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딜레마 속에서 탄생한 것은
탁-
둔탁한 물체가 떨어지며 나는 소리에 복도가 출렁였다.
떨어진 물체에서 나오는 밝은 화면이 내 발치를 밝혔으나 내 바로 앞, 불 꺼진 복도 앞에는 굴레의 어둠이 복도 한편을 유유히 지나가 어느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312호실.
6명의 사람들이 입원해 있는 입원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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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시각 3시 21분입니다. 이유정 환자분, 사망하셨습니다.”
말하는 내내 들었던 목 막히는 기분이 더 심해져 지금 무언가 소리를 내면 쏟아질 듯했다.
그것이 무엇일지,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그야 나는 의사니깐.
나는 삐- 소리를 내며 고요히 울리는 모니터를 끄곤 병실 밖으로 나왔다.
인턴 1년, 내과 레지던트 1년 동안 참 여러 일들이 많았지만 요새 내게 일어나는 일은 참으로 기이하고 불쾌한 일이었다.
바로, 어떤 ‘큰 올빼미’가 나타나면 그날 우리 병동엔 꼭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예후가 좋은 환자가 그 어떤 징후도 없이.
내 손을 거쳤던 환자들이 정채모를 괴력난신에 당하는 일은 참 속이 뒤틀리는 일이었다. 이 불쾌감도 벌써 4번째, 4명씩이나 올빼미가 나타난 후 죽어버렸다.
그 누구 건 나에겐 귀한 생명들인데.
그 빛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꺼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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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 선생님 괜찮으세요?”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새된 목소리에 옆을 보니,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한 간호사가 날 바라보며 걱정스레 말하고 있었다.
난 어제 3시간 쪽잠도 설쳤지만, 그래도 멀쩡한 듯 짱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괜찮습니다 유진 씨. 오늘로 당직 2번째니깐 내일까지 버티면 돼요!”
내 말에 유진은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미소 지으며 ‘그러다 쓰러진다.’며 농담을 던졌고, 난 적당히 받아치며 회진을 위해 의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잔 거 다 합치면 1시간도 채 못 잔 것 같아 피곤해 죽을 것 같았지만 지금까지 마시고 있는 레스비를 도합해 6캔, 6캔의 카페인 수혈로 2일 연속 당직의 피로를 극복하고자 했다.
물론, 이후에 3년 차에게도 한소리를 들은 걸 보면 티가 많이 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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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발표가 다 끝나고 곧 있으면 식사시간이었다.
식사시간을 패스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이내 잠도 못 잤는데 밥까지 먹지 않으면 술기고 뭐건 제대로 못할 것 같아 난 의국 사람들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야 오늘 밥 뭐냐”
4년 차 레지던트인 한석이 우리에게 묻자 1년 차 진석이 메뉴를 술술 읊었다.
“오늘 잡곡밥에 김치에 제육볶음, 미역국, 그리고 떡 나옵니다.”
“앵? 떡? 나 떡 진짜 좋아하는데!”
안 그래도 최근 밥들이 다 내가 안 좋아하는 것들이라 좀 힘들었는데 오늘 이렇게 좋아하는 메뉴가 나와주니, 가뭄의 단비를 맞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내 말에 옆에 있던 3년 차 안영이 거들었다.
“정제 탄수화물 많이 먹음 피곤해! 적당히 먹어.”
“하하! 적당히 먹을 거예요.”
그렇게 서로 티키타카 주고받던 사이, 어느새 줄이 한 바닥 서있는 구내식당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나란히 널어놓은 줄처럼 가지런한 걸 보니 벌써부터 답답했지만 그래도 의국 사람들과 함께 착실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다들 밥을 받아 한술 뜨려는 순간.
“띵 딩 띵-”
평소완 다른 좀 더 경직된 경쾌함이 건물 전체를 울렸다.
우리는, 아니 구내식당의 의료진 모두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이 방송은..
“B병동 중환자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
“B병동 중환자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
‘코드 블루’ 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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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동과 B동을 연결해 주는 구름다리로 4명의 백의가 펄럭이며 달려 나갔다. 그들의 구둣발 소리가 구름다리를 관통해 B동까지 닿았다.
어젯밤부터 굶주려온 배가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지만, 고작 이것 따위에 사람 목숨을 저울질한다면 그건 의사로서 자격이 없단 소리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난 식사시간은 내팽겨 치곤 현장을 향해 달려 나갔다.
B병동이 식당과 멀어서 도착하는데 4분이나 걸리고 말았다. 현장은 이미 질서로 정돈된 아수라장이었고 그 가운데에서 의사 둘이 번갈아가며 흉부압박을 하고 있었다.
가운이 더러운 걸 보니, 아직 초보 같았다.
“남진이랑 진석이는 가서 흉부압박 돕고 안영이는 라인 잡아.”
그렇게 말하며 한석은 현장의 지휘봉을 쥐었고, 우리는 그에 올라탔다.
벌써 30분째다.
30분도 더 넘었을까, 아무리 제세동기를 쳐도 환자의 리듬은 수평선에서 올라올 생각을 하질 않았다.
사람의 손짓에만 반응하는 심장이 너무 미웠다.
내가 환자의 삶을 쥐었는데, 지금 내 손아귀에 잡힌 환자의 삶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내 손 안에서 빛이 꺼져가는 것을 보는 건 정말 좌절하고 싶을 만큼의 고통이었다.
아직도 익숙해지려면 멀었나 보다.
“그만.”
한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정신없이 다음 세트를 준비하려다 동작을 멈추었다.
한석은 착잡한 표정으로 바이탈과 환자를 유심히 바라보다 자신의 손목을 보았다.
아마, 시계를 보고 있을 것이다. 환자의 사망선고를 위해 준비하는 마지막 차디 찬 작별인사.
“현재 시각 1시 1분입니다. 김한나 환자분, 사망하셨습니다.”
