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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 에포크 Aug 31. 2022

결정장애세요?

차별과 편견:  언어적 인권 감수성에 대하여

아주 솔직히, 나는 개인적으로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단어 자체에 차별이 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는 행위나 일의 진행을 가로막아 거치적거리게 하거나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쓰는 말이다. 그리고 장애인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일상생활에 있어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컬어 말한다. 사실이기는 하나, 이는 일반인의 기준의 단어라고 생각한다. 일반인 기준에서의 그들의 생활이 가로막히고, 거치적거리며, 충분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다면 만약 장애인의 기준의 생활 지원과 개편이 많이 이루어진다면 그들도 충분한 기능으로 살 수 있으니 그들의 삶에 감히 '장애'라는 단어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 언젠가는 이 단어도 대체할 단어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장애인. 어감도 참 불편하고 슬픈 단어이다.


얼마 전 성황리에 막을 내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화에서 신입 변호사들의 멘토로 등장하는 정명석 변호사가 우영우에게, " 아, 미안해요. 그냥 보통변호사란 말은 실례인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우영우는, "괜찮습니다. 전 그냥 보통변호사가 아니니까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용감하게 되받아치는 우영우의 대사도 매우 멋졌지만, 무심코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잘못을 인정하며 바로 사과하는 더 멋진 정명석 변호사를 보며 크게 감탄한 적이  있다. 그는 분명 인권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다.

쿨한 사과하는 모습이 멋졌던 정명석 변호사.

인권감수성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 인권 감수성이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을 뜻하는 감수성과 인간으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 인권이 합해진 단어로, 사회에서 불합리한 관행, 제도 등 인권문제의 차원에서 인식하는 것을 뜻한다.(국가인권위원회, 2020)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다양한 자극이나 사건에 대하여 작은 요소에서도  인권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적용하면서, 인권을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출처_국가 인권위원회 인권자료(2020)

인권이란, 민족, 국가, 인종 등에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인정되는 보편적인 권리 또는 지위를 말한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혜택과도 같다. 성별이나 인종, 장애로 다르다고 해서 인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된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쓰는 말에서도 인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할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


우리도 일상에서 무심코 아무렇지 않게 쓰는 말 중에 인권감수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단어 몇 가지를 알아보았는데 우리가 쉽게 자주 쓰는 단어나 관용 표현들이 많았다.

살색

대한민국에서는 일본과 함께 황인종의 피부색을 부르는 말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살색이라는 단어가 인종 차별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한국 기술표준원의 관용색에서 제외됐다. 2002년 11월 한국 기술표준원은 기존의 ‘살색’이란 표준 관용색 이름을 ‘연주황’으로 바꿨고, 2004년 8월 초중등학생 6명이 연주황의 이름을 쉬운 한글로 바꿔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하여, 2005년 5월에 다시 '살구색'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렇게 살색에서 연주황색, 연주황색에서 '살구색'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살색이 아니라 '살구색'으로 써야 한다.

병맛

병맛은 대한민국의 인터넷 유행어로,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기는 어려우나,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주로 대상에 대한 조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처음에는 잘 만들어진 완벽함과는 동떨어진 어설픈 낙서나 그림을 보며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좋은 뜻으로 쓰였으나 후에 너도나도 병맛 만화를 그리게 되면서 부정적 의미로 변질되었다. 네티즌들이 인터넷상에 올라온 다양한 창작물들 중 수준 이하라고 생각되는 것에 답글을 달 때 사용하였다. 병맛은 ‘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로, '병신’의 본래 쓰임새가 장애인을 희화화하는 의미인 데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사용을 자제해줄 것을 권장한 단어 중 하나이다.

혼혈(混血)

서로 다른 인종 또는 민족 간 결합을 의미하기 때문에 인종, 민족을 구분하는 뜻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혼혈은 반드시 인종과 민족의 구분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구분은 대다수의 나라에서 차별로 이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의 피(유전자)가 섞여서 태어나기 때문에 말 그대로 혼혈(混血) 이루어져 있으므로 이런 단어는 부적합한 단어이다. 혼혈이란 말 대신 '다문화 가정의 자녀'라는 표현은 어떨까?

벙어리장갑

엄지손가락만 따로 가르고 나머지 네 손가락은 함께 끼게 되어 있는 장갑. 벙어리장갑은 언어장애인의 성대와 혀가 붙어있다고 믿은 옛사람들이 네 개 손가락이 붙어있는 장갑을 부르기 시작하면서 나왔다. 장애인 비하 발언이라는 얘기가 퍼지면서 이제는 벙어리장갑 대신 '엄지 장갑·손 모아 장갑'이라고 한다.

