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스 다레이오스 왕은 사르디에스를 침입한 아테나이인들에게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 마라톤 전투 패배 소식에 격노한다. 이에 헬라스 원정을 결심하고 최대의 병력을 준비한다.
캄비세스에게 예속 되었던 아이깁토스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도 정벌 계획을 세운다. 아테나이인과 아이깁토스를 정벌코자 후계자를 크세륵세스로 지명한다. 다레이오스는 원정 준비 중 죽고 크세륵세스가 왕이 된다. 크세륵세스는 다레이오스의 아내 중 키로스의 딸이 낳은 아들이다. 키로스는 아스티아게스를 폐위하고 메디아인에게서 왕위를 넘겨 받았다. 캄비세스 다레이오스 크세륵세스로 이어진다.
페르시스는 아테나이가 저지른 일을 응징하고 영토 넓히기에 돌입한다. 에우로페 전역을 점령하여 하나의 나라로 통일 지배하려는 욕망이 있다. 아버지 다레이오스는 용감한 스키티에인들에게 패한 적이 있다.
아이깁토스와 아테나이를 응징하는데 찬반을 두고 의견이 갈린다. 숙부 아르타바노스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이것은 내 생각이다. 원정 반대를 하던 숙부는 크세륵세스에 동조한다. 크세륵세스는 아이깁토스를 정복한 후 아테나이 원정을 위해 4년간 최대 규모의 군대를 준비한다. 진군을 위해 아토스곶에 운하를 판다. 채찍이 만든 운하라고 했다. 채찍에 맞으며 일한 노역꾼을 빗댄 말이다. 다리도 세웠다. 태풍이 불어 부서지면 다시 또 건설한다. 페르시스에 예속된 모든 나라의 인력이 동원되고 전쟁 경비도 조공 받았다. 사르디에스에 도착해선 각 지역에 사절을 보낸다. 흙과 물을 보낼 것 식사 준비를 할것등을 알린다.
사르디에스를 지나 아비토스로 진군을 이어간다. 선두에는 짐꾼 운송용 동물과 온갖 종족의 혼합군대가 간다. 그 다음 기병 천명 창병 천명 치장한 말과 마차 그리고 다음에 크세륵세스의 마차가 간다. 유명한 마부 오타네스의 아들이 함께 간다. 오타네스는 다레이오스가 왕이 되는데 꾀를 내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당시 마부다. 다음은 창병 기병 각 천명 병사 보병 기병 순이다. 진군 도중 스카만드로스 강에서 이들 군대와 동물이 마셔 강물이 동이 났다. 아이깁토스 가운데에 도착하자 크세륵세스는 군대 전체를 보고 싶어함은 물론 바다의 함대들을 경주시킨다. 숙부 아르타바노스는 모든 결말은 시작 때에는 보이지 않는다는등 왕을 위한 조언들을 한다. 진군 중 에우로페를 정복하고 군대를 점검한다. 군사 1만명을 표집 단위로 한데 모은 후 원을 그려 담을 쌓는다. 육군은 170 만명이다. 지휘관은 각 복속 국가마다 두었다. 무려 36 종족과 바다 섬들의 홍해에서 온 종족들이 함께한다. 페르시스인들은 지붕 있는 마차에 첩들과 수행원 식량등을 싣는다. 불사대 1만명을 만들고 결원시 채운다. 삼단노선 1207척등이다.
