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산책

봄 만끽

by 벨 에포크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 가족은 모두 저녁 산책을 나섰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밤사이 쌀쌀했던 기억에 목도리에 패딩까지 야무지게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어느새 목도리를 빼고 패딩점퍼의 지퍼를 열었다. 언제 이렇게 따뜻해졌는지.

길가에 화려한 벚꽃들이 어둠 속에서도 자태를 뽐내며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오늘은 왠지 늘 가던 코스로 산책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동네 벚꽃길로 나름 유명하다는 근처 공원으로 산책 가자고 가족들에게 제안했다. 그럼 그렇지, 루틴과 다른 장소를 우리 막내님이 좋아할 리 없다. 그러나 왠지 오늘 저녁이 아니면 벚꽃을 제대로 볼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첫째와 나만 먼저 출발하고 남편과 막내는 원래 가던 루틴 산책코스를 가기로 했다. 사실 요즘 회사로 피곤한 남편이나 루틴이 중요한 막내, 두 집돌이들은 봄꽃에는 당연히 관심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같이 가더라도, 남편과 아들은 빨리 집에나 돌아갈 생각만 할 게 틀림없다.


첫째 유진이(가명)와 나는 밤에도 환하게 피어있는 아름드리 벚꽃들을 가리켜가며 오로지 벚꽃을 보기 위한 산책을 시작했다.

활짝 핀 벚꽃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길로 들어서자, 묵직한 꽃가지들이 마치 부채춤이라도 추듯, 펼쳐져 피어있었다. 낮에도 그 자태가 더욱 화려 했겠다 싶었지만 밤에 보는 벚꽃들은 낮에 봤으면 몰랐을 환한 꽃잎들로 그야말로 자체 발광(自體發光)하고 있었다. 벚꽃이 장미과 꽃이라는 걸 알면 이런 화려한 모양새가 이해되기도 한다. '밤에 피는 장미'라는 말이 떠올라 첫째 유진이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깔깔 웃었다.

벚꽃나무에 대해 궁금해진 모녀는 잠시 벤치에 앉아 벚꽃나무에 대해 검색해보기로 했다. 흥미로운 것이, 벚꽃나무가 고려시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고려 고종 23년(1236)부터 38년(1251)에 완성)의 목판의 재료 쓰였다고 한다. 너무 단단하지도 않고 무르지도 않고 잘 썩지도 않아 가공하기가 쉽고, 자라는 장소나 나무의 재질이 목판인쇄의 재료로 알맞았다고 한다.(박상진, 『궁궐의 우리 나무』, 눌와) 또한, 조선시대에는 활의 재료가 되기도 했단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조선 선조 25년(1592)에 일본이 침입한 전쟁)에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벚나무의 껍질은 화피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활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군수물자였다는 벚꽃나무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저 꽃만 예쁘게 피다 지는 관상용 꽃나무인 줄만 알았는데 역사적으로도 쓰임새가 많은 겉과 속 모두가 아름다운 나무구나 싶어 우리는 벚꽃뿐만 아니라 나무도 새삼 달리 보였다.


그때 울리는 폰 소리, 남편이다.

"어디야?"

의외였다. 당연히 집으로 쌩 하고 간 줄 알았는데 꽃 보러 오겠다는 남편의 말에 의아했다.

막내와 산책을 마치고 남편이 막내 진우(가명)에게 "꽃 보러 가요", "엄마랑 누나 만나러 가요"를 몇 번이고 안내해주고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었더니 웬일로 따라나섰다는 거다.

드디어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 사이로 중간지점에서 만난 우리 가족 완전체(完全體).

괜히 마음이 더 들뜨고 뿌듯했다.

땅만 보며 걷는 막내 진우를 붙들고 환하게 피어있는 벚꽃을 가리키며 "무슨 색이야?"하고 물으니 "핑크색."이라고 대답한다. 오~~ 흰색이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안 보는 거 같더니 제대로 봤네! 관심 없는 척해도 우리 진우 눈에도 벚꽃들이 예쁘긴 예쁜 모양이다.

진우는 루틴과 다른 장소인데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거부하지 않고 제법 잘 따라와 주었다.

오랜만에 아이들손이 아닌 남편과 손잡고 한동안 걸어보기도 했다.

집으로 오는 길 벚꽃나무 아름드리 만발한 한그루가 유독 눈에 띄었다. 마치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어 피어난 꽃들을 자랑하는 듯했다. 그때 유진이가 "꽃이 불꽃놀이 폭죽 터지는 것처럼 피었어!"라고 외쳤다. 정말 그렇게 보였다.

봄벚꽃 불꽃축제^^

짧은 저녁 산책이었지만 행복했다. 행복이 별거 인가, 이렇게 도란도란 가족과 봄을 만끽하며 함께 걸으며 꽃 보는 거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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