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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 에포크 Jul 03. 2022

행복한 보르카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를 읽고

얼마 전, 아들의 학교에서 "장애 이해하기"라는 주제로 추천된 책이 한 권 있었다.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자'메시지로, 저학년을 위한 권장도서이다. 그러나 나는 단순한 그림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어떤 철학서보다 더 깊은 울림과 심오한 배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팬이 많은 존 버닝햄의 첫 작품 이기도 한 책이다. 얼마 전 알라코알라 작가님의 글에서 추천해주신 책 '에드와르도'도 읽은 적이 있어 한층 더 친근했다.


John Mackintosh Burningham

1936년 4월 27일 영국 서레가(Surrey) 주의 파넘(Farnham) 시에서 세일즈맨인 아버지 찰스 버닝햄(Charles Burningham)과 어머니 제시 버닝햄(Jessie Burningham)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 찰스 키핑과 더불어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그 밖에도 『우리 할아버지』 『코트니』『지각대장 존』, 『비밀 파티』등 많은 작품이 있다. 1964년 첫 그림책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받았고, 1970년에 펴낸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로 같은 상을 한 차례 더 수상했다. 꾸밈없는 글과 자유로운 화풍, 누구보다 어린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상상력으로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아 왔던 그는 2019년 1월 4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예스 24의 존 버닝햄 소개문 부분 발췌 )

사진 속 작가는 푸근한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 데려다 놓아도 친구들하고 어울리지 않고 무심한 얼굴로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아이였고, 기존 제도권 교육에 대한 연이은 부적응 탓에 아홉 번씩이나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으며,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우리나라로 치면 대안학교에 가까운 서머힐 학교에 진학했다고 한다.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는 서머힐 스쿨에서 보낸 자유로웠던 어린 시절을 창작의 중요한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덜 지적인 것은 아니다. 경험이 부족할 뿐"
-존 버닝햄-

청년 시절엔 징집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2차 대전 참전을 거부했던 아버지 영향 때문인지 너무도 당연하게 병역을 기피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등록해 2년 3개월 동안 병역 대체 근무로 산림관리 위원회, 런던 신경 쇠약 환자 전용 국립병원에서 환자를 옮기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또 국제 평화 봉사단에서 일하면서 빈민가를 재건하는 일을 돕기도 하고 낙후된 곳에서 학교 짓기 등 사회 복지 사업에 참여하면서 병역 대체 근무 기간 중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했고 이때 이태리, 유고슬라비아와 이스라엘 지역을 여행했다. 이후 런던의 센트럴 스쿨 오브 아트(central School of Art)에서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이곳에서 헬린 옥슨버리를 만나 1964년 결혼한다. 헬린 옥슨버리도 뛰어난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의 한 사람이다. 세 자녀들 (루시, 빌, 애밀리) 역시 모두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간결한 글과 자유로운 그림으로 심오한 주제를 표현하기로 유명하며, 어린이의 세계를 잘 이해하고 상상력과 유머 감각이 뛰어나, 세계 각국의 독자에게 사랑받는 그림책 작가이다.


존버닝햄 글그림/ 엄혜숙 옮김/비룡소 출판사

영국 동해안의 황량한 늪지에서 보르카는 새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중요한 깃털이 없이 태어났다.  엄마와 아빠는 의사에게 검사를 받게 한다.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깃털이 없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요".

엄마는 보르카를 위해 회색 털옷을 떠 주었는데 이 털옷을 보고 언니 오빠들은 보르카를 놀려댔다.

보르카는 나는 법도, 헤엄치는 법도 배울 수가 없었다. 깃털 대신 털옷이 있었지만 깃털을 대신할 수 없었다. 보르카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배우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잘 배워지지 않았다. 겨울이 되자 모든 기러기들은 따뜻한 곳을 날아갔는데, 날 수 없는 보르카는 혼자 남겨졌다.  심지어 보르카가 남겨졌는지조차 가족들은  몰랐다는 대목에서 가슴이 아팠다. 사랑의 보살핌은커녕 오히려 가족에게 버림받은 보르카.

진찰중인 의사 선생님/ 혼자 깃털없는 보르카/자신을 놔두고 떠나는 가족들/털옷을 짜주는 엄마

비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우연히 올라탄 크롬비 호라는 배에서 파울러라는 개를 만나게 되고 매칼리스터선장의 허락을 받고 배에서 일하며 런던으로 향하게 된다. 이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선장과 선장의 친구 프레드 그리고  파울러 보르카를 불쌍하게만 여기지 않았고, 보르카도 그저 도움받거나 의지하지 않고 뱃삯에 맞는 일을 했다. 부리로 밧줄을 감기도 하고,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청소도 했다. 깃털은 없지만 꼭 깃털이 필요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보르카는 어느새 선원의 일원이 되어 정당하게 배를 탔다.

매칼리스터 선장과 친구 프레드, 개 파울러/큐가든에 데려다 준 선장과 보르카/큐가든친구 퍼디넌드

그렇게 런던에 도착한 보르카는 선장의 도움을 받아 온갖 기러기가 산다는 큐가든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는 깃털이 없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큐가든에서 만난 친구 퍼디넌드가 헤엄치는 방법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선장과 프레드, 파울러는 런던에 올 때면 보르카를 보러 큐가든에 와주었다. 그렇게 보르카는 행복하게 살았다.


보르카가 행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언뜻 보르카는 깃털이 없어 날 수 없는 불쌍한 새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보르카는 전혀 불쌍하지 않다.

이 책은 '장애에 대한 차별과 다름의 인정'라는 메시지의 서평이 많다. 그렇지만 난  이 책을 통해 그보다 좋은 "친절함"이라는 메시지를 얻었다.

보르카는 힘든 인생의 고비 때마다 친절을 베풀어주는 이들을 만났다.

깃털 말고는 정상이라고 말해주는 의사 선생님, 털옷을 짜준 엄마, 배에서 일하며 승선을 허락해준 선장님과 친구 프레드 그리고 개 파울러, 큐가든에서 만난 친구 퍼디넌드까지.

보르카는 친절이라는 손길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보르카는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았고 만족스러운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에서 친절이 누군가의 인생, 그리고 곧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구나 느꼈다.

이 책은 분명 아이들에게 배움을 주는 책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이 오히려 내 상처를 얼러 만져준다고 느꼈다. 화려한 미사여구도 없고 어려운 어휘도 없다. 단순하고 쉬운 단어의 나열, 투박하지만 알록달록한 색감의 그림들이 나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림책은 솔직하다. 어쩌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혼자가 아니라고 속삭여주는 듯하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지만 지친 일상에서의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행복한 보르카를 위해 나도 조금 더 세상에게 친절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표지 - 아들이 꾸민 보르카(저작권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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