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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정한 세상의 규칙들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고군분투

by 벨 에포크

이 사회는 모든 것이 관계 간의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어도 그 나라의 사람들이 정한 것이고,

법이나 규칙도 우리나라는 이렇게 하기로 하자는 사회 간의 약속이고, 우리가 당연히 쓰고 있는 숫자도 태초 문명이 정한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이 속해 있는 문명사회는 우리끼리 그렇게 부르도록 하자, 그러한 규칙을 따르도록 하자, 등으로 이루이진 것들이다.

사회란 다수의 공동체이고 사회는 한 사람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갑자기 거창한 인류문명과 사회를 거론한 이유는 우리 집 진우(가명)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회의 약속들은 자연의 이치가 아니다.

법과 규칙을 당연히 지키고 있지만 모든 것들이 사람이 정한 것들이다.

그래서 사회 속에서 살기 위해선 사람이라면 반드시 학습이란 것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진우는 그 학습이란 것을 해내기가 힘든 뇌를 가지고 태어났다.

발달장애이기 때문이다.

뇌 속 신경망이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남들보다 몇 배 연습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기억장치가 말을 안 듣는다.

그래서 반복 또 반복해야 한다. 그때그때 기억하기 힘드니 몸이라도 바로 반응할 수 있게 반복한다.

몸이 기억하게 하기 위해 행동도 세분화해서 반복시켜 가르쳐야 한다.

신체 감각들도 서로 얽혀 잘못된 반응들이 나온다.

온전히 집중하기 힘든 몸과 뇌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 진우는 자폐성향도 같이 있어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모방하기 힘들다.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좋아하면 그것을 따라 한다. 유아기에 나타나야 하는 거울효과이다. 진우에게는 거의 없다.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대한 관심이 없다. 동기부여가 없으니 학습하기가 어렵다. 학습이 안되니 규칙대로 행동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회라는 다수의 공동체에 좀처럼 낄 수 없다. 혼자서 살 수 없는 사회에서 혼자인 셈이다.


진우를 키우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온통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회의 약속 투성이란 걸 새삼 느낀다. 사람들끼리 그러기로 하자고 정한 게 왜 그리도 많은지.

이런 세상의 규칙들을 진우에게 이해시켜야 하니 숙제도 이런 숙제가 없다.


진우에게는 아주 간단한 개념도 난코스다.

예를 들어, 진우는 지금 열 살 인데도 수의 개념을 모른다. 수는 십까지 세는데 한 개, 두 개의 의미를 모른다.

심부름으로 그것 가져와 하면 들고 오는데 그것 두 개 가져와 하면 이해하지 못한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한국말을 배우려면 '아'와 '어'의 차이를 알아야 하고 '오'와 '우'를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말이라는 세종대왕님의 규칙이다.

학교에서 몇 시부터 몇 시가 수업시간이란 걸 진우는 이해하지 못해 몇 분 견디다 교실을 돌아다닌다.

그러면 나쁜 학생으로 낙인이 찍힌다.

학교가 정한 규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규칙을 어기면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걸 진우는 여전히 이해를 못 하는 듯하다.

몇 번을 가르칠 때마다 "왜 그래야 하는데?"라는 얼굴이다.

어떤 때, 웬 일로 가르쳐준 대로 행동을 하는가 싶으면, "이해는 안되지만 시키니까 하는 거야" 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대부분 먼 산 보며 관심도 없지만.


그래서 인생의 목표도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다.

최소한 1부터 10은 알자.

최소한 한국말을 소리 내어 말해보자.

최소한 수업시간에 잘 앉아있자.

최소한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자.

최소한...

그래. 이 세상 살려면 어쩔 수가 없네.

조금씩 천천히 배워 나가는 수밖에.

우리 이 세상 규칙을 모두 다 알 필요 없어.

최소한만 배우자.

최소한만 한다 해도 우리는 충분히 고군분투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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