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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 에포크 Sep 27. 2022

어른이 되고 싶은 요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처음으로 접한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적인 표현들 때문인지, 이름만 들으면 미들네임에 들어가는 '마리아'란 이름과 그리스의 어느 여신의 이름일 것만 같은 '릴케'라는 어감 탓인지 어린 나는 처음에 여류 작가라고 생각했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일컫는 《말테의 수기》를 접하고 나서야 그가 얼마나 난해하고 복잡하며 어려운 시인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1875~1926) 시인.

1875년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하사관에서 장교로 입신하는 게 꿈이었던 아버지와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소녀 취향을 갖고 있던 어머니 사이에서 일곱 살 때까지 여자아이로 길러졌다가 1886년 아버지에 의해 육군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참담한 시련의 시기로 묘사되고 있는 이 시절에 릴케는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시들은 주로 감상적이고 미숙한 연애시들이 주종을 이루었고 이러한 경향은 1896년 살로메와의 만남을 통해 크게 선회하게 된다. 특히 두 번에 걸친 러시아 여행과 스위스를 비롯한 이탈리아 각지를 여행하면서 얻은 깊은 정신적 영감을 바탕으로 초기 시의 대표작 '기도시집'이 완성되었다. 그 밖에도 브릅스베데의 화가촌에서 하인리히 포겔러와의 만남, 1902년 파리 방문을 통한 로댕과의 만남은 '형상 시집', '말테의 수기'의 집필 동기가 되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써진 '신시 집'은 사물 시의 결정으로서 로댕과의 만남에서 얻은 조형 예술 세계 체험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스위스 체류와 제1차 세계대전의 체험, 아프리카와 에스파냐 등지의 여행은 릴케 말년의 역작인 '두이노의 비가', '오르 페이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 녹아들어 죽음으로써 삶을 완성하는 존재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사람과 사물, 풍경과 만남에서 그 내면을 응시하여 본질을 이끌어내고자 한 그의 글쓰기는 20세기 독일 현대 작가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인정받고 있다. 1926년 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말테의 수기》의 좌절 이후, 사실 나는 릴케의 시집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다.

외국시는 분명 아름답지만 원문을 읽지 못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번역에서 오는 해석의 차이나 한계가 분명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시란 원어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시만의 독특한 형식이나 음률, 언어의 조화 등이 있어 문맥을 이해하는 다른 산문 작품들보다 더 까다롭다. 그 나라 말을 모른다면, 그 맛을 오롯이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한 몫했었다.

그러다 이 책을 읽으며 릴케가 친근하게 다가왔고, 다른 책에서 릴케의 시들을 찾아 읽어보며 좋다고 느꼈다.

내가 이제껏 즐기지 못한 시가 이렇게 많구나를 깨달으며, 언어적 한계와 아쉬움을 감내하면서도 그 시가 가지는 의미와 포스 자체만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여러 시인들의 시 또한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릴케의 시 외에도 궁금했던 여러 외국시들을 자주 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십시오.
굳게 닫힌 방이나 낯선 언어를 적힌 책처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십시오.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지금 그 문제들을 경험해보십시오.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테니.
-릴케,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시 중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이옥용 옮김/(주)푸른책들


이 책은 두껍지 않을 정도의 양이고, 릴케가 평소에 쓰는 난해하고 해석이 난무한 표현도 없어 안심하며 읽었지만, 결코 단숨에 읽을 수 없었다. 

책이 주는 의미와 무게감이 보통이 아니어서, 몇 번이고 읽으며 이 작가의 내면에 대한 성찰과 삶의 의미를 곱씹고 싶어지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시집이 아니다.

20세기 최고의 시인 반열에 오른 릴케의 작품인데 시집이 아니라니 나도 처음엔 의아했었다. 그러나 릴케는 시나 산문보다 훨씬 많은 양의 편지를 썼다고 한다. 이 책은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라는 이름의 작가에게 릴케가 보낸 열 편의 편지를 모아놓은 작품이다.

쉽게 말해, 카푸스의 젊은 시절의 진로 고민을 릴케에게 상담하는 편지라고 할 수 있다.

카푸스는 문학 지망생이었다. 그러나 사관학교를 다니고 있는 그의 길 앞에 군인 장교의 길과 작가의 갈림길에 서 있게 된 것이다.

