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한데, 나는 무서워 묻지 못했다.
주변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내 인생이 흔들리고 있었다.
주변이 인식되었을 때는 이미 친구들의 눈빛이 차가운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나 때문일 거라는 생각은 바로 하지 못했다. 여느 때처럼 무리에 껴 함께 움직였다.
다음 쉬는 시간에 매점을 가자며, 이번 쉬는 시간을 그냥 넘기는 듯했지만, 다음 쉬는 시간이 되자 이미 매점을 다녀왔다고 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은근슬쩍 의아한 일들이 있었지만, 의도가 섞인 따돌림이라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날 점심시간 종이 울리고, 어차피 지금은 급식 줄이 기니까, 나중에 먹자며 각자만의 공간에서 휴식을 보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때, 울리지 않는 핸드폰에 밥 먹으러 언제쯤 가려나? 생각하며 친구들을 찾으러 가는 계단에서 마주친 무리 중 친구 한 명이 말했다.
“밥 안 먹었어? 우린 밥 먹고 왔는데, 깜박했네.” 친구는 소리 내어 웃으며 지나쳤다.
'우리'에 끼지 못했다. 그렇게 밥을 굶는 일들이 생겼고, 집안일로도 충분히 버거웠던 나는 귀찮아서 내가 먼저 같이 먹자는 말을, 왜 그러느냐는 말을 하지 않았고, 이유를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말겠거니 생각했고, ‘같이 먹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해.’라는 생각으로 오전 중에 매점에서 배를 채우고, 점심시간에는 휴식 보내는 걸 택했다. 한마디로 내가 피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친구들은 점심 식사 후 쉬기 위해 실기실로 들어섰다가도, 내가 있는 걸 보고는 그냥 나가기도 했다.
선생님이 있거나 우리 무리 외 다른 친구들이 있을 때는, 따돌림을 눈치 채지 못하게 좀 더 요란스럽고 정신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눈치 빠른 다른 무리 친구들로부터 “괜찮아? 애들 못됐다.”라는 안타까움의 말을 듣기도 했다.
나는 성인이 된 한참 후에도 비슷한 상황에 놓이거나, 주변에 섞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이 시기의 일들을 떠올리고 곱씹으며 ‘내가 잘못한 게 뭘까? 난 왜 혼자일까?’ 나의 문제나 사건의 원인을 찾고 싶어 했다. 나는 억울하고 외로웠다.
‘나는 속 얘기를 설명하지 않았을 뿐이야. 잘못이 없어. 나에게 묻지 않았잖아.’
합리화시키고 남 탓으로 끝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왜 나를 그렇게 대했는지, 원인이 되는 시점으로 돌아가 본다.
고등학교 입학으로 내 인생 첫 타지 생활이 시작되고, 전체 분위기를 파악하기도 전에, 나의 어떤 점이 눈에 들었는지 먼저 말을 걸어온 친구가 있었다.
‘내가 보여? 배경처럼 묻혀있었을 나를 어떻게 발견했지? 얘는 뭐지?’ 스스로 투명인간이라고 믿던 의사라고는 전혀 없던 순종적인 나를 친구로 선택해 이끌어갔다.
분식집엘 가고, 옷을 골라사고, 연락하면 나가고, 몇 번 버스를 탈것인지, 어느 정류장에 내릴 것인지, 걸어서 갈지 뛰어서 갈지, 얼마를 쓸지. 모든 것이 그 친구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하루들을 보냈다.
내 의견, 내 생각을 말하는 일은 없었고, 그 친구의 의견에 거절하는 일도 없었다. 그게 익숙하고 편했다.
어디로 튈지 모를 그 친구의 선택을 따라가며, 공식적인 단짝이 되었다.
그 친구와 교실 창밖으로, 농구를 하기 위해 이동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자주 내다본 기억이 난다.
친구가 관심 있어하는 선배도 있고, 나 또한 주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오랜 짝사랑을 정리한 이후, 처음 생긴 호감의 감정이었다. 호감에 빠지게 된 과정은 아주 간단했다.
빈 실기 실에서 혼자 그림을 구경하던 중, 이젤 뒤에서 조용히 그림을 그리던 선배의 말 한마디.
“너 기숙사생이지?” 당시 얼마나 자존감이 없었으면, 그 작은 관심에 심장이 두근거렸을까.
‘나를 안다고?, 내가 기숙사생인 것까지 안다고?’
그 선배는 인기가 있는 사람이라, 나는 그냥 바라보는 게 다였다.
