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낙원이 임할 때 나를 기억하지 마소서 E.02

아자젤이여 아자젤이여, 광야에서 태양을 좇다 죽을 어리석은 대속제물이여

by Quasar


엄마가 나갔다 들어온 그날, 엄마에게 종교 서적을 들이밀며 따졌다.


‘집에 들인 이상한 조형물부터 주말마다 사라지는 것, 이번에 들여온 이 책 모두가 사이비와 연관된 것 이었느냐’라고.


도대체 주말엔 어딜 가는 것인지, 그럼 거긴 옆 동 아주머니가 데려간 것인지 걱정에서 파생된 분노를 참으며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숨긴 빵점 시험지를 들킨 어릴 적 나의 모습 같을 거라 생각했는데, 엄마는 너무 태연한 표정으로 내가 꽉쥐어 주름이 생긴 종교 서적 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지한아. 너 손.”

“손에 그거 뭐 하는 짓이니.”






난 그 말에 내 손을 보았다.


내 손엔 ‘천국 문을 두드리는 방법’ 이란 책이 둥글게 말려 구겨져있었다.


내가 손을 피자 둥글게 말린 책이 펴졌고,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낚아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며 책을 몇 번 만지작 거렸다.


안을 들여다보니 휘어진 책을 반대로 휘어보기도 하고, 구겨진 표지를 손바닥으로 쭉쭉 피기도 했다. 그러다 무언가 불만족 이었는지 엄마는 책을 ‘쾅’ 소리 나게 내려놓곤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그러며 내게 바짝 붙어 부라리는 눈으로 삿대질했다.




“너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성물을 이렇게 다뤄도 돼?!”

“만진 님이 쓰신 말씀을 저렇게 취급해도 되는 거야?!! 네가 지금 아무리 신을 안 믿는다 해도 그렇지.”

“너 때문에 만진 님의 말씀이 더러워졌잖아!!”




만진. 열두 지파 장로회의 창시자.


이 말들이 모두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면 상황이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대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엄마, 엄마 내 말 좀 들어봐.”

“지금 그 만진이란 사람 열두 지파 교회란 사이비의 수장이야!”

“그 아주머니가 데려가는 거지 거기?”

“찾아보니까 거기 너무 위험한 곳이야. 그런 곳 데려가는 아주머니도 수상하고 엄마도 지금 너무 위험해 보여! 그니까 가지ㅁ”




짝-




살과 살이 맞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내 고개가 엄마 손의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고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달아오른 뺨에 손을 가져다 대어보았다.


뜨거운 감정의 잔해가, 파편이 내 볼에 박혀 열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게 지금 무슨 말버릇이야!! 어디서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내가 맞은 뺨에 손을 올린 채 가만히 있자, 엄마가 이내 안절부절못하며 입을 열었다.




“헉… 헉..”

“아… 아… 아냐 지한아 오해야.”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내 두 손을 잡아주었다.


맞잡은 두 손은 따스했지만 난 이 따스함의 출처를 찾을 수 없었다.




“네가 뭘 잘못 찾아본 거야. 그 사람들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데..!”

“거기서 기도하면 아빠도 천국에 가고 너도 잘된다 그랬어. 지금 여기서 고통받고 허무하게 죽는 것이 아닌 죽어서도 새 삶을 찾을 수 있다고!!”

“50년 모태 신앙인 내가 인정한 곳인데, 그럼 그게 정답이지.”




그리곤 엄마는 나를 부서질 듯 꽉 끌어안았다.


식탁에 십자가를 휘어감은 뱀이 눈에 들어왔다.




“널 위해서라면 난 불구덩이에도 들어갈 수 있어.”

“그곳이 사이비건, 어디건 중요치 않아. 진실은 앞길을 방해할 뿐이야.”

“중요한 건, 너야 지한아.”




그날, 사고가 있던 날 내 뺨을 쓰다듬던 엄마의 손길은 참 따스했다.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 투박한 손길이 사라져도 난 엄마가 주는 사랑의 온기로 여태 얼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 몸 전체를 휘감는 이 부서질 듯한 온기는 무엇일까.


이것 또한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이것 또한 ‘헌신’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십자가를 휘감은 뱀. 그것은 사실 출애굽 때 사람들이 여호와를 원망하는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독사에 물려 죽어가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하려 여호와의 허락을 받은 모세가 만든 것이었다.


원래는 생명을 살리는 존재였지만, 내게 저 조각상은 뱀에 물려 죽어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는 존재가 아닌 그들이 숭상하던 우상숭배에 가까웠다.


그래서 불쾌했다.


아무 생각 없이, 권능을 보여주었단 이유만으로 우상숭배를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엄마가 별 반 다르지 않아 보여.


그들의 말로를 알고 있던 나는 그 자체만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은 내게 예전 성경에서 보았던 한 구절을 상기시키게 했다.


‘히스기야가 놋뱀을 부수고 말하길, 이것은 느후스단이다’


느후스 단, 다시말해 놋조각.


이 그 놋조각을 부수지 못한다면 미래가 없을 것을 안다.




하지만, 하지만 우리가 신을 원망하기나 했었나?


간절히 빌었던 지난날의 나와 엄마를 짓밟은 것은 누구였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얼마나 아멘을 외쳤는가.


우리 가족은 정말 평범하고 신실한 삶을 살았는데, 그럼 우리 아빠는 왜 그 독사인 불뱀에게 물려 죽었을까?


그렇다면, 그렇다면 저 놋조각은 엄마에겐 정말 그저 놋조각에 지나지 않을까?




엄마가 날 부실 듯 감싸 안고 있는 이 온기는 이질적이었다. 출처를 알 수 없어 두려운 온기.


하지만 이 조차 응답 없는 신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비명이라 생각하면, 난 나를 잡아먹을 듯 조여 오는 이 두 팔을 뿌리칠 수 없었다.


내가 아무 행동이 없자 엄마는 이내 팔을 풀더니 내 양팔을 잡고 입을 열었다.


