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갈아요 칼 세월의 흔적(2)

by 금송

선행하다 동네 소문 다 났다.


우리 집은 평화가 깨져 두 달 동안, 냉전 중이다.

왜 화가 났는지 말을 해야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지? 물어도 대답이 없다.

할아버지가 불쌍해서 세례를 받으면, 혼자 살아가기보다 공적 도움을 받으면

덜 힘들게 사실 것 같아, 도움을 주려고 손을 내민 것이라고 푸념을 했다.

아빠는 얼굴에 그림자가 그려져 있고, 역시 말은 없었다.

미소한자, 가난한 자 늘 네 곁에 있다 하지 않았는가?

실행에 옮겼을 뿐이었는데. 여차 저차 아무리 말을 해도 먹히지 않는다.

남편 생각을 내가 어리석어서 알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우리 막내학교(초둥3학년때)로 가서, 막내 손을 잡고 우리 집으로 오신다.

막내딸도 가끔 할아버지를 모시고 온다.

남편은 직장에 나가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고,

아이와 함께하는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고 두려움도 생겼다.


딸에게 막내야 아빠가 화가 많이 났으니, 그분 우리 집에 모시고 오지 않으면 좋겠다.

여기까지가 우리 몫이니 여기서 중단하자.

너도 할아버지 만나면 피하고 다른 곳으로 오라 했더니,

아이는 왜 그래야 하는데, 상세히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다.


엄마가 안 하면 내가 할 게, 춥다고 아빠 겉옷 갖다 주고,

새로 산 운동화도 갖다 드린다.


동네 사람들은 선경이 할아버지, 고마리아 시아버지로 소문이 났다.

참 황당한 일이었다. 어찌하오리까?


이웃집 할머니가 나서서, ‘칼 할아버지! 이 동네 오지 마세요?

할아버지 때문에 고씨 아줌마가 곤란을 겪고 있으니’….

할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데요. 그분도 모르고 있고, 계속 오고 있다.

할아버지는 길 가다 흠이 난 것, 썩은 것, 팔다 못 팔게 생긴 참외 옥수수 포도 등

상인이 주면 길에서 주운 지저분한 봉투에 포장을 해서 가지고 온다.


당신이 줄 수 있는 최상이라고 생각하며 들고 온다.

자기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것이니 그분의 애틋한 마음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없다.

할아버지! 저희는 이것 안 먹어요, 해도 극구 그것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선물이라고 놓고 가신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 나는 버려야 한다.

신부님께 면담 고백을 요청했다.

이래저래 해서 우리 집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씀드리니,

고백소에서 그렇게 혼나 본적은 지금까지 난생처음이었다.

신부님과 면담 고백 이야기를 남편에게 들려주며 이러쿵저러쿵 전달하니,

화가 풀렸는지 입에 쟈크가 열렸다.

이때 한말이 큰 교훈이었다.


아무나 네 집안에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라 화를 입을까? 두렵다.

하지 않았는가?


우리 집은 딸만 둘인데, 이 사건은 추억이자 인생의 가장 큰 교훈이었다.

그 사람 뒷 배경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할아버지를 우리 집에 모시고와,

목욕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Apt 밑에서 만나서 모시고 갔어야지….


생각이 짧았다.

무식이 용기 낳은 나의 바보 같은 생각, 그 교훈으로 조심하면서

지금 까지 살고 있다.

나이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은 너보다 지혜롭다. 하시더니 남편 말이

옮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조카한테 내가 죽으면 고씨 아줌니가 장례를 치러 줄 터이니,

걱정 말아하며 전화번호 주었다고 말씀하신다.


“앗” 이게 웬일이야!

생각이 부족한 내 모습이 참으로 난감해졌다.

작은 친절에 모르는 사람 장례 치른 다고 생각해 보니,

덤터기를 써도 크게 쓸 뻔한 황당무계한 일이다.


신부님께 말씀드리니 자매님은 빠지세요. 성당에 빈첸시오 단체가 있으니,

그쪽으로 연결해 그분들이 돌보게 할 테니 여기까지 자매님 몫이고

이제는 성당에 일임하세요 하셨다.

좋은 일 하다가 무거운 짐을 떠 않아 곤욕을 치를 뻔했다.


1년 선행은 내 발목을 잡힐 뻔했고, 아찔한 순간이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오셔서 자기 집에 도둑이 들어와

얼마간 돈과 아줌니 전화번호 가지고 갔다고,

전화번호를 다시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고 보니 남편의 말이 얼마나 두려웠던지, 그 도둑놈이

내 전화번호 가져갔으니, 참으로 밤낮으로 잠을 못 이룬 적이 있었다.

그때 생각하면 정말 무서웠다.

그 후 반포로 이사를 와서 교우들에게서 간간이 소식을 들었는데,

할아버지는 세례를 받고 신부님도 방문하셨다고 한다.

결국 그분께 도움을 드린 게 성공은 했다.

한 사람을 하느님 앞으로 인도하였기 때문에 홀가분한 마음도 들었다.

이 특별한 만남은 영세시키기 위한 나의 작은 선행이고 실천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자기 장례를 나에게 맡기겠다는 심산으로 서로 생각이 달랐다.

그 뒤 무서워서 전화번호 바꾸었다.

그 조카가 누구인지 모르거니와 도둑놈이 내 전화번호까지 가져갔다 하니,

그 주변 인물들이 누구인지 남편의 말대로 ‘아무나 들이 세우냐?’ 한 것이

큰 교훈으로 남는다.


남편 말대로 낯선 자를 집안에 받아들여 곤경에 빠질 뻔했던 사실,

불씨 하나가 숯불을 활활 타오르게 할 뻔한 황당한 사건이다.

지금은 철없는 시간들의 교육 자료가 되었다.


무거운 짐 진 자 다 나에게로 오너라. 하신 말씀 붙잡고

혼돈 속의 두려움과 불안은 6개월 버티었다.

이사를 통해 해방과 자유를 얻었다.

별 탈 없이 모든 게 순조롭게 지나갔다.

지금은 글로 나눌 수 있는 사건이 되었지만, 그 당시의 어려움은

두려움과 공포였다.

현재는 밑거름이 되어 토양의 씨가 잘 자라고 있고,

그 나무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고 있다.


할아버지는 저 높은 곳에서 웃고 계시겠지, 허망한 인생사 다 털어 버리고

평화로운 그곳에서 안식을 취하고 계시리라 믿는다.

선행을 통해 가르쳐 주신 어려움이었지만, 그 가르침이 지금은 양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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