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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 에포크 Oct 24. 2022

나는야 퍼주는 이기주의자

주는 게 좋은 것인 줄만 알았다

나는 호감이 생기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퍼준다.

1+1을 사면 꼭 나누고 장을 보면 내 산 야채나 채소들도 같이 반을 나누고, 밥을 사더라도 내가  한번 더 사고, 커피 한잔이라도 내가 더 낸다.

솔직히 옛날에는 더했다. 나를 잘 아는 측근들에게 이런 점은 좀  주의하라는 조언도 종종 들어서 지금은 오히려 자중하자 한 게 이 정도이다.

나는 이런 게 익숙하다.

사실 주고 나면 나의 기분이 좋다.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 나오는 행동이다.

내게는 이런 성향이 상대방에 대한 친절이고, 호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내가 상대에게 관심을 알리는 기분도 들고,  내가 호감과 친절을 베풀었다는 긍정적인 생각도 들고, 기분도 행복해진다. 감사인사 주고받으며 서로가 돈독해지는 것 같고, 상대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이 그렇게 만족스럽고 뿌듯할 수 없다. 심지어 스트레스도 풀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상당한 기분파인 모양이다.




얼마 전 나보다 나이가 좀 어린 동네 엄마랑 친해졌다. 여기선 우선 J이라고 부르자.  

둘째 부모대기실에서 만난 J는 "아이들"이야기가 접점이었다. 서로 성향도, 성격도 달랐지만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다.

내게 먼저 호감을 보여준 J는 우리 집에도 자주 찾아오고, 달달한 디저트를 집 문 앞에 걸어놓고 가기도 하는 수고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서로 이야기들도 주고받고, 고민 상담도 두어 번 하고 나니 훅 친해졌다. 우리는 일주일에 2~3번씩 카톡을 주고받고, 자주 만나 커피 한잔씩 하는 사이가 됐다.

갑자기 다가온 J가 처음에는 조심스러웠었다. 그러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동생 같아, 챙겨주고 싶기도 했고, 나에게 호감을 보여준  J가 고맙기도 했다. 나는 나름 J에게 잘해주고 싶어서 신나서 또 원래 하던 대로 열심히 내가 더 퍼주기 시작했다.

커피 한잔 하는 날에는 디저트 케이크이라도 하나 더 시키고, 만날 때마다 뭐 나눠줄 거 없나 하고 냉장고나 집안 살림을 뒤지고, 마스크나 티슈 몇 장이라도 더 얹어서 건네주곤 했다.

근데 J는 마치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생각으로 내가 뭘 주면 거기에 상응하는 똑같은 상당의 물건을 내게 주었다.  J입장에서는 나름 받은 만큼 n분의 1로 나누듯 갚아준 것이겠지만 나는 그게 오히려 불편했다. 내가 표현한 친절과 호감을 그대로 되돌려 받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출처_네이버 이미지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뒤늦게 알게 된 J의 생일이 미안해서 모바일 주문이지만 생일선물이라 생각하며 선물했다. 급하게 챙기는 거라 좀 미안했지만 그래도 지나치지 않고 생일을 챙겼다고 안도했는데, 며칠 후 J에게 연락이 왔다.

J가 나에게 줄 선물이 있다며 만나자고 했다.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 내가 준 만큼 뭘 또 준비했구나 하고 짐작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욱했던 것 같다.

생일 선물을 갚는 사람도 있나 싶고, 주고받는 게임도 아니고, 점수 계산하는 것도 아닌데 꼬박꼬박 되갚아주는 J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결국 그날 안 만났다.

웃으며 통화를 끊었지만, 분명 그 단호한 거절의 어조와 어감으로 J도 분명 이상한 기류를  느꼈을 거다. 끊고 난 뒤, 나도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는 한 2주가 넘도록, 그리 자주 찾던 J의 연락이 한동안 없었다. 그렇다고 나도 먼저 하지 않았다.

신경은 쓰였지만 J가 섭섭했나? 하고 생각하니 선뜻 먼저 말 거는 게 어색하기도 했고, 서로 너무 급하게 친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며칠 전, 우연히 만나 같이 커피 한잔할 기회가 생겼다. 데면데면해져 버린 공기가 어색하기 그지없다. 아무 일 없는 척은 또 못해서,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솔직하게 이때까지 느꼈던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전달했다. 혹시 나의 오해나 잘못이 있다면 바로잡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솔직히 말하니 J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터놓았다.

고맙지만 동생 입장에서 받기만 하는 게 많이 부담스러웠고 사실은 마음도 무거웠다고.

J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나도 주면서 나도 모르게 그저 내 기분에 취해 마치 내가 우위에 있는 듯 말하고 행동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을 듣고 보니, J가 이해도 가고 미안해졌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대화란 이리도 참 중요하구나를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출처_네이버 이미지


아주 솔직히 이번 일은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다. 그냥 동네 아줌마들끼리 엎치락뒤치락하는 가벼운 일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나름 중요한  하나의 인간관계이고, 나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나는 주는 게 좋은 행위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주는 게 좋았다.

내가 좋으니 상대방도 좋을 거라는 착각.

이게 이기적일 수 있고, 상대에게 강압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비록 상대방을 위해 생각하며 시작한 일이지만, 상대방 기분을 헤아린 행동은 아니란 걸 참 뒤늦게 알았다.

받는 사람이 받으면서 어떤 기분이 드는지, 억지로 받는 건 아닌지, 그게 또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혹시 안 받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나는 생각도 못해봤다.  

나는 배려해준다고 한 친절이었는데 그게 나만의 생각이었다는 것과 상대에게는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색으로 전달될 수도 있구나를 이제야 깨달았다.

아무래도 원래 성격도 그런 면이 있는데, 엄마라는 직업이 오래돼서 당연히 주고 베푸는 게 익숙해져 버린 성향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출처_네이버 이미지

주는 행위는 모든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고, 주고 나면 나는 기뻤다. 근데 생각해보니 이 모든 행동들과 기분들은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것들이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인간관계에서, 주는 행동이 친절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의 권력이 될 수도 있구나를 깨달았다. 일방적이면 더욱 상대를 주눅 들게 할 수도 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인간관계란 상호작용이다.

일방적이면 그건 이기적인 것이다.

그게 아무리 좋은 행동이라도 말이다.

적당히 주고받는 서로의 배려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나는 여전히 덜 자란 모양이다. 마흔이 넘어서도 숙련이나 노련 같은 단어 하고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나에 대해 좀 더 살펴봐야 한다.

인간관계란 것이 아직도 우당탕탕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배워나감에 감사하다.

배우며 깨우치고 노력하는 삶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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