그 모습에서 사뭇 엄마의 거죽을 뒤집어쓴 다른 이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지한아, 이럴 거면 지한이도 같이 가자 응?”




“잠깐 엄마!”

“난, 난 싫ㅇ”




“어딜 말대꾸야!”

“아.. 아 아냐 미안 지한아. 하지만 거길 가야 너도 구원받을 수 있어.”

“그니까 같이 가자 응?”




두려운 그 말에 대답도 못한 채, 난 엄마를 뿌리치곤 집 밖으로 도망쳤다.


10월의 차가운 공기에도 내 뺨을 식히는 건 나의 눈물뿐이었다.


.


.


.




무작정 걸어 나갔다. 방향이 어찌 되었건, 장소가 어찌 되었건.


그저 이 비명의 물결로 가득 찬 머릿속을 청소시킬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다.


그렇게 끝도 없이 걷던 나는 어느새 집과 좀 떨어진 공원에 도착했다.




슬슬 다리가 아팠기에 공원 밴치에 앉아 쉬려 했다.


하지만 밴치 위에 앉아 쉬자 또다시 아까의 기억들이 고개 들며 나에게 질문세례를 던졌다.




‘엄마는 괜찮은 걸까?’ ‘뭐가 문제였을까, 내가 뭔가를 잘못했을까?’ ‘앞만 보느라 뒤를 보지 못한 탓일까?’




수많은 ‘자기혐오’와 ‘합리화’라 적힌 종이비행기 무덤 속에서 결국 이 문장이 도출되었다.




‘저것도 결국, 나를 위한 말일까.’

‘그렇다면 그것도…’




“지한아 여기서 뭐 해?”




“왁!”




옆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에 그곳을 보니 다예가 서 있었다.


다예는 눈물범벅에 뺨이 빨간 나를 보며 ‘헉’ 소리를 내었다.




“야 너 왜 그래! 괜찮아?”

“어디서 맞은 거야? 기다려봐!”




다예는 급히 자신이 허리에 차고 있던 작은 가방을 열어 그곳에서 물티슈를 꺼냈다.


그리곤 내 얼굴을 닦아주며 내 뺨을 유심히 보았다.




“심한 상처는 아니네, 손톱에 긁혀서 좀 부어오른 거 빼면 뭐 없다 야.”

“그래도 잘못하면 흉 지니까 집 가서 약 발라. 알겠지? 난 간ㄷ”




“선배”




집, 집이라는 말에 다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잰 정말로 익사하기 직전이 되었다. 누가 날 꺼내주어야 했다.


그래서 난 눈앞의 아무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 제 얘기 좀 들어주실래요?”




붙잡은 다예의 손은 바깥에 너무 오래 있어서인지 차가웠다.


하지만 내겐 그 냉기가, 아까의 그 온기를 잊게 해 주었다.


다예는 잠시 날 보며 멍 때 리더니, 이내 생긋 웃으며 답했다.




“그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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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간판이 띄는 색색의 불빛이 내 머리맡을 밝혔다. 그 밑으로 어설픈 테이블밑 의자에 앉아 난 다예가 주는 차가운 맥주를 받았다.




“자 받아. 이거 맛있는 맥주야.”




냉장고에 있던 그 냉기 덩어리가 무슨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나는 그것을 양손으로 꼭 붙들곤 아무 말 없이 고개 숙이고 있었다.




“.. 그래서 무슨 일이야?”

“어디서 맞은 데다가 울긴 엄청 울어서 눈은 다 부어있고..”

“혹시 여자 친구랑 싸웠니?”




“.. 저 모쏠이에요…”




“아.”




이내 정적이 내려앉았다.


다예는, 아마도 이 시점에서 그 폭력의 출처가 어느 곳인지 알아챈 듯했다.




“… 말할 거 있다 그랬지?”

“괜찮아지면 편하게 말해. 기다릴 테니깐.”




슬슬 맥주캔을 잡은 손이 시렸다.


난 캔에서 손을 떼어 내 양 볼에 가져다 대며 온기를 느꼈다.


내겐, 아직 뜨거웠다.




“엄마가..”

“엄마가.. 사이비를 다녀요.”




다예는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묵묵히 들어줄 뿐이었다.




“그래서 가지 말랬더니 맞았어요.”

“제가 위험하다 말해도 엄마는 이미 그곳에 모든 영혼이 다 팔리셨나 봐요.”

“근대, 근대요 선배.”

“.. 전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어떤 개새끼 때문에.”




밑을 보는 시야에 내 왼손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분노로 인한 것일까, 처음 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긴장 때문일까, 아님 둘 다일까.


점점 내 목소리도 제 음색을 잃고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 때문에 아빠는 1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사시고 돌아가셨어요.”

“뇌사면 살아있는 몸이 아니죠.”

“그래서 전, 저는 남은 엄마를 지키고 싶었어요.”

“부모님은 제 인생에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니깐… 아빠가 돌아가신 후 더 이상 신을 믿지 않아도 신을 찾을 때가 있었어요.”

“제가 이잰 아빠를 대신할 차례이니, 거짓 신이라도 찾아 위안을 얻곤 했어요.”




맥주캔을 쥔 내 한쪽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근대, 근대 이 상황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요.”

“엄마가 사이비에 빠진 건 정말 엄마 탓일까요? 데려간 사람은 지금 저랑 연락도 안되고 보이지도 않아요.”

“그것 때문에 가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정말로 전부 그 사람 잘못일까요? 그걸.. 그걸 남에게 강요하는 것도, 그것 조차 정말 그 사람의 의지일까요?”

“누군가가 엄마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연기하는 것 같아요.”




제 형태를 잃은 목소리와 말들은 내 목구멍을 통해 토해지며 갈라지는 소리를 내었다.


그것이 썩 듣기 유쾌한 음색은 아니었다.




“신이, 우릴 먼저 버렸어요. 우리가 1년 동안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걸 전부 짓밟아 버렸어요. 아빠가 죽었는데 성호를 그으며 아멘을 외쳤던 지난날의 시간이 다 무슨 소용이죠?”

