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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해 Mar 01. 2022

일본 수능을 준비하는 아들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1. 준비 안된 일본 교환학생


고등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방일단 교환 학생 선발 지원서를 냈단다.

“ 일본어 잘해야 하지 않아? “

“ 몰러. 그냥 할 수 있다고 썼어”

너란 애 참으로 용감하다.


1차 인터뷰 면접을 봤다. 지원자가 몇 명 되었는데,  일본에서 3년 살다온 2학년 선배가 선발되었다고 했다.

덧붙여 자기가 2등이란다. 뭐 2등?  일본어 3개월 배운 거 치고는 선전했다.

지원한 너의 용기가 멋지다고 우쭈주해줬다.


한 달 뒤, 학교에서 서류를 가지고 왔다. 나보고 사인하란다. 봉투 안에서 수십 장 되는 서류를 꺼내서 찬찬히 보기 시작했다. 일본 교환학생 서류였다.

“ 네가 왜 이걸 가지고 왔어? “

“ 선발된 형이 공부하겠다고 , 이번 교환학생을 포기했어”

 “ 오오 이론 횡재가. 행운의 여신이 우리 집에도 왕립 하셨구나. “


그렇게 누군가의 포기로 아들은 꿀 같은 교환학생이 되었다.

일주일 동안 일본 고등학생들과 수업도 하고, 명승지 관람도 하고, 양국 대표단들끼리 장기자랑도 하며 친목을 다졌다. 며칠간 농촌 노부부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그 집에서 농사지어 얻은 쌀이라며 귀국 때 쌀 한 봉지를 가지고 오기도 했다. 오 시 히키리라나 뭐라나 밥해서 먹으며, 재밌게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흥겨운 여행 중에도 주눅 든 것이 있었다.

모두 일본인처럼 말을 잘하는데, 본인은 정작 그들 앞에서 입을 열 수가 없었다고 했다.

홈스테이 묵었던 노 부부와 이야기는 대부분 친구가 했고. 말이 잘 안 되니 그저 듣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조에는  또래도 있었고, 형도 있었다. 두루두루 친목을 쌓고 한국에 돌아온 것으로 만족했다.



2. 일본 대학 가야겠어


안 되겠다며, 일본어 새벽반을 끊었다.  일본어 학원 수업을 마치고 바로 학교로 갔다.

일본어 공부에 미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고 2 이과반을 선택한 아들내미는 열공 모드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과반인데, 모의유엔 동아리에만 신경 쓰고, 당최 공부는 언제 하는 건지 볼 수가 없었다.

이제 화 한번 내봐. 아니 말자.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물어볼까? 아니 말자. 매일 애를 건드려 볼가, 말자를 반복하면서 ' 참자 ' 주문만 외우고 있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드디어 아들이 나에게 면담 신청했다.  면담 거창했나?  아들내미가 방에서 나보고 이야기하자고 부른다.  무슨 사고나 쳤나 싶어서 얼렁 방문을 열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 엄마 나 일본 대학 갈래”

“ 뭐? 그건 어떻게 가는 건데? “

“ 일본 수능을 보면 돼"

" 뭐? 한국 수능은 어쩌고 일본 수능을 본다고? 왜 일본 가고 싶은데? “

“ 난 일본어 하는 것도 재미있고, 한국 대학은 안 맞아.”

“ 일단 알았어. 네 마음 뭔지 알 것 같다. 근데 확실한 거야? 네 마음에서 뭔가 뜨거운 게 올라오고 있어?”


갑자기 공이 나한테 던져졌다.

그다음 날부터 일본 대학 가능법, 일본 수능, 일본 대학 준비학원 등의 검색어를 쳐가며 정보를 들쳐 보고,

일본 대학 출신 지인들의 연락처도 받아놨다.


남편은 왜 굳이 일본이냐. 일본은 우리랑 엮인 게 많아서 늘 이슈가 되는데 걱정하면서도,

"네가 정했으면 해야지"

하고 쿨 한 결론을 내어주었다.

보통 부모들 같으면 며칠간 고민해야 하는 사안이다. 결정하고 보니 우리 둘이 너무 아들에게 대충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이는 공부량이 엄청 늘었다. 일본어로 공부하는 과목들은 듣기, 쓰기, 수학, 경제, 세계사, 작문을 공부했다.  궁금증이 발동한 우리는 일본에서 제출한 시험문제이니 세계사 부분이 왜곡이 없는지 궁금해서 묻기도 했다. 몇 가지 의심스럽게 써 놓은 부분이 있단다. 자기도 한국인 입장에서는 일본이 얄밉단다.

자기가 하고 싶은걸 하니깐 확실히 달랐다. 내가 그만하고 자라~ 이야기를 했던 건 아이 낳고 처음이지 싶었다. 책이라고는 동화책 번역 봉사할 때 번역했던 콩쥐팥쥐 정도가 다 였는데, 일본 소설을 읽는 모습을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어느 날은 일본인 친구라며 우리 집에 데리고 왔다. 유키라는 그 친구는 한국에서 공부하는 일본인이란다. 그 친구와 지내면서 급속도로 말이 늘었다.  너의 인맥의 끝은 어디인지 알고 싶구나.


공부 시작한 지 5개월 정도 뒤에,  일본 수능을 시험 삼아 봤다.  공부한 기간이 짧으니 썩 좋은 성적은 아니었다.  이 성적은  오히려 자극제가 되었다.  그렇게 고 3을 맞이하고, 나와 막내딸은 고3 아들은 뒤로한 채 내 꿈을 위해 캐나다로 유학을 왔다.



3. 틀어진 운명 그리고 다시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 팬더믹으로 아들의 운명이 틀어졌다.

아들이 원하는 과는 국제 정치였고. 원하는 대학도 명확하게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일본 입국은 허용되지 않는 상태인데, 그 학교가 대면 면접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말인즉, 일본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은 면접을 볼 수가 없는 말이고, 시험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매우 낙담했다. 그리고 두 번째 본 일본 수능도 점수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렇게 원하는 대학에 문은 닫혀있고, 점수는 점수대로 안 나오고 마음이 힘들었을 텐데 어리광도 피우지 못한 채 혼자 감내하고 있었다.  


또 한 번의 운명의 변화가 왔다.  군대였다. 졸업하자마자 아들은 카투사에 갔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 상병을 달고 있는 아들은 지금 다시 일본 수능을 준비하고 있다. 잠시 놨던 공부에 불을 지피고 있다.


어떤 이는 일본은 쇠퇴기인데, 가서 뭘 배우냐. 공부할 데가 그렇게 없냐 하고 비난하기도 했다. 당신의 인생이 아니잖느냐, 살아보지 않은 남의 인생을 험하지 마라~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아들이 일본 대학을 들어간다고 해도 그 이후의 아들의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전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을 가장 귀하고 소중하게 보내고 있는 아들을 엄마로서 묵묵히 응원할 뿐이다.

왜 나면, 나도 네 인생을 살아보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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