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엄하고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잘못했을 때 훈육하는 모습을 더 많이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가족과 함께이기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일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탓에 이제는 가족들과의 멀어진 거리를 좁힐 수 없어 아예 포기하고 그저 근엄하고 무뚝뚝한 아버지로 남을 수밖에 없는 아버지들. 이 모습이 보통 우리 세대의 아버지라면, 요즘 아버지들의 변화는 정말 크다. 지금은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양육하는 것이 당연해졌다.그런 모습을 볼 때면, 요즘 아버지들께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게 된다.
우리 남편도 일단 도와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면 열심히 도와준다. 그러나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평소 육아나 교육에 관심을 가져주거나 스스로 아이들과 자진해서 놀아주거나 하진 않는다. 아이들이 어릴 때, 회사라도 바쁘면 아이들은 늘 내 차지인 독박 육아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진우(가명)는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빠가 방에 있는지 회사 갔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풀이 꺾인다. 오후 4시만 넘어가면 아빠 타령을 하며 아빠를 기다린다. 심지어 "데리러 가자"라고 말을 한다.(평소 말이 없는 진우가 말로 표현할 정도면 얼마나 아빠를 애정 하는지 알 수 있다.) 아빠가 퇴근하고 나면 그림자처럼 아빠만 졸졸 따라다니고, 앉아도 아빠 근처에 자리 잡고 움직이지 않는다. 아빠랑 눈만 마주치면 하루 종일 굳어있던 무표정이 어느새 깔깔깔 소리를 내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휴일이 되면 아빠가 특별히 재밌게 놀아주지 않는데도 상관없다는 듯 근처에서 서성이거나 묵묵히 곁에 조용히 앉아있다. 그 모습이 마치 옛날 호위무사나 주인을 지키는 강아지처럼 그야말로 충직하다.
'나랑 더 오래 있고 내가 맛있는 밥도 해주고 나랑 더 많이 노는데.게다가 내가 저를 얼마나 예뻐하는데! 아빠한테만 저리 이쁘게 웃어주다니.' 하는 생각에 가끔은 배신감도 들고 섭섭하기도 하지만 육아에 힘들고 지칠 때는, 아빠한테 가줘서 차라리 고맙다는 생각도 든다.
가끔 보내주는 좋은 글들이 참 힘이 된다.
그런 진우의 구애(?) 덕분인지 남편도 진우에게 각별하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여태껏 큰소리로 아이들에게 야단친 적 없고 차근차근 설명을 잘해준다.
사실 처음에 진우가 첫 자폐스펙트럼 발달장애 판정을 받고 나서, 나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남편은 나보다 더 인정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천천히 이었지만 나보다 한결 더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그런 덤덤한 남편의 모습을 보며 내 모습이 뭔가 요란해 보여서 생각보다 더 일찍 우울의 담요를 박차고 일어설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때, 진우의 치료에 눈이 돌아가(?) 전국구로 돌아다니며 거의 가산을 탕진하며 무모한 고집으로 시간을 보낼 때도 남편은 후회 없이 해보라는 듯, 묵묵히 지갑을 내어주고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남편은 결혼 전과 신혼 때부터 즐겼던 그 수 많던 취미생활을 정리하고 가끔씩 즐기던 술과 담배도 끊었다. 아빠로 살기 위해.
아빠랑 아들
남편은 지금도 진우를 어딜 가도 꼭 데리고 다니고 진우가 뭐만 하면 폰을 꺼내 들고 이리 찍고 저리 찍으며 애정이 묻어나 있는 사진을 나에게 보내곤 한다. 자기와 진우는 닮은꼴이라고 당당히 말하기도 하고 진우의 더딘 모습을 봐도 나처럼 조급해하지도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남편에게 고맙다.
진우와 함께 있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보다 더 끈끈한 모습이다. 서로 쳐다보는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진다.
혹시 둘이 전생에 무슨 애틋한 사연의 인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진우가 이러한 아빠의 애정을 고스란히 느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표지 by 맘이랑 '아빠 침대'
※오늘은 남편의 생일입니다.ㅎㅎ 결혼 13년 차인 부부라 딱히 줄 선물은 없어서 글로 대신할까 하고 썼습니다. (너무 날먹인가요?ㅎㅎ) 항상 힘든 아빠이자 남편에게 고맙다고 글로 조금이나마 표현하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