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하게 짜맞춰진 연출과 인간의 자유에 대해
거대 방송시설에서 키워진 아이 ‘트루먼’. 아무것도 자각 못한체로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하나 둘 씩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서 그의 의식이 깨어나는데.. 가 영화의 내용이다.
이 영화의 대 주제는 3가지가 있다.
1. 용기
2. 자유
3. 세상
이 영화에서 트루먼은 ‘용기’를 가지고 ‘자유’를 향해 또 다른 ‘세상’ 밖으로 나아간다.
트루먼 쇼에서 나오는 세상은 ‘구성된 세상’이다. 하지만 과연 이 구성된 세상이 트루먼만의 이야기일까?
우리는 타인으로 인해 구성되는 삶을 산다. 환경, 광고, 후기, 주변인 등등..
그런 삶은 우리의 생각을 구성하고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그렇담 우리의 행동과 생각은 타인의 지분이 크다는 소리인데 여기서 ‘나의 생각’이 빠져버린다면 결국 그 자는 트루먼과 다를게 무엇일까?
작 초반 트루먼이 딱 그랬다. 초반부 트루먼은 본인의 생각이란 것이 없었디.
늘 같은 삶,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해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직장인 1이였디.
하지만 트루먼의 삶은 하늘에서 시리우스가 추락하며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 시리우스 장면은 상징성이 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시리우스는 태양을 재외하고 하늘에서 재일 밝은 별인데. 때문에 이 시리우스나 북극성을 이정표로 삼는 배가 많았다.
즉, 이 가짜 시리우스가 떨어졌다는 건 트루먼의 스튜디오 속 삶을 이끌던 이정표가 부서졌기에, 이제 곧 트루먼이 눈을 뜰 것이라는 상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후 트루먼은 여러 사건을 거치며 극과 같이 돌아가는 세상을 알아채고 탈출하려 드는데, 이때 또 잘 봐야할 부분이 있다.
바로 트루먼이 ‘얼마냐 자각하느냐’에 따라 트루먼이 화면을 응시하기 시작하는 부분에 대한 것이다.
맨 처음 세면대에서 아예 자각이 없을 때 1컷, 그리고 아내를 협박할 때 1컷, 탈출을 완전히 준비한 날 세면대에서 1컷, 마지막으로 앤딩에서 1컷.
트루먼은 자각한 시점부터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우리와 눈을 마주친다. 첫 컷은 그럼 뭐냐 라고 할 수있겠는대, 이는 영화가 ‘트루먼을 도촬하는 시점으로 촬영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장치라고 생각한다.
또한 트루먼은 자각할 수록 카메라에도 손대기 시작하는대 라디오의 카메라를 깨 부수기도 한다.
중반부에 트루먼이 카메라에 간섭하고 난 뒤, 엿보고 도촬하는 듯한 화면은 거의 없어지고 방송 카메라같은 화면이 더 많이 잡히며 마치 방송 화면보단 옛날 영화의 연출 방식을 본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앤딩 지점에 이르러 트루먼은 완전히 극의 배우로 전환되고 ‘트루먼 쇼’라는 연극에서 "Good morning! In case I don't see ya,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좋은 아침입니다! 나중에 못 볼지도 모르니, 좋은 오후, 좋은 저녁, 좋은 밤 보내요.)" 란 말과 함께 퇴장한다.
결국 트루먼은 ‘타인으로 구성된 세상을 딛고 용기를 가진 채로 자유가 있는 세상으로 나아갔다’ 라고 생각한다.
트루먼은 가짜 세상을 뜷고 나갔지만, 그 속에서 생긴 30년 어치 감정과 추억들은 진짜였을태니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많은 용기와 노력이 들었을꺼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가짜 세상의 아버지인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을 자식처럼 생각했을 꺼라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나오는 화면을 쓰다듬는 연출이나, 과하게 집착하는 모습은 단순 시청률때문은 아니여 보였다.
이는 배우의 표정 연기에서도 드러나는데, 트루먼이 떠나려 할때의 그 오묘한 표정은 절대 시청률을 걱정하는 날선 PD의 표정이 아니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마지막에 트루먼과의 대화에서도 일종의 신화적인 연출을 했나? 라는 느낌이 들었는대, 앤딩에 트루먼은 그냥 말하고 크리스토프는 스피커로 돔 전체에 울리며 말하는게 인상깊었다.
정말 마지막이구나 라는 한편 뒤틀린 아버지의 발악이자 악마의 유혹으로도 느껴진 참 복합적인 장면이였다.
그와 반면으로 화면은 청량하고 맑아서 이 또한 이질감을 준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푸른 하늘을 등지고 컴컴한 어둠으로 나아간 트루먼은 어둠과 거짓과 눈물이 존재하는 ‘진짜 세상’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연출이 전반적으로 영화보단 극의 느낌이 많이 들었다.
오밀조밀하게 맞아들어가는 상황들과 혼란스럽게 정리된 배우들의 움직임이 잘 짜여진 ‘극’의 느낌을 더 많이 주었다.
일반적인 영화와 극의 차이점은 ‘위화감’이라고 생각하는데, 영화는 위화감을 없이 혹은 자연스래 풀어내려는 반면 극은 위화감을 과장하여 그것 조차 극의 일부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트루먼 쇼는 영화가 아닌 극의 느낌이 더 많이 들었음. 위화감을 끊임 없이 조성하는대 그걸 배경으로 녹여버리니깐.
개인적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게 어떻게 들렸다면
‘타인으로 인해 구성된 세상이 믿지 못할 세상이라면 너의 자유의지로 나아가라’ 라는 메세지와 함께 그 과정 중인 사람들에겐 위안을, 해야하는 사람들에겐 용기를 쥐어준다고 생각한다.
각자 간의 세상을 딛고 일어나는 모든 과정에 대한 위안이자 용기같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