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추락신화

by Quasar


주인공 오펜하이머의 일생을 다룬 전기영화.

영화는 컬러인 핵분열과 흑백의 핵융합 두 파트로 나뉘어있다.

핵분열은 오피의 시점, 핵융합은 스트로스의 시점으로 두 명의 시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영화가 진행된다. 때문에 플롯이 어지러워 보이지만, 실상 그 중심은 명확하다.


파트는 2개로 나뉜다, 핵분열과 핵융합.

핵분열은 오피의 파트, 핵융합은 스트로스의 파트로 나뉘는데, 이 중 핵분열을 먼저 보고자 한다.

영화엔 각자 포인트가 있지 않는가? 난 오펜하이머에서 그것이 '인간관계'라고 본다.

결국 오피와 스트로스는 인간관계로 인해 흥하고 파멸하니깐.


핵분열은 오피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오피의 대학원생 시절부터 로스엘러모스, 말기까지를 묘사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가 재일 활발하게 다뤄지는 건 로스앨러모스 파트이다.

오피는 보어로 인해 양자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해 로렌스로 인해 핵계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고, 핵계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신의 인생의 동반자와 파멸자를 동시에 만난다. 그리고 이 파멸자 때문에 오피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오피의 캐릭터성이자 역할은 핵계발 프로젝트를 최고점으로 점차 위상이 추락한다. 상세한 것은 하단 서술하겠고.

이것도 재밌는 게 위상이 추락하는 지점마다 오피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다.

즉, 오피에게 만남은 새로운 사건의 시작이자 방향의 전환이다.

이렇게 오피의 인생을 빠르게 내달리며 폭주기관차 같던 영화가 돌연 정지하는 구간이 있는데, 그게 가젯실험이다.


가젯실험까진 오피의 위상도, 생각도, 상황도 빠르게 상향곡선을 그리며 치닫는데 폭탄이 터짐을 기점으로 모든 게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한다.

오피는 가젯 실험을 기점으로 수폭계발을 반대하기 시작했고, 상황도 반전되어 오피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오피의 위상도 추락하는데, 이 기점이 트루먼 회담 때이다.

트루먼이 ‘원폭 투하명령은 내가 했지, '책임자'는 당신이 아니란 말이요.’ 란 말을 기점으로 '특별한 사람'이었던 오피는 '평범한 사람'으로 추락하게 된다.

그렇게 평범한 사람으로 추락한 오피는, 작 초반처럼 '천재'나 '특별한 사람'이 아닌 일반인으로 대우를 받는다.

"천재는 많은 게 용서되지."라는 말과는 달리, 세상은 일반인이 된 오피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피가 아무리 수폭을 반대하고 평화 조약 기구를 재안해도 더 이상 "골든보이"가 아닌 이의 외침은 무의미할 뿐이었다.

대신 오피는, 원폭으로 인해 정치판에 올라 죽을 때까지 고통받을 인물이 되고 만다.

스스로의 이상과 애국심이, 결국 날개를 만들었다 그것이 녹은 이카루스처럼 자신을 추락시킬 요소가 되고 만 것이다. 날개가 있던 시절의 오피는 범접할 수 없는 선지자이자 천재였지만, 예언이 틀린 선지자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영화는 말해주고 있다.

결국 오피는 세상에 원폭을 준 대가로, 죽어서도 계속 물어뜯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오피가 나쁘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대 착한가? 는또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성도 안 좋고, 불륜도 저지르고, 불안정한 정신에 빨갱이랑 연류도 되어있지만 동시에 순수하게 물리학과 애인을 사랑하고 동생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전반적으로 '머리만 천재인 일반인'이란 느낌이 강하다.

완전 모순덩어리여서 딱 잘라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다.

이건 오펜하이머의 대부분 등장인물들이 띄는 성향인데, 키티도 우울, 예민과 반대되는 사랑, 지지대의 역할을 맡고 있고 로랜스는 오피의 든든한 아군처럼 보이는 것관 달리 정말 중요할 때 오피를 변호하지 못했다.

이지는 '과학에 전쟁에 사용되기를 원치 않는다'라고 말했지만 이후 핵 계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슈발리에도 우정과 배신이라는, 이중적인 키워드를 달고 있다.

