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우스가 추락하는 날

기억들이 모여 만드는 나의 이야기

by Quasar



"-ㅇ"

"ㅇ스-"

"시리우스님!!"




"왁!!"




날 부르는 누군가의 조금은 성난 말투에 난 깜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소파에서 튕겨져 오르듯 일어서는 나를 보며, 관계자는 한숨을 쉬었다.




"애휴.. 어제 좀 주무시지. 어쨌든 곧 무대 올라가니깐 빨리 머리 다듬고 준비하세요."




"아.. 아 네 관계자님."




그 말을 듣고 난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무대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어제도 새벽 내내 음악작업을 한 탓일까, 잠깐 잤음에도 몸은 아직 무거웠다.


하지만 무대 쪽에서 울리는 사회자의 마이크 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깨어나는 듯했다.


나는 무대의 뒤편에 서서, 내 이름이 호명될 때를 기다렸다.




"다음 분은 한국 힙합계의 떠오르는 신성이죠."

"이 씬을 일으켜 줄 밝은 이정표 같은 존재입니다. 소개합니다, 시리우스!!"




우레와 같은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내 귀와 뇌를 울렸다.


전에는 작은 클럽 무대만 서 봤는데, 이런 국내 최대 규모의 무대는 처음인지라 긴장이 엄청 되었다.


그래도, 난 관심이란 무게추를 떨쳐내고 그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Shout out to 북극성."




내 말을 시작으로 공기를 울리는 비트가 깔리자 사람들의 비명 같은 환호가 온 일대를 울렸다.


난 몸에 피가 새롭게 도는 기분을 받으며 무대를 시작했다.


.


.




"야 너 이번 무대 완전 찢었던데?!"




슬슬 집에 가려고 준비 중, 어떤 키 크고 금색 체인을 한 남성이 내게 다가와 어깨동무하며 말을 걸었다.


레퍼 ‘밀리언’, 차준성이었다.




"하하! 고마워."




"너 이런 무대는 처음 아니야? 근대 어떻게 나보다 잘하냐"




준성의 띄워주는 말에 난 아까의 긴장이 상기되는 듯했다.


난 내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어우 나도 떨려서 죽는 줄 알았어.. 그래도 다들 환호해 주니깐 열심히 해야지."




"랩괴물이야 랩괴물."




옆에서 더 묵직하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을 보니 덩치가 큰 사내, 래퍼 ‘CCC’인 김한규가 있었다.




"한규야! 야 오랜만이다! 이번 앨범 잘 들었어."




난 반가운 마음에 한규에게 악수를 청했다.


한규도 반갑게 맞이해 주며 가볍게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




"나도 너 앨범 잘 들었다. 북극성이랑 합작했다지? 야.. 어떻게 그 OG랑 합작을 성공하냐.."

"누가 뭐래도 니 이번 앨범, 한대음 대상감이야. 이거에 3점 주면 그건 리드머가 감 다 뒤진 거지~"




그 말에 은근히 기분 좋아진 나는 음흉하게 웃으며 답했다.


당연했다. 이거 만들겠다고 들어간 돈과 시간이 얼마인데, 노력은 당연하고.




"흐흐.. 그건 맞긴 해?"




나와 2명의 친구들은 그곳에서 수다 삼배경을 펼치다 해어졌다.


그리고 난 내 집 겸 작업실로 향했다.


내 정겨운 망원동 옥탑방.




12월 한겨울의 옥탑방 내 작업실 겸 집은 참 추웠다. 온몸이 꽁꽁 얼듯한 느낌도 들었다.


당연했다 난방을 잘 안 트니.


하지만 오늘만큼은 플랙스를 하기로 한 날. 난 망설임 없이 보일러를 켜고 밥을 먹기 위해 배달 앱을 뒤졌다.


과소비 같아 보이겠지만, 오늘은 큰 무대에 오른 나를 칭찬하는 날이니깐 말이다.




"배달음식을~ 뭘 먹을까~"




진짜 오랜만에 치킨을 시키키로 했다.


BBQ 황금올리브, 얼마 만에 먹는 내 최애 치킨인가.


난 배달 주문을 눌러놓고 힙합 커뮤니티로 들어가 내 앨범에 대한 반응을 둘러보았다.


앨범 발매 후, 꾸준히 하는 행위 중 하나였다.




찢었다.', '너무 좋다.' '명반이다.'와 '뭐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다.' '너무 흔하다.' 등.


더 나아가 나와 북극성에 대한 찬양과 욕까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하긴 내가 내는 작업물은 대부분 호불호가 많이 갈렸다. 나는 스타일이 확고하고 강렬하니깐.


이번에 낸 레이지 장르의 앨범은 여론이 반반인 듯했다.




“레이지가 유행이라 낸 건 아닌데..”




이번엔 어째 아다리가 맞아떨어져 버렸다. 뭔가, 유행하는 장르에 편승해 평가를 좋게 듣고 있는 듯 해 기분이 썩 좋아지지 않았다.


‘이번 앨범도 실패인가?’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따르릉-




“아차!”




집 앞이면 전화 달라 그랬었지.


난 소중한 치킨이 식기 전에 빠르게 치킨을 받으러 내려갔다.


.


.


.




음악작업은 참 힘든 일이다.


끊임없이 보여주고, 증명하지 않으면 결국 묻혀버리니.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더욱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나를 쥐어짜게 된다.


그런지가 벌써 3주 째다.


작업실에서 먹고 자며 새로운 음악을 들어도, 산책을 다녀와도, 운동을 해도 그 어떤 것을 해도 영감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잰 정말 한계다. 스트레스가 극으로 쌓여 뭐라도 풀어야만 했다.


난 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나야 준성아."

