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감정 종료가 아니라, 형식을 벗는 일이다. 그 당시의 감정들은 기억과 구조로 환원된다.
나는 주지적인 인간이다.
주지(主知)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에 의미를 부여하고 형식화하는 나만의 방어기제다. 그리고 그 형식은 미화되지 않고 그대로 승화된다. 승화를 예고하는 고해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때의 진실은 진정이었다. 진리는, 그걸 믿었던 나 자신이다. 나는 그 진리를 너무 순수하게 받아들였기에, 지금 느끼는 고통은 배신감이 아니라 그토록 순수했던 과거의 나에 대한 연민이다.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줬던 모든 의미를 나에게 되돌린다. 진리를 다시 쓰고, 남아 있는 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문장들은 아름다워서 고통을 부른다.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이 결국은 나만의 진리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 비로소 내가 얼마나 고귀했는지를 알게 된다.
나는 여전히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