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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 어긋난 사랑

단념과 그리움,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by mato

아침, 엄마 꿈을 꿨는데 서럽게 울면서 깼다.

잠에서 깨고도 가슴이 먹먹해 지긋이 감은 떨리는 눈으로 뜨거운 눈물을 한참 동안 흘렸다.

여느 때와 같이 핸드폰을 찾아 새벽부터 출근한 연인에게 오늘도 수고하라는 아침 인사를 보내고는 폰을 엎어 이불 속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연휴 동안 2월에 제출할 단편 시나리오도 다시 꺼내 확인해 봐야 되고, 아는 감독님 시나리오 수정본도 읽고 피드백 해주기로 했고, 몇 남지 않은 내 영화 인맥이자 차기작을 고민하며 써 내려가고 있을 외로운 감독님들께 새해 인사도 돌려야 되는데...

브런치 작가 서랍에 쓰다 말아서 먼저 정리해야 할 글도 많지만, 이 서글픈 기분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 그냥 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모처럼 집에 혼자 있는데도 나는 소리를 내어 울지 못하고, 입을 다문 채 숨을 고르며 눈물만 흘렸다.

엄마가 멀쩡히 살아계시는데도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가 그리웠다.

어제, 같은 작품을 했던 나이 지긋한 스태프의 모친상으로 장례식을 다녀온 영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장례식장은 명절을 앞두고 있어선지 예상대로 텅 비어 있었고, 그럴 것 같아서 더 움직인 내가 다였다.

좀 전까지 우셨나 싶은 붉은 눈으로 나를 한 번에 알아보시지도 못하셨지만,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셔서 당연히 함께 밥을 먹었다. 전날 직접 보내신 부고 문자를 보고는 나이가 70이 되든 90이 되든 내 엄마를 보내는 일은 너무나도 마음이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붉은 눈 시울은 금세 현장에서처럼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시시덕 거리셔서 요즘 버텨야 되는 시기라며 영화산업에 대한 얘기들을 담담히 주고받았다. 20분 정도 얼굴만 비출 생각이었는데, 어째 식사까지 하고 다른 분들이 오시고서야 자리를 일어났다. 집으로 가는 중에 아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길을 돌렸다.

위치나 시간이 맞아서 카페에서 2시간 넘게 떠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 너무 좋은 에너지를 받고 기분 좋게 귀가했고 집에서 저녁도 맛있게 만들어 심지어 많이 먹었다. 하루를 비웠으니 일도 조금하고 올해 트렌드 문장이라는 아주 보통의 하루로 잘 잤는데 말이지. 무의식 속 꿈자리가 왜 이리도 먹먹하고 힘들어 이 묵직한 서러움이 든 건지... 끝까지 모르고 싶음에도, 내가 내 마음에 뭘 모른척했는지 이 소박한 속상함을 스스로가 너무 알고 있어서 더욱 눈물이 났다.


명절을 앞두고 형제 톡 방에서 언니와 동생이 같이 만날 수 있는 일정을 맞춘다. 무슨 요일에 어떻게 이동할지. 서로의 아이를 보고 싶어 하며 웃음을 나눈다. 엄마를 보고 싶으면 톡 방 대화에 껴서 같이 만나러 가면 해결될 일 아닌가? 사실 나는 이들이 나누는 행복을 보는 게 조금 얄미운 것 같다. 엄마를 보러 갈 마음이 없다.

물론, 건강한 마음이 아니란 걸 안다. 그냥저냥 잘 자란 딸로서 엄마와 가볍게 포옹하면 아무렇지 않고 적당히 괜찮은 사람이 될 텐데... 모질게도 나는 여전히 상처가 깊어 효녀가 못 된다.

작년만 해도 나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났구나, 나도 이제 괜찮아진 것 같아라고 생각했고 불과 몇 주 전, 새해 첫날 엄마와 개운하게 너그러이 통화를 주고받았었다. 자식들 걱정은 하지 말라고 별일 있어도 다들 알아서 해결할 나이가 됐다며... 근데 아니구나... 내 가시가 그때만 잠깐 들어갔던 거구나.

아직 마음속에 찌꺼기가 남아있고 그 찌꺼기를 보자마자, 내가 애착하고 그리워하는 존재의 엄마는 이번 생에서는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할 존재구나. 싶었다.

내가 아무리 작가명에 내 이름 대신 엄마 이름을 가져다 쓰고, 내 신체에도 엄마 이름을 한문으로 새길 만큼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대도 일방적인 방향으로 엄마를 지나쳐 가고, 엄마의 사랑 또한 있다한들 나한테 도착하지 않고 옆으로 지나가는 거구나.

답답했다. 우리는 각자 외치고 있구나. 표현의 방식이 잘못되고 의미하는 바가 다른 것, 우리는 서로 맞닿을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있는 게 분명하다. 고작 성향 차이인 이게, 보이지 않는 벽이 크다. 지독히 어긋난 사랑.


사실은 며칠 전 엄마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그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아? 할 정도의 소정의 금액이다.

근데 안타깝게도 나는 월급을 받는 직종이 아니고, 코로나 이후로는 한 달 반짜리 짧은 프로젝트만 겨우 운 좋게 했었고 쉬는 달, 구인 기간은 더 길었다.

솔직하자니 속상한 말이지만 수입이 없는 달도 있다. 아니, 많다.