"아니 별건 아니고, 같이 술 마시자고."


.


.




이른 저녁 집 근처 포차 앞에서 난 내 입에서 뿜어지는 하얀 김을 바라보며 준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 랑아!”




“어 왔구나!”




옆에서 들려오는 준성의 목소리에, 난 그곳을 바라보며 준성과 인사했다.


근대, 한 명이 더 있었다.




“앵 뭐야 한규도 왔네?”




“내가 불렀어, 사내놈 단 둘이 술 마시기 좀 그렇잖냐~”




“하하! 그건 그렇긴 해.”




우리는 이내 포차 안으로 들어가 술과 안주를 시키고 여러 대화거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대화거리가 다 떨어지자, 준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음?"




내 의문에 준성은 술을 한모금하며 말을 이었다.




"네가 우릴 괜히 부르진 않았을 거 아냐, 평소엔 작업에만 미쳐사는 네가 술마시 자고 왜 했겠어."

"할 말이 있으니까 부른 거겠지."




그 말에 난 할 말을 잠시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냥.. 요즘 작업이 너무 안 돼서."

"거의 3주째야. 영감도 떠오르지 않고, 작업물도 나오지 않아."




".. 너 너무 허슬 하는 거 아냐? 아니 3주 안 떠오를 수도 있지 뭐, 난 4개월 동안 논적도 있어~"




"아냐 안돼, 난 쉬면 안 돼."




내 단호함에 준성이 당황하며 말했다.




"야 뭘 또 그렇게 말하냐 사람이 좀 쉬고 그래야지."




그러나, 준성의 위로에도 내 마음은 여전히 발등에 불 떨어진 듯 급하였다.




"지금 이 궤도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음악을 내지 않으면 다시 잊힐 거야."




그렇게 말하며 난 내 무명시절이 생각했다.


4년간의 무명생활, 그리고 그걸 타파해 준 3집.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비린내 나는 추억이 머릿속에 그려지니, 살기 위해 이 명성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 너 여행 한번 다녀와라."




이때까지 조용하던 한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엥? 여행? 이 시국에?"




"어, 너 돈 없으니까 배낭여행으로. 어디 일본이나 대만이라도 가봐."




"아니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사람한태 해외를 가라고?"




난 어이가 없었다. 당연했다 아니 슬럼프 고민 해결해 달라니깐 갑자기 웬 여행타령인가.


하지만 내 어이없는 표정에도 한규는 진지해 보였다.




"주변국은 저렴한 비행기 표도 찾을 수 있어. 그리고 기왕 다녀오는 거 넌 국내보단 해외가 좀 더 좋을 것 같아서. 너 29년 사는 동안 국내는 가봤는데 해외는 가본 적 없다매."




"그건 그렇지만.."




한규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다 말했다.




"음악에서 재일 중요한 건 뭐지?"




"영감이지."




"그래, 그럼 영감은 어디서 나올까?"




"뭐.. 다양하게? 나오지 않나?"




한규는 날 잠시 본 뒤 술을 한잔 들이켜곤, 말을 이었다.




"경험이야 경험. 영감은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와."

"내가 보기엔 넌 그 두 개가 다 떨어진 것 같아서 충전 좀 하고 오라고 말하는 거야."

"쉬는 겸 새로운 소스도 찾아오는 거지. 혹시 몰라? 거기서 명반이 나올지."




'명반'


이 단어는 날 움직이기 충분했다.
.


.


.




일본으로 가기로 했다. 고즈넉한 시골로 갈까, 대도시로 갈까 고민하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을 담고 싶다는 생각에 오사카와 도쿄로 행선지를 정했다.


기간은 4박 5일. 각 도시에 2일간 머무르고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돌아올 생각이다.


일단 이틀 뒤 아침비행기를 잡고 먼저 짐을 싸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들며 약간 기대가 되었다. 과연 어떤 일들이 날 기다릴까?


.


.




"헉... 헉..."




큰일 날 뻔했다. 진짜 비행기 못 탈 뻔했다.


공항에 3시간 전부터 도착해야 한단 말에도, 눈을 떴을 때 너무 피곤한 바람에 안일하게 '2시간 30분 전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었는대..


탑승 수속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이 왜 이리 많은가!




'진짜.. 진짜 다행이다'




난 아슬아슬하게 탑승해 자리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한참 몰아쉬던 숨이 가라앉자, 자연스레 내 자리 옆 타원형 창문에 시선이 갔다.


창문 밖으론 마치 장난감처럼 작은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크긴 크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내 이륙 준비를 모두 마쳤는지, 가방을 보관하는 문들이 다 닫힘과 동시에 기장의 안내 음성이 들려왔다.


난 혹시 모르니 내 눈앞 작은 모니터에서 나오는 위기상황 안내 방송을 유심히 보았다.


솔직히 비행기를 처음 타는 건 좀 무서웠으니깐.


안전 수칙은 꼭 꼼꼼히 확인하자고 생각했었다.




이내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난 멍하니 창 밖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차!"


'다들 이런 거 하던데'




난 핸드폰을 준비해, 이륙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으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힙합정신이 올라왔다.




‘.. 뭘 애들같이...’




난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냥 창 밖을 보기로 했다.


유행을 따라가기엔 난 너무 늙었고 애들처럼 꺅꺅대던 시기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눈이 최고의 카메라라 하지 않던가, 그러니 굳이 찍을 필요 없다.




덜 덜 덜-




그리고 기내에 강한 진동이 전해지며 비행기가 이륙했다.


난 살짝 겁먹은 채로 창에서 눈을 땐 채 앞만 보았다. 뭔가, 멀어져 가는 땅을 보는 것이 어색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태양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어린아이처럼 창 밖을 뚫어져라 볼 수밖에 없었다.