그렇게, 내 손에서 또 한 명의 빛이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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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일정이 완료되고 당직만 남은 내과 병동은 한산했다. 그 한산함이 아까의 질서 있는 아수라장과는 정 반대의 느낌이어서, 이 이질적인 평화는 정말 언제 겪어도 익숙지 않은 것이었다.
난 병동을 한 바퀴 돈 후 당직실로 들어와 내 침상에 엎어졌다.
약간 단단한 침대 시트조차 지금은 몇백만 원 부럽지 않은 침대 시트로 느껴졌다.
하지만 아까 그 일 때문인지, 영 쉴 기분이 아니었다. 아까의 감촉이 생생했기에 어떻게든 잊고 싶어 뭐라도 하기로 했다.
“남진아.”
“괜찮냐?”
한석의 말에 난 대충 그렇다 고개를 끄덕이곤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다.
잊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논문을 읽으려는데 어느샌가 내 손 옆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사이다였다.
“너 오늘 커피 수혈한 것 같길래, 사이다로 가져왔어.”
“일 있으면 깨울 테니깐 잠깐 자.”
그 말에도 난 그때의 감촉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베푼 호의에 떨떠름하게 반응하는 내 표정이 티 날까 싶어 다른 곳으로 살짝 시선을 돌리며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아뇨.. 지금 쉴 기분이 아니에요.”
“일이라도 해서 좀 잊고 싶어요.”
내 말을 조용히 듣던 한석은 자신의 침상에 풀썩- 앉으며 말했다.
“너 그러다 나중 가서 실수하면 어쩌게?”
“그럼 그게 더 문제인대.”
“.. 그리고 그거 니 탓 아니다.”
“물론, 우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니깐 절대 사명감과 긴장감을 놓으면 안 돼.”
“근대 진아.”
한석이 잠깐 말을 삼키고, 이내 정리하는 듯 생각하다 이내 말을 뱉었다.
“.. 세상엔 막을 수 없는 죽음도 있어.”
“그 환자분, 오토바이 사고 때문에 머리 열고 크게 수술하셨잖아? 다른 곳도 성한 곳 하나 없었고.”
“예후가 정말 안 좋던 환자분이었어.”
“그니깐, 죄책감은 가지되 너무 자책하진 마.”
“그러다 위축되면 아무것도 못하니깐.”
그렇게 말하며 한석은 내 어깨를 몇 번 두드리곤 자기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그 말이 참 감동이었다. ‘책임은 느끼되,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뜻.
그래, 이 일을 지속하려면 내 행위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필요하겠지.
그것이 만들어지려면 많은 임상경험이 있어야 할 것 이기에 아직 1년 차 반 밖에 못한 난 ‘더 많은 케이스를 공부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한석에게 힘차게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전한 뒤 사이다를 원샷했다.
아직 생명의 무게가 무거운 나에게 이 사이다는 참 가뭄의 단비 같았다.
그리고 침대에 눕자, 뒤척일 새도 없이 그대로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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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자고 나니 좀 나아졌다.
난 비몽사몽 한 정신을 깨고자 잠시 병동을 산책했다. 어젠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오늘 좋은 말도 들었으니 내일 당직까지 열심히 힘내기로 했다.
불이 드문드문 켜진 병동의 복도는 한산했다. 아까는 이질적이던 평화로움이 이잰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 코끝을 간지럽히는 공기도 기분 좋게 시원했다.
그걸 또 보기 전까진.
회색과 짙은 진회색, 검은색이 조화를 이루는 패턴과 깃.
윤이나는 흰 부리와 대조되게끔, 중앙으로 올 수록 짙어지는 검은색의 얼굴과 어둠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그 공허한 뚫린 눈은 정말 이질적이었지만 분명히 ‘올빼미의 머리’였다.
하지만 참 기괴하게도, 그 밑은 인간의 검은 실루엣 같은 것이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뚜렷한 그림자 같았다.
어찌 보면 190이 넘는 사람이 거대한 코트를 입고 몸을 웅크린 듯했다.
아이들이 보았다면 단번에 울음을 터트릴 비주얼이었다.
난 며칠 만에 목도한 그 굴레에 잠시 압도되었다. 오늘만큼 선명히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라 그 빛을 앗아가는 존재가 하나의 거대한 악신 같았다.
하지만 난 이내 속에서 감정이 끓음을 느꼈다.
5번째. 저놈이 나타나고 5명의 환자가 죽었다.
내가 삶을 쥐었던, 내가 빛을 주어야 했던 환자들을 저놈이 데려가 버렸다.
그것도 예후가 좋던 사람들을!
내가 감정에 북받쳐 올빼미를 향해 달려가자, 그것도 고개 숙여 나를 바라보았다.
바로 마주한 악신의 공허는 내 올라온 감정을 차갑게 냉각시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난 몰려오는 차가운 공포를 떨쳐내고 그것에게 말을 걸었다.
“너.. 너 정체가 뭐야?”
“뭐길래 네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자꾸 죽는 거야?”
내 말에도 올빼미는 미동도 없었다.
그러나 난 한번 입을 열자 점점 역류하는 감정을 올빼미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네가 나타나고 사람이 5명이나 죽었어!”
“뭐, 저승사자 그런 거야?”
“아니 그럼 왜 멀쩡한 사람들ㅇ”
순간, 올빼미의 눈이 커졌다.
안 그래도 얼굴의 3분의 1씩이나 차지하는 눈이 더 커지니 그 풍경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올빼미는 그 상태로 다시 표정같이 보이는 걸 고정시키곤 내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난 순간 놀라 뒷걸음질 쳤다.
이때, 뇌를 울리는 일정하고 가지런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발짐승은 데려간다.”
“네발짐승은 두 발로 걷는 자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목소리의 출처는 부엉이였다. 일정하여 감정이 일체 읽히지 않는 기괴한 목소리.
“네발짐승..?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람은 짐승이 아니ㅇ”
순간, 올빼미가 물에 퍼지듯 밝은 흰 빛으로 퍼졌다.
