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졸작을 돌려보고, 의견을 나누고 마치 뭐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는 친구, 그냥 듣고 있는 친구, 꿰뚫어보는듯 무시하는 친구 하나
A대학교에서 졸업작품을 전시한다는 전단지가 눈에 띈다. 둘은 손을 잡고 그 옆을 나란히 같이 걸어오는 여자 셋이 전단지 앞으로 다가간다. 전단지에는 A대학교 졸업 작품 전시회 '이 세계로'라고 적혀있다. 긴 머리를 한 여자가 유심히 지켜본다. 단발머리를 한 여자도 같이 유심히 지켜본다. 파마머리를 한 여자는 왠지 심드렁해보인다.
긴머리가 옆 친구들에게 전시회에 가보자고 바람을 넣는다. 단발은 고민을 하는 표정이고 파마는 여전히 심드렁해보인다. 그저 휴대폰만 계속 만지고 있다. 긴머리는 한껏 들뜬듯 가쁜 숨을 내쉬며 이런 전시회는 자주 봐줘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열띤 단어를 내뱉는다. 단발은 동감하는 듯 쉬엄 쉬엄 맞장구를 치지만 긴머리처럼 열성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파마가 시간도 많은데 그냥 한번 가보자는 소리를 했다. 긴머리가 기뻐하는 표정이다.
전시회 주제는 현대 미술. 피카소를 연상케하는 작품인지 모를 난잡한 그림과 라파엘로를 따라한듯한 그림도 보인다. 굵은 질감과 두꺼운 입체감을 보여주는 그림이 바닥에 놓인듯 걸려 있고 수채화같은 그림도 있다. 앳된 얼굴을 한, 이십대 중반 정도 되어보이는 학생 두명이 앞치마를 메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긴머리는 인사를 무시하고 곧장 눈 앞에 보이는 그림 앞으로 달려간다. 단발과 파마는 가볍게 묵례를 하고 서로 흩어졌다. 단발은 전체적으로 그림을 눈으로 둘러보고 파마는 눈길이 가는 작품마다 서서 작품 옆에 붙은 조그만한 설명문을 읽는다.
긴머리는 한 작품을 유심히 본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작품도 유심히 본다. 단발이 팜플렛을 가져와 모두에게 나눠준다. 긴머리는 팜플렛에 딱히 관심이 없는듯 하고 그저 그림만 계속 본다. 단발과 파마는 팜플렛을 읽어본다. 파마가 팜플렛에 적힌 설명이 그림 옆에 붙은 설명과 맞아 떨어진다며 팜플렛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단발도 동감한다. 긴머리는 여전히 관심이 없다. 단발과 파마는 팜플렛을 보며 팜플렛과 그림을 같이 본다. 단발이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도슨트 요청을 한다. 긴머리가 쪼르르 옆에 와 붙는다.
도슨트는 길지 않았다.
글쓰기 싫다. 다음에 써야지. 영어공부도 하기 싫다. 수학의 정석 풀었다. 이런 멍청하지만 생산적인척 하는 일을 하는게 은근 기쁨을 준다. 웃음이 나는 행동이라기 보다 잔잔한 만족감에 실실 쪼개게 되는 기쁨이랄까. 나머지는 다음에 쓰자. 안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