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 시대의 문학가 서문 소통(蕭統) 양무제의 장자 소명 태자(501년-531년)가 도연명집을 정리했다. 도연명은 자를 원량 이름이 잠 자가 연명이다. 심양의 시상 사람으로 증조부 도간은 진의 대사마였다. 진 송 시기의 시인이다. 소싯적부터 고아하고 박학하여 글을 잘 지었고 오류선생 전을 지어 스스로 비유했다. 살던 집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었다.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떠나 집이 몹시 가난했다. 겨울에도 갈 옷을 기워 입고 살았다. 몸소 밭 갈며 자급하다 며칠을 굶어 삐쩍 말랐다. 밥을 구걸하러 다닌 적도 있다.
굶주림 찾아들어 날 몰아 나서지만
끝내 어디로 갈지 몰랐어라
가고가다 이 동리에 이르러
문 두드리고 서투르게 말문을 열었네
가난해 얻어먹고 살던 한신에게 밥을 주었던 표모를 생각한다. 한신이 성공한 후 천금을 주어 은혜를 갚았다.
주인은 내 뜻을 알아 차려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오
그대의 표모같은 은혜 감사하나
나 한신의 재주 없어 부끄럽소
오래도록 못 잊을 은혜 어찌 사례하려나
죽어서라도 보답해 드리고 싶소.
한 달 중 아홉 끼니를 먹고 10년에 하나의 관을 쓴다는 이도 있다.
안연지는 유유의 후군공조로 심양에 있으면서 연명과 정이 두터웠다. 시안군 태수가 되어 심양을 지날 때마다 술을 사주고 떠날 때 2만의 돈을 주었다. 연명은 그 돈을 모두 술집에 주고 수시로 술을 사먹었다. 쌀 뒤주는 비었어도 술잔의 술은 마르지 않기를 바랐다. 도연명의 처 역시 힘들게 일함을 달게 여기고 가난을 탓하지 않으며 연명과 뜻을 같이 했다.
국화 오류 팽택 남산 음주 전원 도화원 귀거래 오두미 유관 불구 심해등의 글을 쓴다. 겨우 얻은 팽택 현령 관리도 오두미 고사를 남기고 낙향한다. 오두미는 쌀 다섯말로 당시의 녹봉이다. 자식을 훈계 할 때도 농사를 권면 할 때도 시로 한다.
주속지 조기 사경이 셋은 도연명과 함께 예경을 강론하고 교서했다.
도연명의 시는 인간관계와 생활 삶에 대한 시들이다. 장강에 낚시를 드리우거나 배를 타고 유유자적 놀이하는 그런 시가 아니다. 절경을 찾아 꽃놀이 뱃놀이 하는 선비들과는 거리가 멀다. 도연명의 문장은 다른 무리와 같지 않아 사어의 광채가 정미하고 빼어나며 질탕하고도 밝아 홀로 여러 부류를 뛰어 넘었으니 억누르고 드날림과 상쾌하고 명랑함은 그보다 없다고 한다. 도연명의 글을 애독함은 명리를 추구하는 정을 놓아버리며 비루하고 인색한 뜻을 떨어내어 탐욕스런 사내를 청렴케하고 나약한 사내를 서게 할 것이니 어찌 인의를 실천하게끔 하는데에 그칠것인가 라고 소통은 말했다. 농사꾼의 일함도 시로 쓴다. 사지는 실로 피곤하여도 뜻밖의 근심은 거의 없다고 한다. 참됨을 기르고 선함으로 이름을 세우고자 한다.
지인들과 작별 할 때도 시를 써준다.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또 있으랴만. 너무나 가난해 시 밖에 줄게 없다. 살고 싶은 남촌으로 이사 갔으나 화재를 당해 상경리 옛집으로 돌아온다. 베옷 입어도 즐거워 자득하고 자주 쌀독 비워도 늘 편안하였다.
구름 보면 높이 나는 새에게 부끄럽고
물가에서 노는 물고기에게 부끄러웠네
육년 지나 다 돌아 왔다네
마음 처량하여 슬픔이 많도다.
어느 날 건강을 생각해 그 좋아하던 술을 끊고자 한다. 정말 끊을지 궁금했다.
아버지 도연명은 아들 다섯이 기대에 미치지 못함에 속이 상한다.
하늘이 내린 운세 실로 이러하니
또다시 술이나 들이킨다오
내 젊은 시절 추억해 보니 즐거움 없어도 기뻐하였다
맹렬한 뜻 사해를 달렸고 깃을 펴 멀리 날아오를 생각하였다.