전과는 대조되는 순결한 빛깔에 난 잠시 넊을 놓는 것도 잠시 올빼미였던 것이 나에게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난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막으려 했지만 그것은 마치 유령처럼 내 몸을 통과해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마치 하늘의 전언 같은 일정하지만, 좀 더 큰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스스로 서 있는가?”
내 몸을 뒤덮는 한기를 떨쳐내고 뒤를 돌았을 땐, 이미 아무것도 없었다.
“서있는 가..?”
내가 방금 있던 일을 생각하기도 전, 누군가 날 부르는 다급한 소리에 그곳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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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호실 진안진 환자.
사망했다, 갑작스러운 심부전으로.
.. 올빼미가 나타나고 얼마 안 돼서.
그래도 의사로서의 의무는 수행해야 하니 난 어젯밤의 기억은 잊기로 했다.
회진을 돌아야 했으니 난 301호 앞에서 잠시 심호흡하곤 일을 시작하려 하는 순간.
휙-
뭔가가 날아왔다.
.. 신발이었다.
내가 신발의 출처를 찾아내기도 전, 그 주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먼저 밝혔다.
“너, 네가 우리 동생 봤냐?”
그렇게 말하며 돌진해 오는 이는 이번에 사망한 환자의 보호자였다.
보호자는 막 집에서 나온 건지 후리 한 차림이었다. 부리부리한 눈과 건들한 동작, 팔에 가득 찬 이래즈미 문신이 이 사람의 성격을 대충 말해주는 듯했다.
보호자는 내 눈앞까지 다가와 시뻘게진 눈으로 내게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내 동생, 왜 죽였어?!”
“아 잠깐만요 보호자님 진ㅈ”
내 만류에도 분노란 감정에 잡아먹힌 보호자에겐 들리지 않는 듯했다.
“진정하게 생겼어 너 같으면? 너희들 때문에 지ㄱ”
“죄송합니다.”
보호자의 요란한 소리 사이로, 연로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교수님이었다.
“동생분의 일은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교수님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표시했다.
하지만 보호자는 그것이 목을 드러낸 먹잇감인양, 더 날뛰기 시작했다.
다 죽여버릴 거라느니, 두고 보라느니.
무언의 내면을 잔뜩 토해내곤 사라졌다.
하지만 보호자를 말리는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저 보호자는, 입원 때를 재외 하면 단 한 번도 환자에게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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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하루 일과를 보내고 드디어 퇴근시간이 되었기에, 신나게 정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문으로 막 나와 오랜만에 맛보는 저녁공기를 잠시 즐길 순간.
아까부터 들려오던 사이렌의 주인공이 정문 옆 응급실로 들어왔다.
난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구급차에서 누구를 내리는지 보았다.
후리 한 차림, 문신, 익숙한 얼굴.
순간 나도 모르게 응급실로 발이 향했다.
응급실에서 처치실로 빠지는 환자, 아니 보호자를 보았다.
참 하늘이 정해준 우연일지 악연일지. 그래도 도움이 필요해서 온 사람이니 우리 과로 오게 된다면 최선을 다해야겠다 생각했다.
일단 분주한 응급실에 계속 있으면 방해되니 조용히 집으로 향했다.
보호자는 무슨 문제일까.
일단 옷도 멀쩡하고 외상도 전혀 보이지 않으니 내부의 문제일 것이다.
아니면 내가 못 본 외상 일 수도 있지.
큰 문제가 아니길 바라며, 난 집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집 안엔 올빼미가 있었다.
그 검고 큰 올빼미.
이미 해가 다 진 저녁의 어두운 집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빼미는 여전히 어둠 속 뚫린 구멍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머리만 선명한 채로.
다시 마주하는 기괴함에, 이번엔 용기가 없던 난 빠르게 현관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곤 문에 기대 잠시 심호흡했다.
“후.. 뭐야 저거? 왜 여기 있어..?!”
그때 마주한 것관 차원이 달랐다. 이질적 악신이 내 ‘집’에 들어와 있단 감각은, 일터에서 느낀 종류가 아니었다.
모골이 송연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피곤해서 잘못 본 것 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부정하며 문을 다시 열었다.
이번엔, 앞으로 와 있었다.
여덟 발자국 정도.
하지만 위치만 바뀌고 동상처럼 변치 않은 모습에 난 다시 현관문을 강하게 닫았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오늘은 당직실에서 잘까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 병원으로 돌아가면 너무 늦는다. 그리고 차라리 집에서 나온 게 났다. 병원이었음 무조건 한 명의 사상자가 또 나왔을 태니.
그래도 집에는 들어가야 했기에 난 남은 용기를 짜내어 현관문을 열었다.
천천히 열리는 문 틈으로, 집에 드리운 어둠과 그 중심을 차지한 공허가 보였다.
그리고 선명한 그 머리.
그것이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은 센서등의 미약한 빛이 있었지만, 올빼미가 주는 공포 앞에선 소용없었다. 그런 약한 빛은 내게 전혀 안위가 되어주지 못했다.
올빼미는 전처럼 날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 가지런하게 정돈된 목소리가 뇌를 뚫고 들어왔다.
“넌.”
“네발짐승은 아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늘 수수께끼 같은 말만 던지는 올빼미 때문에 또 머리에 과부하가 오려했다.
“하지만 넌.”
“스스로 서있지도 않다.”
내가 의문에 가득 찬 채로 그때의 ‘너는 스스로 서있는가’라는 말을 상기시킬 때쯤,
올빼미는 돌연 내 코 앞까지 목을 늘려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 순간, 미약하게나마 안위가 되어주던 센서등이 꺼졌다. 난 주황빛 가로등 빛이 어렴풋이 들어오는 어두운 빌라 복도에서 죽음의 악신과 독대하고 말았다.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내 떨리는 눈빛을 읽었을까, 그것이 오랫동안 지켜오던 침묵을 깨었다.
“.. 삶을 쥐고 천 갈래의 길들 사이 선택을 좌우하는 자여.”
“너에게 시련을 주었다.”
