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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 에포크 Jul 09. 2022

'바닷속을  날아, 하늘을 헤엄, '

자폐 아이 엄마 눈으로 본 이번 이야기-3화 리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리뷰를 연속으로 하는 게 내키지는 않지만 3 화만큼은 꼭 이야기하고 싶어서 꺼내 들었다. 4화까지 전개된 시점이기는 하지만 3화가 가장 묵직한 에피소드가 아녔을까?

이런 묵직한 이야기를 세심하게, 가끔은 코믹하게, 그리고 거부감 없이 세상에게 조심스럽지만 아무 강요 없이 호소하는 3화를 보고 나서 나는 길고 긴 여운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한 3화의 줄거리를 소개한다.
형제의 살인사건을 다룬다. 형 (성훈)을 동생(정훈)이 가슴팍을 내려치고 있고 이를 귀가 중인 부모가 목격을 한다. 결국 형(성훈)은 사망한다. 자해하며, 계속 같은 말만 소리치는 정훈.

멘토인 정명석은 피고인 정훈이 자폐스펙트럼이기 때문이 우영우에게 이 사건을 배당한다. 같은 자폐인이라는 이유다. 그러나 우영우는 곤란해한다. 형 상훈은 수능 만점자에 서울의대에 진학할 만큼 수재이고 동생도 잘 챙기는 흠잡을 데 없는 형이라고. 자폐를 가진 정훈도 형을 잘 따랐다고 한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 사람은 정훈뿐이지만 안타깝게도 정훈은 말을 못 했고, 같은 말만 반복하며 자신의 머리를 때리고 소리치는 모습을 본 우영우는 자신과 너무 다른 자폐성향에 당황해하며 결국 알아내지 못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우영우와 팀원들은 사건들의 여러 증거자료와 단서를 통해 결정적인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성훈은 학업 스트레스와 자기 비관으로 자살 시도를 자주 했었고, 그때마다 정훈이 말리는 시도가 있었으며 이날도 정훈이 자살 시도하는 성훈을 도와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으로 성훈이 사망하게 된 것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그러나 정작 부모는 이 사실이 세상에 밝혀지지 않기를 바라고 이 과정에서 영우는 사회 속 차가운 차별과 편견들을 경험하고 좌절한다. 결국 재판에서도 제외되고 우영우는 피고인에게 도움이 못 된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다른 팀이 맡은 이 사건은 다행히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상해치사 무죄가 되고 살해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우영우는 사직서를 제출하게 된다.


1. 멜팅다운(meltdowm)

드라마 극 중 정훈이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자해를 하며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재판 중 의사의 말에 멜팅다운(meltdowm)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녹아내린다"라고 해석되지만 자폐장애의 특징 중 하나이다. 내가 아이를 위해 자폐를 공부할 때, 배운 내용을 이해를 위해 잠시 소개자면, 자폐를 가진 분들이 겪는 "감정 폭발, 즉 감정적 힘듦"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자폐성 장애인이 겪는 감정 폭발은 보통 두 가지 특징이 꼽기도 하는데, 바로 템트럼(tantrum)과 멜팅다운(meltdowm)이다. 공식적 어문으로는 "분노 발작과 심리 탈진"이다. 이 두 가지의 차이점은, "의지의 유무"이다. 의지가 있는 분노 발작(tantrum)은 쉽게 표현하자면,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의지가 들어간 떼쓰기에 가까운 감정 폭발이다. 그러나 심리 탈진(meltdowm)은 과도한 감각적 과부하와 이를 감당해 낼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에 의해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 나오는 감정 폭발이라고 할 수 있다. 정훈이 했던 자신을 머리를 때리는 자해는 이 감각적 과부하를 어떻게든 차단시키거나 전환하고자 하는 본능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극 중, 정훈은 자신이 사랑하는 형성훈의 자살시도를 목격하고 그야말로 감당해내기 힘든 감각적 과부하로 발작 같은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정훈의 멜팅다운(meltdowm).  "죽는다!하지마!죽는다!하지마!"


2. 솔직한 나의 심정

영우의 아빠가 영우를 키울 때 이야기가 나온다. 소통이 안 되는 영우를 키우며 아빠는 "외로웠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오는 회상씬. 아빠가 다쳐도 쓰러져도 울어도 어린 영우는 동요하지 않고 자기 세계에 빠져있다. 이 시기의 영우는 말조차 안 하는 시기이었고 아빠는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그 무게를 감당해야만 했을 것이다. 가족과 함께 있는 나의 경우는 더 나을지 모르지만 어릴 적 영우는 나의 아들의 어릴 적과 많이 닮았다. 엄마가 숨어도 찾지 않는 자기 세계에 가있는 아들의 기억이 떠올랐다. 영우의 아빠에게 동질감을 느낀 장면이었다.