작년에는 하반기 들어갈 작품 예정이었던 게 두 번이나 취소가 되어 결국 상반기 두 달 정도만 프로젝트를 참여했다. 없는 돈도 한 번씩 빌려 드린 적이 있다. '근데 나 조만간 나갈 돈 있어서 그때까진 줘야 해'라고 하면, 엄마는 '일단 줘봐.' '얼마나 뭐 때문에 필요한데?'라고 물으면 '줄 수 있는 대로 줘봐'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말이 프리랜서지 힘들게 들어놓은 적금을 깨서 그걸로 지내고 있었는데, 30대 후반이나 돼서 '나 백수야.'라고 말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닌데, 희한하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신다. 돈이 없다는데, '되는대로'라는 게 내 머리로는...내가 굶어 죽든 말든 관심이 없다는 걸로 밖에 해석이 안된다.


물론 돈을 빌려달라고 말하게 만든 게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급하면 돈을 빌려달라고 할 수 있지.

엄마가 가게를 하고 계시지만, 손님이 없을 수 있지...이해를 하자면 끝없이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도울 입장이 아니다. 그렇게 이번에도 눈 딱 감고 거절을 하고 아무렇지 않은 하루들을 보냈다. 자다가 눈물이 펑펑 터진 걸 봐선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썼던 거겠지.


문자 스크롤을 올려 확인사살할 필요도 없이 나한테 온 문자가 대부분 돈을 빌려줄 수 있냐는 문자다.

고작 몇 푼이 내 속을 헤집어놓는 불쏘시개 버튼인 것이다. 3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해소가 안되는 결핍. 긍정적이고 담담하고 멋있는 사람이고 싶지만 속이 꼬이고 화가 난다.

내가 진짜 서운한 부분은 엄마한테는 내게는 남동생이자 아들이 여전히 안타깝단다.

우리 형제 중에 젤 크게 사업을 하고 있고 심지어 적성에도 딱 맞아서 잘 즐기고 있는대도 엄마 말로는 빚도 있고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안쓰럽단다. 유치한 접근이지만, 엄마는 sns를 안 해서 모른다.

내 눈에 동생은 맛있는 것도 자주 잘 먹고 모임, 여행, 캠핑, 커플템, 남들하는 거 다하며 씀씀이가 아주 신났는데, 소비를 조금 줄여서 빚을 갚으면 될 텐데, 엄마 가게에 가면 죽는소리 하면서 있는 것도 탈탈 털어간다.


나는 어릴 때 내가 투명 인간인 줄 알았고, 고등학교부터 타지에 있으면서는 가족이 없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성공하고 싶은 게 컸고 죽어라 일만 했다. 그러면 알아줄 거라 생각했지만, 가족 중에 내 안부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았다. 내가 움직여 보러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시나리오로 미팅을 하든 큰 작업을 맡게 되든 기쁜 소식을 전해도 엄마는 "그런 거 몰라. 그래서 어떡하라고?"라는 반응이었고, 힘든 걸 말해도 "네가 좋아서 선택한거잖아."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내가 뭐 때문에 달려온 걸까? 하는 좌절과 번아웃이 컸다.

엄마는 내 엄마였던 적이 한 번도 없다. 늘 동생의 엄마.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애초에 사랑을 갈구할 것도 없고 서운할 게 없어. 단념만으로도 평화다.

근래는 성향이 다르고 진짜 모를 수도 있겠구나. 그림이나 이런 게 어려울 수 있겠구나.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근데 왜 쟤한테 돈 빌려 달라고 못하는 걸까? 잘 입고 잘 먹고 잘 지내는 모습이 뻔히 보이는데도 뭐가 그렇게 소중하고 안타까워서 나를 또 동생 그늘에 살게 하는 걸까? 동생이랑 성향이 너무 달라 속도 모르고 친하지도 않지만, 멀리서나마 동생의 행복에 기뻐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분명 충분히 괜찮은 상태였는데 울음이 터진 오늘, 엄마한테 기가 막힌 타이밍에 전화가 왔고 받지 않았다. '바쁜가 보네, 운전 조심해' 라고 문자가 왔는데, '거짓이다.' 이미 불쏘시개가 달궈진 상태라 그 걱정이 거짓이라고 받아들였다. 속에 있는 못된 말을 썼다 지웠다 하다가 명절에 찾아오는 언니랑 동생이랑 서운하지 않게 잘 보내라고 보냈다. 괜히 옆에 있지도 않는 사람 얘기 꺼내서 그들한테도 사랑 못 받지 말라는 얘기였다. 무슨 그런 말을 하냐는 문자가 왔고 다시 전화가 왔지만 통화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로 상처를 줄지 몰라서 전화를 받지 않는 상처로 대신했다.

나는 일기를 쓰기로 한 그날, 차분히 커피를 내리고 빵을 잘라 접시에 담고 마음을 다잡고 책상에 앉았다가도, 다시 침대에 쪼그려 앉아 우는데 몇 시간을 썼고, 결국 이 글을 마무리 짓는데 3일이 걸렸다.

나는 언제쯤 동생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언제쯤 행복해져서 거짓으로 참거나 애쓰지 않고 엄마한테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걸까? 엄마가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채는 날이 있긴 할까? 내가 지금 이토록 애착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엄마라는 존재는 내 어린 날을 보듬어 주고, 그동안 외로웠겠다며 안아 줄 환상 속의

존재라는 생각이 들고, 이 빈자리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느껴져 너무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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