그리고 슈발리에 사건은 고의적으로 중의성을 둔 게 보이는 게, 실제 역사에서도 슈발리에 사건은 모호한 형태를 띠고 있다만, 영화에서는 슈발리에가 의심스러운 말을 한번 던진 걸 시작으로 그를 빨갱이로 만들었다.

하지만 더 디테일한 사항은 알려주지 않으며 '사실 슈발리에는 FAECT에 갔던 오피처럼 빨갱이가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남겨두었다.

이런 식으로 이중성을 띈 인물들로 인해, 이 영화는 단순한 전기영화가 아닌 당시 역사를 생생히 재현해 낸 듯한 퀄리티와 모호함을 줄 수 있었다.

사람이란 게 결국 한결같을 순 없기에, 이 이중성과 영화가 전반적으로 띄는 '모호함'이라는 스탠스는 나에게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동시에 책임 소재는 분명한데, 인류에게 원폭을 준 오피는 보안인가를 박탈당했고 오피를 담그려 했던 스트로스는 내각 청문회에서 탈락해 버렸다.

이렇게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함으로 영화는 한 가지를 말하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이런 단점도 있고 이런 장점도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이런저런 일을 저질렀지만 자신의 가족과 소중한 이들에겐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당신이라면 오펜하이머의 보안인가를 내주시겠습니까?"

질문에 정답은 딱히 없다고 느꼈다. 이 질문 자체가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여 청문회 위원으로 만드는 질문이니, 난 개개인에 따라 질문이 다를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가 말하는 또 한 가지.

"충성적인 사랑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오피가 사랑했던 것들. 나라, 진, 물리학 모두 오피를 나락으로 보내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영화를 보면 오피가 굉장히 애정 없고 사랑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개인적으론 오피만큼 충성적인 사랑을 가진 캐릭터가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대한 애국심, 진에 대한 첫사랑, 그리고 오피의 진정한 사랑인 물리학과 키티까지.

이 모든 것을 오피는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 결과가 다 안 좋아서 문제였지만..

하지만 그 속에서도 키티만이 든든한 동반자로 남아준 것은, 결국 키티가 "오펜하이머에게 보안인가를 내주시겠습니까?" 하는 질문에 SUPER YES라 답해서 그런 듯하다.

저 질문은 우리만 받은 게 아니니깐, 작 중에서 대놓고 보안인가 부여여부에 관한 질문을 받거나 오피가 빨갱이가 아니라고 직접적으로 변호한 게 그로브스, 텔러, 키티 이 3명이었는데, 재밌게도 이 3명은 다 다른 대답을 내놓았었다.

그로브스와 텔러는 NO였지만 키티는 SUPER YES였다.

나머지는 오피의 처우에 관한 내용이었지, 그가 직접적으로 빨갱이다,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었다.

결국 과거 동료였던 그로브스와 텔러와는 완전히 정 반대의 길로 들어섰고, 마지막 동반자 키티만이 오피와 함께 가시밭길을 걷기로 했다.

사실 난 저 둘이 딱히 배신했다고 생각 안 한다. 영화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말이다.

내적으로는 당연히 당시 그로브스는 오피를 대놓고 변호하면 자신이 위험해지는 상황이었고, 텔러는 오피와는 반대되는 입장을 늘 취해왔으며, 당시 텔러는 엄청난 반공주의자였다.

외적으로는 이 둘과의 이별은 '천재성'의 마지막 편린이 떨어져 나간 게 아닐까 싶다.

이지가 변호해주긴 하지만, 이지는 계발에 주요하게 나오진 않으니깐..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고 특별 대우 해주었던 텔러와, 가장 믿고 등을 맡겼던 그로브스와의 이별은 그 시절 기억이 작품 외적으로 분리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오펜하이머는 왜 그렇게 비참한 꼴을 당했어야 했을까? 미국의 영웅인대 말이지.

뭐 역사 이딴 거 다 집어치우고 영화의 장치와 이야기들로만 생각해 보겠다.

그냥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 시작에 나왔던 대사인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모든 것을 설명하는데, 사실상 오펜하이머는 거대한 프로메테우스 서사시라 봐도 과장이 없다.

