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포핀스 리턴즈

숙녀의 비밀을 캐는 건 실례야.

by Quasar



어른들을 위한 자기 전 들려주는 디즈니 식 동화 같은 영화.


영화 전체적으로 눈에 띄는 것이 3가지 있는데


1. 색채&명암


2. 메리포핀스


3. 상실과 극복에 관해




이 3가지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매인 주제 혹은 연출적 요소라고 본다. 그래서 이번 감상문은 이 3가지 요소를 하나하나씩 풀며 이야기를 전개할까 한다.


뮤지컬 영화인대 왜 노래가 없나요 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이 영화의 노래는 이지리스닝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나 싶다. 의미가 그렇게 깊진 않았다고 생각해서


상황이나 떡밥을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정도로 끝났고 그게 재일 베스트였다고 생각한다.




일단 1번. 색채와 명암에 관해 이 영화는 재밌는 연출을 보여준다.


시작 > 발단 > 전개 > 위기 > 해결 > 앤딩의 구조마다 색채와 명암이 다른데 이 ‘다르다’의 기준은 메리포핀스가 아이들을 데리고 마법(일단은 이렇게 서술하겠다)을 보여줄 때를 말한다.


일상적인 사건들은 무난하고 현실적인 톤으로 배경이 이루어져 있다. 특히나 색이 있어도 채도가 재한 되어 있는데 덕분에 경재 불황시기의 런던이란 분위기가 더 잘 사는 느낌이었다.


이 채도가 재한 되는 부분은 은행에 가면 심해지는데, 은행은 은은한 채도 빠진 컬러를 베이스로 공통된 무채색만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덕분에 은행원들이 아무리 분주히 돌아다니고 은행장의 방이 아무리 부 해 보여도 이러한 색 사용으로 인해 감독은 우리에게 극도로 절제되고 단절된 분위기를 재공 한다. 이건 주인공인 아이들과 분리되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다 채도가 갑자기 이질적으로 변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메리포핀스가 등장하는 시점이다. 메리포핀스와 마법을 함께하면 칙칙한 옷을 입던 아이들의 옷이 화려해지고 철이 너무 일찍 든 아이들은 다시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하나 포인트가 있는데,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아이들의 옷은 칙칙해진단 것이다. 그리고 환하게 웃고 떠들던 아이들은 다시 현실적으로 돌아와 집을 빼앗기지 않을 궁리를 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색채와 채도’는 인물들의 동심 상태를 나타내는 연출이라 생각한다.


그럼 ‘명도’는 뭐냐. 이 영화에서 명도는 이야기의 위기 상황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근대 이 또한 아이들과 연결된


영화의 명도가 낮아지는 시점은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위기를 실감하는 시점부터이다. 시작~발단까지는 밝은 색을 유지하던 영화는 늑대의 반란을 시작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늑대가 반란 일으킬 때랑 위기(Trip a Little Light Fantastic) 때 색채, 채도, 명도를 잘 보면 똑같은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음 곡인 톱시의(Turning Turtle) 곡부터 메인컬러는 화려하지만 채도를 낮추고 빛을 은은하게 줘 차분한 공방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위기 상황부터 색이 낮은 푸른빛으로 재한 되고 거기에 하이라이트로 밝은 노란빛만을 넣었지. 반짝이라는 키워드에도 잘 맞으면서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위기가 해결되며 영화의 톤은 완전히 바뀌는데, 모든 등장인물들은 고채도의 밝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고 배경도 벚꽃을 배경으로 화사하게 묘사했다. 이 부분이 모두가 원작에 메리포핀스가 타고 온 풍선을 통해 동심을 찾는 것에 대한 은유적 묘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두가 풍선을 들고 날아가며 동심을 되찾고 그 뒤 메리포핀스는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풍선은 일종의 팬서비스이자 이 영화 주제의 완성이라 생각한다.


