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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 에포크 Jun 28. 2022

나의 동화 같은 우정 시리즈

2. 나의 특별한 "빨간 머리 앤 "

어제, 올해 5학년이 된 첫째 딸과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냥 같이 있어서 재밌으면 친구가 아니냐며 딸이 물어본다.

"그러면, 친구의 기준이 뭔데요?"

 사람 좋아하는 강아지 같은 우리 딸내미는 늘 친구에 대한 어떤 갈망이 있는 것 같다.

12살. 이제는 어릴 때랑 노는 방식도 방법도 달라지고 자신보다 더 성숙한 친구들이 제법 멋져 보이고 동경하게 될만한 나이이긴 하다.

친구에 대한 의미가 처음으로 중요해지고 의식하며 더 이상 가족이 아닌 친구가 한참 좋아질 나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친구라는 의미나 기준을 제대로 생각해볼 수 있게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 내가 해줘야 할 이야기는 무얼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때 스치는 얼굴.

내게는 5학년 때 하면 떠오른 얼굴이 있다. 바로 E의 얼굴이다.


친구 'E'는 내가 5학년에 처음 만난 친구이다. 정확히 지금 나의 딸과 똑같은 나이 때였다.

친구 E는 빨간 머리 앤 같았다. 주근깨 하얀 얼굴에 늘 씩씩하고 명랑하고 밝은 친구. E를 떠올리면 늘 웃는 얼굴이 생각난다. 항상 먼저 말 걸어주며 손 내밀어준 친구. 시간이 갈수록 마음 따뜻하고 나보다 훌쩍 성숙한 느낌도 있었던 것 같다.

 E가 빨간 머리 앤 같았다면, 나는 앤이 부러우면서도 앤처럼 될 수 없었던 다이애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몽고메리의 빨간머리앤 초판(1908)네이버 나무위키 출처.
캐나다의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지은 소설로 1908년 출판되었다. 소설의 배경은 캐나다에서 가장 작은 주인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섬이다.

"빨강머리 앤(赤毛の アン)"이라는 명칭은 일본에서 이 소설의 번안 제목이며 원제는 'Anne of Green Gables'로 직역하면, ' 초록지붕의 앤' 또는 '그린 게이블스의 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특히 유명해졌다. 번안 제목으로 쓰였을 만큼 빨간 머리가 인상적이며 주근깨 투성이인 소녀 앤 셜리는 생기 넘치고 상상력이 풍부해 생동감이 가득하다. 작가 몽고메리는 이 캐릭터 하나로 평생 소설을 썼으며, 한국에는 그다지 소개되지 않았지만 앤의 유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다룬 시리즈가 계속 이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50개국 이상에 번역되어 1억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다.
(네이버 나무 위키 발췌 및 참조)
 일본 애니메이션,빨강 머리 앤(赤毛の アン)

 철없지만 한참 꿈 많을 5학년 때는 처음으로 친구들과 뭉쳐 다니며 엄마가 아닌 친구와 이런저런 비밀을 주고받던 시절이었다. E와 함께 마음에 드는 같은 반 남자아이 이름도 공유하고 서로의 집에 놀러 가며 서로의 관심분야와 취미를 공유하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며 놀던 시절이었다. 맞벌이에 어린 시절 조금은 엄격했던 우리 집과 달리 친구 E의 집은 늘 따뜻하고 아늑했던 기억이 난다. 자주 E의 집에 놀러 가곤 했는데, 맨 처음 뜨개질도 이 친구에게 배웠고, E의 집에 놀러 가서 맛있는 식사도 자주 얻어먹었던 거 같다. 비밀 편지도 주고받고, 첫 바느질도 E의 어머님께 배웠던 기억이 난다. 친구에게 요리랍시고 대접한 음식은 냉동 물만두를 접시에 넣고 물 조금 부어 전자레인지에 돌려놓고는 거창한 듯 자랑했던 추억도 기억난다.


 5학년 시절 만나 즐거운 추억도 많지만 이때의 인연이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질 거라고는 그때는 생각 못했었다. 이런 사이가 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모두 E의 덕분이다. 사실, E와 못 만난 지 년도 더 넘은 거 같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먼저 연락할 엄두조차 못할 때마다, 항상  E에게서 아무렇지 않게 안부 톡이 온다. 마치 어제도 만난 것처럼. 내가 답장을 하든, 못하든 상관이 없다. 계절이 바뀌면 바뀌었다고, 어떤 장소에 오면 왔다고, 순간 보고 싶다고 여전히 한결같이 E에게 문자톡이 온다. 안부 톡을 볼 때마다 친구와의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르고 E의 마음이 느껴져 한없이 따뜻해지고는 한다. 자주 만나지 못하고 사소한 것들을 나누지는 못하지만 이미 인생전반을 나누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든다. E와는 시간이라는 장애물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었다.

늘 먼저 손을 내밀어 안부를 물어주는 나의 친구

직 친구란 기준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에 E는 나에게 친구란 기준을 알려준 고마운 존재이다.

친구라는 말은, 들을 때마다 마음을 참 따뜻하게 해 준다. E를 생각하며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의미란 시간이 지나도  힘든 세상살이에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친구란 당장에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이란 밑거름으로 서로가 열심히 배려라는 물을 주고 존중이라는 햇빛을 쬐어주며 키워가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딸이 물어보는 친구의 기준이라는 건 사실 친구라는 의미를 알면 자연스레 세워지겠구나를 깨달았다. 물론 함께 하면 재미도 있어야겠지만 친구를 통해 사람은 건강한 정서를 공유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어 삶의 의미가 더해진다. 이러한 설명이 진부하고 지루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설명 외에 더 이상 설명할 길 또한 없지 않을까?

오늘 학교에서 돌아오면 딸과 이런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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