난 공포에 마비된 뇌가 다시 활성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시련이 무엇인지, 지독하게 감이 왔기 때문이다.
“.. 너…!”
“선택해라.”
그렇게 말하며 올빼미는 새하얀 바람같이 흩어졌다.
난 소름 돋는 감촉을 받아내며 상황이 정말 안 좋게 흘러감을 직감했다.
“진짜 큰일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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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뒤.
그때 그 보호자인 박천신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찾아 내과 병동으로 오게 되었다.
급성 폐부종 때문에 많이 위독한 환자였는데, 그래도 꾸준한 치료로 인해 의식을 찾은 후에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회복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이사항도 별로 없었고.
환자가 건장한 근육질의 24세 남성인 것도 한 몫한 듯하다. 그는 늘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꼭 우리에게 자랑하곤 했다.
.. 하지만 크게 좋은 일 같진 않아 다들 적당히 맞장구만 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지..
물론, 모든 게 순탄치만은 않았다.
천신 환자는 다루기 정말 힘든 환자였다. 싫은 건 무조건 안 하려 하고,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폭언과 때리려는 시늉을 일삼았다.
밤늦게까지 시끄럽게 하여 같은 방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 민폐 끼치는 것도 컸다.
얼마냐 심했냐면, 같은 호실을 쓰던 환자의 보호자가 도저히 못 봐주겠다며 한소리 할 정도로.
그럴 만도 했다. 324호엔 박천신 환자와 한이율 환자, 그리고 그녀의 가족 보호자뿐이었으니. 심지어 이율 환자는 간성혼수.
우린 늘 그럴 때마다 경고를 주었지만, 그는 콧등으로 들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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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분, 이것만 하면 돼요 이것만.”
“주사 한 번이면 끝나요.”
“아 시발 싫다고.”
“뭐 맨날 피 뽑아다 어디에 쓰게, 굿할 때 쓸려고?”
“환자분 이번에 혈액검사 하셔야 할 타이밍이어서 저희가 피 뽑는 거예요.”
“안 아프게 금방 뽑을게요.”
오늘도 천신 환자가 입원한 324호엔, 아영과 천신 환자가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늘 비 협조적 이였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금방 하긴 뭘 금방 해, 저번에도 한참 지랄하다 끝났구먼.”
“허.. 참.”
난 조용히 다가가 324호 안을 들여다보았다.
천신환자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머리에 손을 짚고는 골똘히 옆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야, 니들은 내가 우습냐?”
“시발 사람이 의사표현을 하면 들어 처먹어야 할꺼야냐.”
“환자분, 계속 이렇게 욕 하시면 안ㄷ”
분위기가 이상해짐을 느낀 난 바로 병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천신 환자가 더 빠르게, 아영의 양 어깨를 강하게 부여잡으며 그녀의 면전에 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우습냐고 시발!!”
“잠깐만요!”
“진정하세요 환자분!”
내가 금방 달려들어 환자의 한쪽 팔을 떼어내려 했지만 힘이 어찌나 센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가 옆에서 팔을 잡아당긴 것을 눈치챈 천신 환자는, 나에게 눈을 부라리며 내 멱살을 잡고 마구 욕을 퍼부었다.
“자꾸 왜 내 성질을 긁으러 들어 너희들이 뭔데.”
“나 생활했던 사람이야.. 근대 시발 얌전히 좀 쉬려 그랬더니 왜 가만히 있으려는 내 성질을 건드냐고 왜!!”
그렇게 한참 열변을 토하던 그는 분을 이기지 못했는지, 자꾸 허공에 소리를 질러댔다.
내 멱살이 잡힌 문제가 해결된 건 여러 명의 의국 사람들과 시큐리티 직원들이 달려들고 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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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 씨, 괜찮아요?”
한참 소동이 가라앉고, 병동에도 불이 가라앉은 저녁이었다.
아영은 멍 때리며 모니터를 바라보다 나의 목소리를 듣곤 화들짝 놀랬다가, 이내 웃어 보였다.
하지만 마치 잘 짜인 가면 같은 미소였기에 난 아영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괜찮아요 저는.”
“.. 남진 선생님은요?”
“저야 늘 괜찮죠!”
난 그렇게 말하며 자판기에서 뽑아온 레스비를 그녀에게 주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약간 응어리져 있었던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 아까 미안했어요.”
“좀 더 빨리 말렸어야 했는데.”
레스비를 받아 든 아영은, 잠시 레스비를 보다 이내 배시시 웃었다.
“남진 선생님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사과 안 하셔도 돼요.”
그러며 아영은 내게 귀를 대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에 맞춰 귀를 가까이 하자, 아영은 조용한 병동에 울리지 않게끔 작게 속삭였다.
“미친 건 저 사람인대 왜 남진선생님이 사과를 해요.”
“해도 저 사람이 해야지.”
우리는 이내 가까이 있던 얼굴을 때고 조용히 키득거렸다. 이 시간엔 다들 쉬는 시간이니 시끄럽게 할 수도 없거니와, 그 환자가 들으면 어쩌나 싶어 크게 웃을 수 없었다.
“근대 선생님, 이대로 괜찮을까요?”
“뭐가요? 아, 아…”
난 머릿속에 바로 스치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한이율 환자와 보호자.
이 둘은 1개월간 천신 환자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기에, 호실 이동이 필요했지만 남는 호실이 없는 상황이었다.
“자리가 빨리 나야 할 텐데..”
“그러게요..”
우린 짧은 우려를 표하며, 이내 각자의 할 일로 돌아갔다.
당직실로 돌아와 꺼진 흑색의 모니터를 보았다. 그곳에 비췬 내 실루엣은, 내 다짐과는 달리 많이 지쳐 보였다.
‘차별 없이 사람을 대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구나’.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여러 번 새로이 다짐하고 다짐해도 계속 뼈저리게 느끼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난 의사이다. 사람의 삶을 쥐고 빛을 살리는.