영우 아빠의 대사처럼,"대화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라는걸 그는 몸소 경험으로 깨달았다.

정훈은 지능이 6~10세 정도이고 의사소통이 안되며, 펭수를 좋아하는 중증 자폐인이다. 그에 반해 우영우는 서번트 증후군에 의한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 어색하지만 의사소통도 잘 된다. 덕분에 사회생활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조금씩 동화도 되고 도움도 받아가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나간다. 드라마를 보며 힘든 현실의 벽도 있지만 영우만의 멋진 능력으로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도 느꼈다. 하지만 사실 마음속 저편에서 나 또한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정훈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영우가 가상인물인걸 알면서도 아들과 비교하며... 솔직히 영우가 부러웠다. 그래서 극 중 정훈의 엄마의 대사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누가 내 마음속을 꺼내 보기라도 한 것처럼 정곡이 찔린 대사였기 때문이다.

정훈의 부모는 우영우를 처음볼때는 탐탁치않은 눈빛인줄 알았는데 오히려 복잡한 심정이었다는 걸 알았다.

"변호사님 보니까 우리 마음이 복잡했어요. 똑같은 자폐인데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천재 자폐는 들어나 봤지, 실제로 보니까 마음이 이상했어요. 대부분... 정훈이... 같잖아요".-정훈 엄마의 대사 중에서-


3. 사실은 더 말하고 싶은 숨은 이야기

이 사건의 발단은 형 성훈의 죽음이다. 성훈은 완벽한 아들이었다. 모범생에 공부도 잘하고 장애를 가진 동생도 잘 챙기고 부모에게 거역도 하지 않는 소위 "엄친아". 분명 부모의 자랑이었을 것이다. 아픈 손가락의 형제가 있는 부모에게는 더욱더. 극 중에서는 영우와 정훈의 이야기의 무게감 때문에 가려져 있었지만 사실, 우리는 성훈에 대해 좀 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성훈은 사실 공부를 잘했을지 몰라도 분명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잠시 나온 일기장 내용을 보면, 수능을 만점을 받고 서울대 의대도 갔지만 자신을 비관했고 실패했다고 표현했다.

단지 성훈이 멘털이 나약해서였을까? 난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장애를 가진 동생을 보며 부모님을 위해 나라도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자 했을 것이고 그 방편이 단지 공부였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성훈은 선택권도 없이 동생 몫까지, 부모의 슬픔으로 인한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온 것이다. 성훈이는 어쩔 수 없이 완벽한 아들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많은 자폐를 가진 부모들이 나의 아이의 자폐를 아는 순간 좋아할 부모는 없다. 모두 처음에는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렇게 시간을 약으로, 의지를 백신 부스터로 삼아 조금씩 받아들이고 인정해 나갈 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자폐 아이들의 형제, 자매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어린 시절 대부분을 부모와 그 감정과 짐을 나눠가진다. 그들은 그냥 자폐를 가진 형제자매로 태어났을 뿐인데도 말이다. 누가 떠밀지 않아도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그들은 장애라는 상처 입은 부모를 자신의 힘으로 치유하기 위해 스스로를 옥죄고 가두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도 첫째가 있어서 성훈의 죽음이 다르게 느껴졌다.

누군가 성훈에게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 족쇄를 스스로 차지 않아도 된다고, 너는 너인 그대로 너의 인생을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이가 있었다면, 성훈은 어땠을까? 이 사건은 아마 시작되지도 않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널 그렇게까지 몰아 붙였니....ㅜㅜ

"제일 잘하는 게 공부였어. 지금은 공부가 뭔지도 몰라. 토할 때까지 외우는 게 공부인가? 나는 제일 잘하는 걸 제일 못하는 사람이다. 짧게 말해 루저. 시험은 계속되겠지. 나는 또 실패하겠지. 사는 것과 죽는 것의 차이를 모르겠다".-성훈의 일기장 중에서-


4. 같은 자폐. 다른 자폐

너무나도 다른 두 자폐인.

"저의 자폐와 피고인의 자폐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저한테는 보이지만 검사는 보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판사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는 피고인에게 도움이 되는 변호사가 아닙니다."-우영우 대사 중에서-


우영와 정훈이 나란히 찍힌 이 투샷도 나에게는 흥미로웠다. 둘 다 같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지만 서로 다른 성향과 증상의 정도도 다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눈에는 다 같은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이다.

