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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감의 한 주름일 뿐

책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by 벨 에포크

나는 자폐스펙트럼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꽤 오랜 시간 아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자폐의 '자'자만 들어도 지겨울법한데 나는 계속 궁금하다. 자폐에 대한 치료서나 뇌 또는 감각에 관한 의학서, 자폐를 가진 사람들이나 그 양육자들이 쓴 글과 책들을 지금까지 수십 권을 찾아 읽은 것 같다.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은 자폐에 관한 책을 보면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무슨 소용이냐 하기도 하고, 읽을수록 마음만 힘들다 하는데. 그리고 이제는 그만 궁금할 때도 됐을 텐데. 그런데도 나는 계속 들이 파는 중이다. 여전히 자폐가 무언지 궁금하고 자폐라는 증상을 만들어내는 뇌가, 감각들이 궁금하다. 그래서 여전히 그에 관한 연관 책들을 찾아 자주 읽곤 한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라는 책이 있다.

자폐를 인식하고 이를 연구해야 한다는 사명이 시작된 그 순간, 그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책에 의하면, 1940년에 처음으로 학계에서 '자폐'라는 단어를 언급했고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한 시점은 1960~70년대부터라고 한다. 자폐증에 관련된 정신질환으로서 의학적 진단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1980년부터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야 장애인 교육법이 제정되었다.

1990년에 템플 그랜딘이 『어느 자폐인 이야기』책을 내면서 자폐인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자폐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1993년 자폐인인 짐 싱클레어가 “우리를 위해 슬퍼하지 마세요”라는 연설을 통해 자폐인의 자기권 리옹호 운동을 탄생시켰다.

1996년에는 역시 자폐인인 호주의 사회학자 주디 싱어가 신경 다양성이란 용어를 창안하고, 학위논문에 신경 다양성 운동에 대해 기술했다. 결국 인간은 정신적 다양성을 지닌 존재이며, 자폐란 특정한 측면이 덜 발달한 대신 다른 측면이 발달하는 현상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역사는 놀랍게도 대부분 영국과 미국에서의 서사이다.

존 돈반, 캐런 주커 지음; 강병철 옮김/ 꿈꿀 자유출판사/2021

우리나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도 등록장애인 현황'을 보면, 작년 말 기준 등록장애인은 264만 5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5.1%이다. 이 중 발달장애(2011년 7.3%→2021년 9.6%)로 증가 추세이다.(보건복지부, 2021)

2011년 이후 자폐증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 38명 중 1명이라고 한다. 자폐스펙트럼이라는 넓은 의미로 확장되어 측정되었을 수도 있지만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위의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사회적 분위기나 구체적인 법 제정이 아직도 여전히 미흡한 상태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고 나서야 주목하기 시작하였고, 그 이전은 언급은 있었으나 간헐적이거나 사회적 외면이 더 많았다.

2004년에 처음 부모들이 모여 전국 지역교육청 순회하며, 특수교육예산 증액 요구하였고, ​2007년에 특수교육법이 구체적으로 제정되었다.

2014년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되었고, 2018년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장애인 통합교육의 배경과 주요 원리, https://m.blog.naver.com/138100/22164540702)


자폐증은 단단히 걸어 잠근 방 같은 것이었다. 부모들은 끊임없이 열쇠를 찾아 헤맸다.
"내면에 갇힌 아이"를 찾아야 한다는 강렬한 욕망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가족마다 독특하게 나타났다. 다운 증후군처럼 다른 문제를 안고 있는 가족에게 사랑이란,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최대한 많은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자폐 어린이의 부모 또한 자녀에 대한 사랑은 결코 덜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자녀를 구해야 한다는 강력한 충동을 느끼며 이를 위해 놀라운 치료를 찾아다니는 형태로 나타난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중에서 P.495

위 내용처럼 나도 그러했다. 그 강력한 충동으로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병원과 치료실을 열심히 다녔었다. 그래서 늘 조급했다. 지금이 아니면 구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급하게 살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아이는 자폐의 증후를 출산 후 발견되었을 뿐 사실은 가지고 태어났다. 선천적인 것이다. 부모로서 인정하기 힘들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다.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마음가짐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었다. 아이는 구해줘야 할 위험하고 위급한 상황에 있지도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태껏 나는 나의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 내 마음대로 보고자 하는 것만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이 되어서야 서서히 내 아이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전히 병원과 치료실을 다니지만 그건 아이를 당장 구해 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앞으로 조금이라도 나은 인생을 위해 훈련하고 적응하기 위함이다. 다른 친구들이 나은 미래의 선택을 위해 공부하고 학원을 다니는 것처럼.


자폐증을 겪는다는 것, 자폐인이라는 것은 인류라는 옷감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주름일 뿐이며,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주름지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는 인식이다.
P741

자폐는 수수께끼였다. 지금도 자폐증은 수수께끼다. 그러나 지난 80년간 사회는 자폐인의 살아갈 권리는 물론 교육권을 보장하고, 엄마를 탓하는 문화를 떨쳐냈다. 수많은 이론의 폭력성과 비과학성을 극복하고 자폐성향이 인간 정신에 내재된 특성이며, 인간은 모든 측면에서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마침내 과거 같으면 괴짜나 얼간이 취급을 받았을 자폐인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인터넷 교보문고 설명 참조)

진우(가명)의 장애결정증명서(2020년)

현재 기준 아이의 지능지수는 70 이하라고 한다. 앞으로도 70 이상이 되거나 더 높아질 전망은 희박하다는 게 의학계의 지론이다. 사회가 말하는 우리 진우(가명) 보잘것없다. 어쩌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으니 크게 기대하지 말라고 내게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엄마의 눈에는 꼭 그렇지 않다. 내 품 안 아이라 그런지 내 눈에 진우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이미 해내고 있고 배우고 있다. 그리고 점점 더 자라고 있다.

여전히 내 눈에는 얼마든지 발전할 가능성이 가득한 어린 꿈나무이다. 책에서 말하듯, 옷감에 주름이 있는 인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주름지지 않는 인류는 없다. 그리고 이 주름으로 새로운 역사의 서사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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