.


.




한참 창밖 구경을 하다 기내식을 먹고 조금 더 있으니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익숙해 보이면서도 낯선 타국의 공항이 나를 맞아주었다.


처음엔 일본에 온 것이 실감 나지 않았는데, 입국심사 때 직원들이 들고 있는 일본어 피켓을 보니 정말 일본에 온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내 가방을 되찾고, 첫 번째 여정 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사쿠사’


그곳에 큰 절이 있다 그랬다.


타국에 왔으니 다른 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해 보고 싶기도 했고, ‘절’이라 그러니 뭔가 자연 속에 있을 듯 해 고른 것이었다.


영감에 관한 생각도 있었지만, 요즘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먼저 힐링을 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진 않았다.


자연의 풀내음을 맡으며 아름다운 절의 경관을 보면 뭔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뭐야 이거..”




난 눈앞 풍경에 당황했다.


바글바글한 사람들, 줄지어 쭉 나있는 가게와 풀이라곤 단 한 포기도 찾아볼 수 없는 정갈한 돌로 포장된 도로까지!


그리고 그 끝 거대한 빨간 등이 달린 거대한 문에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완전 시장바닥이잖아!!’




센소지. 이름만 들어보면 무슨 산에 있는 절일 줄 알았는데 도심지에 있는 시장과 이어진 절이라니.


거기에 관광객이 득실거리는..


힐링은 개뿔 오히려 킬링이 될 것 같았다.




"아 사람 많은 거 딱 질색인데.."




그래도 절의 모습은 궁금했기에 난 눈 딱 감고 절로 돌진하기로 맘먹었다.


가는 중간중간 맛있는 냄새와 예쁜 기념품들이 날 유혹했지만 돈도 없고, 저런 건 애들이나 관심을 갖는 것들이다.


벌써 30을 바라보는 나이인 내게 여우 가면이나 예쁜 꽃무늬 부채는 필요 없다.


그리고 이런 관광지에서 먹는 음식이 맛있을 리도 없고..


‘다 감성값이지’라고 생각하며 계속 걸어가던 차, 절에 도착했다.




절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우리나라의 절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 아름다움이 존재했다.


도심 한가운데의 그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에 난 넋을 놓고 절을 보았다.


하지만 이런 과거의 아름다움을 보아도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난 다음을 기약하며 절을 떠났다.


.


.




오랜 시간 걸었더니 배가 고팠다. 하루 종일 작은 기내식만 먹은 탓일까, 위장이 살려달라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가게음식을 먹자니 돈이 아까웠기에 난 가볍게 끼니를 때울만한 곳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편의점’


그래, 일본은 편의점이 유명했었지.


난 편의점으로 향하며 다음 행선지인 호텔을 찾아보고 있었다.


.


.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어딜가건 다 퉁명스럽구나..”


일본인들은 친절하다고 들었는데, 역시 편견이었구나 생각하며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체크인 후 카드키를 받아 내 호실 앞에 서서 카드를 인식시켰다.




띠릭-




철컥- 하고 문 여는 소리와 함께 작은 방이 날 맞아 주었다.


이번에 묵기로 한 조그마한 방이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침대도 푹신하고, 욕조도 있고.


정말 오랜만에 반신욕을 꼭 해보고 싶었는데, 잘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지금은 반신욕이고 뭐건, 너무 피곤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무리한 탓일까.


일단 지금은 자기로 했다.


.


.


.




"아.. 젠장.."




어제 진짜 피곤하긴 했나 보다.


소중한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리고 2일째 날 오전 7시. 지금 일어났다.




“이걸 하루를 날려버리네..”

"지금 뭐 연 곳 있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잠시, 배가 고팠기에 근처 편의점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7분 거리에 편의점이 하나 있었다.


나는 다행이라 여기며 편의점으로 가 먹을거리를 사 왔다.




시간이 좀 지나 체크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나온 뒤 ‘오늘은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차, 문득 생각나는 곳이 있었다.


‘신주쿠’ 일본 여행 좀 다녀왔던 친구에게 들었던 곳이었다.


서울로 치면 홍대나 건대쯤 되는 곳이라 들었기에 한번 가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신주쿠에 도착하자 이번에도 많은 인파가 날 맞아주었다.


참 갑갑했지만 그래도 ‘이 갑갑함에서 영감이 떠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재만큼은 아니었기에, 갑갑함을 참으며 이곳저곳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약간 특이하게 생긴 붕어빵, ‘도미빵’이라고 들었다. 안에 들어간 소도 맛있어 보였고 기왕 일본에 온 김에 일본 음식을 먹고 싶었다.


가격은 8천 원… 약간.. 안 괜찮은 가격이지만, 오늘은 도쿄에서의 마지막 날이니깐 이 정도 돈은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대하며 받아 든 도미빵의 맛은.


처참했다.


다른 의미로 영감이 떠오를 것 같았다.




“도쿄 스카이트리?”




도쿄 최고의 전망대라 하였다. 갈 곳이 없어 정처 없이 떠도는 게 지쳤는데, 마침 갈 곳이 생기니 기쁜 마음이 들었다.


입장료는 좀 비싸다만 도쿄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면야, 지불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비싼 돈 주고 본 도쿄의 전경은


구름이 껴서 흐렸다.




“탁 트인 걸 원했는데..”




어제까진 분명 맑고 푸른 하늘이었는데, 오늘은 흐리고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흐린 하늘조차 빌딩 숲과 조화를 이루며 마치 하나의 웅장함을 자아냈다.


하늘은 구름이 빽빽이 껴 오늘 밤은 달조차 보이지 않을 듯했지만, 난 그 뒤에 수많은 별들이 빛 공해와 구름 뒤에 숨겨져 있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꽤 묘했다.


