다. 작가는 비록 정신과 의사는 아니지만 정신보건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로 그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또한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명분은 이러한 집안 배경이나 직업뿐이 아니다. 그의 자녀가 자폐스펙트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지 않은 정신: 한국어판 제목 '낯설지 않은 아이들'》을 2008년에 출판하기도 했다. 이런 필연적 배경과 동기로 인해 그는 정신적 질환에 대한 많은 연구와 탐구를 했고 이 책이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로이 리처드 그린커의 저서(2008). 노지양 역/애플트리태일즈 출판사

 이 책은 정상성이라는 허구에서 비켜난 사람들에게 문화가 어떻게 낙인을 찍어 왔는지를 문화적 관점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낙인

다시 씻기 어려운 불명예스럽고 욕된 판정이나 평판을 이르는 말.
영어의 스티그마(stigma)는 죄인 등에게 형벌의 일부분으로 지지는 불도장을 뜻하며 부정적인 의미이다.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 등의 용어로 오늘날에도 널리 사용된다.

보통 이미지가 낙인찍히는 것은 대상이 되는 자가 그럴만한 언행을 했기 때문인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반대로 본인은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주변의 압박이나 편견 등에 의해 억울하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낙인찍히는 경우도 있다.

정상인이라는 개념은 사실 좋은 사람이라는 개념이다. 즉, 그것은 사회가 좋다고 보는 개념이다.  (루스 베네딕트, 1934)
-본문 서문 중에서-

작가는 정상이라는 개념을 서문에서부터 살짝 비꼬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정상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정립해보기로 했다.

작가는 모두에게 정신질환이 조금은 있고 정신적 고통은 정상적인 삶의 일부이며 모든 질병의 위계 안에 정신질환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몸이 아프다면, 단순히 바이러스나 약해진 면역에 의한 반응일 수도 있지만 스트레스와 같은 정신적인 면도 살핀다. 누구에게나 있는 정신 질환에 인류는 얼마나 가혹한 "낙인"을 찍으며 편견을 가지는지에 생각해본다.


문화가 어떻게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고 사회가 정의한 정상에서 벗어난 이들을 배제해 왔는지 탐구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낙인'이다.

정신 질환자란 모두 위험하고 열등한 존재라고 낙인찍는 사회적 분위기가 환자들을 움츠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2021)

예를 들어, 정신질환 및 정신과적 문제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한 환자 수는 2009년 206.7만 명에서 2019년 311.6만 명으로 증가하여 연평균 4.2%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2019년 기준 정신질환자 1인당 평균 입·내원일 수는 14.8일로, 2009년 16.8일에 비해 감소하는 추세이다. 그간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외국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보고되어,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에 대한 심리적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되어 왔다.(보건복지부, 2021)

정신 질환을 숨길 수 없을 때는 주위의 숙덕거림을 통해 낙인을 경험하거나 따돌림과 괴롭힘, 공격 그리고 일자리나 주거지를 비롯한 많은 기회의 박탈을 통해 낙인의 위력을 느낀다.

오랫동안 우리는 사회에 누구를 받아들이고 누구를 거부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정상’이라는 개념을 썼으며, 이제 정상이라는 것이 유해한 허구임을 깨달을 때다.
-본문 중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주변의 인식과 시선 속에서 우리 자신의 본실도 달라지게 된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중에 하나가 낙인이론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낙인이론(스티그마 효과, stigma effect)은 1960년에 하워드 베커에 의해 등장하는데,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누군가를 대하면 점점 그 부정적인 기대에 맞추어 성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_네이버 이미지



작가는 이러한 낙인의 원인을 '자본주의', '전쟁'그리고 '의료화'등측면에서 낙인에 대한 역사의 흐름으로 분석하고 탐구한다. 자본주의에서 생산성이 없는 사람에 대한 가치를 논한다. 정신질환으로 인해 노동이 안 되는, 즉 생산활동에 일조할 수 없는 이들에게  자본주의 입장에서는 가치가 '없는'낙인이 씌워지게 된다.

반대로 낙인을 지우는 예가 바로 '전쟁'이다. 전쟁에서 돌아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는 군인에게 정신질환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제공함으로써, 정확한 진단이 오히려 낙인을 지우는 경우도 있다.

'의료화'에서는 분열된 뇌의 모델, 생물학적 모델이 정신질 화과 장애의 낙인을 어떻게 강화했는지 추적한다. 여기서 내가 놀란 점은 작가가 직접 조사한 2006~2011년에 이루어진 한국에서의 자폐증 진단 역학조사에서 한국의 부모들 태도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 부모들은 아이의 자폐증 진단을 거부하고,  유전적 부담이 적은 '반응성 애착장애' 진단을 받으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한국 부모들은 자폐증이 유전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고 내 아이의 자폐증 진단을 받는다는 것은 곧, 가족의 유전적 무결함과 혈통에 대한 먹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낙인은 어쩌면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단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놀란 점은 작가가 생각보다 한국의 실예가 많았다는 점이다.  알고 보니, 작가는 2006~2011년 한국에서 최초로 ASD (자폐스펙트럼 증후군) 대한 대규모 역학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남한의 탈북민 문제 등을 연구하기도 했다. 본문 중 《한중록》에 기록된 조선 사도세자의 ‘화증(화병)’까지 언급하는 성실한 조사와 풍부한 사례 덕에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 정신질환의 수를 조사하며, 데이터 내용이 10년 이상 기간 동안의 정신건강 의료이용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가 2021년에 처음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정신건강서비스가 열외 대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앞으로도 정신건강 정책 추진을 위한 근거 창출 기반을 계속 확충해 나가길 빌어본다.

낙인은 세상 어디에나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대상이 달라진다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 사회는 점점 변하고 있다.

정신질환의 낙인을 만들고 지탱하고 변화시키는 역사적ㆍ문화적 힘에 대한 깊이 있고 매혹적인 탐구가 이루어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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