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는 창조의 어머니이다.
한 가정의 변화를 그린 영화 로마.
테레사 가족과 가정부 클레오간의 가정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이다.
눈에 가장 띄는 것은, 구원서사와 수미상관 구조인데 이것을 말로 하지 않고 연출로 보여준다. 그니깐.
화면 연출이 곧 대사고 캐릭터들의 심리를 대변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대사는 개인적으로 ‘복선을 전달하는 용도’ 혹은 ‘캐릭터들의 심리 대변’ 정도로 쓰인다고 생각한다.
가령 예를 들면 주인공 클레오는 지속적으로 영화의 후반부까지 화면에서 동떨어지거나 단절된 채 등장하는데, 이 클레오가 유일하게 가족과 하나 되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구간이 있다.
바로 두 자식을 물에서 구해준 뒤 ‘아이를 가지기 싫었다’라는 속마음을 고백할 때이다.
그리고 이 물에 들어가는 장면도 인상 깊었던 게, 클레오는 바다씬으로 넘어오며 지속적으로 ‘난 물에 못 들어가’라는 떡밥을 던져 놓았다.
이 클레오가 물에 못 들어가는 것도 후술하겠지만, 아이와 관련된 상징적 문제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클레오가 자신이 돌보던 아이들이 물에 빠져 그 안으로 들어갈 때, 가장 어린 막내가 ‘내가 늙었을 때 뱃사람이었는데, 엄청난 파도에 말려 죽었어. 아주 어둡고 번개가 쳤어. 난 수영을 못했어’라는 대사를 친다.
이 대사가 단편적으로는 클레오의 ‘물에 들어가지 않음’을 극복하는데 쓰이는 재료 정도로 여겨지겠지만. 난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보았다.
작 중 클래오는 유산을 했다.
아이는 죽은 채로 나왔고 아이를 밴 클레오는 러닝 타임 내내 ‘아이가 잘못될 것이다’라는 불길한 떡밥을 보여왔다.
가령 예를 들면 지진이 난 병원 신생아실에서 미숙아 캡슐 위로 떨어지는 잔해라던지, 클레오가 마시려던 잔을 누가 쳐 떨어뜨렸는데 그 잔이 깨지며 나온 액체가 흰색이라던지.
지속적으로 ‘클레오는 엄마가 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미장센이 떡밥으로 등장하고 그 하이라이트로 아빠인 페르민이 총구를 클레오에게 겨눈 시점부터 클레오의 양수가 터졌다. 그리고 유산했고.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총에 맞아 죽었네’ 혹은 ‘총에 맞은 것도 좋네’라는 문장이 나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페르민이 총구를 클레오에 복부에 겨눈 것도, 아이를 자신의 과오라고 생각해서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그런 페르민의 악의라는 총알이 결국 클레오의 아이를 죽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기에, 그런 클레오에게 ‘수영을 못했어’라는 단어는 어떻게 보면 죽어 나온 딸의 마지막 단말마로도 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대사는 단순히 장치적 요소로만 쓰인 것이 아닌, 딸을 지키지 못한 클레오가 가족같이 여기던 타인도 잃을 수 없었기에 자신에게 딸을 앗아갔던 양수에 들어가 아이들을 구해냈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클레오는 드디어 영화 화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가족들과 진심을 공유하게 되었다.
영화 내에서는 영화 속 영화가 나오는데 보통은 하나 빼고 다 코미디이다.
하지만 상황과는 반대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대 난 이 연출은 일종의 ‘고립감’ 혹은 ‘비웃음’이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페르민과 클레오간의 첫 임신 커밍아웃 장면 같은 거
그 장면에서 페르민은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하지만 도망쳤으니깐, 그리고 그때 상영되던 영화의 장면은 멍청한 군인에 관한 영화였다.
차후 페르민이 폭동시위에 참가하고, 군인처럼 훈련받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감독은 이러한 연출법으로 페르민이란 캐릭터를 ‘사랑으로 위장한 거짓말을 하는 멍청한 남자’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마지막 영화는 좀 다르다. 마지막 영화는 코미디가 아니었거든.
아무 대사도 없이 죽은 듯 떠있는 동료에게 다가가는 우주인을 그린 영상이었다.
그리고 그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은 화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우리와 눈을 마주치는데, 난 우리와 마주치는 것이 아닌 이 영화를 볼 클레오와 눈이 마주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이 영화는 그렇다고 클레오와 우리를 완전히 동화시키는 타입의 영화가 아니다. 1인칭 시점이 아닌 담백한 3인칭 시점 같은 영화인데, 그렇다면 감독은 왜 저 우주영화를 스크린 가득 채워 보여준 걸까?
