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 에포크 Aug 01. 2022

이게 현실

자폐성 발달장애아이의 어느 엄마의 민낯

※드리는 말씀※
먼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입장에서 쓴 글이며, 자폐성 발달장애를 대표해서 쓰는 글도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모든 정신 관련 장애인, 특정 미디어나 대중매체와 전혀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마지막으로 장애에 대한 어떠한 비하나 왜곡된 의도가 없음을 알립니다.

그동안 브런치에 나는 자폐 스펙트럼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보통의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이 행복하단 글을 자주 올렸다. 내가 브런치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기도 했고, 그렇다고 꾸며서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 또한 아니다. 난 분명 아이를 키우며 불행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아이를 통해 인생의 철학도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세상을 보는 눈도 조금 넓어졌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며 내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움으로 배우는 게 많다고 느끼며 살고 있다. 아이를 통해 행복이 배가 됨을 느끼고 어느 때보다 자주 웃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다.

소비되고 있는 미디어와 대중매체가 악의는 없다하지만 쓸씁하다


그런데 점점 몇몇 세상의 눈이 왜곡되고 잘못 정립되고 있음을 느낀다.

오래전 미디어나 대중매체에서는 장애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간혹 등장하는 장애인 역시 천진난만한 어린이 아니면, 아름다운 여성, 의지가 강한 남성이다. 그리고 모두 사회적 비판과 차별 같은 역경 속에서도  다 이겨내는, 그래서 결국에는 모두의 인정을 받으며  웃으며 살아가는 모습에 초점을 둔다.

그러나 이 같은 모습들은 사실 현실이 아니다. 자폐성 스펙트럼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 모두 천재가 아니고 아름다운 외모도 가지고 있지 않다. 어쩌면 천진난만하지도 않을 수 있다. 모두가 의지가 아주 강하거나 엄청난 역경을 이겨내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로, 미디어는 미디어로,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면 된다고 나도 생각한다.

심지어 이렇게라도 다뤄져서 자폐스펙트럼의 관심과 장애인식이 좋아지면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몰입한 몇몇 분들에게는 그저 한순간 즐기는 엔터테인먼트로, 한때 스치고 없어져버리는 유행으로, 너무 가볍게 소비되고 화화로 치부되는 것 같다. 그분들은 한 번이라도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은 차별이나 편견에도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겨우 감내하며 결코 가볍지 않은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가정이 오히려 더 많다는 사실을 아실까?



현실 1. 느린 인지발달과 상호작용의 어려움

자폐성 발달장애는 상호작용이 아무래도 어렵다.

지금은 제법 반향어(상대방 말을 따라 말하는 말)라도 하지만 언어가 무척이나 느린 우리 아이가 어릴 때는 무얼 원하는지, 뭐가 필요한지 엄마가 찰싹 붙어서 어떻게든 눈치로 해결해야 했고, 지금도 묻는 말에 바로 반응하지는 않아서 행여 학교나 눈이 없는 곳에서 무얼 하고 무얼 느꼈는지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남들이 2~3번이면 익힐 수 있는 간단한 수행이나 단어 한마디도 짧아도 몇 달, 길면 수년 동안 매일같이 반복하며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연습해야지만 하나를 습득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지켜봐야 하고 억지로라도 시켜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하루에 몇 번이고 무너지고 또 추슬러야 한다.


현실 2. 교육

 아직 학령기라 아이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길어질 것 같다.

학교교육은 누구나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의무적으로 당연하게 받을 수 있는 교육이지만 대부분 일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계되어 있다. 우리 아이는 일반학교 도움반이 있다. 그러나 단편적으로 아이에게 맞는 교육목표는 있지만 학교 사정이나 교실 환경, 아이의 감각 조절 등의 여러 이유로  "잘"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특수학교의 경우 수요가 너무 적어서 경쟁률이 치열하다. 특수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지원서와 장애진단 및 의사소견서 등 여러 종류의 서류평가를 거쳐야 하고 특수학교 근처에서 살아야 하는 등 조건이 달성되어야 특수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 들어간다고 해도 일반학교 도움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마다 장애의 정도나 종류도 다르기 때문에 교육을 "맞게 " 받을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전적으로 각가정에서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아이들도 학원이라는 사교육을 하듯, 우리도 발달센터를 다닌다. 한번 집중 교정과 수업을 받는데  언어, 인지, 재활, 특수체육까지 모든 과목을 보통 주 2회씩 받는다. 그 외 특수미술이나 음악이나 놀이치료를 더 부가하는 집도 있다. 거의 한 달에 한 아이에게  너무 많은 부담스러운 비용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부모의 선택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발달장애인 가정에서는 거의 사설 발달센터 수업을 받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가정도 최소한 사회복지관에서라도 열심히 특수교육을 받고 있다. 아이가 다니는 특수교육 발달센터들은 공부 좀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니는 학원과는 다르다. 아이가 받는 이 많은 발달센터에서의 수업은 아이의 "생존"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뇌가 다 크기 전에, 근육이 굳기 전에 꾸준히 개입해 기능을 올려놓지 않으면 아이는 스스로 무언가 하나라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조급함이 늘 부모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럼 학교교육이 그리 마음에 안 든다면 그만두면 다들 편하다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게 또 쉽지 않다. 학교 과정은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아이가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고 싶어도 학력인정이 없으면 기회조차도 없기 때문에 학교를 그리 쉽게 안 다닐 수도 없는 형편이다.