‘시리우스’ 랩 네임을 별 이름으로 정한 것도 어릴 적 보았던 책의 시리우스란 별이 참 멋져 보여서였으니깐.


하지만 지금 하늘은 일등성인 시리우스는커녕 하늘의 제왕인 태양마저 주눅 들게 만들었다.




“.. 완전 내 상황이네..”




영감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난 이잰 영감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한규의 말대로, 영감은 기억과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 경험이 끝나지 않은 내게 그것은 먼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난 뿌연 도시를 쭉 바라보다 내려왔다.




한겨울의 크리스마스를 맞은 신주쿠는 화려했다.


캐럴과 예쁜 조명, 리스와 트리들.


아까 우중충한 낮보다 더 밝은 밤을 보며 참 재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인지라 다들 친구, 가족, 연인과 떠드는 이들과 달리 이 분위기를 즐기긴 힘들었다.


그저 속으로 ‘예쁘다’라고만 생각하며 귀엽게 꾸며진 트리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떠났다.




문득,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


당연했다. 밥도 한 끼만 먹고 제대로 안 먹었으니, 지금 정말 배가 고팠다.




“치킨을 파는 곳이..”




앗. 하고 생각났다.


일본의 치킨 하면 대표적인 것, 바로 가라아게!


가라아게를 먹기 위해 적당한 가게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대충 메뉴판에 가라아게라 적힌 이자카야에 들어왔다.


카운터 석 밖에 없는 작은 가게에 50대로 보이는 주인이 혼자 운영하는 곳이었다.


난 좌석에 앉은 뒤 시킨 맥주를 받아 조금씩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가게 곳곳이 크리스마스 테마로 꾸며진 것이 볼만했다. 한참 가게 벽면에 조명과 함께 붙은 사진들을 바라볼 때쯤,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사람이야?"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살짝 당황했지만 어서 말을 이어갔다.




"아, 한국에서 왔습니다."




"에, 한국?"




"네."




주인아저씨는 신기하단 듯 리액션을 하곤 마저 일을 했다.


그리곤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럼 한국 어디서 왔어?"




"아.. 서울이요."




"서울! 나도 서울에 친구가 살아."

"그래서 한국말도 좀 할 줄 알아."




그렇게 말하며 어눌한 한국말을 조금 보여주었다. 굉장히 기초적이고 매체에서나 볼 법한 한국말.


난 어색한 반응을 보여주며 아저씨에게 호응해 주었다.


이에 기분이 좋은지 아저씨는 히히 웃으며 다 튀긴 가라아게를 내어주었다.




"여기, 가라아게."




"아 감사합니다."




"레몬 뿌려먹어. 그럼 맛있어."




"아 넵."




"... 근대 일본어는 왜 이렇게 잘해?"




아저씨의 의문에, 난 가라아게를 후후 불다 말고 답했다.




"아, 학창 시절에 배웠어요. 대학도 일본어과였고.. 뭐, 중간에 자퇴했지만."




"아하, 그래 서였구먼."

"그럼 지금은 뭐 해?"




난 살짝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




"아, 음악 합니다. 랩 해요."




"랩? 오 나 힙합은 아니어도, 쇼와 때 JPOP을 좋아해!"




그 말에 나는 가게를 메우는 음악을 집중했다.


가게엔 80~90년대에 나올법한 클래식한 JPOP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별이 빛나는 드라이브.. 밤 단계.. 참 좋은 곡들이 많지."

"쇼와 시절 곡들의 부드러운 음색이 좋아."




싱잉이나 이모힙합, 발라드 등의 장르는 별로 안 좋아해서 잘 듣질 않았는데.


어릴 적에나 듣던 참 부드럽고 맑은 음색들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오랜만이네요.."




"음? 뭐가?"




"이런 음악이요. 저는 힙합을 하는 사람이니깐 자주 강한 음악만 들었거든요."

"이런 클래식은 오랜만이여서요."




아저씨가 껄껄 웃으며 답했다.




"그렇지, 이런 클래식은 다들 오랜만이지."

"아, 내 최애곡 한번 들어볼래?"




‘최애곡’이란 말에 호기심이 돋았다.




"무슨 곡이죠?"




"Season in the sun. 정말 좋은 곡이야."




아저씨가 기존의 곡 대신, 새로운 곡을 틀었다.


이내 가게엔 경쾌하고 여름의 청량한 사운드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여름이 떠나지 않기를 비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의 노래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나도 이대로 있고 싶으니, 해가 멈췄으면 한 적이 있었으니깐.


계절이 너의 꿈을 멈췄으면 한다는 말은 꽤나 몽환적으로 들렸다.




"어때?"




아저씨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 아 정말 좋네요. 특히 언제까지 이대로 있고 싶다는 가사가 인상 깊었어요."




"이야 음악 좀 들을 줄 아네! 맞아, 나도 그 가사 재일 좋아해."

"그나저나 청년, 사진은 좀 찍었어?"




그 말에 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에이.. 제 나이가 벌써 곧 30인데 무슨 사진이에요~"




그 말에 아저씨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자네, 벽 한번 볼래?"




그렇게 말하며 그는 가게 벽면을 가리켰다.


아저씨가 가리킨 벽엔, 아까 내가 보았던 손님들과 함께 찍은 아저씨의 사진, 작은 물건을 찍은 풍경, 배경 사진들이 즐비했다.


작고 노란 조명과 사진들이 어울려 마치 사진 속 별이 비췬 듯 반짝였다.




"저건.."




"저 사진들은 다 내가 찍은 거야. 난 사진 찍는 거 좋아하거든."

"손님들 하고도 찍고, 내가 좋아하는 물건과 배경도 찍고, 가족들도 찍은 거야. 이 가게에서."

