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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평행우주 체험기(상편)

꿈이라기엔 너무 강렬한-남편의 글

by 벨 에포크

작년 유월, 유독 진우(가명)의 문제행동도 많았고 감각 조절이 힘든 시기였다.

그날도 여전히 진우는 남편이 재우기로 한 날이었다. 난 유진이(가명)와 자다가 목이 말라 새벽 4시쯤 눈을 떴다. 거실로 비틀대며 일어난 그때 덜컥 놀랐다. 남편이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혼자 소파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만 닿으면 바로 코를 골며 숙면하는 그가 그날만큼은 달랐다. 초롱초롱하다 못해 촉촉해진 두 눈으로 들려준 이야기는 우리 부부에게 강렬한 이야기였다.

다음은 남편이 꿈을 꾼 뒤 바로 기록한 내용이다.


오늘 아들을 재우다 꿈을 꿨다.

오늘 저녁 유난히 아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인지 감각이 떨어져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한다.

많이 힘들어하면서 잠들었는데, 나도 침대에서 같이 잠들었다가 이상한 꿈을 꾸게 된다.


꿈에서 가족과 함께 저녁 외식을 하려고 걷고 있었다.

이전의 꿈에서 항상 나타나던 익숙한 장소이다.

어렸을 때 살았던 고향인 부산이었고 중심 상가 쪽 거리의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거리를 구경하며 걷고 있는데, 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한다.


나는 잠시 혼자서 멈추고 신고 있던 슬리퍼를 구두로 갈아 신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보니 내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내와 딸과 아들이

잠시 당황했다가 원래 가던 길을 갔겠지 하고, 빠른 걸음으로 뒤쫒아 보았다.

길이 끝나는 막다른 곳까지 도달했고, 오른쪽은 공원으로 가는길이며 왼쪽은 차도로 가는 길이다.

공원 쪽은 야간이라 문이 닫혀있어 차도 쪽으로 내려갔다.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잃어버린 것 같다.

(꿈이라서 그런지 이 시점에 나는 가족에게 전화를 해볼 생각은 하지 못한다.)

꽤 오랜 시간을 방황하고 헤매다가 눈에 보이는 지하 상가로 들어가 보게 되고,

어떤 병원 치료실 같은 장소로 들어간다. 거기에는 이미 의사 선생님과 치료를 대기하는 다른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다.

의사나 다른 가족에게 현재 내가 처한 문제를 설명하고 혹시나 내 가족을 보았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들도 내 상황을 이해할 리가 만무하다.


잠시 후, 바깥으로 다시 나와서 갑자기 생각난 것이 바로 내 동생한테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이 시점이 중요한데, 꿈이 영화처럼 기억의 조각을 관망만 하는 무대가 아니라, 내가 자의적으로 처해진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하는 의식이 투영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후에 꿈에서 깨어나 복기를 할 때도 이 부분은 신기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꿈에서 내가 왜 이걸 안했지? 라는 아쉬움이 항상 남았기 때문이다.)


이제 재미있는 상황이 펼쳐진다.

드디어 전화를 동생이 받았다, 자 이제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는데.

갑자기 누구냐고 미친놈처럼 나에게 말한다.

자기는 형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것처럼 잠시 멍했다.

일반적인 현실의 일부를 투영해서 무의식을 따르는 꿈과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강제로 설정된다는 것은....

혹시 내가 평행 우주로 와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아까 저녁을 먹고 나서 슬리퍼를 구두로 갈아 신는 그 시공간이 웜홀을 동작시킨 것일까?

(지난 주에 집사람과 마블 미드 '로키'를 정주행 하고 나서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로키에서 평행우주와 멀티버스에 대한 내용이 심도 깊게 다루어졌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정교하게 꿈에서 조합되서 설정이 만들어지는 것도 신기할 따름.


다시 꿈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이런 상황에 갑자기 무언가 번쩍 생각이 났고, 아까 들렀던 병원으로 다시 뛰어갔다.

왜냐하면 아까 치료실에서 대기하던 가족이 엄마 아들 딸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고, 나도 다시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들 미묘하게 원래 세계의 내 가족을 닮았다, 아니 맞는 것 같다!


이렇게 생동감 넘치고 정교하게 짜여진 반전 구조의 플롯이 나의 꿈에서 만들어지다니!

(매주 한번 이런 꿈을 꿀수 있다면 해리포터 작가의 반열에 오르는 것도 쉬운 일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엄마와 딸이 아닌, 가장 오른 쪽에 앉아 있던 아들이었다.

그 친구는 퉁퉁한 내 아들과는 달리 적당히 마른 체형에 눈망울도 초롱초롱한 지극히 정상적인 멋진 아이였다.

원래 말을 제대로 못하는 내 아들과는 달리 조리있게 또박또박 나에게 말을 잘했다,

맑은 목소리가 너무나 생소했지만... 저 친구가 내 아들이 맞음을 틀림없이 알 수 있었다.

-To Be Continued -



남편은 꿈을 꾸고 느낀 게 아주 많았던 모양이다.

결혼 전이나 신혼 때는 블로그에 자주 글도 쓰던 사람이었는데 아빠가 되고 난 후로는 글 쓰는 것도 어느새 멈췄던 그였다. 그런 그가 몇 년 만에 이렇게 휘몰아치듯 글을 써 내려갔다.

비록 내가 쓴 글은 아니지만 언젠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싶다고 남편에게 허락을 구했다. 장애아이를 키우는 애환을 속으로 삼키며 어쩌면 겉으로는 무덤덤해야 했을 아버지라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도 사실은 강렬하게 염원하고 있음을.

꽤 많은 분량이라 (상), (하) 편으로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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