예전에 어른 말씀 들으면 귀를 막고 매양 즐겁지 못하였다.
어찌하여 쉰이 되어 홀연히 이 일을 내가 하고 있는가.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모양새는 다 같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다.
한정부(閑精賦)는 고향에서 한가로워 다시 붓을 적셔 글을 지었다.
어찌 그리 아름답고 빼어난 자태를 지녔는가
옷에서라면 옷깃이 되고 싶어
치마에서라면 허리띠가 되고 싶어
눈썹에서라면 눈썹먹이 되고 싶어
낮이라면 그림자 되고 싶어
밤이라면 촛불이 되고 싶어
나무라면 오동이 되고 싶어
무릎위에 울리는 거문고 되고 싶네.
떠나 보내고 잃은 후 마음을 다잡아 온갖 생각을 평온케 하여 성심을 보존하지만
구약성서의 아가서를 보는듯했다. 누가 잠시나마 도연명의 마음을 미혹했던가.
팽택에서 벼슬살이를 하다 80 여일만에 그만 둔다. 시집간 동생이 세상을 떠나자 구실 삼아 집으로 돌아온다. 이때 지은 시가 유명한 귀거래혜사( 歸去來兮辭)다. 도연명의 시는 다 주옥이다. 도연명은 전원을 찾아 유유자적 노닐러 온게 아니다. 성질이 진솔함을 좋아해 억지로 벼슬자리를 유지하기 힘들어 온 것이다. 자기를 어기면 병이 되어 집으로 올 수 밖에 없다. 집에 온들 굶주림과 추위가 기다리지만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무릎하나 들일만한 집 그 얼마나 편안한가
봄 언덕에 올라 휘파람 불고 맑은 물결 임하여 시도 지으리
책의 뒷부분은 수필 연작시 긴 서사시가 있다. 담백한 문체에 절절한 사연들이다. 충만하고 알차다 . 비감미가 있다. 맑고 깨끗하다. 말 재주 부리는 과장법이 없다. 미사여구나 화려함도 없다. 지극한 덕은 나라 안에 으뜸이요. 맑은 절개 서관에 비추었네. 바로 그의 마음가짐이다.
도화원기(桃花源記)는 58세에 썼다.
진나라 태원때 어부 무릉 사람이 길을 잘못 들어 숨겨진 마을에 들어간다. 마을 사람들은 밝은 표정으로 평화롭게 잘 살고 있었다. 무릉도원이었다. 숨어 있는 마을이라 나라에 세금을 내지 않고 세금을 내지 않으니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다. 닭을 잡고 술상을 차려내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가시거든 이곳 사정을 말하지 말아 달라 했지만 태수에게 알리고 찾으러 나섰다. 표시를 해두었으나 아무도 찾지 못한 채 잊혀져 갔다.
맹부 군전은 별세한 도연명의 모친을 기리기 위해 외조부에 대한 사료를 모아 전기를 썼다.
오류 선생전은 46세에 전기의 형식을 빌어 빈천과 부귀에 연연하지 않고 독서 음주 시문 창작으로 소일하는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쓴다. 그의 처도 빈천을 근심하지 않고 부귀에 급급하지 않았다. 부창부수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고 소감으로 독사술구장(讀史述九章)을 쓴다.
백이 숙제 기자 관중과 포숙 정영과 공손저구 진실하고 정성스런 무우의 칠십이 제자를 쓴다. 산해경에 대한 시도 있다.
초나라의 대 시인 굴원과 가의에 대해서도 쓴다.
아! 두 현인이여
의심 많은 세상을 만났도다.
한비자에 대해서는
슬프도다 한생이여
세난을 말하다 끝내 죽고 말았구나
노나라의 두 선비 장장공 이야기도 시로 썼다.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형가를 노래한다.
연의 태자 단 선비를 잘 기르니
뜻은 강한 진에 보복함이라
한번 가면 오지 못할 줄을 알지만
후세에 이름이야 남으리
아들 엄 사 빈 일 동 다섯 아들에게
너희들은 어리지만 집이 가난해 매양 나무하고 물 긷는 수고로움을 일삼으니 어느때에야 면하게 될까를 마음속으로 생각하노라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
관중과 포숙처럼 우애하고 살기를 바란다는 글을 써 가르친다.
제정씨 매문은 정씨에게 시집간 손아래 누이의 상을 당해 쓴다.
느꺼워 비통하게 곡을 하나니
애통함에 피눈물 흘리며 우노라
아아 애통하도다.
제종제경원문은 사촌동생을 장송하기 전날 밤 쓴다. 시가 아닌 제침문이다. 같이 지내던 날들을 회고하며 비통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