“.. 그런 같은 일을 겪은 사람에게, 지금 위안을 얻고 있는 이 가짜 신에 대한 진실을 말해도 되는 걸까요?”




나도 알고 있었다.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된단 것을.


사이비에 빠졌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빼내야 한단 것을 여러 이야기를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감동적인 극한 구조 서사가 아닌, 이미 배가 터져 죽어있는 시체를 보는 이의 심정이었다.


약간 꿈틀거리는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배가 터져 내용물이 흘러나오는 이것을, 과연 살릴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은 아직 이성이 있을까.


그리고..




“엄마는 날 아직 사랑하시겠죠?”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요.”

“그냥 이 상황도, 감정도.. 이성과 합리를 잃은 사랑이 너무 무서워요.”




왼손이 심하게 떨렸다.


난 그 떨리는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전 뭘 해야 하죠?”




“…”




다예는 다시 가방을 뒤적이더니 물티슈를 뽑아 나에게 주며 말했다.


차가운 물티슈의 온기가 내 뺨을 식혔다.




“전에 내가 그런 얘기를 했었지.”

“ ’ 지한. 너란 사람은 어디 있어?’라고.”

“그때 넌 가족을 위한 삶이 옮은 것이라 생각한다 말했었는데, 솔직히 진심 같진 않았어.”

“넌 퍼즐 같아. 수수께끼의 느낌이 아닌, 누군가 짜 맞춰둔 퍼즐.”




다예는 맥주를 한 모금 하더니 말을 이었다.




“퍼즐은 겉으로 보기엔 완벽해 보이지. 아름다운 도안과 그걸 이루는 조각을 보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

“근대, 동시에 불안정해. 누군가 잘못 건드리기만 해도 모든 조각은 무너지지.”

“넌 지금 퍼즐을 다시 맞춰야 해.”

“이 상황이 무섭다 했지? 당연하지 너의 작은 세상 하나가 깨졌는데. 하지만 지한아, 너의 두려움은 단순히 가족에게서만 나오는 게 아니야.”

“갈길도 모르는 어둠 속을 이잰 혼자 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운 거야.”

“너의 엄마에 대한 것이건, 너에 대한 것이건.”




“그건..!”




“그럼? 다른 거 뭐 있어?”




말 문이 막혔다.


다른 것, 다른 것이 있었나?


내 나침반을 되돌릴 수도 없고, 그 원동력이 과거 같은 사랑인지도 의심되는 상황에서 난 드디어 ‘나의 의지대로’ 첫 발을 내디뎌야 했다.




“.. 처음이에요 이런 거…”

“제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요?”




“원래 자유의지에 자격은 없어.”

“그건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권리야. 하지만 남용은 다르지.”

“난, 네가 남용하지 않는 자유의 권리를 누렸으면 해.”




그 말에 난 고장 난 나침반을 넣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본 길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앞을 보기로 했기 때문에 난 그 어둠 속으로 첫 발을 내딛기로 했다.


그러며 다시 외쳤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가짜 신 대신, 가짜 믿음대신 진정으로 날 버렸을지 의문인 진짜 신을 향해 던지는 마지막 진심의 구조 신호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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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학기가 지났다.


스스로 걷는 길은 힘들었다. 공부야 늘 하던 것이었지만, 집에서 늘 나에게 전도를 하려는 엄마를 거절하는 일은 너무 힘들고 아픈 일이었다.


설득도 많이 해봤다. 그럴 때마다 어릴 때처럼 매를 들어서 문제였지만..


그래도 내가 요리하던 주걱으로 설득하는 날 때리려던 걸 제압한 후로는, 폭력은 없었다.


대신 폭언이 많아졌다.




‘사탄의 자식을 키웠다.’ ‘지옥에 갈 것이다.’ ‘너를 위해 기도해주지 않을 것이다’ 등


다른 사람이 듣기엔 우스워 보이는 말들이었지만 이걸 4개월 내내 듣고 있는 나에겐 심각한 스트레스였다.


더욱이 힘든 점은, 그 폭언들이 정말로 엄마와 날 ‘단절’시킨다는 느낌이어서였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나침반은 이재 움직이지도 않았다. 대신 마지막으로 가리킨 한 곳을 정처 없이 표시할 뿐이었다.


그곳이 어딘지는, 이재 궁금하지도 않았다.




대신 나는 그 학기 만점을 받았다.


공부를 할 때면 현실과 멀어지는 기분이라 난 나 스스로 앞길을 찾으리라 선언한 뒤로도 이 습관은 놓지 않고 있었다.


공부라도 놓으면, 지독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기에 난 언제나 조금이라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나는 본과 1학년을 끝마치고 2학년을 준비하고 있었다.


엄마는..




신실하게 은총의 빛으로 나아가던 엄마는 아빠의 죽음을 트리거로 충실한 사람의 개가 되었다.


옆 동 아주머니는, 한참을 찾은 끝에 그 신원을 들을 수 있었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즉사.


이것이 아빠를 앗아갔던 그 불뱀에 물린 것인진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엄마를 가장 강하게 붙들던 줄이 끊어졌으니 엄마를 꺼내 올 수 있으리라 희망을 가졌었지만.


몇 주 후 종교 서적과 조각상이 나로 인해 모두 사라진 것을 알게 된 엄마는 가출해 버렸다.


행방도 묘연한 채.




방학기간이라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주말마다 나갔던 엄마의 교회를 어떻게든 찾아갔다.


분명 조심히 뒤를 밟았을 땐 이곳에 있었는데. 5일 내내 방문해도 그곳엔 엄마가 없었다.


3달 안에 엄마를 찾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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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도, 그 무엇도 연락이 되질 않았다.


경찰에 실종신고도 해놓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손 놓고 있을 순 없었기에 나도 인터넷을 뒤져가며 그 사이비에 대해 알아보았다.


본당, 사무실, 다른 교회 건물들 모두 찾아가 엄마를 찾았지만 뱀 조각상 목걸이를 건 직원은 ‘등록은 된 신자지만 이곳엔 없다’라고 말하며 날 쫓아낼 뿐이었다.


