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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 에포크 Jun 22. 2022

초감각자

초능력자는 아니지만

 우리 부부 영화 엑스맨(X-MEN)을 좋아한다. 엑스맨의 서사가 묘하게 아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는 수많은 초능력자가 있다. 하늘을 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물건을 멀리서도 옮기고, 텔레파시를 보내고,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꾸고, 시간대를 마음대로 오가기도 하며, 순간이동도 휘릭 휘릭 하는 초능력. 

 살면서 한 번쯤 나도 이런저런 초능력을 가지고 싶다고 상상해본 경험이 다들 있었을 것이다.

영화 엑스맨 포스터(2000)
마블 코믹스의 인기 시리즈. 판타스틱 포, 어벤저스와 함께 집단 히어로물 계열의 대표작.
히어로들을 영웅이라기보단 군중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인 뮤턴트로 묘사했기 때문에 사회적인 메시지도 전달하고 있다. 캐릭터들이 사회적으로 탄압받는 사람들 같은 느낌을 준다. 멀리 갈 것 없이 더 울버린에선 야시다 신겐이 '돌연변이는 신의 실수다'라며 표현하고 다른 영화에서도 인간과 돌연변이들을 구분 짓는 형태의 언어를 구사한다.
여담으로, 인물들이 뮤턴트로 설정되어 있는데 실제로 본래 제목을 "더 뮤턴츠"(돌연변이들)로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출판 전 이 제목을 변경해 "별도의 능력"(eXtra Power)을 지닌 사람들이란 의미에서 엑스맨(X-MEN)으로 최종 수정되었다.(네이버 나무 위키 부분 발췌)

 우리 아들에게는 초능력 대신 초감각이 있다.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강력히 부각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오감이 있는데 청각, 시각, 후각, 촉각, 미각을 오감이라고 한다. 아들은 이러한 오감 중에 서너 가지 정도의 감각을 특히 남들보다 4~5배의 세기느낀다.


첫째로, 청각이다. 보통사람이 들리는 주변의 모든 소음이 무작위로 한꺼번에 들어온다. 우리는 보통 자라면서 주변소리의 볼륨을 조절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시끄러운 광장이나 기차역에서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 당신은 주의집중을 하면 주변소리의 볼륨을 내리고 상대방의 목소리 볼륨을 올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대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의 초감각은 그러한 조율이 없이 거의 모든 소리가 거침없고 구분 없이 똑같은 볼륨으로 한꺼번에 들어오는 것이다. 제대로 들리지 않으니 대답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언어도 느리게 된다. 제대로 들리지 않으니 소리 모방이나 수용힘들기 때문에 언어를 배울 기회가 적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 시각이다. 시각에 매우 민감하다. 특히 자폐성 발달장애에 유난히 도드라지는 초감각의 특징 중에 하나가 시각이다. 시각적 각인이 강한 편이고 대부분 시각적 자료나 이미지를 통해 배우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 이들이 눈 맞춤이 안된다는 고정적 평가가 있는데 이들의 시각은 가끔 확대되어 보이거나 왜곡되어 보여서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 사람의 얼굴이 확대되어 보이거나 주변 풍경과 얼굴들이 겹쳐 보이기 때문에 눈 마주침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라도 그런 현상이 보이면 눈 마주치는 게 무섭거나 꺼려질 것 같다. 또한 얼마 전 읽은 책 《스파크》의 주인공 애디처럼 감정이 격해짐에 따라 눈앞에서 크고 작은 불꽃들이 팝파박! 하고 질지 모른다. 아들의 경우도 시각 또는 빛에 민감해서 한 번은 낮에 횡단보도 걷는 도중에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갑자기 멈추고 눈을 양손으로 가리는 바람에 아찔했던 경험도 있다. 그리고 교실 형광등이 너무 밝으면 눈을 가리거나 구석진 모서리에 가서 머리를 기대고 그림자를 만들어 눈을 휴식하는 돌발행동을 하고는 한다.