그리고 그 운동장에는 실기실과 선배들 사이에서 나를 “누구 마누라”로 칭하는 소문이 돌 정도로, 안면이 있기도 전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부끄러움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놀림거리가 되는 게 수치스럽고 민망했다.
어느새 내 단짝과 친해져 자꾸만 나랑 엮으려 했다. 친구는 나를 설득해왔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는 인기도 많고, 나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니,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만나봐야 한다고. 어찌 된 일인지 그 말이 그럴싸했다.
‘그래.. 인기 많은 저 사람이 날 좋아할 리 없어. 날 좋아해 주는 사람에 감사해야 해.
사귀면서 좋아질 수도 있겠지.’ 그렇게 첫 연애를 시작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 '그런 것'까지 정해주고, 아무리 의사가 없어도 그렇지, 나는 '그런 것'까지 남의 생각으로 결정했다. 스스로를 얼마나 낮춰 생각해야 가능한 일인지,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연애에서 흔히 여자들이 갖는, 건강하지 않은 마음이라는 것을 안다.
연애에 우열이 없으며, 여성은 더 단단해지기 위해 스스로 훈련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도 좋아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호의를 베풀어도 부담스럽기만 했다.
두 선배가 친해서 자주 붙어 다녔고, 내가 좋아하던 선배를 보기 위해 만난 적도 있었다.
나를 엮어준 친구에게는 당연히 속마음을 말할 수 없었고, 이 연애는 가짜였다.
거짓 연애. 사귀던 선배의 원룸에 친구들과 놀러 가게 된 어느 날.
다 같이 술을 마셨고, 내가 양치를 하려고 화장실로 들어가자, 따라 들어온 선배가 갑작스럽게 키스를 시도했다. 선배를 떼어내다가 소란스럽게 넘어졌는데 밖에서 소리를 들은 친구 한 명이 무슨 일이냐며 문을 열었고 “얘 취해서 자꾸 넘어져.” 선배의 방어적으로 튀어나온 그 말에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힌 것도 있지만, 무안을 받으면서도 내가 누군가에게 무안 주는 일을 잘 못했다.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가증스러운 선배의 팔을 뿌리치고 나와, 보란 듯 무리 중 남자 사람 친구의 손을 잡았다. 다들 내가 취해서 취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물론 입이 떨어지지 않는 나로서는 최선의 의사표현이었다.
이후 남자 사람 친구에게 오해를 풀기 위해, 왜 그랬는지 속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해, 한발 가까운 친구사이가 되었고, 단짝 친구와는 더 침묵하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학교 동아리에서 떠난 여름 바닷가에서 대부분이 잠든 시간에, 조금 더 편하게 고민을 털어놓게 되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선배가 바닷가로 나를 불러냈다. 이참에 헤어지자고 말해야지 다짐하고 나갔는데, 느닷없이 나를 꽉 끌어안고 키스를 했다. 끌어안은 팔 힘이 너무 세서 뿌리치지 못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은 다름 아닌 “했다.”였고, 울상이 된 나는 머릿속으로 '더러워'라는 말만 맴돌았다. 뿌리치지도 때리지도 말하지도 못할 거면, 울어버리기라도 할걸.
어쩜 그렇게 대화도 없고, 감정 교감도 없이, 스킨십으로 들이대는 건지. 저질.
혼자 안고 괴로워하던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생겨, 마음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에만 초점을 뒀는데 그게 파장이 되어 돌아올 줄은 몰랐다.
바닷가 그날 밤늦게 남자 사람 친구와 내가 같이 있었단 사실을 알았는지, 나를 이끌던 단짝 친구가 나를 피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지만, 시내를 무대로 숨바꼭질을 하게 된 것이다.
이 건물 저 건물 힌트를 주며, 연락되었다 안 되었다, 숨고 찾고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뭔가 오해든 섭섭한 기분이든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해, 열심히 뒤를 쫓았다.
버스정류장에서 겨우 찾은 친구가, 보란 듯 버스에 냉큼 올라타 눈앞에서 멀어지는 버스 맨 뒷자리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기 전까지만 해도.
약 올리기로 충분히 스스로를 달래는 것에 성공해, 통쾌한 표정이어야 할 그에게는 불안이 보였다.
그의 불안한 예상대로 내가 먼저 등을 돌렸다.
이해하려고 했던 그 행동에 오해고 기분이고, 내 인내에 한계가 왔고 그냥 정이 떨어졌다.
친구는 아마 그날 처음으로 싸늘해진 내 표정이자, 내 첫 의사표현을 보았을 것이다.