엄마의 본가에도 가보았다. 내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는 곳.


오랜만에 날 반갑게 맞이해 주는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참 고마웠기에 눈에 눈물이 고였지만, 이 모든 것을 솔직히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난 대충 ‘엄마가 요즘 바쁘셔서 혼자 왔어요’ 라 둘러대며 엄마의 행방을 물었다.


당연하게도, 이곳에도 엄마는 없었다.




“우리 손주 지한이~ 와서 밥은 먹고 가야지!”




어딜 다친 건지, 눈에 거즈를 크게 대신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날 토닥였다.


보자마자 그 출처를 물었지만 넘어지며 눈 근처를 다쳤다는 말만 하실 뿐이었다.




“아 죄송해요 할머니, 저도 너무 먹고 싶은데 지금 밥 먹으면 저 막차 못 타요.”




“그럼 여기서 자고 가면 되지 않냐?”

“너 어릴 적 자고 놀던 방 다 그대로다 지한아.”




“그래~ 오랜만에 밥 먹고, 자고 내일 일찍 가. 어차피 방학이라 매!”




지금 하루라도 일찍 엄마를 찾아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이 오랜만에 느끼는 사랑의 온기가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하루정돈 괜찮지 않을까’




결국 맞잡은 손의 따스함에 오늘 막차는 보내주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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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삼한 저녁을 먹고 오랫동안 수다를 떨다 모두가 잠들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편안함 뒤에 찾아오는 귀뚜라미 소리 하나 없는 한밤중의 정적이 내 심란함을 일깨워서였을까. 누워있어도 잠이 안 와, 난 잠시 마당에서 바람이나 쇄기로 했다.


나오면서 할머니 집을 쭉 둘어보았다.


과거에 비해 바뀐 것도 참 많았지만 성모 마리아상, 십자가 조형물, 예수 조각상 등의 위치는 변동 없이 늘 일정했다.


저 조각상 중 하나가 우리 집에 있었었지. 시계 밑 예수의 십자가.


그 조각상을 생각하니 과거의 온기가 떠오른 난 서둘러 눈가를 훔치며 밖으로 나갔다.




시골의 밤하늘은 참 아름다웠다.


빛 공해가 없어 별이 쏟아질 듯한 하늘이 지금의 내 상황과 비견되어 날 초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광경은 도시에선 볼 수 없는 비 현실적인 것이라 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빠는 지금쯤 저기에 계실까. 빛나는 별처럼 나의 영웅이던 아빠.


아마 아빠는 신을 믿은 채로 돌아가셨으니 천국에 계실 것이다.




“지한아.”

“뭐 하냐?”




“아! 할아버지.”




옆에서 들려온 연로한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난 정신을 차렸다.


할아버지는 ‘잠이 안 오냐’ 고 껄껄 웃으시며 내가 앉은 마루 옆에 앉았다.




“… 많이 컸네. 우리 손주.”

“마지막으로 왔을 때 교복을 입고 있던 것 같은데.. 이재 곧 있음 의사 가운 입겠구먼.”




“그것도 몇 년 뒤죠. 아직 한참 남았어요.”




“허허! 그래도 대단해! 그 어렵다는 의대에 들어가다니 역시 내가 옛날에 했던 말 틀린 게 하나 없어!”




“엥? 뭐가요?”




할아버지는 날 보더니, 이내 내 등을 토닥이셨다.




“너도 아빠처럼 똑똑하고 엄마처럼 똑 부러진다는 이야기. 내가 많이 했었지.”

“그럴 때마다 네가 참 쑥스러워했는데..”




할아버지는 등을 토닥이던 손길을 멈추시곤, 날 바라보며 말했다.




“난 네가 자랑스럽다 지한아.”




“…”

“할아버지.”




“음?”




다시 한번, 물결이 넘실대고 있었다.


서서히 발 끝부터 적셔오는 그 쨍한 차가움은 내 왼손을 떨게 만들기 충분했다.




“엄마, 엄마랑 진짜 연락 안돼요..?”




난 내 소리가 멀쩡하다고 생각했는데, 할아버지에겐 아니었나 보다.




“…”

“그래, 같이 사는 네가 모르진 않겠지.”

“엄마가, 옛날에 그리고 최근 두 번 찾아왔었다.”

“그 너희가 가져갔던 예수님이 매달린 십자가, 기억하니?”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잠시 나를 보시더니, 땅으로 시선을 옮기곤 말을 이었다.




“그걸 주러 왔었다.”

“그때 내게 그랬었지.”




“ㅁ, 뭐라고요?”




“난 나만의 앞을 보기로 했으니, 이런 건 필요 없다고.”

“그리고 바로 도망가듯 떠나버렸어.”




할아버지는 땅에서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어둠이 잡아먹은 그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할아버지도 나와 같은 상태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죄책감, 그리움, 자기혐오


이 모든 얼음 가시들이 바닷물에 뒤섞인 채 나와 할아버지를 뒤덮고 있었다.


푸르른 달빛과 쏟아질 듯한 별의 향연이 그 풍경과 대조되어 사뭇 비참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 그때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었다.”

“나도, 너희 할머니도.”

“그리고 며칠 전에.”

“너희 엄마가 놋뱀 십자가 목걸이를 차고 여기 왔었다.”




이런 망할.


거짓말이다, 그들이 거짓말을 한 거다.


어쩐지 본당 뒤에 큰 숙소 건물 같아 보이는 게 있을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 사이비들이 걸고 있던 목걸이. 그것은 지금 할아버지가 말하는 목걸이였다.




“그때.”

“그때 엄마가 뭐라고 했어요?”




내 말에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내 떨리는 왼손을 붙잡고 나를 안아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당신이 기대는 것 같기도 한 형상이었다.




“지한아, 지한아.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있단다.”

“그들은 수많은 악의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죄를 인정하는 이들에겐 주님이 구원을 주시지.”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신단다. 하지만.”

“당신에게서 떠나신 자를 굳이 찾진 않으신단다 지한아.”