처녀작

창작자가 처음 만들어 낸 작품을 일컫는다.

일본인들이 처녀를 처음이란 의미를 담은 접두사로 쓰던 언어 습관이 한국에까지 유포되며 정착한 표현 중 하나이다. 처음을 굳이 여성이란 특정 성과 결부하고 있고, 여성의 처음이 고확률로 성적 의미를 내포하기 마련이라서 논란되기도 했다. 

''이나 '데뷔작'이라고 하는 게 맞다. 

결정장애

행동이나 태도를 정해야 할 때에 망설이기만 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일을 뜻한다. 과도하게 많은 선택의 상황 속에서 이도 저도 결정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말 중 하나이다.

'우유부단'이나 '결정이 망설여진다' 충분히 대체해서 말할 수 있다. 아주 중요한 순간이 아니어도 우린 쉽게 이 단어를 너무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결정이 쉽게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굳이 '장애'라는 표현을 꼭 붙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밖에도 우리가 오랫동안 쉽게 사용하고 있는 관용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절름발이를 포함한 관용표현도 ‘불균형적인’ ‘조화롭지 못한’으로 대체할 수 있고, 눈먼 돈‘대가 없이 얻은 돈 ‘주인 없는 돈’ 등으로 대신해 쓸 수 있다.

올초 ‘바른 용어 사용하기 캠페인’을 전개한 장애인 인권실천운동본부는 벙어리 삼 년‘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꿀 먹은 벙어리‘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로 사용하자고 권고했다. 또한 우리가 웃자고 사용되는 '찐따’‘땡깡’은 일본에서 유래한 장애 비하 용어이다.

‘찐따’는 절름발이를 뜻하는 일본어 ‘친바(ちんば)’의 잔재 용어로 다리 길이가 서로 달라 걷기 불편한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하고, '땡깡 ’ 역시 뇌전증(경련·발작을 동반하는 뇌질환)을 뜻하는 일본어 ‘텐칸(てんかん)’에서 유래했다. 억지를 부리는 모습이 뇌전증 증상과 비슷해 보인다는 이유로 표현하는 단어이다. 이 또한 장애 비하 표현 이므로,  우리말 '생떼' '억지'로 대체해서 사용해야 한다.(정책 주간지'공감',2022)

 이러한 비하 표현들은 인권 감수성에 반하는 단어들이다. 이러한 표현들 속에는 차별과 편견이 들어있다. 신조어라서, 혹은 남들이 농담처럼 쓴다고, 따라 쓰는 경우가 더 많아 더 오래, 더 많은 계층으로 사용이 널리 퍼지고 있어 안타까운 현실이다.


언어는 생각을 나타내 주는 수단이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여 쓰는 것이 그 사람의 평소 생각과 의견을 대신할 수 있다. 또한 언어는 가변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  많이 쓸수록 새로운 신조어는 언어적 생명과 힘을 가지게 되고, 오랫동안 기록되며 그 의미가 정해진다. 신조어나 유행어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신조어나 유행어는 언어적 역사에서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다만, 언어의 대단한 힘을 안다면 우리가 어떤 신조어와 유행어를 선택해하는지는 우리의 몫인셈이다.

신조어나 유행어라서, 혹은 오랫동안 사용된 관용표현이라는 미명 하에, 말이나 글에 아무렇지 않게 선택해서 사용하는 것은 '나는 차별과 편견을 가지고 있다' 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웃자고 하는 말에 너무 진지해지는 것 아니냐고 말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단어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면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차별이나 편견을 버린다는 건 말처럼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사회적 현상으로 굳어진 여러 가지의 관념으로 인한 다수의 견해이기도 하니까.

출처_국가 인권위원회 인권자료(2020)

그래서 인권 감수성이란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차별이나 편견을 버리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상식을 초월하려는 노력이 필수가 될 것이다.

인권 감수성은, 그야말로 자기 자신의 모든 상식의 틀을 초월하려는 노력이 관건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전반에 너무도 깊게 깔려있는 흑백논리적 사고방식으로는 이를 초월하기가 쉽지는 않다. 다만 자신들 스스로 상식을 쌓으면서도 일면에는 늘 비판적 견해도 경시하지 않는 자세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권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을 보고 이해하는 것이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데 중요하다. ''보다는 '열린 나'로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따뜻한 품성과 높은 자존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오랜 시간 우리 일상 속에 자리 잡은 차별과 편견의 표현들, 무심코 쓰는 단어 하나, 표현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언어폭력으로 작용하는 만큼 이를 바꾸려는 적극적인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단어 하나가 생각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면 행동을 바꿀 수 있다.

출처_국가 인권위원회 인권자료(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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