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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전투장에서 포켓몬들의 몸통박치기

by 나니

이상하게 수요일 목요일이 엄청 피곤하다. 잠을 8시간 잤는데도 엄청 피곤하다. 그 이유를 모르겠다. 월화는 괜찮은데 수, 목은 미친듯이 피곤하고 금요일도 피곤하지만 행복하다. 매주 같은 요일마다 같은 기분으로 지하철에 오른다.


지하철을 자주 타면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난다. 그 중 새치기를 하거나 몸을 그냥 밀치고 갈길 가는 사람을 가장 많이 만난다. 특히, 어른들이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아무말 없이 팔로 몸을 밀고 좁은 사이를 비집고 나가거나 몸통박치기를 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무슨, 포켓몬스터도 아니고 몸통박치기를 그렇게 하신다. 그때마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본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다.


근데, 오늘 아침 나는 정말 피곤했고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기위해 줄을 서 있으면 계속 껴 들어오는 사람들, 지옥철에서 손으로 장풍을 쏘며 밀고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들. 참고 참았던 인내심이 폭팔했다.


누군가가 내 앞을 새치기 하려하자 나는 그사람을 팔로 막고 방어운전을 했다. 다른 줄에 서 있다가 이동 속도가 더 빠른 내 줄에 들어오려 하자 그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몸통박치기를 했다. 앞에 우물쩡거리며 폰을 보고 거북이 속도로 이동하는 사람 등 뒤를 손으로 밀며 앞으로 가라고 떠밀었다.


지하철 출구를 올라오고 회사까지 걸어가는 그 잔잔함 동안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아, 나 방금 그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 같았다'였다. 앞사람 등을 자꾸 떠미는 것도, 몸통박치기를 하는 것도 그 사람들이 포켓몬이어서가 아니라 방어운전을 했었을 수도 있고, 스몸비들에게 질렸을 수도 있다.


모두가 예민한 출퇴근 지옥철. 어쩌면 내가 빌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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