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유진이(가명)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누군가와 이야기 주고받는 걸 좋아하고 내향적인 성격 치고는 친구들도 곧잘 사귄다. 친구도 나이가 적고 많고도 상관없고 남자아이 여자아이 구분 없이 사귀는 게 유진이의 장점이다. 어릴 때도 키즈카페에 가서 심심하면 반드시 누구를 사귀고 사귄 친구랑 알차게 노는 아이였다. 낯가리기로 유명한 집돌이 집순이인 우리 부부 사이에서 나올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의 사교성이다.
과거 어느 날 그날도 여느 주말과 비슷한 하루였고 아이들을 데리고 키즈카페에 갔다.
그때가 진우가(가명)가 너 다섯 살 됐을 때니까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고 1~2년이 된 정도였을 때였다. 아직 진우가 장애라는 현실을 곧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돈 저돈 끌어모아 서울에 유명하다는 치료실을 다니며 엄마인 나의 멘털도 사실은 온전치 못했던 시절이었다.
키즈카페에서 진우는 여전히 문을 반복해서 여닫거나 공 풀장에서 공들을 분류하며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혼자 놀고 있었고, 유진이는 이날도 어떤 새로운 친구를 사귈까 하고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던 풍경이다. 시간이 좀 지나, 잠시 음료를 시키러 간 사이였다. 유진이는 아니나 다를까 누구랑 열심히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또 누굴 사귀었나 보는데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유진이와 함께 노는 새로운 친구는 당시 진우 나이대(너 다섯 살)의 다운증후군의 남자아이였다. 다운증후군 특유의 외모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자마자 그 아이를 보고 알아챘다.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다운증후군은 21번 염색체가남들보다 하나가 더 많고 외향적 특징이 있으며 진우와 비슷한 발달장애 등을 동반하지만 자폐와는 다르므로 사회성이 아주 좋다는 얇은 지식정도만 알고 있었다.
출처-네이버 이미지
여닐곱살이였던 유진이는 그 다운증후군 동생이랑 아주 거리낌 없이 잘 놀고 있었다. 같이 미끄럼틀도 타고 유진이가 앞서가면 아이를 부르며 기다려주기도 하고, 같이 낚시 놀이도 했다. 아이는 유진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같이 재밌게 놀고 있었다. 심지어 유진이는 다운증후군이 뭔지도 모를 때이니, 알고 논 것도 아닐 것이다. 유진이는 그야말로 그냥 자연스럽게 새로운 친구를 사귀였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내 눈에는 자연스럽지 않았다. 순간 가슴 한쪽이 바짝 졸려오면서 얼굴에 열이 올랐다. 불편한 감정. 왜 내 마음이 불편했을까? 내 아이도 장애 아이면서. 이 가증스러운 기분은 뭘까?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유진이가 그 아이랑 노는 게 싫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싫었다. 다른 친구들도 많은데 왜 하필 그 아이랑 노는 걸까? 란 생각까지 했다. 심지어 유진이를 따로 불러 다른 놀이를 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 이제야 인정하자면, 나는 그 아이를 "기피"한 것이다.순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나의 아이와 같은 처지인데도.
지금 생각해봐도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부끄럽고 나 자신에게 실망했던 순간이었다.
같은 존재인데 눈에 띄는 존재.
그때 깨달았다. '그렇구나. 지금 내가 그 아이를 보는 이 '눈'이 마찬가지로 바깥세상에서 바로 내 아이 진우를 보는 '눈'이겠구나. 이렇게 소외되는 거구나. 나란 인간도 어쩔 수 없구나.'
벌거벗은 듯 부끄럽고 나의 모습에 혐오를 느꼈다.
장애아이를 생각했을 때 배려해주고 잘해줘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직접적으로 인연을 맺거나,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는 대상.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아이의 부모의 표정은 웃고 있었다. 그러나 흐뭇함속에 안쓰러움과 슬픔 같은 것이 서려있었다. 나처럼.
오 년이 넘었는데도 그 느낌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 진심으로 미안하다. 회상하는 지금도나 자신이 부끄럽다.
키즈카페를 나오며 나는 나 자신을 반성하며 생각했다. 그 아이는 유진이와 노는 게 자연스러웠어야 할 일이었다. 차별은 나쁘다고 배우고 열심히 외치지만 실제로 생활 속에서 이런 상황을 만났을 때, 자연스럽지 않았다고 느꼈던 그 순간이 사실은 날카로운 현실이었다는 것이 참 씁쓸했다. 편견 없이 스스럼없이 순수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함께 노는 유진이에게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그 일을 회상하며 나는 그날, 내가 느낀 그 불편하고 무거웠던 감정이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아이들에게 투영되지 않는 세상이 되길 감히 간절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