“엄마는..”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어느새 물결에 잠겨 흐릿해져 있었다.


나의 목도 물속에 잠겨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우리에게 찾아와서 너희 할머니를 억지로 교회에 끌고 가려 했어.”

“논리가 안되니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너희 할머니에게 앞에 있던 나무상을 던졌단다.”

“그걸 맞고 너희 할머니 눈두덩이가 파랗게 부어올랐어.”

“나중에 병원을 가보니 뼈에 금이 갔다더구나.”

“나는, 나는”




이내 물결이 할아버지의 목을 타고 입 밖으로 흘러내렸다.


흐릿해진 자상한 목소리가, 쏟아져 내릴 듯한 별들 아래에서 슬피 울며 토해내는 인간의 서글픔이었다.


그 목소리가 마치 불뱀을 몰아내달라 기도하는 모세 같았다.




“내 딸이 그렇게 된 것은 내 탓이라 생각한다.”

“내가 딸에게 세례를 해주었고 함께 살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성당을 갈 정도로 독실한 아이로 자랐는데”

“내가 기도와 사랑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다. 미안하다 지한아..”

“나의 부족함 때문에 내 딸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난 거야.”




할아버지의 숨죽인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울렸다.


난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하늘을 쳐다본 채로 할아버지를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


차가운 물결을 넘어 속에서 천불이 끓는 것 같았다.




“아냐, 아니에요 절대 할아버지 잘못이 아니에요.”

“잘못은 그 새끼들이 한 건대 왜 할아버지가 사과하세요 왜.”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셨잖아요. 그니까, 그니까!”




끓어오르는 눈물 속으로 빠지며 밤하늘이 멀어져 갔다.


난 결국 고개를 숙여 할아버지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어버렸다.




신이시여.


왜 저들에겐 불뱀을 내리지 않으십니까.


그 개자식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인게 정녕 형벌의 끝이었습니까?


똑같이 불뱀에 물린 내 영웅이자 우상은 고통받다 죽어갔는데


왜 저자는 고통 없이 죽었습니까.


어째서, 어째서 이리 노쇠한 신앙의 길앞잡이가 고난의 길을 걸으며 괴로워하는데 이것이 당신이 생각한 참회의 삶입니까?




저는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저는 신앙의 길앞잡이도, 영웅도, 사랑도 아닌 그저 광야를 걷는 사람일 뿐입니다.


홍해를 가르지도 못하고 요새를 무너뜨리지도 못하며 왕도 아닙니다.


제가 외쳤던 그 성호는, 여호와와 그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그리 부르짖었던 것은 다 허망된 신기루였던 것입니까?


그럼 당신은 나를 시험하는 것입니까? 아니 애당초에 존재가 있었습니까?


아, 내가 손 뻗는 그곳이 사랑의 요람이 아닌 허무의 칼날 위란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 칼날 위에서


나는


나는




“지한아.. 지한아..?”




할아버지의 힘 빠진 목소리에 난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부은 기분이었다.


내가 멍하니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자 할아버지는 작게 탄식하시며 날 다시 안고 내 등을 토닥여주셨다.


그리곤 내 눈가에 눈물을 닦아주셨다. 신기하게 이번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괜찮냐?”




“네”




기계적으로 답변이 나왔다.


하지만 전과는 다른, 속에서 끓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그 열기를 감추기 위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이잰 괜찮아요.”


.


.


.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두 분과 해어지며 생각했다. 이 사건은 내 손에서 마무리 짓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절대 ‘관계자가 아니면 이 이상 들어올 수 없다’ 며 그 숙소건물 같아 보이는 곳에 못 들어가게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




“…”




공부에서도 그럴 때가 있다.


돌아가는 것보다 단순한 게 정답일 때.


.


.


.




엄마가 가출한 것은 2주 전, 그리고 할머니 댁에는 가출 후 4일 즈음에 찾아왔다 했다.


그니까, 갇혀있는 것뿐 아닌 밖으로 나오는 타이밍이 있단 것이다.


그렇다면 그 타이밍은 언제일까.


교회에서 활동을 하면 밖으로 나올 테니, 그때가 타이밍일 것이다.


보통은 전도하러 나오니깐 ‘그때를 노리자’라는 생각으로 일주일 간 6시부터 밤 10시까지 교회가 보이는 주변 카페를 돌며 잠복했다.


일주일이라면 아마 패턴이 있을 것이다. 단체생활이니 계획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밖에 나온 엄마를 발견했다.


.


.




티 나게 따라가면 분명 다시 숨을 것이다. 난 조용히 엄마와 그 동료로 보이는 사이비를 따라가며 그들이 한 곳에 자리 잡길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빨간 신호 아래, 둘이 멈춰 섰다.


난 심호흡하며 숫자를 세었다.


하나






빠르게 튀어나간 내 다리는 다행히 추진력을 잃지 않고 엄마의 손을 낚아 채 도망가는데 성공했다.


뒤에서 다른 사이비가 소리 지르며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걸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안 오려고 하는 엄마를 억지로 안아 달려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지치고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20분을 달렸을까, 난 한 공사가 중단된 회색 건물에 엄마를 끌고 깊숙이 들어갔다.




“하… 하…”




“너, 너 뭐야? 이게 무슨 짓ㄱ”




“엄마야 말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내 노성에 엄마가 흠칫 놀랐다.


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토해내듯 말을 이었다.




“거기 이상하다고, 사이비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세상 합숙하면서 활동하는 교회 봤어? 멸망론 그렇게 떠들면서 불신지옥 믿음천국 하는 교회 봤냐고.”

“엄마가 생각하는 천국은 없어!! 그건 날 위한 것도 아니고 아빠를 위한 것도 아니야, 그냥 현실에서 도피한 거라고!”




“너.. 너..”




난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 내쉬며 호흡을 가라앉혔다.


그리곤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 신은 없어 엄마.”

“없는 걸 쫒으며 가족을 고통에 빠트리는 건 이재 그만해!!”




“너 그게 무슨 소리니? 내가 너보다 신앙생활이 훨씬 오래됐는데 그걸 모를 것 같아?”




