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세계에 초대해줘

나도 알고 싶어

by 벨 에포크

우리 진우(가명)는 자주 창가에 앉아 공허한 눈빛으로 한참 동안 먼산을 바라본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소용이 없다.

마치 혼자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것만 같다.

가끔은 그 먼 산을 향해 알 수 없는 말들을 계속해서 읊조리기도 한다.

누가 듣고 있는 것처럼 기이한 손짓도 해가며 뭐라고 뭐라고 알 수 없는 말들을 내뱉는다.

누구랑 말하는 걸까?

전문적 소견으로 감각적 추구라고 하지만 오늘도 진우는 허공에다 신나게 손을 마구 흔들며 진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이 세상과 마주하고 있다.


우리 진우는 자폐성 발달장애아이다.

자폐는 그야말로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세상과 소통할 수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찰떡같이 지었다.

진우는 자기만의 세상이 있는 게 틀림이 없다.

나는 진우의 엄마니까 진우의 세상이 궁금하다.

자식이 유학을 갔는데 자식이 유학 간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는 알고 유학을 보내야 하는 게 부모의 도리인 것처럼.

진우는 아직도 말이 서투르니 엄마에게 말해줄 수 없다. 물어보면 내가 하는 끝나는 말만 돌림노래처럼 따라 말한다. 그러니 알 방도가 없다.

자기 세상이 얼마나 재밌길래 발달하는 것도 까먹고 노는지 엄마는 궁금하기만 하다.

어느새 열 살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자기만의 세상과 이 세상을 왔다 갔다 하느라 아직도 서네 살 남짓한 나이에 머물러 있다.

자기 딴에는 바쁘다.

얼마나 좋길래 허구한 날 자기 세상에 들어가 이 세상에 적응하기 싫어할까?


한 때는 내가 엄마니까 이 세상과 소통하게 해 줘야지 하고 독한 마음으로 억지로 잡아당겨 가며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내려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싼 병원 진료 투어에, 장거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전국구로 유명하다는 치료실을 옮겨 다니며 어떻게든 세상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치며 다그쳤었다.

그게 엄마인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줄 알았고 또 그렇게 하면 진우가 금세 세상 밖으로 나올 줄 알았다.

내가 노력하면 할수록 진우는 더욱더 많이 자기 세상으로 떠나 버렸다.

힘겹게 우리 세상으로 나오면 울기만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울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라도 싫었을 거 같다.

병원 진료와 치료실 생활을 세 살부터 했으니 그 나이 또래 애들이 신나게 뛰어놀 때 진우는 하루 종일 엄마 손에 붙들려 차에 실려 이 검사 저 검사받으며 로봇처럼 움직여야 했다.

잔뜩 짜인 스케줄에 낯선 어른들만 잔뜩 있는 소독 알코올 냄새 진동하는 병원과 좁은 치료실들이 뭐가 재밌었겠는가.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이제 와서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다.

변명을 하자면 그때의 나는 초기에 바짝 치료하면 정상발달처럼 되돌아올 줄 알았다.

그런 사례가 있다는 말들은 날 희망 고문했다.

조금만 잠깐 이렇게 고생하고 나면 진우가 이 세상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나의 죄책감에 대한 일말의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순전히 나의 만족감 때문에 진우도 나도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 거였다.


그 모습을 보며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이 잘못된 방향의 노력이었다는 것을.

여태껏 진우를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으로 오라고 강요만 했지 내가 진우의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내가 조금이라도 진우의 세상을 알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진우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를 텐데. 진우에게 계속 너의 세상은 틀렸다고 우리 세상이 더 맞다고 소리치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설프고 어리석었던 엄마였다.

깨달은 그때부터 최소한의 수업이 아니면 장거리의 모든 진료와 치료실들을 정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눈이 돌아 있던 나를 '그래, 그렇게 해서라도 네가 만족한다면 뭐든 다해봐'라고 묵묵히 지켜봐 주고 도와준 남편에게도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을 전한다.


이제는 진우가 쉴 때는 어떤 강요도 어떤 터치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진우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관찰한다. 관찰한다고 그의 세상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느냐만, 그래도 그 덕분에 진우가 좋아하는 촉감과 좋아하는 색깔도 알게 되고, 콧 내음을 내면서 손을 하늘 높이 올려 손가락을 돌리면 기분이 좋은 것이라는 걸, 어떨 때 갑자기 얼굴이 빨갛게 되며 굵은 소리를 내면서 발을 굴리면 기분이 나쁘다는 걸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되었다. 진우가 왜 기이한 행동을 하는지 어떤 상태서 나오는 행동인 것인지 진우에 대해 알게 돼서 좋았다. 그러면서 조금씩 진우의 세계를 희미하게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3년이라는 어리석은 시행착오들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시행착오들 덕분에 진우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앞으로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사랑할 것이다.

-베란다 자투리 공간에 만든 진우만의 아지트. 아예 창가에 소파를 놔주었다.-




지금도 진우가 창가에 앉아 혼자만의 세상으로 떠나면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안타깝다가도, 한편으로 즐겁다.

이제는 진우의 세상에 들어가 보고 싶다.

진우가 초대만 해준다면 기꺼이 진우의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진귀하고 신기한 세상이지 않을까?

혼자 상상해보곤 한다.

마치 앨리스의 원더랜드처럼.

진우야,

진우의 세상이 아무리 재밌어도 가족들과 엄마가 사는 우리 세상으로도 자주 와주면 좋겠다.

진우는 진우의 세상도 좋겠지만 진우가 우리 가족과 함께 사는 이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게, 그래서 이 세상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게 노력하는 게 지금의 엄마의 목표란다.

진우야, 너의 세상으로 초대해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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