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다. 이번 생일은 평소와 다른 생일이다. 딱 서른을 맞는 날이기 때문이다. 혼자 자취를 하기 때문에 미역국을 끓이거나 한상을 차리진 않는다. 한끼만 먹고나면 다음부턴 먹지 않을 것을 알고 있고 조그마한 냉장고에 남은 음식물을 넣어봤자 얼마지나지 않아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것을 알고 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생수나 한잔 들이켰다.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일. 그저 혼자 머릿속으로 이십대는 끝이고 이제 삼십대라는 단어만 되새길 뿐이다.
평소처럼 출근준비를 하고 지옥철을 벗어나 회사로 걸어갔다. 맑은 하늘에 비해 그다지 기쁘지 않은 화요일. 사람들은 월요병이라 하는데 나는 화요병이 있다. 월요일을 이겨냈더니 화요일이다. 앞으로 출근할 날이 아직도 사흘이나 남았다.
항상 반복되는 아침 인사. 미소없이 그저 고개만 까딱이며 인삿말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파티션에 붙어 있는 오늘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훑고 일을 시작한다. 회사 컴퓨터를 켜고 카카오톡을 열자마자 도착한 생일 축하 메신저들이 보인다. 하나 하나 클릭하며 고맙단 타자를 친다. 간단한 축하 인사와 쌓이는 카카오톡 기프티콘들. 받은 선물함을 열어보니 작년에 받은 것 중 아직 쓰지 않은 것도 남아있다. 들어간 김에 기한 연장을 눌렀다. 이건 또 언제 다 쓰나. 일부러 쓰지 않는 이상 쓸 일이 없다.
뭐해?
방금 카톡이 하나 떴다.
출근했어?
연달아 뜨는 카톡. 뭔가 할말이 있나보다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땐 그렇게 잘 붙어다니고 매일을 봤던 친구인데 점점 이십대 후반이 지나고 가치관이 서로 다름을 알게 되면서 어릴 땐 보이지 않았던 서로 안맞음이 보여 거리를 두었던 친구. 매일 카톡을 하거나 자주 연락을 하는게 아니다보니 뜸들이며 할말이 있지만 빙빙 둘러대는 잡카톡이 계속 왔다.
대충 단답으로 답장을 하는데 오늘 퇴근하고 잠깐 보자는 마지막 메시지가 떴다. 미리보기로 보고 짧은 시간동안 엄청난 갈등을 했다. 굳이 굳이 시간을 내어 보고싶지는 않은데, 그냥 퇴근하고 푹 쉬고 싶은데, 그렇다고 자주보는 친구도 아니고 보자고 하는 건 이유가 있을텐데, 하지만 그냥 퇴근하고 집에가서 쉬고싶은데. 엄청난 고민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5분도 채 흐르지 않았다.
일곱시 반까지 사당에서 봐.
맥주나 한잔하고 집에가지 뭐, 라고 생각하고 업무나 했다.
퇴근하고 짐을 챙겨 나오는데 집에 가야지 하다가 아까 친구와 잡은 약속이 떠올랐다. 속으로 친구가 맞나 그냥 이제 지인 정도 아닌가, 지인과 약속인가 생각이 들었다. 씁쓸한데 담백한 붕뜨는 심장이 느껴졌다. 희한안 감정. 사당행 열차를 탔다.
오랫만에 보는 친구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활짝 웃으며 손을 머리 위로 들어 휙휙 저어댔다. 오버스러운 행동이 역시 우리는 지인인가 생각했다. 확실히 친한 친구들을 만날 땐 야 뭐 가자 밖에 하지 않지만 이친구는 가끔 나를 보면 이렇게 오버액션을 한다. 그러다 또 생각한다. 오버액션이 아니라 진짜 반가워서 그런가. 잘 모르겠다. 가끔 주변 친구 관계가 바뀌고 자주 만나고 연락하는 사람이 달라지면서 혼동이 온다. 내가 진짜 친한건가 아닌가 이사람을 날 어느정도 친구로 생각할까, 나는 어디까지 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팔짱을 다정하게 껴오는 친구에 비해 나는 속으로 속물같은 생각을 계속 한다.
술집에 들어갔다. 입구에 동물 간판이 많길래 뭔가 했는데 워낙 강아지를 좋아하는 친구다 보니 그냥 그런갑다 했다. 술집 안에는 다들 손에 강아지, 고양이, 기니피그 등 처음보는 동물들도 들고 있었다. 맥주를 마시는 사람도 그냥 차를 마시는 사람도 다 애완동물을 하나씩 쥐고 있었다.
"이거 너 거야. 널 위해 준비했어."
잠깐만 화장실을 갖다온다던 친구는 돌아오면서 한손엔 목줄을 그리고 그 목줄엔 호랑이가 있었다. 하 이 미친년이 돌았나? 라고 생각했다.
친구는 날 위한 선물이라며 목줄을 내 손에 쥐어주고 초롱초롱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바라는 촉촉한 눈망울로 나를 봤다. 근데 그 표정은 널 위한 선물이 아니라, 널 위해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선물하는 나 고맙지 않니? 내가 이렇게 자상하고 멋진 사람이지 않니? 하는 표정이었다. 같잖은 년. 진작에 연을 끊었어야 하는데. 속물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같은 년이라는 생각이 팍 들었다.