“.. 그래 보여.”




내 말에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나 무시하니?”




“… 왜 그랬는지 이해는 해. ‘이해’는”

“하지만 이건 아니야.”




난 내 왼손을 보았다.


이상하게 떨리지 않았다.


화가 난 것일까, 아님 그 밤하늘 밑에서 깨달은 것에 대한 무언의 자신감일까.


내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살아남은 가족마저 모두 고통에 빠트리려는 사람은, 존중의 가치가 없어.”

“다 선명하게 기억나.”

“그 폭력과 폭언들.”

“그 조차 사랑이었겠지. 그 근본은.”

“근대 그것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건 틀린 거야.”




“네가 뭔데 그걸 판단해!!”




“나 성인이야.”

“애처럼 모든 걸 정해달라 하는 나이는 이재 졸업했어.”

“엄마도, 그걸 졸업했을 나이잖아?”

“그니까 정신 좀 차려! 만 진이건 누구 건 필요 없어 엄마의 앞길은 엄마가 정해!”




그 말에 엄마의 표정이 마치 구겨진 종교 서적 표지처럼 변했다.


엄마가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나를 향해 삿대질하며 말했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너.. 너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진 알기나 해?”

“근대 그러고도 지금 그딴 말을 하는 거야?”

“다 너를 위해 행동한 건대, 너랑 아빠를 위해. 근대 내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해?”

“난 도망친 게 아니야. 난 도망치지 않았어.”

“내 앞길을 찾은 것뿐이라고. 망할 신이 응답을 안 해주니깐!!!”




“…”




내가 아무 말하지 않고 있자 엄마는 그 속에 무언가를 게워내듯 내게 또다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가기 시작했다.




“내 사랑을 빼앗고 날 고통에 빠트렸으니깐!! 난 더 이상 그 신 따위를 믿지 않아!!”

“근대, 근대.”

“지금 이렇게 고통스러워도 죽으면 모두 보답받는대.”

“죽으면, 죽음 뒤에도 삶이 있대. 그것도 행복하고 화사한 삶이. 선택받은 자만 누리는 그 천국이.”

“그럼 너희 아빠 죽였던 그 새끼는 죽어도 천국 못 들어와. 아빠를 살리지 못한 무능한 의사랑 간호사 새끼들도 못 들어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 선택한 사람들만 가는 유토피아야.”




엄마의 목소리는 어느새 파도치다 잔잔해진 바다처럼, 가라앉아있었다.




“그런 곳을 믿음만 있으면 갈 수 있대. 전처럼 하던 대로만 하면, 너도 나도 아빠도 그 유토피아에 갈 수 있어.”




“.. 아깐 신 안 믿는다며.”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니깐? 중요한 건 우리야.”




“그 우리인 내가 그곳이 끔찍이 싫다면?”




“.. 넌 그럼 더 이상 ‘우리’가 아니야.”




정적이 흘렀다.


12월의 날 선 바람소리가 텅 빈 건물을 타고 외벽을 울렸다.


어쩌다 이렇게 돼버린 걸까.




허상을 50년 동안 좇아버려 드디어 미친 걸까?


아니면 그 믿음 자체가 허무였을까.


엄마가 열정적으로 외치던 ‘아멘’은 그 믿음이 신실한 사람의 확언이 아닌 껍데기만 남은 허물의 신기루였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나.


내가 그냥 따라서 외쳤듯이.


엄마도 그저 할아버지를 따라 외쳤나.




난, 이곳을 항상 찾아오며 각오를 다지던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각오는 방금 그 대화로 결정되었다.




“.. 이재, 할 말 없지?”




엄마가 의기양양하듯 말했다.


난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터덜터덜 걸어 나가는 나를 보며, 뒤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건물의 반대편으로 내려와 2층 빈 방에서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엔 건물 앞마당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났을까.


검은 밴이 오더니 엄마는 그 차를 타버리곤 어딘가로 가버렸다.


타기 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난 뒤돌아 그녀를 위해 성호를 그었다.


눈앞에 떠난 이를 위해, 나를 위해.


내가 부정하고 끝내져버린 신의 이름을 다시 한번 습관이란 합리화 아래에 추잡하게 불러대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른손 끝이 이마와 가슴, 양 어깨를 지나 모여있던 재자리를 되찾자 혼돈의 물결이 머릿속에서 물러나는 기분이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말실수를 하거나 행동을 잘못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껀덕지도 없었다.




하지만 허공에 긋던 손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그에 따라 날 집어삼키던 혼돈의 물결은 더욱 심해졌다.


입을 열면 내가 아닌 소리가 날 것 같아 여태 소리들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한계였다.


마주한 왼손이, 심하게 덜덜 떨리는 것을 참으며 난 결국 떨리는 입술로 신께 나의 존속여부를 물었다.


텅 빈 공간에, 과거의 나일지 모르는 목소리가 울러 퍼졌다.




“.. 진짜 아니죠?”

“진짜 제가 맞는 거죠?”

“대답해 줘요…”




허무의 칼날 위에서 춤을 주었던 기분이었다.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따뜻했던 요람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주변은 쟃빛의 콘크리트 더미뿐이었다.


자격. 자격이라.


자격 있는 자유의지는. 그것을 가지는 것은 이렇게 고통스럽구나.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삶이 아닌 스스로가 혼자 광야를 넘어 가나안으로 향해야 한다는 진실은 날 너무 두렵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굶거나 목말라 죽을지, 짐승들에게 찢겨 죽을지, 내려쬐는 태양 빛에 타들어가 죽을지. 수많은 경우의 수가 가나안이란 퍼즐을 맞춰야 할 내 발걸음을 잡았다.


하지만 이재서야 나는.


수많은 허무 위에서 나의 자아를 존속해야 할 진정한 ‘어른’이 되었음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신도, 부모도 없는 세상에서.


난 나의 광야에서 우상숭배도, 여호와의 천벌도 없이 자유롭게 고행길을 걸어갈 사람이 되었다.


나를 찾는 고행길을.


