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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이는 별 Mar 31. 2022

자화상

인생칠십 고래희 2

언젠가 통인시장의 가게를 배경으로 예쁜 두 여자 모델을 찍고 있는 풍경을 봤다. 배우 설현처럼 뒤를 돌아보는 모델의 몸매가 아름다웠다. 다리가 길어 균형 잡힌게 보통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부러워서 한참을 구경했다.

나는 키도 작고 얼굴도 예쁘지 않다. 마른 몸에 비해 짧은 다리는 통통해서 콤플렉스였다.

신석정 시인의 시 들길에 서서를 읽고 마음을 달리 먹었다.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그렇지 그래 알고 보면 참 고마운 다리지. 예쁜 여자와 결혼하면 3년이 즐겁고 지혜로운 여자와 결혼하면 30년이 즐겁다고 했다. 남편은 내게 당신은 30년이야 했다. 기왕에 후하게 쳐 주는거 3년 더 얹어주면 안돼. 남편은 웃기만 할뿐 그 3년을 끝내 보태주지 않았다. 이른 봄 풀밭에 핀 제비꽃을 보고 좋아하는 나에게 당신을 닮았어 했다. 어쩌다 눈에 띌까말까한 작고 볼품없는 제비꽃이다. 꽃 빛깔마저 애처로운 보랏빛이다.


고등학교 다닐적 여학생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그 잡지에 상품을 광고하던 국제그룹과 여학생 잡지에서 후원하는 장학생이 되었다. 장학금 전달 겸 야유회에 초청받았다. 남이섬에서 회장님도 만나고 전국에서 온 여중고 생들과 1박 2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울역으로 갔다. 차표를 끊고 대합실 의자에 앉아 차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또래 여자가 다가와 말을 건다. 내 신상을 대강 묻고 자기 이야기를 한다. 어버지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다. 자기랑 같이 가자며 우선 짐 보관소에 짐을 맡기자고 했다. 서울역 짐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따라 나섰다. 그는 다방에 들어가 잠깐 기다리라며 나갔다.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그때서야 퍼뜩 정신이 났다. 속았구나. 다방 마담아주머니는 알고 있는 듯 한참을 잡아 두곤 찻값을 내지 않아도 나가도록 해줬다. 급히 길을 나섰다. 횡단보도는 보이지 않았다. 횡단보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를 데려간거다. 빨리 짐 보관소에 가야했다. 무단횡단을 했다. 자동차들이 빵빵거리며 위협했다. 무서운 줄도 모르고 달리는 차들 속을 가로질러 달렸다. 이미 내 가방들은 그 여자아이가 가져가고 없었다. 그 속에 교복 장학금 선물 차표까지 들어 있다. 서울역 파출소를 찾았다. 타자기를 앞에 두고 그것도 사건이라고 타닥타닥 한참을 쳤다. 공짜 기차를 탈 수밖에 없다. 저녁 어두워서야 겨우 밤기차를 얻어 탔다. 내내 울면서 갔다. 공부 잘하는 게 무슨 소용이람. 이리 어리석은걸. 그 후로 서울은 눈뜨고 코 베어가는 곳이 되었다. 사람 살 곳이 아니었다.


가끔 서울역 앞을 지나갈 때면  저 넓은 찻길을 저리 많은 차들이 달리는 저 곳을 무단횡단하며 내달렸구나. 오싹해진다.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게 기적이구나.

 

대학 다닐 때 집에 두고 온 과제를 가지러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탔다. 평소엔 걸어 다녔지만 시간이 촉박해 할 수 없이 버스를 탔다. 학생은 할인요금이다. 버스 안내양이 성인요금을 내라고 윽박지른다. 학생이라고 해도 거짓말 마라며 한참을 쏘아보며 무시해댔다. 과제를 가지고 다시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아까 그 안내양 탄 버스다. 학교 앞에서 내려 교문으로 들어가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와 유사한 경우를 많이 겪었다. 너 정도는 무시해도 되는 나야 하는 생각이 드나보다.


어느 날은 세탁물 보따리를 자전거에 싣고 이마트의 세탁점에 갔다. 세탁점은 쉬는 날이었다. 나온 김에 식당에 가 밥을 먹으려고 하다보니 보따리를 자전거에 둘 수가 없다. 들고 갔다. 식당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있는 주인 아줌마는 나를 귀퉁이 한갓진 곳에 앉으란다. 나도 그게 편해서 별 생각없이 앉았으나 자꾸 쳐다보는 게 불쌍하다는 듯한 느낌이 역력하다.

퇴직 전 직장 동료들과 같이 그 식당에 갔다. 이집이 나물류 반찬이 많아 입맛에 맞다. 식당 주인은 자꾸 쳐다본다. 보따리 장수 인줄 알았는데 같이 있는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의아해 보인거다. 다음엔 남편과 같이 갔다. 주차권 확인 도장을 받으러 카운터에 서니 주인 아줌마가 놀라움을 감추고 가만히 묻는다. 차도 있어요?


딸이 대학교 홍보모델로 선정되어 지하철 역과 신문에 사진이 실렸다. 자랑스런 맘에 별 친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말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냐는 듯 크게 웃으며 거듭 확인을 했다. 드러내놓고 못 미더운 눈치였다. 동학년 젊은 남자 동료가 선생님 젊었을 적엔 예뻤겠어요. 해준 경우도 있다. 지금은 예쁘지 않다는 말과 같다. 그래도 기분은 좋은 말이다. 아예 대놓고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다 반찬을 더 달라고 하면 평소에 못 먹고 살아 여기서 많이 먹으시나보다. 그것도 웃으며 말한다. 입이 짧아 음식을 가려먹는다. 고기 생선 보다는 나물 반찬이 좋아 식당가면 나물류를 더 청해 먹는다. 생긴 게 그러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산다. 바람 맞으며 비에 젖으며 사는 작은 풀꽃이다. 가장 압권은 부부 싸움 때 시어머니가 끼어들며 하신 말이다.

“저 쥐 알 만 한 년 하나 못 이기냐.”

학창 시절 내내 장학금 받고 다녔다. 중2 때 아이큐는 145가 나왔다. 학교 대표로 각종 백일장에 참가해 상을 탔다. 못나도 내리 학급 임원을 했다. 몇 십 년 지기 친구들도 있다. 애 둘 낳아 키웠다. 서울에 번듯한 내 집도 있다. 면전에서 무시를 당해도 그러려니 하고 무심할 수 있던 것은 이리 잘난 체 하는 뻔뻔함 때문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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