그것이 누가 되었던지간에 인간의 생명이라면 그 빛은 응당 살려야 마땅한 것이니깐.
그렇게 생각하며 난 오늘도 논문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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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한이율 환자분 병실 자리 났나요?”
회진을 돌기 전, 난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질문했다.
벌써 일주일에 한 번씩 묻는 내 질문에도 교수님은 질리는 내색 하나도 없이 있느냐 없느냐만을 대답해 주었다.
물론 그동안 한자리도 나지 않았기에 질문은 끊이질 않았다. 오늘까진.
“났다. 드디어.”
“자리가 어제 났어, 바로 아래층으로 이동될 예정이다.”
그 말에 회진을 준비하며 복도를 걷던 이들 모두가 기뻐했다.
하지만 환자의 보호자에겐 철저히 입단속을 시킬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그 폭탄 옆에 바람이 들어가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니깐.
물론 보호자가 말 많은 사람이란 것이 좀 걸렸지만..
그래도 시킨 것은 늘 잘 지켰던 분이니 이번에도 잘 따라와 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회진을 도는 동안, 아영이 보호자를 불러내어 병실 이동 소식을 알렸다.
꼭 이동할 때까지 비밀로 하겠다 하고, 일단락되었다.
보호자는 연신 우리에게 감사를 표현하며 ‘아이고 내가 나중에 뭐라도 해드려야겠네’ 라 말하고 돌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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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이율 환자가 드디어 천신 환자로부터 자유로워진 날이었다.
그 환자 방에는 그가 퇴원할 때 까진 아무도 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날 나는 3연속 당직 끝에 오랜만에 맞는 휴식이라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날, 시련을 주겠다 말한 이후 올빼미는 보이지 않았다.
내 주변을 맴돌던 악신이 사라진 것은 기뻤지만 아주 종종 이 느낌이 바람도, 파도도 한 점 없는 고요한 바다와도 같았다.
언제 어디서라도, 무언가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미지의 공포가 엄습할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면 ‘어쩌면 난 그 시련을 잘 극복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때의 올빼미는 늘 일상에 묻혀가는 그렇고 그런 기억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 기억이 6개월 만에 미지의 공포를 상기시키기 위해 나타났다.
참 오랜만에 보는 여전한 모습은 예전처럼 무섭진 않았지만 주황빛 가로등 아래 그 눈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이번엔 또 어떤 죽음을 고할까, 혹은 어떤 시련이 있을까.
또 저 악신이 누구의 빛을 빼앗을까였다.
한결같은 올빼미의 모습처럼 내 고민도 한결같았다.
“… 이번엔, 무슨 용건이야?”
내가 용기 내어 말했다.
올빼미는 나와 한참 눈을 마주치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일어서려는 자여.”
“너의 빛이 시작되었도다.”
“빛..?”
올빼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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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안 좋았다. 정말 심각하게.
324호실에 있던 천신 환자, 아니 그놈이 무슨 생각이었는진 모르겠지만 202호실로 이동한 이율 환자와 보호자를 찾아가 폭행을 휘둘렀다.
보호자는.. 보호자는 그놈 때문에 뒤통수를 강하게 부딪혀 뇌진탕이 일어났다.
땅딸막하고 통통한 채형이었는데, 정황상 머리를 붙잡고 바닥에 내리 꽃은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CT사진이 이렇게 개판이 날리 없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율 환자였다.
그 환자는, 간경화 때문에 간성 혼수가 온 환자였다. 출혈 위험도 크고 정신조차 몽롱한 환자를 폭행한 것이다.
옆자리 환자의 증언에 의하면, 의료진이 와서 말려도 그조차 밀쳐내고 끝까지 짓밟고 걷어찼다 말했다. 시큐리티에 제압당할 때까지.
그때 당직이던 진석이 환자를 감싸서 망정이었지 아니었음 수일 내에 사망했을 것이다.
물론, 상태는 심각했다.
이율 환자는 내출혈, 보호자는 두개 내 출혈로 나란히 수술방에 들어가 있었다.
병원에 도착해 새벽에 불이 들어온 수술방의 빨간 ‘수술 중’ 간판을 보며, 나 자신의 나약함과 안일함에 깊은 분노를 느꼈다.
‘나도 현장에 있었으면 좀 더 나았을까.’ ‘보호자에게 미리 말하지 말걸 그랬나.’ ‘애당초 징조가 있었는데 왜 눈치를 못 채었을까.’
수많은 의문과 분노의 소리가 내 머릿속을 수놓았다.
.. 지금 무언가 소리를 내면 터져 나올 것 같아 난 당직실에서 조용히 내 감정들을 죽여 철창에 쑤셔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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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이 끝났다. 그럭저럭 하게.
둘 다 중환자실로 이동했고, 흰 빛에 정제된 공간에는 이재 보호자인 한미자 환자의 이름과 한이율 환자의 이름이 동시에 새겨졌다.
그것을 볼 때마다, 그때의 죽여서 철창 안에 쑤셔 박은 감정들이 요동치는 듯했지만 난 의사다. 내 손에는 지금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의 삶이 쥐어져 있다.
하지만.
내가 과연 그 자격이 있나?
내 열띤 노력에도 그 삶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데.
.. 내가 더 이상 누군가의 삶을 좌지우지해도 되는 것인가?
‘삶을 쥐고 천 갈래의 길들 사이 선택을 좌우하는 자여.’
‘너에게 시련을 주었다.’
그래, 드디어 시작됐는구나. 이 망할 시련이.
내 근본부터 파고들어 나를 파괴하려는 시련이.
그렇게 온갖 죄책감과 허무함의 파도에서 표류하던 순간.
“띵 딩 띵-”
“A병동 내과 병동. 코드 블루, 코드 블루.”
“A병동 내과 병동. 코드 블루, 코드 블루.”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난 시련의 닺을 억지로 내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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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은 강재 퇴원 당했다.
당연했다. 그런 일이 있고도 병원이 받아줄 리 도 없고, 경찰에 넘어가는 건 너무 당연지사 한 일이니.