.


.


.




“지한아~! 반가워!”




학기가 시작되고, 다예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난 잊히지 않는 그날의 기억을 감추려 형식상의 미소를 짓곤 다예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아 선배 반가워요. 선배는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냈지! 아.. 학기 시작이라니 너무 싫다 진짜.”




“그니까요.”




내 말에 다예가 나의 옆구리를 자신의 팔꿈치로 쿡쿡 찌르며 답했다.




“거짓말, 너 공부 좋아하잖아.”




“.. 언제는 좋아하냐 물어놓곤…”




“하하! 농담이야!”

“맞다 지한아.”

“나 이사 간다?”




“에? 어디로요?”




다예는 뭔가 불길하게 슬슬 웃다가 날 한번 장난 스래 밀치며 답했다.




“너희 집 근처로!”

“미젠아파트, 너희 집이라 매? 나 거기 근처로 이사가.”




“선배 분명 자취한다ㄱ..”




“아 지원 좀 받았지. 전 집이 너무 별로였어서.”




진짜 뭐 하는 사람일까. 뭐길래 이렇게 돈이 많을까.


내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으니 오히려 본인이 더 어이없어하는 눈치였다.




“뭐, 뭐가.”




“아네요..”




“아 그래서 그런데 지한아.”

“나 집들이할 거거든 학년 별로. 너도 올래?”




집들이, 집들이라. 분명 술을 마실탠대 그러면 또 개강총회나 MT 같은 분위기가 나올 태지.


하지만 지금은 뭐라도 환기시켜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집 안에서 당장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집에 있을 땐 방문과 창문을 다 열어 둘 정도였다.


문을 닫을 때 고요한 집안에서 나는 듯한 과거의 단말마는 나를 잠 못 들게 만들었다.




“좋아요.”




“.. 요즘 시원시원해져서 좋네.”

“그럼 나 이사 가고 좀 이따 봐!”




그렇게 짧은 대화가 끝이 났고, 난 밤마다 온기가 모두 식어 차가워진 집에서 떨며 잠에 들었다.


사람의 온기, 사랑의 온기 하나 없이 고립된 감각은 새로 산 푹신한 이불로 채웠다.


밤마다 음악을 틀어두지 않으면 자꾸 소리가 들리는 듯 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과거 엄마의 TV소리를 대신할 음악을 틀어두었다.


그리고, 집들이 날이 되었다.


.


.


.




24살의 대학생들이 모인 한 빌라의 자취방은 사람들의 온기로 따뜻했다.


20살의 뜨거움과는 다른, 24살 만의 따뜻한 고요함이 있었다.


짜증 나는 교수의 이야기, 매번 보는 시험이 힘들단 이야기, 요즘 미생물학이 힘들단 이야기 등.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가 오가도 결론은 ‘우린 의대생이니깐’ 이 모든 문제와 불만의 답안이었다.




나도 그랬다.


텅 비어버린 집, 계속 들리는 과거의 환청, 과거의 나에서 성장하며 죽어가는 과거를 겪는 밤마다 겪는 성장통 등.


그렇게 수많은 내면의 이야기가 오가도 결론은 ‘나는 어른이니깐’ 이 모든 고난과 고행의 답안이었다.




그 고행의 길 중 맞이하는 인간의 온기는 참 오랜만에 보는 반가움이었다.


나도 공감하고, 웃고 떠들며 알코올의 어깨에 내 몸을 기대었다.




하지만 너무 많이 기댄 탓일까. 정신이 너무 흐려지고 속이 안 좋아져 난 급하게 집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고 있었다.


얼마나 있었을까.




철컥-




“야 괜찮아?”

“너 얼굴 정말 빨개”




다예가 집 밖으로 나오며 내 얼굴을 한번 쓱- 쓸었다.


난 술냄새가 밸까 다예의 손을 조심히 내리며 대답했다.




“아.. 괜찮아요.”

“좀 많이 마신거지 저번처럼 토하고 그러진 않아요.”




“하하! 하긴 MT는 너무 무식하게 마셔대긴 해.”

“.. 지한아.”

“사건은 잘 해결 됐니?”




그 말에 내 발치로 다시 차디찬 물결이 넘실대었다.


아까의 온기를 잊게 만들, 집에서 느끼던 그 물결이 내 발등을 덮고 있었다.




“어.. 힘들면 말 안 해도 돼.”

“그냥, 좀 걱정돼서 묻는 거야.”




“…”

“해결 됐어요. 어떻게든.”




내 말에 다예가 잠시 날 바라보다,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다행이다.”




“… 선배.”




“음?”




“‘자격이 있는 자유’라는 건, 원래 이렇게 고통스럽나요?”




“… ‘자유롭다’의 다른 말이 뭔지 아니?”




“어… 내 맘대로다?”




다예는 날 따라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벽에 등을 기댔다.


그리곤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그렇지, 내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감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이성적인 의미도 있어.”

“자유란 것은, 이 이성과 감정이 내리는 하나의 결과야.”

“그 결과가 무조건 좋진 않지.”




이내 센서등이 꺼졌다. 하지만 다예는 신경 쓰지 않은 채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도,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한쪽에 너무 치우치면 그 편향적인 결과는 파멸을 불러와. 하지만 두 가지가 합일될 때.”

“사람은 진정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결과를 책임지는 자격’을 얻게 돼.”

“그 책임이란 것은, 고행도 아니고 시험도 아니야.”

“어른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것 중 하나야. 그렇기에 내가 그걸 ‘자격’이라 부르는 거야.”




내가 엄마를 떠나보낸 것은, 확실하게 내 자유의지였다 말할 수 있다.


그것이 그리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24년의 피로 이어진 인연을 내 손으로 끊어버리는 것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처음으로 나침반을 부순 뒤 무지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미지의 공포.


그리고 내 선택에 대한 결과의 불신.


이 모든 것이 다예가 말하는 ‘자격’ 이였던 것이다.


이상을 향해 자유로이 가는 것. 그 순례길을 선택하는 의지는 태어난다고 자연스레 생기는 것이 아니란 것을, 난 이번 일로 뼈저리게 깨달았다.