"... 저 사진들을 보면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아무리 재밌어도 증거가 없으면 잊어버리거든. 근대 증거가 있으면, 그린 듯이 떠올라."




그렇게 말하며 아저씨는 활짝 웃어 보였다.




"그니까 자네, 소중한 것을 만난다면 사진을 꼭 찍어봐. 후회하지 않을 거야!"




".. 하하! 멋진 게 나타나면 그래볼게요."




조금은 흥미로운 말이었다.


‘소중한 것을 만나면 사진을 찍어봐라’ 라니. 어쩌면 이 여행에서 영감의 재료가 될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는 좋은 요소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아저씨와의 즐거운 대화를 마치고 난 오사카로 향하는 밤 버스에 몸을 실었다.


.


.


.




항구도시의 바닷바람은 차갑고 짭짜름했다. 물론 내가 내린 곳에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작고 옹기종기한 건물들이 모여 있는 것이 도쿄와는 썩 다른 인상을 주었다.


우선 나는 ‘오사카코’라는 지역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해유관’ 이곳엔 고래상어도 있고 개복치 같은 희귀한 생물도 있다 들었다.


영감에 대한 기대는 버렸지만, 그래도 이런 신기하고 진귀한 광경을 보면 뭔가가 떠오르지 않을까?라는 약간의 기대를 품으며 난 오사카코로 이동했다.






생각을 못했다. 개장시간이 10시부터 라는 걸.


그리고 지금은 8시 20분이라는 걸.


완전 1시간 40분 동안 노숙하게 생겼다.




"뭘 하지.."




건물 앞에서 고민하다, 근처 밴치에 앉아 바다를 보기로 했다.


밴치에 앉은 채 바다를 바라보았다.


쨍할 정도로 푸른 하늘과 짙은 바다가 조합되어 마치 원색의 캔버스를 보는 것 같았다.


내 얼굴을 때리는 차가운 바닷바람과 출항하는 배들의 묵직한 소리가 나의 오감을 채웠다.


한참 그 광경들을 멍하니 보고 있을 때쯤.




따르릉-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북극성. ‘김만규’씨




'어 나야.'




"여보세요?"

“어 웬일이세요 만규형?”




'너 지금 일본여행 중이라매, 준성이 한태서 들었다. 그래서 전화해 봤지 재밌냐 물어보려고.'


'어때, 재밌어?'




나는 곰곰이 도쿄에서의 여정을 생각해 보았다.


인파와 도미빵은 최악이었지만 아름다운 절과 도쿄의 전경이나 신주쿠의 밤 풍경, 아저씨의 가게와 가라아게는 정말 최고였다.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데, 전 재밌는 것 같아요."




‘그럼 다행이네.’


'뭐 흥미로운 거 떠오르는 건 있고?'




"음.. 어제 음악에 대해 좋은 대화를 나누긴 했는데, 아직 '와! 이거다!' 하는 건 없어요."




내 말을 들은 만규는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흠.. 굳이 월척에 집착하지 마. 랑아.'


'수많은 작은 물고기가 잡혀도 그물은 찢어지잖아? 그 대화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 둬.'


'티끌 모아 태산이라잖아? 음악은 큰 영감 하나에서 명반을 만들 수도 있지만, 작은 생각들이 모이고 모여 명반을 만들 수도 있어.’




"... 그런가요?"




‘그래, 넌 지난 앨범 작업 때도 그렇고 너무 대어를 노리려는 성향이 커.’

‘그니까 이번 여행에서 힐링 좀 하고 와. 함부로 대어를 노리다간 애먼 체력만 빠져.’




"네 고마워요.”

“아, 이재 시간이 돼서 전 이만 가볼게요! 담에 봬요!"




‘그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어졌고, 난 입장권에 적힌 시간을 보며 수족관으로 달려 나갔다.




수족관은 나에게 다양한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아름다운 물고기 때와 거대하고 멋진 물고기들, 그리고 행복해 보이는 생물들의 모습들.




그중에서도 매인 수조의 고래상어는 내게 웅장함을 주었다.


동시에 갇혀있음에도,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난 커리어에 갇혀있어 자유롭지 못한데. 역설적인 두 모습이 함께 공존하는 수족관은 내게 꽤나 이질적으로 보였다.


저들은 과연 자연으로 돌아가면 행복할까.


난 커리어를 놓으면 행복할까.


... 정답을 내리기 힘들다.




일단 어제의 아저씨의 조언을 생각해, 고래상어 사진을 하나 찍었다.


사람이 하도 많아서 좀 많이는 못 찍었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수족관에서의 즐거운 경험을 마친 뒤, 난 다음 행선지를 정해야 했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이잰 슬슬 편의점 도시락이 질리기 시작했다. 사실상 2일 남았는데, 이잰 가게 음식을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으로 여기저기 뒤져보다, 괜찮아 보이는 장소를 발견했다.




".. 도톤보리? 거기로 갈까?"




한국의 맛집 골목을 확대해 놓은 버전이라 해야 하나. 암튼 그런 곳.


그곳엔 맛있는 게 있겠지, 싶어 난 거기로 가기로 했다.


.


.


.


도톤보리에서 타코야키와 당고를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맛은 별로였다.


하긴, 그때 절의 관광음식처럼 여기도 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음식일 텐데, 퀄리티 있게 나오리라 생각한 내가 멍청했다.




"아.. 좀 쉬었다 갈까.."




체크인하고 들어온 숙소는 도쿄에서의 풍경과 비슷했다.


비슷한 침대, 욕조, 테이블.


짠 듯이 가지런한 풍경에 난 잠시 방을 둘러보다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곤 침대에 누웠다.