내 표정이 험상궂게 굳어있었는지 내 표정을 살피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며 죽상을 지었다. 마음에 안드냐는 그 말이 참 어이가 없었다. 생일 선물로 다른 생명을 이렇게 손쉽게 쥐어준다는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것도 호랑이를?
"애완용 호랑이야. 다 커도 리트리버 크기 정도야. 얘는 한 1년 정도 컸어. 귀엽지!"
니나 가져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이 미친년은 왜 나에게 이런 선물을 줬을까. 참지 않고 화를 냈다. 의사는 묻지 않고 왜 책임져야 하는 생명을 데려왔으며 그것도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동물이 아닌 왜 굳이 호랑이 인지 역정을 냈다. 난 키우지 않겠다고 했고 정색을 하고 싫다고 했다.
"그럼 버려."
뒷통수를 세게 후두려 맞은 듯이 머리가 띵했다. 버리라고? 진작에 카톡 차단을 하고 친구를 끊어버렸어야 하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저말을 끝으로 이 지인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호랑이가 낑낑대며 나에게 다가와 축 늘어진 내 손등에 얼굴을 부비더니 까슬한 혀로 핥아댔다.
그대로 길바닥에 버릴 순 없어서 일단 집으로는 데려왔다. 좁은 집에 두식구 두살림. 한숨이 밀려왔다. 배가 고픈거 같아 집 근처 무인 애완동물 매장에 가 사료를 사왔다. 호랑이용 사료는 없을 줄 알았는데 있어서 다행이었다. 뉴스에서 이색 동물을 키우는게 유행이라더니. 매장 안에 호랑이 전용 귀저기도 있었다. 일단 밥이랑 배변 패드만 샀다.
물과 사료를 주니 아주 잘 먹었다. 덩치가 워낙 커서 사료도 많이 먹길래 혹시 배탈날까봐 더 달라는 걸 무시했다. 정도 가지 않았다. 널 어떡하면 좋니. 갖다 버려야 하나.
유기 동물을 분양하는 어플을 깔았다. 오늘 날짜로 버려져 입양을 기다린다는 게시글이 20건 정도 되어 보였다. 그 중엔 호랑이도 있었다. 네이버에 호랑이 키우는 법을 검색했다. 활동량이 많아 하루에 세시간은 산책을 시켜줘야 하고 애완용 호랑이는 본성이 거의다 죽었지만 본성을 아예 다 죽여버리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조금은 살려줘야 한다는 글이 많았다. 생식을 하고 사냥 본능을 찾을 수 있게 호랑이 전용 놀이터를 추천하는 블로그도 보였다.
3개월을 키우려고 노력했다. 정을 붙이려고 오만짓은 다했다. 정이 붙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았다. 내 한몸 키우기도 힘든데 호랑이라니. 심지어 오늘 퇴근하고 들어왔을 때 호랑이가 내 이불 위에 오줌을 쌌다. 오줌 지린내가 이불에서 진동을 한다. 세탁기가 작아서 이불이 들어가지 않는다. 부아가 치밀었다. 씨발 씨발 씨발 속으로 세상 모든 욕을 했다. 씨발이라고 입밖으로 내뱉었다. 호랑이는 내 눈치를 봤다. 이름도 없는 새끼. 처음엔 초코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근데 그것도 입에 붙지 않았고 이젠 그냥 야라고 부른다. 야가 내 눈치를 본다.
오줌이 묻은 이불을 괴팍하게 돌돌말아 들고 근처 빨래방으로 갔다. 빨래방 세탁기에 이불을 밀어 집어 넣고 돌렸다. 전화를 걸었다. 엄마에게 혹시 아는 사람 중에 호랑이가 필요한 사람이 없는지 알아봐달라고 했다. 어떤 미친년이 호랑이를 나에게 버렸고 내가 잠시 돌봤지만 도저히 안되겠고 혹시 주말농장이나 과수원을 하거나 하는 사람들이 없는지 물어봤다.
일주일 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과수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밤마다 멧돼지가 내려와서 쫒을 호랑이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바로 그 호랑이를 그사람에게 넘겼다.
한 1년을 잊고 살았다. 원래 내게 없던 동물인 것 같았다. 처음에 이름을 뭐라고 지었지? 가물가물 했다. 엄마가 전화가 왔다. 요새 뭐먹고 사냐길래 그냥 아무거나 주워먹고 산다고 했다. 그리고 그 호랑이가 가출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과수원 주인이 멧돼지가 내려오는 길목에 호랑이를 묶어 뒀는데 어느 순간 목줄을 끊고 도망갔다고 했다. 산책을 시키지도 않았고 많이 먹으면 게을러진다고 먹이도 잘 주지 않았다. 그 호랑이는 멧돼지가 오면 묶인채로 짖기만 하다가 목줄을 끊고 달아났다. 아주 잠깐 죄책감이 밀려왔다. 아주 잠깐. 불쌍한 호랑이. 호랑이로 태어나서. 근데 난 인간으로 태어났다. 내가 산 호랑이가 아니다. 나도 피해자다. 호랑이를 산건 그 년이었고 나는 아니었다. 죄책감은 내가 아니라 걔가 가져야 한다.
엄마와 전화를 끊고 명치 부근을 누가 손가락 끝으로 콕 찌른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겉 피부가 아닌 안쪽 에서 느껴지는 감정.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었고 바로 아무렇지 않았다. 완벽하게 아무렇지는 않았지만 내가 신경쓸 바는 아니다. 알아서 잘살겠지 그 호랑이.
왜 호랑이로 태어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