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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해 Feb 22. 2022

밴쿠버에서 온 녀석의 영어 공부법

<<열 살 아들이 밴쿠버를 보내달라고 >>와 이어진 이야기입니다.


1. 모의유엔에 눈을 뜨다


중학교 때는 뭘 어떻게 공부시켜야 하는지 감이 잘 안 왔다. 엉덩이가 무거워서 책상에 앉아서 진득이 공부하는 것도 많이 못 봤고, 책을 곁에 두고 열심히 읽은 것도 못 봤다. 아들은 그저 학원에 꾸준히 가고, 게임 좀 하고, 폰 좀 보고, 자전거 좀 타고 친구 좀 만나고 그런 보통 녀석이었다.


한 가지 희한한 것은 매번 반장이나 회장 선거에 어김없이 나가는 걸 시도했고 실패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임원 엄마의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까? 김칫국을 마셨는데 매번 그런 것은 기우에 그쳤다. 중2 여름 방학에 해 볼만한 거리를 찾아주고 싶었다.


그러던 중 "YMCA 모의 유엔"이라는 캠프 비슷한 것을 찾았다. 유엔처럼 영어로 회의를 한다는데 프로그램을 보여줬더니 재밌어 보인다고 신청해달라고 했다. 여름 방학 때 1박 2일로 모의 유엔을 다녀온 아이는 눈이 반짝거렸고, 그 경험이 너무 재밌었다고 했다. 문서를 작성하고, 연설을 통해 결의안을 통과시켜야 하는데, 영어 좀 한다는 친구들이 논리적으로 말하는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았다. 충격은 오래갔다.


아들의 뇌에는 모. 의. 유. 엔 이것만 가득 차게 되었다. 인맥은 인맥을 만든다고,  모의유엔에서 만난 친구들은 다른 모의유엔에 참가하자고 연락을 해왔고, 그렇게 수십 개의 모의유엔을 참가하게 되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구경만 하던 상황에서 직접 두각을 나타내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했다. 비로소 그때 우리 애가 뭘 좋아하는지 그리고 뭘 잘하는지 객관적으로 알게 되었다.

 




2. 영어학원을 그만두다


조금씩 학원도 보내고 과외도 해봤는데,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아들 친구 엄마가 영재고 대비반 학원을 같이 보내자고 제의해왔다.


“우리 아이는 영재가 아닌데요?”

“모르시는구나! 영재학원에 보내면 영재가 돼서 와요” 

정중히 고사하고 보내지 않았다.


결국 정기적으로 보낸 것은 수학학원 하고 영어학원이 뿐이었다.

그나마 영어 학원은 고 1 때부터는 다니지 않았다.

간간히 권투체육관 그리고 일본어 학원 등을 보내달라고 했고 그때 잠시 몇 달 보내줬다.

가고 싶지 않다는 학원이나 학습지는 단호하게 끊어 버렸다.


방학만 되면 모의유엔에 참가한다고 전국을 방랑자처럼 돌아다녔다. 이러다가 애 버리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불안함을 견뎠다.


학원을 안 다니면서도 영어성적은 근근이 잘 나왔다. 외고를 생각할 정도였으나, 한 학기인가 점수가 좋지 않아서 바로 포기했다. 왜 영어 성적이 괜찮을 까? 생각해본 나의 결론은 모의유엔이었다.

제한된 시간에 엄청난 양의 글을 읽고, 써 내려가 야하며, 이를 영어로 설득해야 한다. 국제중, 고 학생들과 대적하려면 본인이 연습해야 한다. 아이의 영어 비결은 방랑객처럼 행사에 참석했다는 것 밖에 없었다.

몇 번 참가하더니 우수상, 최고상 이런 것들을 받아왔다. 그리고 더 잘하기 위해 집에서도 모의유엔 책을 들여다 보기도 했다. 그러더니 고등학교에서 일을 냈다. 교장 선생님을 설득해서 모의유엔 동아리를 창설했다. 학교 회장을 못할 망정 동아리 회장이라도 하는 것이 어딘가 싶었다.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수백 가지가 있지만, 가장 으뜸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영어를 좋아하니 고등학교 때 영어 특기자를 염두에 두게 되었다.

자소서라도 좀 몇 줄 넣어볼까 싶어서 영어로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유심히 살폈다. 코이카 학생 봉사단, 영어책 봉사, 청소년 통역단 이런 모든 것들을 찾아서 봉사시간을 채웠다. 이런 요식적인 것 말고 스스로 공공외교,  유엔 토크 등 정부에서 진행하는 강연에 교복을 입은 채 가서 듣고 오곤 했다. 참 잘도 찾아다녔다.


  


3. 내신은 엉망인데 영어를 잘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영어를 좋아했는데 내신이 좋았나?  결코 아니. 한국식 교육에서는 턱 없는 이야기이다.

사실 자사고를 다니던 아들의 성적표를 1학년 이후로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고2 때 일본 대학을 목표로 유학을 가겠다고 선언했고 일본 수능을 준비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영어는 중간 정도는 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아들이 영어를 잘하는구나 알았던 것은 토익토플 성적을 보고서 알았다. 

고 2 때, 코이카 학생 통역단 시험을 위해서 토익을 봤는데 960점이 나왔다. 몇 개 안 틀려야 나오는 점수이다. 고 3 때는 토플 시험을 봤는데, 몇 번 시험 보더니 110점을 만들어 왔다. 토플 80~90 이상이면 외국 4년제 입학 어학기준 이 된다. 아이의 점수를 눈으로 확인하고서 나는 아이의 실력을 인정했다.


초등학생 때 일 년 유학을 다녀온 아이는 캐나다에서 보다 한국에 영어 노출이 더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영어의 재미를 알려준 밴쿠버 유학, 그리고 그 재미를 버리지 않고 꾸준히 취미생활처럼 했던 영어 활동들이 자양분이 되었다고 믿는다. 아들의 공부는 영어학원도 아니고, 책상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영어 활동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자식이 하나 더 있어서 고민이다.

캐나다에 2년째 같이 있는 우리 딸은 한국 가면 고스란히 영어를 접을 거 같기 때문이다.



* 아들은 지금 카투사 복무 중이고, 입시를 준비 중입니다.

   참, 왜 일본 대학을 준비하느냐고요? 다음 매거진에 준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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