"진짜.. 진짜 1시간만 자는 거야.. 1시간만.."




그렇게 생각하며 알람을 맞추고, 난 잠들었다.


.


.




분명 4시에 잠든 것 같은데, 저녁 8시에 일어났다.


1시간만 자려던 걸 4시간을 자다니.. 진짜 피곤해도 꽤나 피곤했단 생각이 든다.


그래도 '첫날처럼 기절은 안 해서 다행이다' 라 생각하며, 난 밖으로 향했다.


오늘은 뭔가 강렬한 게 당기는 밤이었다.


유흥 같은 거 말고 쌘 술이나 멤피스, 서부힙합 같은 강렬한 것을 뇌가 원하고 있었다.




이때, 내 눈에 보인 간판이 있었다.


'재즈 클럽'


간판을 더 자세히 보니, 바였다.




"재즈 클럽이라.."




내가 원하던 것은 아녔기에, 잠시 고민했지만 늘 듣던 좋아하던 것보단 새로운 것이 더 공부가 될 듯해 술이나 마시며 들을 요량으로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간 가게 내부는 어두 칙칙했다. 하지만 그 어두 칙칙한 벽을 장식한 네온사인이 분위기를 환기하고 있었다.


동시에 천장에는 미러볼이 은은하게 돌아가 분위기를 더욱 신비로이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곳저곳에 켜진 호박빛 빛 조명아래로, 난 자리에 앉아 주문하려 했다.


그러자 직원이 다가왔다.




"저희 가게 이용해 보신 적 있으세요?"




"네? 아뇨."




섧게 보이는 직원이 그 말을 듣자 능숙하게 안내를 시작했다.




"저희 가게는 신청곡을 넣을 수 있어요. 그리고 저기 무대 보이시죠?"




그 말에 난 직원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그곳엔 진짜로 작은 무대와 피아노, 스탠딩 마이크가 놓여있었다.




"저기서 노래도 부르실 수 있어요. 만약 MR이 필요하시면 저희에게 말씀해 주세요."




"아.. 넵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주문을 넣은 뒤, 난 나온 술을 홀짝이며 재즈음악을 들었다.


재즈는, 경쾌한 동시에 묵직했다.


마치 덩치 큰 댄서가 날렵하게 그루브를 타며 춤을 추는 것 같았다.


한참 음악을 듣고 있었을까.




"혼자 왔어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옆에 앉은 한 일본인 여성이었다. 칼단발에, 약간 둥근 고양이 같은 눈을 가진 여자.


난 빠르게 입 안에 술을 갈무리하며 대답했다.




"아, 네 혼자 왔어요."




"어디 사람이에요? 도쿄? 센다이?"




"아뇨 한국사람입니다."




그 말을 들은 여성은 재밌다는 듯 반응했다.




"아하! 근대 일본어 되게 잘하시네요."




"아 감사합니다."




나의 출신지와 일본어 실력의 출처를 묻는 질문이 오간 뒤, 잠시 정적이 생겼다.


이내 여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 재즈 좋아하세요?"




"재즈.. 좋아한다기보단, 전 음악을 하는 사람이어서 공부할 겸 온 거예요. 겸사겸사 머리도 식힐 겸."




"공부라, 그것도 좋지만. 음악은 마음으로 들을 때 가장 진실된다고 생각해요."

"가장 좋아하는 곡이 있어요?"




그 말에 난 잠시 ‘이 사람이 이걸 알까?’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숨기지 않는 것이 좋다 여겨 말하기로 했다.




"전.."

"전 돈키호테를 좋아해요. 피타입의 돈키호테."




"그럼 재일 기억에 남는 곡은요?"




"기억이라..."




그 말에 난 내 기억의 강 속 추억 하나를 꺼내어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왕따로 정말 힘들었을 때, 내 단 하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불후의 명곡.




"...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요."




"길을 찾는 노래네요."




그 말을 들은 여자는 쌩긋 웃어 보였다.


그리곤 잠시 무대 쪽을 바라보다,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아.. 천랑이요."




"천 씨라.. 천 씨, 같이 노래 부를래요? 제가 피아노 쳐드릴게요."

"저 피아노 잘 쳐요."




여자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난 당황했다.


당연했다. 멜로디 있는 노래를 안 한 지 벌써 몇 년 째인데.




"에? 저 노래 못해요! 전 랩 하는 사람이라 멜로디 있는 건 잘 못해요.."




내 말에도 여자는 하하 웃으며 말했다.




"힙합에도 싱잉이라는 장르가 있잖아요? 싱잉 한다 생각하세요!"




그리곤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자신감을 가져요."




그 말에 난 조금씩 욕심이 생겼다.


싱잉은 싫어했던 나지만, 그곳에서 새로운 명반의 시작이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녀가 너무 이뻤다.




"그래서, 할 거예요?"




"ㄴ, 네?"




"할 거냐고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다시 미소 지었다.


한잔도 다 안 마셨는데, 귀가 뜨거워지는 건 기분 탓 일 거다.




"좋습니다. 하죠!"




내가 조금은 힘주어 말하며 일어나자, 그녀도 날 잠깐 바라보더니 다시 미소 지으며 느릿하게 일어났다.


우린 둘이서 걸어 여자는 피아노로, 난 마이크로 가 앞에 섰다.




둘의 합주가 시작되었고 불협화음으로 시작된 합주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음색이 맞아 들기 시작했다.


화음이 어우러지며 난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날 바라보았다.


무언의 음악가로서 일지, 인간으로서 일지 모를 교감이 오가려는 찰나, 노래가 마무리되었다.


몇 없는 손님과 직원들의 박수소리가 가게를 채웠고 오랜만에 느끼는 작은 무대의 편안함에 기분이 내심 좋아졌다.