릴케와 같은 사관학교에 다녔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릴케의 시집에 몰입해 있던 중, 릴케가 학생일 때도 있었던 호라체크 목사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릴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카푸스는 자신이 쓴 습작시들을 릴케에게 보내 그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결심한다. 그는 타고난 소질과 그가 가질 직업이 서로 어긋나는 길을 걷기 시작했을 무렵이었고 막 스무 살이 되려는 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카푸스는 단순히 그가 쓴 시에 대한 평가나 조언을 받기 위한 목적이 아닌 솔직한 인생 고민까지도 한 번도 대면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편지로 털어놓게 된다. 그리고 그는 몇 주 후 릴케의 성실하고 아름다운 필체로 쓰인 답장을 받게 된다. 1903년 2월 17일 파리에서 보내온 편지였다.

그들은 1908년까지 편지를 왕래했다.

카푸스의 편지는 글 안에 실려 있지 않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답인 릴케의 편지를 통해서, 우리는 카푸스가 어떤 고뇌를 편지 안에 실어 보냈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성질의 것,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우리 모두의 두려움과 똑같구나를 느꼈다.

편지 속 릴케는 참 따스하고 부드럽고 진심 어린 조언자다.




나는 당신의 직업이 매우 힘들고 까다로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까닭은 그와 같은 직업에는 엄청난 무게의 인습이 자리 잡고 있어서 그것의 문제점에 대해서 개인적인 견해를 피력할 여지를 거의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고독은 당신에게 아주 낯선 상황 속에서도 당신을 위한 의지처이자 고향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바로 고독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당신의 모든 길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책의 부제는 ‘고독으로부터 찾는 해답’이다. 과연, 편지글 내내 고독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고독'은 릴케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러나 릴케가 말하는 고독이란 '철저하게 외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고독은 내면의 고향이자 생각의 출발점이다.

숱한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고독을 느낄 때가 있고, 일부러 나를 고독 속으로 밀어 넣을 때도 있다.

릴케는 그런 외로움의 서글픔이나 아픔을 말한다기보다, 좀 더 자기 자신을 '제대로'바라보기 위한 개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마치 명상과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심혈 있게 바라보기 위해, 깊은 마음속 숨어있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위해서는 '혼자'라는 환경이 조성되어야지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나의 본질을 느끼고자 하는 수행과도 같은 일이 아녔을까.

어쩌면 내면 속 나의 힘없고 초라하고 작은 나의 자아를 발견할 용기, 그 자아의 손을 마주 잡고 말을 걸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고독'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진짜 어른이란 어떤 어른일까? 란 것에 대해 요즘 들어 많이 생각한다. 어느덧 누가 봐도 빠져나갈 수 없는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고 나니, '어른'이라는 타이틀이 한층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경제적 배경이나 나이 많은 것 말고, 살아온 경험치 다 빼고, 그야말로 계급장 내려놓고 봤을 때, 다음 세대에게 '어른으로서' 내가 내세울만한 것이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나는 릴케처럼 일면식도 없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에게 이렇게 친절하고 깊이 있는 조언을  할 수 있을까? 릴케는 카푸스에게 내가 더 유명하고 더 선배이니 내 말이 맞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그를 따뜻하게 공감해주고 헤아리며 카푸스에게 자기 자신을 더 주의 깊게 살펴보라고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이 편지를 썼을 때 릴케의 나이가 28살이었다고 한다. 그 시대에 평균 수명을 따지자면 중년에 속한다 할 수 있겠지만, 고작 28살에 이런 깊이 있는 성찰과 내면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나는 28살에 어땠는지... 떠올릴수록 어디 숨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어느새 카푸스와 동화되어 릴케의 편지를 직접 받기라도 한 듯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모두 소중히 읽어 내려가며 '릴케는 진짜 어른이구나'를 느꼈다.

그리고 나를 반성하게 된다. 혹시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면서, 어른인 척  누군가에게 나만의 잣대로 강요하고 배척하며, 때로는 거만하게도 삶의 중요한 가치들에 대해 외면하고 있지 않은지, 그리고 내면의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고독'을 즐길 수 있을 때 우리는 조금씩 어른의 단계로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고전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가슴속에 자리 잡아 그들의 찬란한 생의 불꽃을 지친 현대의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불꽃은 얼얼하게 차가워진 우리의 가슴을 녹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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