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문구는 194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풍부한 토속어와 우리말의 가락을 잘 살려낸 독특한 문장으로 문단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로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대표작으로 관촌수필, 우리동네, 해격, 유자소전등이 있다. 2003년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 속에 타계했다고 적혀있다. 그럴만하다. 아까운 인물이다.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따뜻한 인품이 글 속에 여실히 나타난다. 이문구님은 동시집도 있다. 밝고 맑은 동시들이다. 시집의 추천사를 쓰신 정호승 시인이 동시를 쓰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의 글을 통하면 모든 사물들까지 다 아름다워진다.
이문구님은 수려한 표현력을 지녔다. 다른 책에서 일락서산을 읽고 흔한 시셋말로 심봤다를 외쳤다. 관촌 수필 모두를 읽어보고 싶었다. 이태준의 문장강화에서 수필의 맛은 야채요리처럼 가볍고 산뜻하게 쓰라고 했다. 그러나 관촌 수필은 읽으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진한 최고급 한우 암소 갈비 요리다. 열심히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진면목을 따뜻한 시선으로 절절히 그려낸 인간사이다. 총 8편의 제목이 있는 수필로 화자는 모두 저자 나다.
관촌은 작가의 고향마을이다. 근엄한 선비 할아버지 아래에서 도련님으로 살던 어린 시절부터 장성하여 어른이 된 현재까지 고향 마을 사람들과 얽힌 이야기들이다. 그중에 옹점이 이야기가 많다. 선비 할아버지는 상것들과는 어울리지 말라며 동네 아이들을 멀리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열살 많은 옹점이와 친구처럼 친 누나처럼 든든한 보호자겸 지낸다.
옹점이는 남의 집에서 데려온 아이로 우리 집 부엌살림을 도맡아 한다. 옹점이는 솜씨가 좋다. 반찬도 맛있게 잘하고 바느질도 잘한다. 손이 크고 성격도 시원시원하다. 오종종한 꼴은 꼴같잖아 못 보던 성미다. 어머니보다 더 나를 살뜰히 챙긴다.
동네에 기차역이 생기고 놀던 바다는 간척지로 변해 논이 되었다. 옹점이는 결혼해 우리 집을 떠나갔다. 6.25 전쟁 통에 옹점이 남편은 후손도 남기지 않고 어디서 죽었는지 모른 채 유품만 돌아왔다. 과부가 된 옹점이는 시집 식구들의 구박에 그마저도 있을 데가 아니었다. 떠돌이 약장수 따라 유랑단 가수가 된다. 장을 돌며 노래를 부르던 옹점이를 본 나는 눈앞이 캄캄하고 다리가 후들거려 심신을 가눌 수가 없다. 그 자리에 서서 버틸 기운도 옹점이를 건너다 볼 수도 없다.
선창가 고동 소리 옛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옹점이의 노래 가락은 가슴을 후벼파며 따라왔다
형처럼 아껴주고 챙겨주던 힘세고 의젓한 대복이 이야기들은 지금 눈앞에서 보듯 수려한 문장과 따뜻한 마음으로 정겹게 풀어간다.
동네 힘 센 형 대복이네 집은 그 집 부엌에서 누룽지 긁는 소리가 우리 집 사랑방에 들릴 정도로 가깝다. 한 집 같던 대복이네는 바다에 왔다가 길을 잃은 여우 잡이 갈 때나 산에 사냥 나갈 때도 나를 업고 다녔다. 대복이는 일솜씨가 빼어났다. 겨울 사냥도 잘 하고 바다 갯벌에서 고둥이나 대합 게등도 잘 잡았고 대복이가 만들어준 팽이는 왜 그리도 잘 돌던지. 사범학교 다니는 동네 순심이를 좋아하던 대복이는 징집영장이 발부되고 출정한다. 공산당에 협조하다 국군이 들어오며 방구들 속에 숨어 살던 순심이는 그를 마지막 한번 보려다 잡혀 간다.
대복이와 어울림으로써 누릴 수 있었던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들도 영원히 그쳐 버렸다.
겨울마다 먹었던 별미 참새고기도 두 번 다시 냄새조차 맡아보지 못한다.
동네 석공 신현석의 결혼식날 사람들 틈에서 아버지의 춤사위와 노래를 보고 놀랜다. 근엄하기만 하던 아버지가 흥에 겨워 춤을 추며 노래를 하다니. 아버지는 좌익 남로당원으로 장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던 사상가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범접하기 힘든 거리감이 있다.
1950년 인공치하에서 석공은 잠시 군청 서기를 한다. 이 일로 국군이 들어왔을 때 행방불명이 되었다가 결국 잡혀 고문당하며 5년의 징역살이를 한다. 해방이 되던 해 마을로 돌아오나 몸은 이미 망가졌다. 처자 다음으로 그립고 보고 싶어 못 견디겠던 것이 낫 호미 쇠스랑이 도리개 소리 탈곡기 소리였단다. 석공은 백혈병이 들고 나는 서울 집으로 온 그를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을 시킨다.
“잘 들 사는걸 보고 죽으야 옳을 텐디. 부디 잘들 살어”
그는 인정 어린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만 거들어 주고 돌보아 줄 일도 모두 끝났다. 석공과는 오랫동안 편지 왕래를 하던 사이다. 호적 등본 떼어 옮겨주라. 졸업증명서 떼어주라. 병사관계 서류들을 부탁했다. 석공은 우리 집 산소 만들 때도 이사할 때도 자기 집 일 마냥 온 힘을 다했다.
일락서산, 화무십일, 행운유수, 녹수청산, 공산토월, 관산추정, 여요주서, 월곡후야 총 8편의 수필이나 모두 주인공이 나인 연작 소설이다. 박경리의 토지 압축판이다. 다 읽고 나서 부엌에서 요리를 하며 옹점이가 부르던 노래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