세 번째, 후각이다. 후각이 가장 뇌로 빨리 전달되는 감각이란 사실을 아시는지? 후각만으로 물건의 형태나 성질 등의 파악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냄새가 없는 물건인데도 처음 보는 물건일 경우 손으로 만지고는 바로 손의 냄새를 맡기도 한다. 한 번은 어릴 때 미끄럼틀을 태우는데 신기했는지 미끄럼틀에 냄새가 날리 없을 텐데도 미끄럼틀 냄새를 맡아보고는 했다. 그리고 불안해할 때 아들은 엄마의 머리카락 냄새를 좋아한다. 갑자기 내 머리를 잡아당기며 감싸 메고 냄새를 맡아서 민망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오감 외에 아들의 여섯 번째 감각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 감각 분야가 아들의 특정 초감각이라고 생각한다.

이 초감각은 바로 '감정'이다. 아들은 특히 '슬픈 감정'에 유난히 민감하다. 아직 감정인지가 안돼서 첫 단계인 '슬픔'에 더 민감한 편이다. 물론 단순히 감정 모방일 수도 있겠지만, 관찰해보니 아들은  자신의 감정보다 상대방의 감정을 훨씬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 

한마디로, 상대방이 슬퍼하면  본인이 훨씬 더 슬프다. 상대방이 힘들어하면 그 힘듦이 배가 되어 본인이 더 안절부절 해 한다. 예를 들자면, 한 번은 치료 선생님께 슬픈 일이 있었는데  아무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선생님, 괜찮아, 괜찮아~""를 반복하며 수업시간 내내 아들이 선생님보다 더  안절부절못해하며 힘들어하거나 더 크게 울었다고 한다. 그런 모습에 선생님은 오히려 아들에게 위로받았다며 고맙다고 말씀해주신 일화도 있다.


영화에서는 인물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숨기거나 저주라고 생각한다. 뮤턴트로 불리며, 기피대상으로 분류되어  차별당하는 사회적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린 뮤턴트들은 자신의 능력을 제어하거나 조절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주요 인물인 찰스 프란시스 자비에 교수, 일명 프로페서 X(패트릭 스튜어트 분)는 스톰, 사이클롭스, 진 그레이와 같은 돌연변이들을 모아 그들이 가진 능력을 조절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자신의 힘을 인류를 위해 사용하는 '엑스맨(X-men)'이 되도록 지도한다.

엑스맨들이 다녔던 해클리 학교(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seroj)


남편과 나는 현실에서도 이런 학교가 짠! 하고 있어서 아들의 초감각을 초능력처럼 쓸 수 있게 가르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유쾌한 상상을 하며 같이 대화하한다. 물론 영화의 결말처럼 뮤턴트와 인간을 구분 짓고 서로 간의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져선 안 되겠지만. 엑스맨과 같이  인류와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평화주의 집단인 자비에 교수 편이고 싶다.


아들을 볼 때면 '아들도 뮤던트이지 않을까?'란 상상을 한다.

돌연변이. 어감이 부정적일 수는 있지만 돌연변이는 인간 진화의 핵심 요소다. 인간을 작은 세포에서 지구 상 가장 진화된 종으로 발전시켰다. 그 과정은 매우 느려서 보통 까마득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수백만 년마다 획기적인 진화가 이룩된다. 이 진화의 중심에는 늘 돌연변이가 존재해왔다. 우리가 장애라고 표현하는 것들이 과연 정말 결함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다.

이미지 출처_pinterest

엄격히 말해, 아들은 뮤던트나 초능력자도 아니다. 그래서 영화 속 초능력자들처럼 거창하게 세상을 구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대단한 진화의 핵심 요소도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아들이 아직은 발현하지 못한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 하나는 확실히 믿고 있다.  이러한 아들의 초감각은 세상을 구하진 못해도, 덕분에 우리 가족을 구해준다. 아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더 똘똘 뭉치며 하나가 되었고, 나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삶과 한 그룹의 인생을 바꾸는 힘은 거뜬히 지니고 있는 셈이다.


우리 집 초감각자 엑스맨(X-MEN)은 오늘도 우리 가족을 지켜준다. 


표지 이미지 출처_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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