현실 3. 세상의 시선

조금이라도 소리를 지르거나 감정적 폭발 등이 일어나면 엄마인 나도 진정시키는데 시간이 걸린다. 감각 과부하를 조절하는 훈련을 받고 있지만 이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훈련이다.

여전히 주변 환경에 역치가 매우 낮아 민감한 아이는 내가 봐도 가끔 시한폭탄과도 같이 조마조마 한 느낌이 든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지금도 아이는 학교에서 또래 반 친구들과 단 한 번도 교류한 적이 없다. 수업 중간에 들어가서 수업 중간에 나와 도움반으로 인도되기 때문이다. 가끔은 담임선생님이 안전이라는 문제로 접근을 금하 시기도 한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마음이 아팠지만 선생님 입장에서 이해를 해야 했다. 비단 학교뿐만이 아니다. 집 앞 슈퍼에 가는 것도 혹시나 피해가 갈까 봐 사실 주눅이 들고 같이 가는 게 조심스럽다. 우리 아이는 어릴 때 놀이터도 잘 이용 못했다. 행여 피해를 줄까 봐란 마음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엄마들 시선 때문에 내가 상처받기 싫어서 잘 가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아이가 그네 타고 싶다고 하면 해가 다 지고 난 다음에  빈 놀이터에 간다. 그 편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위의  모든 현실들이 나에게는 매일 계속되는 일상이다. 이제는 어느덧 당연해지고 적응된 매일이지만 가끔은 좌절하기도 하고 현실의 높은 벽이 고통스럽기도 하다. 앞으로의 미래가 가장 불안하고, 두렵다. 차라리 보호해줄 수 있는 지금 시간으로 그냥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이상한변호사 우영우, 이 장면들이 드라마속이 아닌 진짜 현실이 아닐까?

장애인들이 혜택을 누리며, 우선권을 획득하고 민폐만 끼치며 자신이 열심히 벌어서 낸 세금을 낭비한다고 생각하는 분들께 말하고 싶다.

한국은 현재, 19만 발달장애인과 50만 명이 넘는 발달장애인 가족이 고통받고 있다. 매년 자살로 이어지는 발달장애 가정의 수는 늘어나고, 이들을 위한 사회적 관심은 냉랭하고, 정부 정책은 겉돌고 있다.

장애를 앞세워 남보다 더 많은 기회를 잡거나, 더 잘살아보려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어떻게든 하나라도 얻으며 살고자 함이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잠깐 불편할 수 있는 한순간이지만, 장애인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차별의 눈과 편견 속에서 상처를 그런 현실을  어쩔 수 없다고 다독이고 감내하며 인내하고 있는 삶을 살았고 아직도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고.

물론 나에게 피해를 주는 건 누구든 기분이 좋지 않다. 손해 보는 것 또한 불쾌할 수 있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이해한다. 그러나 슬프고, 안타깝게도 자폐성 발달장애의 특성상 살면서 느린 인지, 감각 과부하, 상호작용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남에게 피해를 안 줄 순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배려를 호소하고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열심히 반복 훈련을 받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어느 가정에게 물어도 모두 똑같은 대답을 한다고 한다.

"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다가 죽는 게 소원"이라고.

이런 간절하고, 또 간절한 소원을 마음속 품은 채, 발달장애인의 엄마로 살고 있다.

도움이나 동정이든 이제는 상관없단 생각도 든다.

현실상 장애인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동등한 입장으로 이해받을 수 없는 사회라면 그냥 차라리 도움이나 동정이라도 해달라고 하고 싶다. 우리 아이는 그런 마음이라도 고마워해야 할 입장이고, 그러한 마음이라도 받아야 조그마한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나 대중매체에서 자폐든 발달장애든 소비해도 좋다. 장애인도 우리 사회 이편 어딘가에 함께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다만, 누구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갈 감성의 한 페이지, 어떤 미디어의 한 때 붐에 그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케렌시아(Querenci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