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즈어프레이드

블랙코미디와 공포의 새로운 방식, 그리고 사랑을 찾는 이야기.

by Quasar


주인공인 보가 엄마를 보러가는 이야기.. 이지만 어떻게 보면 보의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 일 수도 있고 더 넓게는 엄마의 뒤틀린 사랑이 낳은 결과에 대한 이야기 일 수도 있고.. 다양하게 해석 가능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해석이 다양하게 갈리는 이유가 있는데, 보이즈어프레이드의 연출 방식은 대분류의 목적만 가지고 계속 소분류의 목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감독과 영화를 처음 접한다면 감상에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주행이 다소 울퉁불퉁한 면이 많고 때문에 한번의 감상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영화이다.

때문에 이 감독과 연고가 없다면 그닥 추천하진 않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감독을 좋아하거나 공포의 새로운 방식을 보고싶다면 추천한다. 그 새로운 방식이 호불호가 많이 갈리겠다만..


영화 이야기로 들어오자면, 영화 내의 파트는 5파트로 갈리는데 이 5파트 별로 무드가 상이하다.

1파트는 보의 목적과 이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 2파트부터 본격적인 영화의 시작이자 보의 죄책감의 시작인 부분, 3파트는 보의 이뤄질 수 없는 꿈이자 이상, 4파트는 엄마와 죄책감, 5파트는 환원으로 영화가 마무리 된다.


모든 파트는 전 파트와 소분류의 목적이 일치하지 않으나, 단 하나의 요소가 이 파트들을 이어준다. 바로 ‘물’이다. 이 ‘물’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한데, 물은 이 뒤죽박죽인 파트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다리이다.

물은 어려운 상황을 겪는 보에게 유일한 도움이 되는 요소이다. 오프닝엔 양수에 젖어 태어나는 보, 초반엔 약을 꼭 ‘물’과 함께 먹으라 말하고 후반엔 보의 상처를 ‘물’로 닦아주는 등, 보에게 물은 소중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물이 등장하지 않는 파트가 있는데 그게 파트 4이다. 파트 4엔 바로 보의 엄마가 나오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물은 엄마, 더 나아가 엄마의 사랑을 의미하지 않나 싶다.

보의 엄마는 굉장히 가부장적이면서도 드샌 엄마이다. 이동진 평론가가 말한 슈퍼마더에 딱 준하는 캐릭터이다. 보의 남성성을 철저히 억압하고 보를 가스라이팅 하여 보가 엄마 없이는 못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와 역설적이게도 보는 엄마를 떠나고 싶어한다. 처음 문제가 생겼을 때도 사실은 보의 망상일 수 있고 이후 사건들도 보의 망상이라고 보면 보는 엄마를 떠나고 싶어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의 하지만 보는 그 와중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형에 대한 죄책감, 엄마에게 가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보를 망가뜨리고 있고, 이런 죄책감을 가지는 보에겐 늘 물이 따라온다. 어쩌면 보가 따라다니는걸 지도 모른다. 보에게 물은 소중한 ‘엄마의 사랑’이기에, 사랑이 결핍된 존재인 보가 물을 따라가는건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역설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화면은 우리에게 ‘뒤틀린 익살스러움’을 보여준다.

가령 예를 들면 보랑 노부부의 딸이랑 페인트 들고 씨름하는 장면이나 파트 3에서에 화자가 칼에 찔려 죽는 장면 같은 것.

이런식으로 아리에스터는 화면을 통한 말장난을 치며 동시에 공포를 느끼는 보를 보여주기에 개인적으로 마치 옛날 슬랩스틱을 보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동시에 저런 뒤틀리고 역설적인 캐릭터가 이상하고 웃긴 상황에 휩쓸리는 걸 보며 관객의 이질감을 가중시켰다.

이 이질감의 끝은 어딘가, 바로 앤딩이다.


파트 4에서 보는 엄마를 실수로 죽이고 보트를 타고 강으로 나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갑자기 팬타곤이 펼쳐지며 재판을 받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보의 죄책감과 공포가 극대화 된다고 생각한다. 그야 그럴 것이 싫었지만 소중하게 생각하던 엄마를 죽이고 난 후니깐.

그리고 재판 끝에 보의 보트는 뒤집혀버리고 보는 익사하는 것으로 끝난다.

아까 물이 중요하다 했지 않는가? 오프닝의 상황과 전혀 반전되는 이 상황은 영화의 앤딩을 2가지로 시사한다고 생각하는데,


1. 보는 엄마의 사랑이 고파 다시 사랑 속으로 들어간 여정에 대한 은유적 비유다

2. 보는 죄책감에서 도망쳐 엄마의 사랑으로 숨으려 했으나, 그 사랑에서 오는 죄책감에 질식했다.

그렇다면 보의 생사 여부에 대해 질문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난 딱히 보가 죽었건 살았건 그 여부에 대해선 중요하게 생각 안한다.

그야 보이즈어프레이드는 망상 VS 현실 의 구도가 아니라 죄책감 VS 현실의 구도니깐.

죄책감에서 오는 망상과 그로써 오는 공포가 보를 몰아새웠고 그 속에서도 물이라는 사랑을 쫒던 보가 결국 물속에서 질식했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단순 생사여부로 앤딩을 내기엔 서사구조와 연출구조가 아깝다.


아리애스터는 이 작품에서 ‘공포의 새로운 방향’을 추구했던 듯 하다.

전작인 유전도 ‘주인공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수렁을 벗어나지 못한다’ 라는 클리셰와는 벗어난 구조였고, 미드소마는 ‘관계를 비틀어 파국으로 치닫는 남녀의 이야기’를 굉장히 기괴한 화면과 함께 그려낸 영화였었다.

이 보이즈어프레이드는 ‘한 남자의 사랑을 쫒는 이야기’ 이자 ‘공포의 블랙코미디화’ 가 아닐까 싶다.

연출도, 이야기 구성도 모두 새로운 것을 보여줬던 작품, 보이즈어프레이드였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