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by 래미

“얘들아, 어디 있어~?”


문이 열리는 순간,

톤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오늘도… 술이 섞인 목소리다.


그 하이톤,

어디선가 방울방울 튕기는 소리처럼

내 신경을 건드린다.

그리고 본능처럼 스위치가 켜진다.


숨자.

지금부터 숨바꼭질이다.


후다닥.

할머니 뒤로 기어들어간다.

넓은 돌침대의 한쪽,

마치 그곳이 내 안전지대라도 되는 듯

몸을 웅크린 채 누운다.


“얘들아, 어디 있어~? 엄마 왔는데 인사도 안 하고?”


살짝 짜증 섞인 말투.

곧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신호음.

오빠는 이미 할아버지 방으로 사라졌고

나는 할머니의 등을 병풍 삼아 숨는다.


나는 그저 조용히,

아닌 척,

없는 척,

그렇게 숨는다.


그 순간, 이 집은 놀이터가 아니라 지뢰밭이 된다.

엄마의 기분은 우리가 피해 다녀야 할 예고 없는 폭풍이다.


“애들 자. 없어.

너도 얼른 씻고 자.”


할머니의 단호한 한마디에

엄마의 발소리가 거실 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제야 나는 조심스레 숨을 고른다.

오늘도, 한 채의 고비를 넘겼다.


돌침대는 차가웠지만

할머니의 등 뒤는 늘 따뜻했다.

그 온기 덕분에

그 시절의 밤들은

그나마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숨고 싶을 때

숨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어린 나에겐 그게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방패였다.


할머니, 그리고 말없이 등을 내주던 할아버지.

나는 그 울타리 안에서

조용히, 무사히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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