끌려가는 동안 ‘다 죽여버릴 거야.’라는 말을 수차례 했다곤 하지만, 그것은 내겐 그저 범죄자의 단말마에 그치지 않아서 크게 와닿진 않았다.
그놈 때문에 모두가 많이 힘들었다.
그때 당직을 섰던 진석과 한석은 많이 다쳐 회복기간을 가져야 했고.
교수님은 늘 한결같이 행동하려 하였지만 충격이 컸는지, 그 일이 나오기만 하면 말이 느려지고 늘 우리에게 미안하다 사과했다.
아영은..
아영은 참다 참다 엉엉 울며 너무 미안하다고, 어떻게 죄 없는 선한 이가 저런 몰골이 되었냐며 자신이 전달을 잘못한 걸 지도 모른다며 슬퍼했다.
심지어 이율환자는, 예후가 나쁘지도 않았다.
보호자의 도움이 있다면 걸을 수 있을 정도의 간성 혼수였다.
재발률이 좀 있지만 충분한 기간의 치료를 받고 관리를 잘하면 문제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 괜찮다.”
한창 그런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릴 무렵, 내 어깨에 간헐적으로 닫는 투박한 손과 먹먹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한석이었다.
한석은 얼굴에 붙은 거즈를 매만지며 말했다.
“간호사 함부로 대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미친놈.”
“.. 그거 아냐 진아?”
“내가 전에 세상엔 뭘 해도 막을 수 없는 죽음이 존재한다고 했잖아.”
“근대 또 살 사람은 뭘 해도 살아나더라.”
그 말에 그놈이 생각났다.
급성 폐부종으로 한동안 중환자실에 있던 놈.
상당히 위독해서 6개월간 의료진들을 신나게 고생시켰는데, 회복 후 이런 일을 벌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참, 그렇다.
살 놈은 또 사네.
왜 악인은 살아나고, 선한 자는 죽어가는가.
그것도 악인에 의해.
“… 한이율 환자, 의식 차렸어.”
“네?!”
난 깜짝 놀라며 말했다.
중환자실을 당장 이틀 전에도 다녀왔는데, 그때 까지도 내 눈에 이율 환자의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 몰랐어? 아 너 그때 없었나?”
“아 당직 아니었구나 어제.”
난 어안이 벙벙해진 체 한석의 말을 듣기만 했다.
“어제 정신 차리셨어.”
“확인해 봐 한번.”
그 말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환자실로 뛰어가 이율환자를 만나러 갔다.
진짜다, 진짜였다. 이율 환자가 정신을 차렸다.
날 보며 눈웃음 짓는 그녀의 모습은 약간은 풀려있었지만 그래도 그때와 똑같았다.
난 내가 쥐었던 한 사람의 삶이, 아주 작지만 바스러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환자를 한참 보았다.
그때 난, 꼭 이율 환자의 새 삶을 찾아주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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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세 번 연속 당직의 첫날이었다.
3 연속 당직의 막막함을 느끼며 난 논문을 쓰고 있었다.
안영은 응급실에 있었고 나 홀로 당직실에 남아있었다.
In Car TA라고 했다 차량 내부에서 심하게 다친 상태. 아마도 안영이 오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했다.
난 기지개를 한번 켠 뒤, 논문을 다시 작성하려 했다.
“띵 딩 띵-”
“B병동 중환자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
“B병동 중환자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
‘코드 블루’
.. 중환자실에서.
난 재발 그 희미한 빛이 위독하지 않기를 빌며, 빠르게 현장으로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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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빨리 도착했다.
한 인턴으로 보이는 의사가 먼저 흉부 압박을 하고 있었고 야간인지라 이전보단 적은 직원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환자를 소생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난 인턴과 교대하며 환자의 얼굴을 보았다.
한이율 환자.
내가 원치 않았던 최악의 시련이 발생하고 말았다.
하지만 시련에 대한 두려움 따윈 생명 앞에선 사치였다. 닺은 이미 내려갔고 이 혼돈의 바다에서 익사할 순 없었다.
난 주저 없이 흉부 압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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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째. 에피네프린과 아미오다론을 투약하고 15분이 지났다.
하지만 모니터의 리듬은 여전히 제세동과 흉부 압박에만 반응할 뿐 지속적으로 심실세동의 파형을 그렸다.
당연히 산소 포화도도, 혈압도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심장의 리듬을 보여주는 저 선의 율동만이 환자의 소생률을 알려주고 있었다.
인턴 2명, 1년 차 1명이 돌아가며 진행하는 상황이라 2년 차인 내 책임은 더욱 막중했다.
아영은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리도카인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난 ‘제발’이란 진심을 담아 힘차게 흉부 압박을 시작했다.
그리고 25분쯤 지났을까.
“치세요!”
제세동기에 맞춰 이율 환자의 몸이 오르내렸고 난 간절한 마음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선, 플랫 한 일자의 선.
귀를 울리는 죽음의 경종이 나를 더욱 몰아붙이게 만들었다.
벌써 35분째.
심정지의 순간부터, 제세동도 무의미했다.
오로지 투약한 약품들이 제발 효능을 발휘하길 기도하며 계속 심장에 숨을 불어넣는 사이클을 돌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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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환자들 중 내 손을 떠난 이들이 몇이었더라.
두 자릿수를 넘어가면서부턴 일일이 세지 않았다. 최근 레지던트 2년 차를 갓 달았음에도, 아직도 내게 죽음은 너무나 불쾌하고 마주하기 싫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 감정에도 불구하고 그 죽음의 순간들은 내 머릿속에 깊이도 박혀버렸다.
동시에 참 좋은 기억도 있었다. 환자들이 완전히 회복하여 떠나는 것.
그러며 환자들이 순박한 감정으로 생에 대한 감사를 전할 때의 그 기억도 머릿속에 참 깊이 박혔다.
그렇기에 생과 사라는 양 극단의 선택지 사이 수많은 길을, 내가 환자의 삶을 쥐고 선택하는 직종을 택했다.
