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제목이 흥미로워서 읽어봤다.
주인공은 어떤 종류의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건지 궁금했다.
주인공 강민주는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폭력과 여성을 억압하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며 남성 혐오를 품게 된 인물이다.
그녀는 철저히 이성적이고 사랑이라는 감정 따위는 믿지 않은 채 살아간다.
그녀는 오랜 계획 끝에 유명 배우 백승하를 납치한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노예처럼 부리는 조력자 황남기가 존재한다.
강민주는 백승하를 제물 삼아 세상 모든 남성에게 본보기를 보이겠다는 것이 첫 시작이다.
이 범죄 행위가 그녀가 원하던 '금지된 것'이겠거니 생각하며 소설의 첫 단추를 끼우게 된다.
세상의 남성들을 향한 복수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점차 백승하의 다정함에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고 백승하의 연기 연습을 도와주게 되면서 강민주는 자신 안의 예상하지 못한 감정이 올라오게 된다.
난생처음 마주한 계산 없이 대해주는 남성의 따스함, 그리고 자신을 향한 황남기의 순애를 목격하며 그녀의 견고한 벽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남자들의 눈물은, 남자들의 절망은, 아니, 남자들의 젖은 날개조차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모든 젖어있는 것에 나는 태연할 수 없다."
증오로 가득 찼던 강민주의 세계는 타인의 비애 앞에서 무너진다.
그리고 소설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황남기는 강민주를 사랑하지만 사랑해서는 안 되는 자신의 상황을 처절하게 힘들어했다.
황남기는 강민주를 지켜보며 그녀가 오랫동안 지켜왔던 증오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강민주가 경찰에 붙잡혀 감옥에 간다면 그녀는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영겁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리하여 황남기가 결국 그녀를 총으로 쏴 죽이고 해방시켜 줌으로써 소설은 끝이 난다.
강민주는 연기 연습이 끝나갈 무렵, 황남기가 쏜 총에 의해 죽어가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지금 나를 죽이고 있는 것은 어쩐지 식칼이 아닌 것 같다. 아니, 식칼 따윈 처음부터 없었는지 모른다."
이 책은 두 가지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내용이 들어있다.
하나는 실제로 이 책이 페미니즘 소설로 분류되는 이유인 한국 사회에서 만연한 남성들의 폭력이 주제고 그다음은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한 그릇된 욕망이다.
작가는 이 책이 세상의 온갖 불합리와 폭력에 반대하는 모든 이에게 읽히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 강민주 역시 불합리와 폭력에 저항하는 인물이었지만, 정작 본인 또한 타인을 납치하고 억압하는 동일한 폭력의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결국에 강민주도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은 남성들의 부당한 폭력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강민주의 행위는 자기 삶을 찾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에 불과했다.
작가는 그녀를 결코 정의로운 영웅이나 모범적인 인물로 박제하지 않는다.
자기 기준을 찾으려는 순수한 열망이 '증오'와 결합했을 때, 삶이 얼마나 처참하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강민주는 진정으로 자신을 찾는 삶이 아니라 '상처에 반응하는 삶'을 살았다.
작가는 자신에게 찾아와서 자신의 억울한 일대기를 써달라는 여성들을 위해 사회의 부조리를 해결해서 도와주는 것보다 당신들의 삶의 상처가 더 치유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런 소설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가 있는 건지 정말 감탄스러울 뿐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나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원하는 삶을 찾겠다는 명분 아래 나 또한 올바른 방향이 아닌 '상처'에 매몰되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고, 내면의 감정적 갈증을 외면하는 것은 어쩌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고질병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낸 '나'라는 껍데기 속에서,
혹은 과거의 상처가 만들어낸 피해의식 속에서,
실체 없는 식칼 하나를 스스로에게 겨누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내게 금지되었다고 믿었던 수많은 것들이 사실은 내가 만들어낸 환영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