그 이후로 그녀와 좀 더 술을 마시며 대화했다.


음대를 나오고 피아노 교사로 활동한다는 것부터 새새한 사항까지 나누며 우리는 단숨에 친해졌다.


히나. 그녀의 이름은 히나였다.




"이제 들어가게요?"




"슬슬 막차 끊길 것 같아서요.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어느새 하늘에선 눈이 조금조금씩 오고 있었다. 날이 많이 추웠기에, 난 빨리 히나를 보내고 나도 호텔로 돌아가려 했다.


그렇게 말하며 난 그녀에게 고개를 짧게 숙이고 호텔로 가려했다.


이때.




"아, 저기."




"네?"




"깜빡 잊은 게 있어서요."




난 그 말에 잠시 멈추어 섰다.




"엥? 뭘요?"




"인스타 주실래요?"




그렇게 말하며 히나는 정말 예쁘게 웃어 보였다.


한쪽으로 넘기는 머리카락 뒤로 그녀의 귀가 새 빨게 진 것이 보였다.


하늘에서 내리는 흰 결정이, 마치 별과 같이 빛나는 듯했다.


그 흰 풍경과 대조되는 추위에 빨갛게 물든 얼굴에서 사뭇 ‘좋아함’이란 감정이 묻어 나왔다.




그렇게 거리를 메우는 캐럴과 사람들의 웃음소리 사이에서.


난 29년 인생 처음으로 외국인 친구를 사귀었다.


... 조금은 호감 있는.


.


.


.




오늘은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아침 비행기로 집에 돌아가는 날이니깐 오늘 놀 거 다 놀아야 한다는 중압감 아닌 중압감이 생겼다.


영감을 찾겠다는 초기 목표는 어디로 간 건지, 난 이미 이 여행을 200% 즐기고 있었다.




"오늘은 어딜 갈까.."




잠깐 고민하다, 생각난 곳이 있었다.


'나라' 내가 버스를 타고 오사카에 도착했던 곳.


사람이 붐비는 이곳과는 달리 꽤 한적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당겼기에 나라로 가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나라에 뭐가 있을지 가는 길에 검색을 했다.


나라에는 '사슴 공원'이 유명하다 했다. 가면 사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걸 볼 수 있다 그랬다.


꽤 재밌어 보이는 정보라 우선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사슴 공원에 도착하자 진짜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슴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물이 있는 공원이라 돈 받고 들어갈 줄 알았는데, 무료라 좀 당황스럽긴 했다.


그리고 더 당황스러운 건..


사슴이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먹을 것을 받아간단 점이었다.


나한테 인사를 하길래 뭔가 싶었는데, 바로 앞의 관광객이 인사하는 사슴에게 먹을 것을 주는 모습을 보고 알게 되었다.


마치 훈련된 개를 보는 것 같았다.




'놀랍긴 하네..'




사슴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실상은 자유로워 보여도 언제나 카메라와 떨어질 새가 없었고, 조금이라도 특이한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찍기도 했다.


약간의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도 겉으로는 자유로운 뮤지션이라 불리지만, 실상은 커리어에 묶여있으니.


그리고 그 커리어는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로 이루어지니, 저 카메라에 찍히는 사슴이 약간 안쓰러워졌다.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슴이라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사진을 남기곤 발걸음을 떼었다.




어느새 밤이 되었다. 점심을 먹고 근처 시장을 돌아다니니 시간이 금세 가버렸다.


오늘은 뭔가 술이 당겼다.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그동안 돈을 많이 아껴서 그런지 최소한 돈 걱정은 없었다.




"어딜 갈까.."




진지하게 한참 고민하다,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고급진 간판이었다.


'BAR. 1987년도부터'




"87년도부터..?"




그 단어를 듣자마자 흥미가 바로 생겨버렸다.


1987년부터 있던 바라니, 평소에 칵테일을 자주 안 마셔도 이건 반드시 경험해야겠다 생각해 기대를 품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경쾌한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2명의 바텐더와 마스터로 보이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


우디 한 톤의 인테리어와 나무 냄새가 나는 가게였다.


가게에선 분위기에 맞는지 아닌지 모를 피아노 클래식이 나오고 있었다.




인사 후 자리를 안내받고, 주문하려 메뉴책을 받았다.


.. 근대 메뉴가 너무 많았다.




'칵테일을 많이 안 마셔 봤는데..'




"고르기 어려워? 추천해 줄까?"




내가 고민하고 있자, 어느새 마스터가 다가와 내가 물었다.




"아! 네 부탁드립니다."




내게서 메뉴판을 건네받은 마스터가 페이지를 능숙하게 넘기며 메뉴를 추천해 주었다.




"도수 높은 거 좋아하면 코즈모폴리턴도 좋고, 블랙 러시안이나 파우스트도 좋아."




"그럼 파우스트 주세요."




"좋아. 파우스트, 좋은 술이지"




마스터가 능숙한 솜씨로 술을 섞어 내어 주며 나에게 출신을 물었다.


여행 와선 늘 있던 질문이었기에 언제나처럼 대답했다.




"한국인? 이 시골까지 무슨 일이래."




"아, 한적한 곳이 좋아서요. 한적한 곳을 찾다 보니 여기가 좋겠더라고요."




"허허허! 하긴 도시는 너무 복잡해, 그렇지?"

"사람이 많으면 머리가 어지럽더라고."




“하하! 그렇죠.”




마스터는 컵을 닦기 시작하며 내게 말을 걸었다.




"... 난 원래 20년 전 난바에서 일했는데, 일을 그만두고 여기에 내 가게를 차렸어."

"20년 전에는 뭐에 쫓기듯 일했지. 돈을 좇았는데, 정신 차려보니 내가 쫓기고 있었어."