이후로 확실히 지장 있는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친구들과의 거리감.
이건 마치 무리를 배신한 나와, 무리로부터 보호받는 내 단짝의 그림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싸늘하게 돌아선 사실이, 스스로 떳떳하지 않았던 건 맞다.
그 정도 내 의사 표현은, 희한하게 단짝 친구와 선배 사이의 친근감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둘이서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모르지만, 남사친과 나에 대한 오해를 정한 듯했고, 나한테 직접 묻지도 않고, 내가 먼저 변명해야 할 건 없어서 오해하려면 마음껏 해.라는 반항심에 더더욱 입을 다물었다. 고집스러운 침묵으로 모두의 적이 된 것이다.
이전의 투명인간 같던 내가, 소신을 갖고 의사를 표현하자, 치사하고 유치한 따돌림으로 돌아온 상황.
그렇게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강하게 먹은 마음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커진 파장을 감당하기에 지치고 작아지고, 나 자신을 갉아먹어 갔다.
학교에서는 자존심에 밥을 굶어도, 표정 변화 없이 꿋꿋하게 버텼지만, 주눅이 들 때로 든 나는, 친구들과 같은 버스 타는 것도 불편해서 줄곧 논밭으로 된 하교 길을 걸어 다니곤 했고, 40분인지 한 시간이 넘는지 모를 그 길에서 얼마나 서럽게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사람 몸안에 수분이 그렇게 많은지도 그때 알았다.
그렇게 휘청 될수록 옆에 있던 남사친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남사친은 내게 급식 먹기를 권하고, 몇 번 나의 밥 상대가 되어주었다.
혼자인 나와 내내 붙어 다니면서, 어쩌면 내가 귀찮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다시 그 친구 무리에 돌아가길 바랐는지 어느 날, 식판에 밥을 받고 단짝 무리가 앉아있는 곳 옆 빈자리에 식판을 내려놓았다. 순간, 들고 있는 철 식판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어렵사리 무리가 있는 테이블 위에 태연한 척 식판을 내려놓는 순간, 남사친은 내려놓았던 식판을 다시 들고, 남자애들 무리로 가버렸다. 약할 대로 약해진 나를 두고.
내 시간은 순식간에 멈추었다. 그 자리에 앉지 못했다.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생각지 못한 전개에 시야는 흐릿하게 번졌고, 고개를 떨구어 눈물을 쏟아냈다.
앞에 앉은 무리 친구들이 밥맛이 떨어졌는지, 들고 있던 수저를 탁 내려놓더니,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줄지어 나갔다. 어제 일어난 일처럼 또렷한 기억이다.
전교생 반이 밥을 먹는 중이었던 급식소에서, 나를 쏘는 시선들이 느껴졌고, 배식받은 음식 그대로 들고 배식구로 향했다. “왜 밥을 안 먹고?” 적잖이 놀란 영양사 선생님의 걱정 섞인 말이 들렸고,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다는 건지, 기어들어 간 목소리로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피해의식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내가 한 번씩 왜 이렇게 불쌍한지 참 속상하다.
입구로 나오자, 홀로 남겨진 단짝이 나보다도 서럽게 울고 있는 광경에 내 눈물은 금세 걷혔다.
지나가던 교감선생님께서 나에게 물었다. 이 학생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문드러진 내 마음을 뒤로한 채, 바보같이 그 친구를 달래었다.
급식소를 벗어난 발길 그대로,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나지 않았던 것을 가끔 후회할 때가 있다.
울던 지 말던 지 그냥 지나쳐 버릴걸. 교실에서 가방을 챙겨, 가출이 되었건, 실종되었건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는 아주 먼 곳으로 완전히 도망가 버릴걸. 이기적이게 내가 힘들었던 것만 신경 쓸걸.
다시는 나를 찾지 못하게, 두고두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해 줄걸.
집도 학교도 엉망이라 어디에 말도 못 하고, 견딜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외롭고 힘들었다고, 소란 피워 티 낼 걸, 속으로 꾸역꾸역 삼킨다고 해서 끝나지 않고, 오랫동안 가슴 가득 매연 같은 걸 품으며 살아올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할걸. 만약 그랬다면 조금이나마 의사표현에 수월한 어른이 되었을까?
급식소 그 사건으로 그 친구와 나, 그리고 우리 무리는 흐지부지 화해 비슷한 걸 한 듯했다.
끝내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했다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저 지나간 일이 되고, 괜찮은 척하며 꺼낼 일 없는 일이 된, 이 허무한 화해가 나는 오래도록 개운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