그 길은 때로는 바스러지고, 울퉁불퉁하고, 끊어지고, 좁을 때도 있었지만.
내가 선택한 길로 환자들이 끝없이 나아가는 것을 보면 난 진정 이 직업의 보람을 느꼈다.
그래서 난 내 손으로 겨우 붙잡은 희미한 삶의 빛에, 꼭 예쁜 길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러고 싶었다.
“저기.. 선생님..”
1년 차가 침울한 표정으로 시계를 한번 보곤 내게 말했다.
“벌써 1시간 째에요..”
난 모니터를 보았다.
모든 게 끝난 바다처럼 고요한 직선과 백색의 공간을 채우는 죽음의 음
그렇다. 끝이다.
난 입을 열면 무언가를 토해낼 듯하여 입술을 계속 달싹였지만, 환자의 마지막을 이 정신 나갈듯한 삐- 소리로 보낼 순 없었다.
이내, 감정을 다시 죽여 꾸겨 넣은 뒤 난 겨우 입을 열었다.
“… 현재시작 4시 41분입니다.”
“한.. 이율 환자분, 사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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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자리에 있기 힘들어 내과 병동으로 도망치듯 걸어왔다.
그렇게 터덜터덜 돌아와서 드문드문 밝혀진 병동을 걸었다. 그리고 그 끝에 한 복도의 끝, 그 어둠에 먹힌 아이보리 색 벽까지 다다랐다.
올빼미와의 첫 만남이 문득 생각났다.
그때 올빼미와 첫 대화를 나눈 장소, 거기서 그것을 처음 봤었지.
그리고 심정지가 터졌다. 이강진 환자.
… 그 사람도 입이 참 걸었다.
그리고 이어진 4명의 죽음.
다들 착하게 구는 이들은 아니었다.
간호사를 성추행하고, 지속적으로 물건을 던지며 폭행을 저지르고, 폰으로 하는 불법 토토를 다른 환자들에게 강요하거나 도벽이 있는 등
우리들을 정말 많이 곤란하게 했던 환자들이었다.
그래도, 그런 악한 이들이라도 괜찮았다.
악인도, 선인도, 그 중간도 모두 같은 생명이니깐.
의사라면 마땅히 그들을 구할 의무가 있으니깐.
.. 그리고 내가 선택해 준 길로 나아가는 이들이, 조금은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줬음 한다는 오만한 생각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잰 혼란이 왔다.
그놈. 그놈은 애먼 사람을 죽이고 한 명을 혼수상태로 만들었다.
그것도 원인조차 불명이었다. 그저 제 분에 못 이긴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는 생각에 울분이 차올랐다.
내가 과연 그런 이들에게 길을 만들어 줘도 되는 걸까?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사는 세상에서.
난 죽어가는 선한 이와 소생하는 악인 중 모두를 다 살려야 하나?
선한 자는 어찌하여 나약하고 악인은, 그 자 들은 왜 그리 강하고 악한가.
“선택하는 자여.”
이때, 머리를 울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았다.
그곳엔 큰 올빼미가 있었다.
“세상은 뒤집힌다.”
“두 발로 걷는 자이건, 네발짐승이건.”
“언제든지 그들은 뒤바뀔 수 있다.”
“.. 선택에 재약은 없다.”
올빼미는 여전했다.
닺을 내린 채로 여기저기 풍화되고 부서진 나와 달리, 8개월 전과 같이 한결같았다.
그리고 올빼미는 일정하지만 중압감 있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빛의 여정은 진행되고 있고.”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며, 언제나 처럼 사라졌다.
난 또다시 내게 상기된 ‘시련’이라는 단어가 너무 무서워, 얼굴을 부여잡고 주저앉아 숨죽여 울었다.
쌓여있던 죽은 감정들이, 더 썩어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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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퇴근길이었다.
병원 근처에서 살 것이 있어 잠시 근처 가게를 들리느라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난 빨리 집에 가고 싶어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왜 소리가 엇박으로 나지?
내가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난 그저 기분 탓이겠거니 생각하며 걸어갔다.
저벅-
엇박으로 걷는 소리가 또 들렸다.
이번엔 뒤돌지 않고 앞에 있던 전봇대 반사경을 보았다.
… 그놈이었다.
어떻게 여기 있는진 둘째 치고, 위험한 상황인 듯하여 바로 몸을 돌려 그놈의 이름을 외쳤다.
“박천신!”
내가 이름을 부르자 그놈은 전봇대 뒤에서 조용히 나오며 날 노려보았다.
“…”
“늬들.”
“늬들이 내 동생 죽인 거 맞잖아.”
“그래? 안 그래.”
뜬금없는 시작.
폐부를 파고드는 시작이었지만, 저딴 사람에게 듣고 싶진 않았다.
“아뇨, 저흰 최선을 다했습니다.”
“허, 참.”
내 말에 그는 기가 찬 듯 웃더니 이내 건들 거는 자세로 내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럼 난 왜 쫓아냈냐?”
철창 안의 감정들이 미친 듯 비명을 질렀다.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지만 최대한 참았다.
“당연하죠, 그런 범법행위는 병원을 포함해서 그 어디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범법? 아니 시발 화 좀 낸 게 뭐가 범법이야.”
“애당초에 내 성질 긁은 게 누군대?”
“늬들이랑 그 아줌마 아냐, 옆에 삐리한 년은 웅얼거리는 거 쳐 듣기 싫다 해도 계속 지랄이고.”
“그리고, 애당초에 전재가 잘못됐어. 병신새꺄.”
애 측조차 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마치 끈 없는 야생 들개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 모습이 두렵다기보단, 더럽고 추하여 마주치기 싫은 기분이었다.
“난 복수를 한 거야.”
“그렇게 날 화나게 만들었으면 각오는 하고 있었어야지..”
“내가 그거 모를 줄 알고? 그 돼지 같은 아줌마눈에 다 티가 나던ㄷ.”
