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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이는 별 Mar 31. 2022

글쓰기를 시작하다

인생칠십 고래희 4

 국민학교 시절 학교 대표로 군 백일장 대회에 나갔다. 글제는 봄이었다. 봄이라면 겨울을 지나 만물이 소생하는 모습을 묘사하면 그냥 써지는 주제다. 빨리 쓰고 앉아 있으니 감독 선생님이 다 썼냐며 달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읽은 두 분 선생님은 보고 베꼈다며 책상 속을 점검했다. 가방을 보자 했다. 책보자기를 들고 다니던 터다. 아무것도 나온게 없으니 외워왔다고 했다. 학교 도서실에서 문닫을 시간이라며 집에 가라고 할때까지 책을 읽었다. 아마 부분  부분 외워졌을지도 모른다.

중고등학교때도 교내 백일장은 물론 학교대표로 대외 백일장도 매번 다녔다.어느새 내꿈은 작가였다. 직장 생활과 아이들 키우느라 내 꿈은 잊은 채 그저 열심히 살았다. 건강 악화로 정년보다 일찍 은퇴를 했지만 이미 작가의 꿈은 접은지 오래다. 주말 농장 일에 재미를 붙이고 민화 해금 요가 한국무용을 공부했다.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바깥 나들이가 어려워지자 시간이 넘쳐났다. 그동안 버린 꿈이 솔솔 생각나기 시작했다.

99세의 나이에 시집을 출간한 일본의 시바타 도요의 약해지지마를 읽었다. 헬렌켈러의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읽었다. 은퇴후 뭘했나 어영부영 지나온게 아까웠다. 시바타 도요 언니는 인생이란 언제라도 지금부터야 누구에게나 아침은 반드시 찾아온다고 후기에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글 쓰기를 해보자. 공부를 그만 둔지 반백년이 되었고 초등 교사를 30여년 했으니 내 지적 능력은 초 졸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글쓰기 공부가 필요하다. 책을 먼저 읽기로 했다. 가끔 가던 광화문 교보 문고를 갔다. 아니나 다를까 코로나로 인해 책 읽던 자리는 없어졌다.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종로 도서관에 가서 회원증을 만들었다. 돈 한푼 안 들이고 내  서재가 생겼다.  어디에 시선을 두는지에 따라 내가 가지는 조건들이 새로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종로 도서관엔 큰 글자 책 서가가 작은 내 키에 맞춰 잘 보이는 길목에 있다. 난시에 노안까지 온 나를 위한 맞춤 큰 글자 책들이 거의 새책이다 싶은 깨끗한 차림새로 기다린다. 맞춤 돋보기를 써야 하는 나에겐 구세주급이다. 눈에 잔뜩 힘을  주지 않아도 책을 읽을 수 있다.

도서관은 노다지다. 알리바바의 보물 창고이다. 열려라 참깨! 모여라 지혜!

대충 읽어보겠다고 생각한 책도 읽다가 흥미 있어 끝까지 읽은 책들이 있다. 다 읽고 나선 좋은 책이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해인 수녀님은 필때도 질때도 동백꽃처럼의 책이 되는 순간에서

대충 넘기지 말고

꼼꼼히 읽어주세요

스치지만 말고

잠시 사랑으로 머물러 주세요

끝까지 다 읽어보지도 않고

나를 판단하진 말아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수녀님은 나와는 별개의 세상에서 사는 수도자로 생각했다. 지레 겁을 먹고 대충 읽어보려 했던게 죄스러웠다. 시인들은 본적 없는 독자들의 마음을 꿰고 있다. 들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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