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가지고 놀만한 걸 찾으러 방을 뒤지던 중에 종이가 떨어져 봤더니아버지의 사진이었다.
-"그거 너희 아빠 서른다섯 살 때 사진이네."
어머니가 넌지시 얘기하고 음식 준비를 하러 가셨다.
아무 말 없이 한참 사진을 봤다.
'지금 나랑 동갑이셨네.'
나는 유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부모님과 친하지 않았다. 특히 아버지. 말 한마디 잘 못했을 정도랄까.
어릴 때 나에게 아버지란, 돈을 벌어 오시고 나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일주일 중 3~4일은 술을 드셨고, 술에 취하시면 난폭해지기도 하셨다. 아버지가 회식을 하시거나 술을 드시고 오시는 날은 이불을 덮고 자는 척 한 날도 꽤 많았다. 나 말고도 이런 경험 해본 사람 분명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맞벌이 부부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 덕분에 모자라지 않은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컸다고 생각이 되지만, 어릴 때는 그게 너무 싫었다. 우리 가족은 놀러도 잘 가지 않아서 기억나는 추억이 사실 많이 없다. 항상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집에 도착해 목걸이에 달린 열쇠를 따고 들어가면, 불이 꺼진 어두컴컴한 집이 날 기다렸다.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혼자 라면을 끓여 먹을 줄 알았다. 그만큼 혼자서 밥을 차려먹는 것에도 익숙했고, 학원 간 누나를 기다리며 현대 컴보이(당시 히트한 콘솔 오락기)만 하던 그런 아이였다.
(좌) 현대컴보이 (우) VCR
내 제일 친한 친구는 현대 컴보이와 VCR이었다. 지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유튜브라고 해야 할까. 한정된 미디어와 콘텐츠 속에서 나는 문화를 배워가고 있었고, 그렇게 점점 익숙해졌다. 친구들도 우리 집에 올 때면 정말 편하게 놀러 왔다. 어차피 인사할 어른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내가 하는 행동이 문제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무뎌져 갔다.
하루는 학교가 너무 가기 싫었다. 학교 갈 시간에 PC게임을 너무 하고 싶었던 거다.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학교에 가는 척을 하고 동네를 돌다가, 아버지 어머니가 출근한 걸 확인하고 다시 집에 들어가 게임을 켰다. 집으로 전화가 울려도 받지 않고 게임을 했다. 그렇게 이틀을 학교를 안 갔다. 나의 어린 생각은 눈덩이가 커지는 줄 모르고 점점 대담해졌다. 당연히 부모님께 걸릴 줄은 몰랐던 것인가.용의주도하지 못한 나는 당연히 아버지께 무단결석을 걸렸다.회초리로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맞았다. 그리고 집안의 물건이 몇 개 부서졌다.나는 당연한 듯 회초리를 다 맞고 쓰러지듯 침대에 엎드려 한참을 울다 잠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그렇게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가는데 머리맡에 봉투가 하나 있었다.봉투 안에는 돈 5000원과 A4용지 2~3장에 빼곡히 적힌 편지가 들어있었다. 아버지의 편지였다.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는 내가 그 당시 읽고 나서 아무 생각 없이 버렸던 것 같다. 어린 나는 화만내는 게 익숙해서였을까. 지금의 내가 제일 후회하는 것 중 하나다.
그렇게 불효자였던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학교에서 불량학생은 아니었지만 성실하지도 않았던 나는 공부는 하지도 않고 친구를 만나러 학교만 다니는 그런 아이였다. 부모님과의 소통 단절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내가 속을 썩이는 바람에 어머니가 내게 무릎을 꿇으시고 엉엉 우시며 미안하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나를 보살핌 없이 혼자 내버려 두고 키워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처음으로 어머니께 죄송하다고 진심을 다해 얘기했던 것 같다.
내가 바뀐 건 이후부터였다.
나와 누나를 위해 부모님이 열심히 돈을 벌어 오신다고 이해를 하게 되었다.그리고 이때부터 아버지와 친해지려 노력했다.아버지와의 어색함이 서서히 풀려갔다.화내면 무서우셨던 아버지도 점점 환한 모습으로 되돌아가셨다.그렇게 우리 가족 각 구성원은 바쁜 일상 속으로 돌아가 서로를 위해 각자 열심히 사는 가족이 되어갔다.
하지만 내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행복한 장면이 하나 있다.내가 초등학교 1학년. 8살 때 기억이다. 3살 많은 누나는 11살이었다.누나와 나는 같이 엄마 아빠를 위한 이벤트를 준비했었다. 이벤트의 제목은 이름하야 '빅쇼'였다. 우리는 도화지에 플래카드를 꾸며 벽에 붙여놓았다. 빅쇼의 내용은 이러했다. 퇴근하는 엄마 아빠가 오자마자 불을 끄고 안대로 눈을 가린 다음 입으로 내는 두구두구 소리와 함께 자석이 달린 낚싯대를 쥐어드린다. 바닥에는 여러 가지 쿠폰이 깔려있었다. 안마해드리기, 볼에 뽀뽀해주기, 흰머리 뽑아주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누나가 진행을 하고 내가 어둠 속에서 쿠폰을 낚게 도와주었다.나는 그때 안대를 벗고 확인하던 아버지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정말 행복한 표정이었으니까.진짜 그냥 웃는 게 아닌 순수하고 맑은 청년의 웃음 말이다. 내 기억 속 그날의 아빠와 난 언제나 환하게 웃고 있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사진 속 서른다섯의 아버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마 빅쇼를 보시고 웃으셨던 건 아닐까? 아무 말 없이 사진을 보던 나는 부모님과 우리 가족 몰래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에 앉았다. 갑작스레 지금까지의 미안함이 눈물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소리 없이 울다가 급하게 세수를 하고 한참을 있다가 식사를 하러 갔다.그날 밥은 평소보다 더 소중한 맛이었다.
아버지께.
아버지! 저는 현재의 서른다섯을 살고 있어요.
저는 성인이 되고 지금까지 아버지만큼만 잘하자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오고 있어요.
지금 내 나이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얼마나 치열한 인생을 살아오셨을지 가늠이 안돼요.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점점 아버지가 이해되고 있어요. 제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이 편지를 적는 이유는 다름 아닌 제 자신을 위해서예요. 지금 제 생각을 기록하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