'인류에게 불을 주어 평생을 고통받는 프로메테우스'

'세상에 원폭을 주어 죽어서도 고통받는 오펜하이머'

사실상 이 오펜하이머란 영화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추락신화"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 키티의 대사 중 "그렇게 혹독한 벌을 묵묵히 견디면 세상이 용서할 것 같아? 절대 안 할 거야."라는 대사가 있는대, 이 대사 다음으로 오는 "음, 한번 보지."라는 말이 신화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신화가 끝난 뒤 오피와 아인슈타인의 대화는 마치 전설같이 들려지기도 한다.

오피라는 프로메테우스가 미래에 어떻게 살 것 인지에 대한, 그런 전설 말이다.


마지막 대사인 오피의 "파멸의 연쇄 반응이 시작된 것 같다."라는 발언은 오피의 죄책감이자, 두려움이자, 자신이 무시했던 Neer Zero의 확률이 스스로를 어떻게 잡아먹는지 깨달음을 얻은 듯한 대사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가 무시했던 Neer Zero는 대기를 불태우진 않았지만, 스스로의 파멸과 세계 군비 경쟁이라는 연쇄 반응을 이끌어 내며 오펜하이머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는 것을 강조하고 영화가 끝난다.


그리고 핵융합 파트. 이건 짧을 것 같은데, 핵융합에 대해 먼저 알고 가자

핵융합은 원자를 강력한 에너지(고열, 고압)로 합치는 것이다. 주로 별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현상이다.

핵융합 파트에서 볼 것도 결국 인간관계이다. 핵분열 파트가 부딪히는 인간관계로 상향을 그렸다면 핵융합은 의외의 인간관계가 빛을 발하는 형태를 보인다.

당장 핵융합 파트에서 오피의 편이 되어서 싸운 사람 생각하면, 키티라던지 분량도 얼마 없었던 부쉬박사 라던지.. 엥? 얘네가? 싶은 애들이 오피의 편을 들어주고, 오히려 오피의 측근들이 힘이 못되어 주었다.

마치 핵융합의 현상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 의외의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관계들 이였다.

결국 이들로 인해 오피가 애국적인 국민이라는, 결과를 얻게 되지 않았나 싶다.


미장센 중에서 '물'이 주요하게 나온다. 영화 초반에 오피가 비 웅덩이에 번지는 물의 파동을 빤히 바라보고 있거나, 아인슈타인과의 대화에서 물의 파동이 이는 컷들이 자주 나오는 등 마치 '연쇄 반응'을 묘사한듯한 연출을 보여주고 있다.

오펜하이머에선 중요하게 봐야 할게 또 있다. 디테일한 당시 시대의 미장센 말고도 화면의 조도, 채도 등도 연출에 힘을 쓰고 있다.

가령 예를 들면 대부분의 불륜, 빨갱이와 연관된 씬은 황혼 쯔음이나, 밤에 찍었고. 반대로 물리학, 사랑, 연구등과 연관된 씬은 낮이나 환할 때 찍었다.

작 중반까진 이것이 오피의 도덕성, 혹은 위기감을 묘사하는데. 후반에 들어가면 오피의 심리상태를 묘사한단 느낌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오피의 생각이 밤에 좀 더 잘 표현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게 깨지는 게 롭과 마지막 변론을 할 때인데, 그동안 말이 없던 오피가 발작하듯 말을 시작하고, 그러며 화면은 눈부시게 새하얘진다.

뭐 원폭과 관련된 묘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그보다 나는 오피의 불안정한 내면이 폭발했다는 인상이 강했다. 마치 가젯실험의 새하얀 폭발처럼.

사운드도 이때 과감하게 쓰는데, 이 영화에선 청중들의 발을 구르는 크레셴도가 주요하게 나온다.

그 크레셴도와 함께 밝아지는 화면, 높아지는 언성으로 마치 핵폭탄이 터진듯한 인상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난 오펜하이머를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보여주는 현시대의 메타포'라고 보고 싶다.

사랑이 배신당하고, 충성심이 이용당하는 건 너무 흔한 일이니깐.

이 혼란한 세상 속 당시의 저 순수한 천재가 그러했듯, 지금의 천재가 아니어도 혹은 천재인 순수한 이들 또한 이용당하는 걸 생각하면 세상은 결국 돌고 돌아 그대로란 느낌이 든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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