"그래서 그만뒀지. 돈에 묶이지 않으려고."




"아..."




"자네는 어떤가?"




약간 망설여졌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소리를 해도 예의 없지 않은 걸까?


하지만 술기운이 조금 올라서인지, 말하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




"괜찮아~ 나 사람 얘기 듣는 거 좋아해."




그 말에, 입을 때도 되겠단 생각을 했다.




"전.. 음악을 하는 사람입니다."

"근대 요즘 슬럼프 때문에 힘들어요. 슬럼프라는 늪에 빠진 기분이에요."

"인생 최대의 커리어 하이를 찍었는데, 이걸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냥.. 다 놓고 싶은데.. 명성이 저를 살게 해 줬기에 전 이걸 놓을 수 없어요."

"그래서 지금의 커리어를 놓을 수 없어요."




"..."




내 말을 유심히 듣던 마스터는, 닦던 잔을 내려놓고 말을 시작했다.




"그럼 그 생각을 놔버리면 되지 않나?"




"네?"




"'커리어를 지키겠단 생각' 그걸 놔버리면 되지 않겠는가?"

"내가 돈을 좇았다 그랬지? 난 그때 월에 일정 금액 이상 벌지 못하면 나를 굉장히 자책하곤 했어."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다.. 내 잘못이다.. 등등 나를 몰아붙이면서 먹는 거, 입는 거, 사는 것도 다 줄였지."

"근대 그러니깐 너무 힘들더라고. 그래서, 그냥 놔버렸어."




마스터는 이내 마저 닦던 잔을 다 닦고 환히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세상이 환해지더라고!'




마스터의 미소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했다.


마치 비행기를 타던 나처럼.




"자네도 한번 해봐. 세상이 달라질 거야."




"...!"




말 자체는 무서웠다.


그야 나에게 '커리어를 지켜라'라는 생각을 놓으라는 건 지금 당장 그 반지하, 바퀴벌레 소굴로 들어가라는 거니깐.


겨우겨우 옥탑방으로 이사한 나에게 그때의 물비린내 나는 반지하는 정말 떠올리기도 싫은 추억이었다.


하지만 그 미소가, 백발의 할아버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천진난만한 미소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럼.. 마스터 씨."




"음?"




"놔버려도 정말 괜찮을까요?"




내 말에 마스터가 웃으며 답했다.




"놓는 방법은 다양하지. 너만의 방법을 찾아서 시야를 바꿔봐."




"... 만약 실패하면요?"




내 주눅 든 말에, 마스터가 껄껄 웃으며 답했다.




"허허! 실패는 무엇의 어머니라 했지?"




"성공이죠."




"그렇지. 실패하면 할수록 우린 정답에 더 가까워지는 거야."

"그니까 너무 무서워하지 마."




그 말은 내 마음속에 무겁게 얹혔다.


마치 마음속 그물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날씨가 어땠더라. 아, 정말 맑은 하늘이었지.


저 하늘 어딘가에 빛나고 있을 시리우스가 보일 수도 있는 날.


내 별을 가리고 있는 그물을 찢으니, 비로소 나의 시리우스가 보이는 기분이었다.


이 소중한 순간을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마스터 씨."




"음?"




"어.. 저랑 사진 하나만 찍어주실래요?"




".. 물론이지!"




마스터는 다시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잡아주었다.


다른 바텐더들도 포즈를 잡아 주었고 난 가게를 풍경으로 나와 마스터, 바텐더들을 내 핸드폰에 담았다.


.


.


.


탑승수속을 모두 마치고 게이트 앞에 앉아서 떠오르는 타국의 태양을 보는 기분은, 꽤나 이상했다.


4일.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과 많은 기억이 있었다.


맛없는 음식도 먹고, 인파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아름다운 절과 도쿄의 전경, 신주쿠의 화려한 야경, 고래상어의 멋진 위용과 웅장했던 수족관, 재밌었던 사슴 공원과 여행 중에 만난 좋은 사람들. 그리고 히나.


이 모든 것이 내 기억을 구성하는 새로운 요소가 되어 내 경험이 되었다.


그리고 이 경험 속에서,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앨범의 중추가 될 문장이.


.


.


.




"오랜만이네!"




일본에서 돌아온 지 2일 뒤, 난 준성과 한규와 함께 술을 마시기로 했다.




"어 오랜만이네 천랑."




"야! 일본은 잘 갔다 왔어?"




나를 반기는 둘에게 난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잘 다녀왔지. 야 김한규, 고맙다. 오늘은 내가 살게!"




"어! 어! 진짜?"




"웬일이래? 너 입국한 지 얼마 안 됐잖아. 무리하지 마."




준성의 흥분한 목소리와 달리 한규는 나를 말렸지만 난 그의 말을 듣고 싶진 않았다.


한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내가 사는 걸로 이야기는 종결되었고, 우리는 삼겹살 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하하하! 아 진짜 지랄하지 마 김한규, 그나저나 랑아. 너 영감은 좀 떠올랐냐?"




"그러게, 좀 떠오른 게 있냐?"




그 말에 난 잠깐 심호흡하곤 말했다.




"이번 앨범은, 멈춘 사람이 자유롭게 나아가는 내용으로 만들 거야."




"이름은 정했고?"




"앨범 이름은.."




앨범의 중추가 될 문장이 있다.


'겨울밤에 멈춰버린 사람이 사람 간의 기억과 사랑을 통해 드넓은 수조를 깨고 다시 밤하늘의 ‘자신’으로써 우뚝 서는 내용'


그리고 이 문장의 제목은.




"시리우스가 추락하는 날."

"이야."

작가의 이전글천 갈래 길의 선택들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