“그게 할 말이야 지금?!!”
기어코 철창을 뚫은 감정들이 내 목을 타고 한 번에 터져 나왔다.
“고작 그딴 이유로 거동도 힘든 약자랑 나이 든 중년 여성만 골라 패?! 사람이란 게 정도가 있지.”
“지 분노조절 하나 못해서 남 때려 패고 욕하고 죽이려 드는 게 사람새끼야?!”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지금 사람하나가 죽었어!! 알아?!!”
“내 손에서! 내가 사망선고를 했다고 내 입으로!!”
그동안 죽여왔던 썩고 문드러진 감정들이 내 입 밖으로 나오며 지독한 냄새를 뿜었다.
하지만 한번 토해내기 시작한 철창 안 감정들은 멈출 새 없이 계속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멀쩡하게 살 수 있던 사람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던 모녀를 네가 하룻밤만에 니 감정쓰레기통으로 쓰고 반쯤 죽인 거야.”
“동생? 자꾸 그 가당치도 않은 거 들먹이는데, 면회도 한 번밖에 안 왔으면서 무슨 혈육타령인데?”
“그거 그냥 니 변명거리잖아. 화풀이건, 뭐라도 뜯어낼 목적이건. 아니면 그것 하나 가지고 네가 우위에 섰다는 쓰레기 같은 자존심 부릴 목적이겠지”
“.. 너 같은 것도 환자라고 취급했던 게, 너무 화나..”
내 말을 가만히 듣던 그놈은 약간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마치 짐승이 낮게 으르렁 거리는 날것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어쩌라고?”
“애당초 내 옆에 그 돼지년이랑 삐리한 년을 두지 말던가.. 지들이 관리 못해놓고 지랄이야.”
“너도 내가 만만하냐? 너도 내가 죽여줄까?”
전혀 문맥이 맞지 않는 말에 난 진지하게 이 사람을 진즉에 정신과에 컨설팅했어야 했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땐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이 정도로 막장이고 무식한 짐승일 줄은 몰랐다.
난,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네가 이런 사람을 살리려 했구나.
“대답 안 해?”
“네가 뭔데 날 무시해!!!”
그렇게 말하며 그놈이 고성을 지르며 네게 달려왔다.
나는 진짜 한대라도 칠 각오로 준비하려던 순간, 그의 목이 크게 배여 나갔다.
당황했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물칠 한 종이 위로 검은 물감을 올리듯, 올빼미가 나타났다.
“선택에 재약은 없다.”
“나아갈 빛을 골라라.”
그놈 뒤에 올빼미를 보고, 다시 밑을 보았다.
목에서 치솟은 피의 맥동을 보니, 분명 대동맥을 다친 것일 거다.
아까까진 이런 사람을 살리려 했나라는 회의감에 빠졌지만, 지금 이 사람은 분 단위가 위급한 환자가 되었다.
뒤집힌 세상.
죽어가는 나약한 선한 이와 소생하는 강한 악인 대신.
죽어가는 나약한 악인과 건강히 살아있는 선한 이.
드디어, 진정한 시련의 끝이 도래했다.
이런 악인을 살리는 게, 진정 옮은 행동인가?
그럼 여태까지 올빼미가 말한 네발짐승은 다 악인이었나?
내가 악인을 살리면 올빼미가 다 데려갈 탠데, 그렇담 구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오히려 잘된 건가.
아니, 그전에 의사로서 죽어가는 생명을 등한시하는 게 자격에 맞는 행동인가?
난 히포크라테스에게, 사람들이 가진 삶의 빛을 찾아주는 인생을 살겠노라 맹세했다.
그런 인생을 지금 부정해야 하나?
.. 하지만, 이 사람은 다시 산다면 또 누구의 삶을 부술까.
이 사람은 다시 살아 누구를 또 죽일까.
삶의 빛을 파괴하는 짐승을 사람취급 해주는 건, 옮은 일인가?
내 눈앞엔 흑과 백. 그 순결한 빛 사이 수천 가지의 어스름한 빛들이 있다.
난 지금 이 수천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새하얗게 빛나는 그 순결한 빛을 쫓아 결국 순교당할 것인가.
어슴푸레한 어딘가, 나만의 정답을 찾는 길고 고통스러운 순례자의 빛을 택할 것인가.
칠흑 같은 빛, 모순된 빛을 좇아 처음부터 다시 지독하게 고독한 인생을 살 것이냐.
빛나는 신념과 고통
지옥 같은 시련의 굴례.
시작의 허무와 고난.
난, 나는…
.
.
.
고개를 들었다.
올빼미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그것을 한참 바라보았다.
더 이상은 그 공허가 무섭지 않았다.
악신으로도 느껴지지 않았고, 죽음의 굴레라고 도 생각되지 않았다.
난 그것에게, 정체를 물었다.
“너, 뭐야?”
“저승사자.. 같은 건 아니지?”
“… 산자들의 길잡이이자 귀신이 된 짐승들의 주인이다.”
“산자는 스스로 일어서게 만들고, 짐승은 잡아간다.”
“..? 무슨 뜻이야?”
올빼미는, 늘 그렇듯 고요하게 말했다.
“음양.”
“난 귀(鬼)이자 생(生)이다.”
난, 갑자기 튀어나온 실감 안나는 계념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난 안중에도 없이 올빼미는 말을 이어나갔다.
“.. 삶을 쥐고 천 갈래 길들 사이 선택을 좌우하는 자여.”
“빛을 쫓아 스스로 일어섰는가?”
그 말에, 잠시 호흡이 멈추는 듯했다. 그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지만, 난 내가 선택한 빛을 믿기로 했다.
난 숨을 한번 가다듬고 대답했다.
“… 응.”
“축하한다.”
“나아가라 일어선 자여.”
“너의 빛을 향해.”
그렇게 말하며 올빼미는 흩어지듯 사라졌다.
그것이 사라진 지금, 내겐 내가 첫 발을 내딛을 빛이 보였다.
무슨 색인지는 나만이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