많은 군대의 이동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이는 헬라스군들의 방어 준비 시간을 벌어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트레이케를 지나 헬라스로 진군한다. 도중에 만난 종족은 원정에 합류시킨다. 지나가는 나라마다 성대한 식사를 대접받고 가져갈 것을 챙겨간다. 아토스에 만들어진 운하를 따라 항해한다. 군대는 행진하며 산악지대의 수목을 베어내 길을 만들고 사절을 보내 흙과 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한다. 무소불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아테나이와 스파르테에는 사절을 보내지 않았다. 전에 다레이오스가 보낸 사절이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페르시스의 막강한 군사력에 비해 헬라스는 수적으로 약했다. 거기다 신탁까지 절망적이었다. 신탁은 상징적으로 모호하게 말해 해석이 분분하다. 페르시스가 사르디에스에 도착했을때 첩자를 세명 보냈다. 잡혀 죽기전 크세륵세스는 살려 돌려보낸다. 막강한 군대의 모습을 보고 돌아가면 항복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헬라스의 동맹국들은 아르고스에 사절을 보내 동맹에 참여할 것을 권유한다. 시켈리에의 참주 겔론은 단서를 단다. 당신 군대의 지휘권을 달라. 아테나이 사절은 군대를 원하지 지휘권을 원하는건 아니다라고 한다.
전투 중 비록 적군이라도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는 정의로운 병사는 치료해 살리고 모범으로 삼는 일도 있다. 바로 아이기나인 피테에스를 페르시스가 감탄해 살려 우대한다.
페르시스는 승선병만 24만 해군 총수는 51만 7610 명 보병 170만 기병 8만 해군 육군 종수는 231만 7510명이라고 한다. 수행원 시종 수송선의 인력은 제외한 수다. 합류된 각 종족들이 제공한 병력도 30만이다. 264만 1610명에 병력외 수송선을 포함하면 528만 3220 명이다. 크세륵세스는 세피아스곶과 테로오필라이까지 이 병력을 이끌고 온다. 지나가는 강들의 물이 고갈된다.
페르시스 군대는 정박해 있는 동안 거대한 폭풍이 3일 동안 불어 닥쳐 큰 피해를 입는다. 이때 떠밀려온 엄청난 재화를 건져 횡재를 한 나라도 있다. 날씨도 전쟁에 큰 영향을 미치나 당시 사람들은 신이 내린 운명이라고 했다. 자신의 운명에 불행이 전혀 섞이지 않은 인간은 없으며 위대한 자에겐 더한 불행도 온다고 헬라스인들은 믿었다. 위대한 인물일수록 적의 목표물이 되어 더 큰 불행에 처할 수 있다. 더구나 크세륵세스는 신이 아닌 인간이라 했다. 스파르테인 디에네케스는 이방인의 화살이 너무 많은 태양을 가린다고 했을 때 그렇다면 우리는 햇볕이 아닌 그늘에서 싸우는거라고 긍정적이었다. 바로 헬라스인들의 임전 태세다.
헬라스인은 북부 고갯길에 주둔하고 페르시스는 본토 이남 지역에 대치한다. 군사력이 약한 헬라스인들은 불굴의 의지로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지만 막강한 군사력의 페르시스는 오만했고 싸우는 군사들을 등 뒤에서 채찍질을 하며 몰아댔다. 죽은 자가 많았으나 죽은자들에게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헬라스인의 밀당 싸움에 무작정 공격하다 고갯길 장악에 실패한다. 헬라스인 중 상금을 바라고 빠져나와 페르시스에게 우회 길 정보를 안내한 배신자가 있었다.
펠로폰네스의 4000명 전사는 300 만 군대에 맞서 싸웠노라는 무명의 용사 예찬 비문이 죽은 그 자리에 새겨져 있다.
헬라스인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하고 막강 군사 페르시스의 크세륵세스는 철수한다.
여기까지 읽다보니 나오는 인물들의 성격이 드러났다. 제 삼자의 입장에서 본 인물들은 단편적이나마 대내외 정책을 펼칠 때 적나라한 그들의 성격이 보였다. 나도 살면서 알게 모르게 내 성격대로 살았음을 인지했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낸다.
아리스토데모스는 가장 용감하게 싸웠으나 눈병이 나 피하여 살아남아 수치와 모욕을 겪고 왕따를 당했다. 아무도 그와 말도 안 걸고 불씨도 나누지 않았다. 또 한명 사절로 갔다가 살아 돌아온 판다네스는 모욕을 당하자 목메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