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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 에포크 Jul 13. 2022

초록이 주는 위로

반려 식물에 대한 소견

요즘 들보통 집에서 기르는 동물에게 더 이상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이라고 표현한다.

 애완은 장난감처럼 조롱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 다소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어감이 있다는 반론으로  1983년 10월 27~2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the human-pet relationship)를 주제로 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처음 "Companion Animal"이란 단어가 나왔다고 한다. 동물 행동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K. 로렌츠의 80세 탄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과학아카데미가 주최한 가운데 개 ·고양이 ·새 등의 애완동물을 종래의 가치성을 재인식하여 반려동물로 부르자는 제안이 나왔고 승마용 말도 여기에 포함하도록 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중에서)

반려는 '사람과 더불어 살 권리가 있다'는 뜻에서 존중의 의미로 '애완'과는 다른 격상된 표현이다. 나는 동물을 기르고 있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의미로 대신에 '반려 식물'을 기르고 있다.


 화분들은 숲이 좋은 나에게 잠시라도 힐링할 수 있는 녹음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다. 작은 공간을 차지한 초록이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도 편안해지고 기분이 전환되기도 한다.

나는 요즘 말로 '식 집사(식물 집사)'이다. 이전 집에서 이 집으로 이사 오고 11년이니 제각각 들여온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집 화분들과 동거 동락한지도 대충 비슷비슷할 것 같다.

우리 집은 서향 쪽이라 식물을 잘 기르는데 아주 좋은 환경의 조건은 아니다. 몇몇 꽃 화분이나 당근이나 상추 같은 작물 식물도 도전해봤지만 일조량이 부족해서인지 아직은 모자란 배경지식과 정성 탓이었는지, 안타깝게도 나와 인연과 끝난 식물들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 우리 집에 남은 식물들을 보며 꾸역꾸역 죽지 않고 잘 자라 주는 걸 보면 하나하나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사실 나의 식물 사랑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결혼 전 아니,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받은 화분마다 시드는 마이너스의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내가 식물을 키우게 된 동기는 어두컴컴한 우울의 터널을 걷고 있을 과거에 작은 플라스틱 모종 화분에 햇빛을 주기 위해 커튼을 걷어 올리는 시작으로 나의 우울이란 병이 치유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의 브런치에서 첫 글도 이때의 경험에서의 글이었다.


현실이 날 살게 한다 https://brunch.co.kr/@82a5639e80c0419/1


우리집 초록이들

대단한 애호가까지는 아니다. 식물의 이름을 줄줄 말하지도 못하고, 식물생태의 자세한 내막이나 해박한 지식이 있지도 않다. 그러니 나 자신을 식물과 '좀 친한'이거나 '친해지고 싶은'사람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대단한 식 집사는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집에 어떤 연유(?)로든 일단 들어온 화분들은 소홀치 않게 관리한다. 몇몇 화분은 내가 마음이 동해서 들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 애들 학교에서 혹은 체험수업 등으로 받아온 작은 화분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잘한 화분들이 많은 편이다. 개중에는 씨앗부터 모종으로 키운 후 직접 화분을 사서 식재한 것들도 있다. 식물을 기르며 가장 보람이 있을 때는 뭐니 뭐니 해도 새싹이 틔워 올라올 때다.

그런 모습을 발견하면 네가 우리 집에 와서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잘 적응해서 싹을 올렸구나 싶은 생각에  기특하기 그지없다.

용케 꽃봉우리와 새순을 틔운 기특한 화분들

언젠가 순전히 아무 정보도 없이 그저 표지가 너무나 예뻐서 읽은 책이 있다.

알록달록한 화사한 색감도 마음에 들었지만 꽃 하나하나 자세히 묘사한 그림체를 보며 그저 심미적 의미로 그리기 위한 그림이 아닌 오랜 시간 애정을 담아 세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하며 마치 존재 그 자체를 위한 일종의 초상화 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예사롭지 않은데?'

신혜우 글,그림/브라이트 출판사

이 책을 읽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저자인 신혜 작가는 식물학자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식물 분류학자로, 영국 왕립협회가 주최하는 식물 세밀화 국제 전시회에서 4차례나 금메달과 각종 권위 있는 상과 트로피를 수상한 화가이기도 했다. 식물학자이자 작가이자 화가인셈이다.

이 책은 앞서 출판된 저서 <식물학자의 노트>와 같은 과학서가 아닌 한층 힘을 뺀 상담내용이 간간이 나오는 에세이 형식의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몰랐던 식물에 대한 지식과 식물을 대하는 작가님의 생각과 더 나아가 상담을 받았던 사람들의 삶에 태도까지도 알 수 있었다. 식물로 시작해서 인생으로 끝나는 편안하게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또한, 중간중간 작가님의 식물 세밀화가 아름다워서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는 책이다.

책  속  식물세밀화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감사함'의 반대말은 '당연함'이라고 한다. 늘 곁에 있어 당연한 듯 지내지만 잃고 나서야 당연했던 걸들에 감사함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다 죽어서 사라지고 자리를 비워준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자연은 그걸 흡수하고 순환시킨다. 종종 인간은 영원한 것을 좋아해서 오래도록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썩지 않는 물건을 만들어낸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물건을 많이 사고 누려도 계속 결핍을 느끼는 건 변하지 않는 것들에 둘러싸여 사라지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본문 중에서-

저자는 집안의 식물들이 자연의 품이 아닌 작은 화분 안에서 억지로 생을 이어가는 것 같아 안쓰럽다는 말을 했다. 맞는 말이고 공감한다.

우리 집 식물들은 충분한 햇빛을 받지도 못하고 영양분 충만한 대지의 기운을 받지 못하며 갈증없는 시원한 자연의 비를 맞지도 못한다. 안쓰럽게 보자면, 한없이 안쓰럽기도 하고, 내게 욕심이라 말해도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지친 일상과 힘든 인생의 기점에서 만난 비밀 친구와도 같다. 비록 대자연의 식물까지는 아니지만 나만의 애정과 나름의 관심과 정성으로 우리 집 식물들을 나는 아낀다.

가끔 생각한다. 우리가 쉽게 무시할 수도 있고 어딜 가도 볼 수 있어 눈길조차 가지 않는 흔한 길가의 잡초도 사실은 우리한 동등한 생명체이다.  우리가 단세포였던 먼 태초에 우리는 2가지의 갈림길이 있었다. 하나는 동물로서의 길과 다른 하나는 식물로서의 길이다. 어쩌면 지구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다 같은 뿌리에서 시작된 동일한 생물이다. 그러니 식물과 친구여 도 상관없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때 식물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운 좋게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 덕에  지금도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고 있다. 그런 식물들에게 나는 물을 주며 지그시 고맙다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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