“… 자격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




“하지만 아직은 제겐 고행이고 순례길 같아요.”

“불완전한 자격이,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겠어요.”

“이 모든 어린아이는 언젠간 극복할 날이 오겠죠?”




다예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센서등은 켜지지 않았고, 암흑에 적응된 시야엔 그녀의 얼굴이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 보였다.




이내 그녀가 손을 들어 올려 내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술로 인해 올라온 열기가 차가운 손에 닿자 모순된 온도에 감각이 멀어졌다.


손은 차디 찼지만, 난 그곳에서 내가 느꼈던 과거를 볼 수 있었다.


아니, 새로운 감정을 볼 수 있었다. 형식 상의 아멘이 아닌, 형식 상의 성호가 아닌.


날 어른으로 불러준 진짜 사람.




.. 이것도 과연 우정이라 불러야 하나?


물결이, 따뜻해졌다.




“.. 얼굴이 많이 차네.”

“그만 들어가자!”




그렇게 말하며 다예는 내 손 끝을 잡곤 나를 끌고 들어가 버렸다.


다시 찾아온 집안의 온기에 아까의 냉기가 잊히는 듯했지만 아까 보았던 다예의 대답을 대신한 자애로운 웃음은 우리 집에 생긴 빈자리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이 일로 그 환청에서 벗어날 것 같진 않지만.


적어도 성장통의 진통제는 생긴 것 같다.


.


.




신은 참 변덕스럽다. 하지만 공평하다.


자신의 충성스러운 하인을 고통에 빠트리고, 신실한 신자를 구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악인을 지옥에 빠트리고 불신자에게 대신할 사람을 주었다.


참 가혹했다.


이것이 날 위한 시험이라면, 신이라는 작자는 사람의 고통을 즐기는 존재일 것이다.


미래에, 그 모든 자유를 시험하는 문제들 끝에 과연 내 주변엔 누가 남아있을까?




“지한아 뭐 해!”




“아 지금 갈게!”




갑자기 날 부르는 동기들의 목소리에 난 정신을 차리고 술자리에 합류했다.


동기들은 활짝 웃으며 날 맞이했다.




“야, 뭘 그렇게 오래 있냐 많이 마시지도 않았구먼.”




“원래 지한이 주량 약하잖아. 지한이 치곤 좀 많이 달리긴 했어~”




“그건 그렇지, 지금부턴 마시지 마. 갈배 사 왔는 대 그거 줄까?”




난 ‘그럼 고맙지’ 라며 화답했고 이에 그 말을 한 동기가 내게 음료수를 가져다주었다.


시원한 음료수를 따라 받곤 바로 마시려던 찰나.




“야야 잠깐 짠 해야지 짠! 지한이도 왔으니깐.”




“그럴까?”




그렇게 동기들과 해맑게 웃으며 짬을 했다.


서로의 팔이 높게 치솟으며 전등 아래를 수놓았고 백색등 아래 소주잔과 유리잔이 비췬 바닥은 마치 바닷속 모래사장을 보는 기분이었다.


시원한 음료수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머리 한편이 띵 해지는 기분이었지만 아까의 복잡한 생각을 잊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대신, 다른 생각이 날 맞이했다.




‘아, 일단 지금은 혼자가 아니구나.’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온기에 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 우정과 애정으로 이루어진 온기는 내가 마시는 음료수만큼이나 참 달콤하고 포근한 온기였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집들이겠지만 나에겐 평생토록 기억에 남을 사람 간의 온기가 내 기억 속 깊숙이 새겨졌다.


.


.




집들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 놀아서 그런지 이미 해가 슬슬 뜨고 있었다.


난, 우선 자지 않고 집을 정리하기로 했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그립다는 이유로 아빠 방을 전혀 치우지 않았으니깐.


이잰 엄마도 떠났으니 이잰 둘 다 깨끗이 비워야만 했다.




아빠 방을 청소하다 앨범 같은 것을 발견했다.


우리 가족의 추억이 담긴, 가족 앨범이었다. ‘그냥 버릴까’ 하다가 버리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번 읽어나 보자’라는 심정으로 앨범의 먼지를 털고 소파에 앉았다.




엄마와 아빠의 젋을 적 사진, 엄마의 임신했을 적 사진, 아주 어릴 적의 나와 내가 커가면서 찍은 과거의 기록들.


그리고 그 기록은 5년 전에 끊겨있었다.


그래, 내가 고3이 되면서 많이 예민해지긴 했었지. 그래서 사진 찍고 시간 나면 놀러 다니길 좋아하던 아빠도 그때의 나와는 많은 곳을 가지 못하셨다.


대신 고3의 기억은 딱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있었다.


아빠와 단 둘이 가을 산을 등산했을 때의 사진. 그 정상에서 단풍과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행복해 보이는 우리 부자가 찍혀있었다.




신기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 사진을 빼내어 내 지갑 속에 끼워 넣었다.


그 이유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저, 사진 속 우리 둘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그 모습을 가끔가다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의사의 길을 걸으며 힘이 들 때, 이 사진 속 아빠의 웃음을 본다면 그것만으로 위안이 될 것 같았다.


.


.




방을 정리하는데 며칠이 들었다. 어지간한 것은 다 버리고 이재 그때의 앨범만이 남았다.


난 주말에 앨범을 들고 그때 그 산에 올랐다. 아빠와 함께 올랐던 그날의 산.


그리고 그 정상 한편에 앨범을 두고 내려왔다.




내려오며 생각했다.


잘 가 엄마, 잘 있어 아빠.


내 사랑과 영웅. 내 환상과 우상.


지금은 떠나보냈지만 만약 다시 보게 된다면. 정상적인 모습으로, 어디에서든 그때의 과거 당신들로 돌아온다면.


난 주저 않고 외칠 자신이 있다.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떠나보낸 과거는 저 멀리 수평선 너머의 신기루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기 때문에.


난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캄캄한 어둠을, 사람의 온기로 밝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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