사수인 정명석 변호사가 이 사건을 우영우에게 유리할 것이라며 배당한 이유도 같았다. 그러나 영우에게조차도 정훈은 낯선, 전혀 다른 세계의 장애인에 불과해서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결국 정훈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카테고리라고 해서 다 동일하지 않다고 설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카테고리이지만 다들 제각각의 인종과 종교와 성별, 그리고 개성을 가진 독자적인 개별체라는 사실처럼 말이다.


5. 누구도 가치를 가볍게 판단하지 말 것.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능력을 갖추고, 자신의 몫을 해내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바지해야 마땅하다. 이러한 대다수의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인류의 문명을 고도로 끌어올렸다. 맞다, 맞는 말이다. 반박할 수 없지만, 사회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가치가 없는 것일까? 의대생이 죽으면 국가적 손실이고 장애인이 죽으면 국가적 이익이 되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생각해본다.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과연 그들에게 그들이 사회에 보탬이 될만한 것들을 생각해본 적은 있느냐고, 그들에게 기회를 준 적은 몇 번 있느냐고. 시간과 자금이 남들보다 더 걸리고 지원과 도움이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장애인에 대해 "나는 열심히 일하는데 장애인들은 그 세금으로 편하게 산다"라고 생각해봤다면 조심스럽게 알려주고 싶다. 단 한 번도 편하게 살고 있어 본 적 없고 오히려 죄인처럼 음지에서 되도록 피해 가지 않기 위해 조심해하며 대다수의 의견에 대부분을 수긍해가며 미지의 영역인 채로 살아가고 있다고. 그렇게 장애인과 장애가족들도 그에 못지않은 무게를 견디며 살고 있다고.

한스 아스퍼거의 나치 우생학연구.

"한스 아스퍼거는 자폐의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말했어요. 일탈적이고 비정상적인 모든 것이 반드시 열등한 것이 아니다.라고. 그는 나치에서 살 가치가 있는 아이와 살 가치가 없는 아이를 구분하는 일을 했어요. 나치의 관점에서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은 장애인, 불치병 환자, 자폐를 포함한 정신질환자들 등이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손쉽게 그 사람을 평가하고 있지 않나? 그 사람에 대해 자세히 모르면서.

80년 전만 해도 나와 김정훈 씨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의대생이 죽고 자폐가 살면 국가적 손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
                        -우영우 독백 중에서-


 묵직하다 못해 절절해진 나는 계속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장면 장면이 모두 어느 것 하나 군더더기 없이 차갑고 어쩌면 소름 돋을 정도의 현실세계를 묘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군가에게는 나중에 잊혀질 드라마 시리즈 중 한 에피소드일 뿐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나의 모든 세계를 축약시켜놓은 듯해서 단 한 장면도 헛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 많은 생각과 감정을 남겨주었다.

가라앉고 있는 창밖 고래도 슬퍼보인다. 그만두지 마. 힘내,영우야!


펭하! 바닷속을 날아 빌보드로 가자.
느낌이 달라. 기분이 좋아.
작은 날개로 하늘 위를 헤엄.
내가 제일 최고. 1위 할 거예요~

펭수의 노래 가사가 귀에 박힌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장애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무게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단연 차별과 편견은 장애에서 만의 문제일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현실과 한계에 부딪힌다. 그 안에 여러 유형의 차별과 편견도 존재한다. 아마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지 모른다. 아니,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런 벽과 마주쳤을 때 우리는 저 바닥 끝까지 내려가는 우영우의 고래처럼 가라앉으며 좌절할 수도 있다. 그런데 좌절해도 괜찮다. 실컷 울어도 괜찮다. 그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리고, 

이 세상 어디에선가 한계에 부딪혀 한없이 가라앉고 있을 모든 상처 입은 사람들에 말하고 싶다. 펭수의 노래 가사처럼, 비록 가진 게 작은 날개뿐 일 지라도 언젠가 바닷속을 날아오르고, 하늘을 마음껏 헤엄 칠 날이 분명 오리라고.

왜냐면 당신이 제일 최고이니까!





드리는 말씀: 나의 사정과 비슷한 이야기여서 다소 표현이 한 부분도 있고 내용도 엄청 길어졌습니다. 분량 조절 실패입니다.ㅜㅜ

행여, 글 속에 뾰족한 표현들이 불편하셨다면 사죄드립니다.

이렇게나 긴 글을 누가 읽어주시겠냐 싶지만 성토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많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여기까지 도달하신 분이 계신다면 긴 글 읽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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