풍선을 통해 동심을 잃었던 아이들의 아버지가 동심을 다시 되찾는 모습이 결국 메리포핀스가 바랬던 모습이자 순수하고 유치한 동심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솔직히 아빠가 갑자기 풍선 받고 메리포핀스의 진짜를 인정하는 것은 진짜 엄밀하게 따지면 영화가 보여준 메리포핀스와 아빠와의 관계가 얼마 없어서 원작을 안 봤다면 좀 뜬금없다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개연성이 없다 느꼈다. 그 외에도 개연성이 없는 부분? 다수 있었다.


그래서 메리포핀스가 누구고, 메리포핀스는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고, 왜 하늘에서 온 거고, 어디서 온 거고 등등..


이 부분에서 2번. 메리포핀스로 넘어가는데, 사실상 이 영화의 ‘개연성 없음’에 관한 부분은 다 메리포핀스에게서 나온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이 있는대 아주 간단하다.


그건 바로 ‘메리포핀스니까’이다. 메리포핀스니까 가능하고 메리포핀스니까 날라댕기고 어디서 왔는지 누군지에 대한 질문도 그냥 ‘난 메리포핀스니깐, 숙녀의 비밀을 캐내는 건 실례야’라고 답하면 다 된다!


난 오히려 이런 부분이 좋았다. 왜냐? 메리포핀스는 이 영화에서 동심을 사용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적 존재니깐. 도라에몽 마냥 그냥 메리포핀스 외치면 다 해결해 주니깐


이게 유치하고 단순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는데, 그런 의견들에게 난 동심은 원래 이렇다고 말하고 싶다.


이거랑 정말 반대됐던 작품이 판의 미로랑 코렐라인 아닌가.


판의 미로는 동화 특유의 모호한 분위기와 앤딩을 차용해 동화와 차가운 현실과 섞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띄는 영화였고


코렐라인은 크게 보면 선형적인 동화의 구조를 띄고 있지만 디테일하게는 판타지 속 현실성을 살려서 악몽을 꾼 듯한 느낌을 주는 성인용 동화였다.


이번 리턴즈는 전형적인 동화의 구조, 간단한 인물상, 눈이 즐거운 연출로 전반적으로 보기 간편한 영화를 뽑아내었다.


그리고 이런 개연성 부족한 구조가 가능했던 이유는 개연성이 부족한 곳은 메리포핀스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인물들과 사건들은 모두 개연성을 가지고 벌어지며 이유와 결과가 뚜렷이 존재하는 현실 속 이야기였다.


이것이 동화풍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메리포핀스를 현실에서 분리시켜 그녀의 분위기를 더욱 신비롭게 만드는 장치가 아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3번. 이 영화의 주인공이 겪던 문제인 ‘상실의 고통’에 대한 문제이다.


리턴즈가 가볍다 그랬지 않은가? 그래서 이 영화는 이 상실의 고통에 대해서도 꽤나 단순한 대답을 내놓는다.


그건 그저 그 사람은 어딘가에서 널 지켜보고 있을 거란 이야기였다.


이 영화는 톤이 가볍다 보니 오히려 무겁거나 현실적인 답을 주었다면 영화의 전체적인 톤이 깨졌을 것 같기에, 이런 답이 딱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오히려 생각이 많을 땐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좋을 때도 있지 않는가? 딱 그 느낌이라 좋았다. 답도 애들답게 내려줘서 좋았고.


그래서 난 이 영화를 보는 관객 중 이러한 상실의 고통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위로를 많이 받을 거라 생각했다.


결국 이 영화의 전체적인 톤은 ‘동화책을 읽어준다’에 가까워서 가벼운 영화가 맞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내가 본 이 영화의 메시지라면, 모든 건 다 메리포핀스로 귀결되는 듯하다.


작 중 인물들이 메리포핀스의 정체를 따지지 않듯, 굳이 따지지 않는 편이 이 영화의 가치를 올려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작 중의 메리포핀스는 떠났고 우리도 시간이 지나며 이를 잊을 태지만, 이 영화를 보며 느꼈던 동심과 향수는 오래 남아있을 것 같다.

목, 일 연재
이전 03화인터스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