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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자의 짧은 시 하이쿠-류시화

by 반짝이는 별

헬렌켈러는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이라는 수필을 썼다. 첫날 오전엔 삶을 가치있게 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오후엔 삶의 깊숙한 수로를 전해준 책을 읽고 싶다고 했다. 새털 같이 많은 볼 수 있는 날을 허공에 날려 버린게 아까웠다. 가끔 가던 광화문 교보문고는 코로나로 인해 독서 자리가 없어졌다. 집 가까운 종로 도서관에 가 회원증을 만들고 책을 빌려왔다. 마음 챙김의 시를 비롯해 시집과 수필류를 먼저 읽었다. 곧 류시화님의 글에 흥미를 가졌다.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읽으며 점점 류시화님에 빠져 들었다. 책 한권을 읽다보면 다음에 읽어야 하는 책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작가가 다른 책의 글을 따와 쓰는 글귀나 내용을 통해서다. 책을 가져오면 설렘과 궁금증으로 빨리 읽고 싶어진다.

하이쿠

17 자의 짧은 시를 읽자마자 그만 마음을 세게 얻어 맞았다. 세상의 그 어떤 위로가 이토록 강하고 부드러울까 충격과 감동이었다. 꽃으로 풀벌레로 반닷불이로 들판으로 강물로 마구마구 달려와 사는 동안 억울해진 나를 안아 주었다.

울음 울면서

나무위의 풀벌레

떠내려 가네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잇사의 시다.

나비 한 마리

절의 종에 내려 앉아

잠들어 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이쿠를 읽어봐 일본어로 읽으면 운율이 배가 되어 더 감동적일거야. 답문은 의외였다.

“언니 하이쿠는 일어로 보면 엄청 어려워요. 시어라서 줄임말도 많고 일본인만 알 수 있는 은유도 많아서요. 나는 흥미 없었어요.”

짧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것이 함축되어 난해한 것이 하이쿠다. 하이쿠는 모두가 좋아할 수 있고 모두에게 다가가는 문학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눈에 띌 것이고 서서히 마음과 혼에 스며들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이어령님도 하이쿠는 천 사람이 읽으면 천 가지 해석이 나온다고 했다. 다행히 이 책은 시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 해설이 스토리를 제공해 나 같은 문외한도 쉽게 읽을 수 있어 좋다.

류시화님의 하이쿠는 방안의 책상위에 앉아 번역하지 않았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시의 현장들을 찾아 다녔다. 하이쿠는 길 위에서 쓰인 시들이다. 대표적 시인은 잇사와 부손, 오쇼다.

이들의 공통점은 누구도 순탄한 삶을 살지 못했고 대부분 방랑생활을 하며 시를 썼다. 부손도 바쇼를 동경해 그의 궤적을 따라 여행하듯 번역자는 생생한 번역을 위해 시의 배경지를 찾아 오지라도 찾아다녔다. 시를 번역한게 아니라 10년이 넘는 시간을 바쳐 시를 살았다고 했다.

거기에 류시화님의 탁월한 시적 감각과 17 자 뒤에 숨은 배경이며 시인의 삶까지 이해하는 혜안이 있어 700 쪽이 넘는 이 책을 집필할 수 있었으리라. 류시화님께 경의를 표한다. 하긴 이 작가는 명상가이자 여행자이기도 하다. 방랑벽을 실컷 발휘할 기회였지 않을까. 시인들의 방랑여행은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일이라고 한다. 류시화님의 번역 하이쿠 몇 수를 동생에게 보냈다. 답문이 왔다.

짧으나 임팩트 만렙 !!! (촌철살인)

하이쿠는 일본의 정통 시로 세가지의 규칙이 있다.

5.7.5 의 음수율

계어(계절어)

기레지라는 끊는 말 이다.

하이쿠는 우리가 항상 알고 있었는데도 알고 있는 것을 몰랐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닫힌 듯 보이는 열린 문이다 라고 B.H 체임벌린은 말했다. 시는 반쯤 열린 문으로 안을 들여다 본다. 한 줄의 시속에 여러 의미를 함축하므로 마음은 뒤에 감추고 모습을 보여준다.

하이쿠는 읽는 다기 보다는 읽어 낸다이고 읽는 이의 몫으로 재탄생한다. 칠레 시인 비센테 우이도브르는

시가 열쇠가 되기를

수많은 문을 열수 있기를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은 무언가가 날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저녁 제비여

나에게는 내일도

갈곳 없어라

일본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하이쿠 시인은 잇사이다.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 계모의 학대와 남의 집 고용살이 떠돌이 생활을 했다. 느지막에 혼인을 했으나 꽃을 꺾고 싶어 하던 어린 자녀들은 꽃잎 떨어지듯 아내와 함께 잇사의 곁을 떠나 땅으로 돌아갔다.

가지마 가지마

모두 거짓 초대다

첫 반딧불이

인간관계의 가장 큰 배신자는 나를 두고 죽은 사람이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와 우리들에 대한 배신이었다.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이지만

그렇지만

돌아 눕고 싶으니

자리 좀 비켜줘

귀뚜라미

꽃그늘 아래

생판 남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번개에

열매를 잉태했구나.

갈퀴덩굴 풀

잇사의 하이쿠를 읽고 잇사를 사랑하게 되었다

학교 다닐 적 일본 문학은 접한 적이 없다. 아무리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도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식민지 시절의 아픈 과거가 있어서다. 소녀시절 학교에서 단체로 보았던 유관순 영화는 지금까지도 장면이 남아있다. 일본의 문물을 좋아하면 안된다는 정서가 있다. 이런 내 기우를 미리 알고 류시화님은 친절하게 써주었다. 일본 문학을 소개 하는게 아니고 좋은 문학을 소개하는거라고. 하이쿠에서 일본을 떼어내고 읽는 것은 헤르만 헤세에게서 독일을 떼어내고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문학읽기의 출발이라고 썼다.

하이쿠들을 복사해 배낭안에 넣어두었다. 전철 탈 때 무료할 때 꺼내 보기 위함이다. 핸드폰으로도 찍어 두었다. 한동안은 하이쿠와 류시화님에 빠져 들거같다.

잇사와 함께 사랑받는 하이쿠 시인은 부손이다. 부손은 문인화가이기도 하다. 그의 시에 색채가 입혀있다.

홍매화 꽃잎

떨어져 불타는 듯

말똥 위에서

흰 매화가

고목으로 돌아가는

달밤이어라.

바쇼도 유명하다.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가을 깊은데

이웃은 무얼하는

사람일까

산토카의 하이쿠다

팔랑팔랑

나비는 노래할줄

모르네

눈이 녹는다

어제는 못보았던

집 세 놓음 팻말

매년 11월이면 경동시장에 가 대봉 감을 서너상자씩 사다 놓고 일년 내내 먹는다.

색깔은 어찌 그리 고운지 달콤한 홍시를 먹으며 떠올린다.

홍시여

젊었을 때는 너도

무척 떪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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