난 그것이, ‘아이에게 다가가는 클레오’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 우주비행사가 클레오와 눈이 마주친 것도 클레오의 미래이자 자신의 내면이며, 우리에겐 클레오의 심상을 볼 수 있는 장면인 것이다.
그리고 클레오의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상당히 의미심장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 영화는 겉으로 보기엔 상당히 무미건조해 보인다. 그 이유는 심플한 연출에 있다.
연출은 채도가 없는 흑백인지라 명암밖에 뚜렷이 표현할 것이 없고, 대사도 얼마 없고 음악이 전무해 더더욱 연출에 과한 것이 없다.
좋게 말하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출이고, 안 좋게 보자면 지루한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난 이러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즉 심플한 연출만으로도 뛰어난 흡입력과 뚜렷한 인상을 가지는 것에 대해 상당히 좋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심플한 연출 속에서 이 영화는 심플함 속에서 숨겨진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간결히 보여준다. 일종의 공백을 두고 보여주어 우리에게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을 준다 해야 하나.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쓸모없는 대사는 없다. 마치 장인의 손길을 보듯 이 영화는 쓸모없는 카메라 워크, 대사, 연기, 연출이 하나 없다.
그렇기에 겉으로 보기에 무미건조해 보이는 것이다. 대사도 얼마 없고, 음악도 없으니깐.
우리에게 들어오는 도파민이 적으니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다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실체를 들여다보는 순간, 이만큼 몰입이 잘 되고 재밌는 영화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미장센이 훌륭하며 예술영화로써의 가치가 높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영화는 두 명의 여인이 각자의 상실을 겪고 서로 한 가족이 되는 이야기이다.
테레사는 남편을, 클레오는 아이를 잃고 둘은 혼자라는 파괴 속에서 새로운 가족 공동체라는 창조를 찾았다.
테레사 가족과 클레오는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는 늘 그렇듯, 여행을 다녀온 후 일상으로 돌아간 가족의 모습을 그리며 끝이 났다.
여기서도 참 재미있게도, 클레오가 속마음을 털어놓은 후 집으로 갈 때 또 화면은 클레오와 아들, 딸을 분리해놓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클레오는 딸과 여태까지 자신과 계속 친하게 지냈던 막내를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난 클레오가 유산이란 끔찍한 상실을 새로운 가족으로 보답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영화는 집으로 돌아온 가족과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클레오를 비추며 끝이 난다.
또한 하늘에 비행기가 뜨는 타이밍도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이다.
비행기는 총 3번 등장한다.
맨 처음 오프닝에서 1번, 채육 교수가 나올 때 1번, 앤딩에 1번.
개인적으론 난 이 타이밍이, ‘클레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타이밍으로 보고 있다. 일종의 전조증상이랄까.
오프닝은 너무 당연한 상관관계가 되니깐 스킵하고, 교수아재 때 클레오는 내면의 평화를 갖지만 그 평화는 페르민에 의해 부정당한다.
사실 클레오가 내면의 평화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도 페르민 때문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종의 희망이랄까.
그리고 마지막 앤딩도 클레오는 앞으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로 겉보기엔 끝나 보일 수 있겠지만, 나에겐 ‘앞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라는 인상이 더 강했다.
하지만 배드앤딩의 암시 같은 걸로는 생각하진 않는다. 솔직히 이런 현실적인 톤의 영화에서, 앤딩이 주인공은 앞으로 행복하게 평생 살았습니다~ 하는 것보단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까? 하는 게 좀 더 재밌으니깐.
좀 더 말이 되고 재미있는 생각이 가능한 앤딩을 가져갔다고 생각한다.
그런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한 지점에서 비행기가 등장한 듯하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로 끝나는 영화가 아닌?로 끝나는 영화이다.
‘클레오는 인생의 최악을 겪었지만 다시 새로운 시작을 얻었습니다. 이재 그녀에게 어떤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가 내가 해석한 이 영화의 한 줄 내용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무미건조한 영화도, 재미없는 영화도, 슬프거나 배드앤딩인 영화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 인생의 굴곡을 가지고 우리에게 질문하는 영화.
클레오의 인생을 통해, 화합의 모습을 통해 세상엔 나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며 희망을 주는 영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인생의 어렴풋한 희망에 대한 이야기.
영화 로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