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병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 무엇이든 무의미하게 만드는 질병일 뿐이다. 창작욕구가 든다. 그럼에도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완벽주의 때문일까. 궁극의 글을 쓰고 싶다. 좋은 시나리오, 역사에 이름이 남을 만한 것들을 적고 싶다고 외친다. 나에겐 왜 재능이 없을까 하는 고민마저 날려버리는 초인적인 작품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부로 그것도 끝이 난다. 난 완벽하지 않은 글을 쓰기로 했다. 미완성이야말로 미덕이라 믿으며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끝맺음의 문제가 아닌 심리적인 완성도의 문제이다. 난 더 완성도 있길 바랬다. 내 창작물이 더욱더 재밌길 바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철없는 바람과는 다르게 내 글은 통제된 사고 속에 갇혀 길을 잃었을 뿐이다.
난 지금 아무것도 읽고 싶지 않다. 그것이 내 기분이자, 생각이다. 난 그저 쓰고 싶다. 마음 같아선 엄청난 작품을 쓰고 싶지만, 괜찮다. 반복되는 내용, 늘어지는 서두, 흥분되지 않는 클라이멕스를 가진 내 작품이어도 괜찮다.
난 내 손 끝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것이 글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질 때, 난 그것들과 교감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아가는 글씨처럼 나도 그렇게 직선을 그리며 나아가고 싶다.
부족한 건 내 마음가짐이다. 김 빠진 콜라같이 밍밍한 내 글을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자존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할 시간이 없다. 그래, 시간이 부족하다.
아버지가 남겨주신 이 시간 안에 무언가 결과를 내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오늘까지다. 내가 작가로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 인생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니까.
어디 공장이라도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난 겸허히 그것을 받아들이라.
그 무엇도 날 만족시켜주지 않는다. 재미가 없는 것이다. 난 까다롭다. 입맛도, 음악취향도, 재밌다고 느끼는 포인트 마저 까탈스럽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해 본다. 그러나 대부분 내 기준에 충족되지 못한 것들을 거르는 작업이다. 좋아하는 햄버거 집, 집에 혼자 있기, 마음에 드는 음악, 전개가 치밀하고 감정선이 살아있는 소설, 마지막으로 좋고 싫음을 초월한 내 가족까지. 이것들이 있기에 살아간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찾는 데까지 꽤나 고통스러웠다. 난 차마 죽을 수는 없어서, 이런 고통을 받아가며 좋아하는 것들을 찾으러 다닌다. 적어도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안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조금 더 열정적으로 차분하게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두서없이 열정적으로 몰아붙이기만 하는 내 글을 차분하게 사랑해 주기로 했다. 내 글에 애정을 담아주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이딴 글을 좋아해 주지 않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이 하고 싶다. 소설이 쓰고 싶다. 사실은 시나리오 쓰는 것에 지쳤지만, 그건 내가 너무 완벽을 추구하며 재밌는 시나리오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재미 따위 없어도 되니까, 끝까지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말한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말이 이럴 때 어울릴지도 모른다. 난 쓰레기를 작업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브런치에 남기는 글들을 난 여태까지 쓰레기 같다고 생각해 왔다.
정제되지 않고, 수정되지 않은 날 것의 글. 읽기 불편하며 짐승같이 거친 이 글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난 쓸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더라도, 어차피 난 창작하지 않으면 죽는 병이 있으니까.
그래, 이건 병이다. 쓰지 않으면 죽는 질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