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소하는 이미지, 전복하는 이미지
1)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해소하는 이미지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들을 비롯해 동시대적 불안을 다루는 영화들은, 결국 스크린의 정반대 편으로 공포의 대상을 유배함으로써 시대적 두려움을 해소한다. 생각해 보라, 영화관에서 영사기가 발산하는 빛은 관객의 머리 뒤에서 출발해 눈앞에 펼쳐진다. 이 머리 뒤에 있는 것을 스크린 위에 맺히게 만드는 시각적 운동과, 환자가 자신의 정신 속 풍경을 입의 경로로 꺼내놓으며 진행되는 심리 상담 사이의 형태적 유사성을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 대목을 오독해서는 안되는데, 심리 상담과 영화적 경험 사이의 유사성의 지적은 영화가 자신의 이미지를 통해 집단, 혹은 개인 단위에서 무의식적인 것을 가시성의 수면 위로 끌어내는 틀이라는 진부한 뜻이 아니다. 방점은 ‘꺼내 놓는다’는 대목에 찍힌다. 공포의 대상이 그림자의 형태로 등장한다는 사실과 그 그림자가 스크린에 나타나는 방식을 떠올려보라.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공포 영화에서 유독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벽에 드리우는 괴수 혹은 괴인의 그림자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극장은 관객의 머리 뒤에서 빛을 쏘는 공간이다. 분명 스크린 위로 투영되는 그림자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스크린과 영사기 사이에 위치한 관객이 가. 표현주의 영화는 관객의 내적 풍경, 그 불안으로 진동하는 영토를 빛을 통해 확인한다. 그림자는 비록 대상의 형체를 띄고 있기는 하나, 그의 신체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그림자가 스크린에 다다르게 될 때면 관객의 형체, 관객의 일부였던 그림자는 객석의 정반대 편에 위치하게 되며, 신체적 분리를 넘어서 심리적, 공간적으로 유리된다. 라캉에 따르면 주체는 끊임없이 자신의 신체로부터 떨어져 나간 해부학적 부분을 욕망한다. 그것은 상실이라는 심적 외상에 의거한다. 그 문장들의 변주, 자신의 해부학적 부분이 신체에서 떨어져 나가기를 욕망하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가? 떨어져 나간 대상을 열망하는 것은, 말 그대로 열망 / 욕망이기에 정신적인 것이지만, 몸의 부분을 떨어져 나가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신체적이다. 이러한 영화들의 존재는 단지 사회적 현상으로, 단편적이고 평면적으로 다루어지기보다도, 하나의 무의식적-신체적 운동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2) <현기증>의 계급 전복적 이미지
불안을 다루는 영화들로 분류되는 이미지 예술이 동시대의 위험한 대상을 관객의 신체로부터 분리시키며 객석이라는 공간을 안전하게 지키는 한편, 영화 관객을 끊임없이 위험한 제대로 내모는 작품들 또한 존재한다. 히치콕의 <현기증>은 선형적 원근법이 철저히 적용된 아래로의 조망을, 그 어떠한 안전성도 보장되어있지 않은 자유 낙하 운동의 순간으로 반전시킨다. 먼저 간단한 설명을 적자면, 선형 원근법은 공간에 선형적 시간의 관념을 도입하며, 수학적인 예측을 가능하게 만든다. 또한 선형 원근법에서는 모든 것이 관찰자의 눈으로 수렴되기에, 관찰자는 눈이 정립하는 세계관의 중심이 된다. 그렇게 소실점의 존재는 관찰자에게 예측 가능한 미래와 안전하고 힘 있는 조망 위치, 즉 일관되며 단일한 자리를 할당해 준다. 이는 영화가 스크린과 객석의 평행을 통해 관객에게 안전한 조망 위치를 제공해 주는 모습과 동치 된다. 선형 원근법의 구축은 단안의 움직이지 않는 관람자를 규범으로 제창하는데, 영화 또한 모든 움직임 이 제한된 감상을 요구한다. 그런데 스카티가 발밑을 내려다볼 때마다 사용되는 달리-줌은 카메라를 밑으로 내리며 그에 맞춰 줌을 푸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카메라, 즉 관찰자의 권리를 부여받은 신체의 물리적 위치는 아래로 하강한다. 동시에 영화에 있어 방향과 위치의 유일한 지표로 작동하는 스크린의 이미지는 축소되어, 스크린에 나타나는 풍경을 통해 상정되는 가상의 눈이 가지는 위치가 실제적 눈의 위치가 땅에 가까워지는 만큼의 속도로 땅에서 물러나게끔 한다. 그 결과 계단과 바닥에 적용된 선형 원근법은 영화의 이미지의 특성상 둘로 분열된 관찰자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달리줌의 과정에서 선형적 원근법이 가지던 선형적 시공간의 관념, 수학적인 예측 가능성, 방향감각을 잃은 채 추락하는 운동으로 변모한다. 스카티의 착시는 그가 바라보는,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완벽하게 원근법의 규율을 준 수했을 바닥의 풍경으로의 조망, 그 시각적 관계에서 주체의 자리를 지닌 그가 더 이상 시각적 정상성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든다. 여기서 바닥을 향한 달리줌은 y축상의 낙하처럼 보이지만, 관객과 스크린이라는 물리적 상황에서는 x축상의 낙하이기도 하다. 따라서 달리-줌이 아래를 향해 조망되는 풍경 속에서 선형적 원근법을 파괴하는 것은, 관객과 스크린 사이에 존재하던 위계와 거리감을 기능하지 못하게 만드는 시각적인 계급 전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