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쾌하고 쌉싸름한 여정의 시작
*전작 '시리우스가 추락하는 날'을 보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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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서...”
공간의 약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k.pop이 은은하게 메아리치듯 가게를 한 바퀴 돌고 내 귀에 다다를 때쯤.
준성이 입을 열었다.
“우리 내일 일본여행 가는 거지?”
“12박 13일로! 600만 원 초호화 여행을!!”
그래, 12박 13일에 600만 원을 태우는 여행 계획.
이 미친 여정이 왜 시작되었는지 난 잠시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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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3박 4일의 일본 여행을 마치고 앨범을 만드는 내내, 나의 안에는 이런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의 공기, 온도, 풍경과 음식 모두..
길고 느긋하게 경험하고 싶단 욕망 말이다.
3박 4일이라는 기간은 너무 짧고 강렬했다. 이자카야의 아저씨나 히나와의 만남, 마스터와의 만남 모두 내 기억에 깊게 새겨진 인연들이었다.
그렇기에 한번 더 보고 싶었다. 히나와는 꾸준히 연락했지만..
그녀도 ‘언젠간 일본에 놀러 오면 다시 보자.’라고 말했기에 갈 이유와 의지는 충분했다.
다만, 앨범이란 것이 하루 만에 뚝딱 만들어지는 마법의 물건은 아니었기에 난 1년 3개월이란 시간을 앨범에 갈아 넣으며 조금조금씩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저렴하게, 가성비로 느긋하게 다녀오는 배낭여행 말이다.
그러나 그 계획은 준성과 한규가 들어오면서 엉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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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 7박 8일로?”
“응. 이번엔 좀 진득하게 오래 있다 오게.”
한규와 준성의 놀란 표정이 꽤나 볼만했다. 그럴 만도 했다. 둘과 친해진 이후엔 여행이란 것은 저번 일본을 빼면 단 한 번도 가질 않았으니.
작업에만 미쳐사는 내가 스스로 배낭여행을, 그것도 ‘7박 8일’이란 긴 시간을 언급하니.
놀라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야~ 진짜 재밌겠다.. 난 또 피처링 작업에 앨범에 잔뜩 밀려있는대..”
“그래도 앨범은 거의 끝나가고, 피처링은 너 금방 치잖냐 준성아.”
준성의 투덜거림을 한규가 타일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준성은 무언가가 불만인지 입이 삐쭉 튀어나온 채 빈 소주잔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잠시 한규와 내가 고기와 쌈을 먹으며 말이 없는 동안. 무언갈 골똘히 생각하던 준성은 이내 생각의 말풍선이 터지듯 벌떡 뛰어오르며 날 보곤 말했다.
“야! 야 랑아.”
“왜?”
“너 여행 가는 거 있잖냐.”
“나도 끼워주면 안 되냐?”
그 말에 난 잠시 고민했다.
아무래도 사람이 하나 더 끼면 뭔가 성가셔질 것 같았다.
거기에 준성은 일본어도 거의 못하니..
하지만 이내 이렇게 길게 가면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뭐 언어문제야 내가 번역해 주면 되고 히나나 마스터, 아저씨랑 계속 있을 것도 아니니깐.
그리고 그 셋에게 새 친구를 소개해주면 좋겠단 생각도 잠시 떠올랐기에 난 흔쾌히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다.
“그래! 좋아.”
“나이스~! 어, 야 랑아.”
“우리 단 둘이 가면 좀 그렇잖아.”
“한규야. 너도 갈래?”
“나?”
잠깐.
3명? 이건 좀 그런데.
한규는 조금 일본어를 할 줄 알았지만 유창하진 않았다.
“그래, 너도 여행 좋아하잖아.”
“흠...”
고민하는 한규에게 준성은 만지작 거리던 술잔을 내려놓곤 말을 이었다.
그의 빨갛게 상기된 뺨이 쨍한 백열등 아래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아, 쟤 취했구나.
“너 최근 여행 언제 갔었어.”
“프라하. 1년 전에.”
“야 1년 전이면 쿨타임 돌았어. 한번 더 가줘야지~”
“야 야야 잠깐만”
난 다급히 대화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주최자 없이 개최되는 축제는 막아야 만한다. 안 그러면 여행이 엉망이 될 듯했다.
“한규 너 괜찮아? 요즘 힘들 다매.”
“음... 뭐 너 지금 당장 갈 거 아니잖아.”
“어.. 그렇지?”
“언제 갈 건대?”
슬슬 불안해졌지만 그래도 친구 사이에 치사하게 이걸 속이면 안 된다 생각했다.
“8개월 뒤에.”
“야! 한참 남았다!”
“너 그럼 예산 어느 정도 모아서 갈 거냐?”
“어... 배낭여행이어서..”
“한 150 정도?”
내 말에 준성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더니 한번 껄껄 웃고 내 등을 팡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야! 150이 뭐냐? 150이.”
“그리고.. 어디 어디 갈 거야?”
“일단 오사카랑 도쿄에서 만날 사람이 있어서 그 두 곳으로 갈 거야.”
“야 저번에 거기로 갔다며, 또 갈 거야?”
“2일은 도시 하나를 즐기기엔 짧은 시간이니 또 갈만하지. 음.”
내 말을 한규가 받쳐주었다.
준성은 또 무언갈 곰곰이 생각하더니, 박수를 짝- 하고 치며 내게 말했다.
그 눈과 상기된 붉은 얼굴에서 어린아이의 불길한 신남이 느껴졌다.
“야 야 랑아. 생각해 봐라.”
“3일이랑 4일에 도시 2개, 좋지. 좋아.”
“하지만 우리 셋이서 갈 거면 도시 2 개론 부족하지 않을까?”
“에?”
“그게 뭔 말이야!”
“그니까, 하나를 더 추가하고 4일씩 도시 하나씩 도는 걸로 하자고.”
“12일 동안!”
“진득하게 오래 있다 오고 싶다며. 그럼 기왕 있다 오는 거 질리도록 있다 오자고!!”
“음... 난 교토를 가고 싶은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만큼 오래 있는 건 원치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돈, 돈이 문제였다.
“야 야 그건 아닌 것 같아.”
“돈은 어쩌고, 그리고 일정도 너무 길어. 현실적인 선에서 생각해야지.”
“그래..?”
“그래..”
내 말에 준성이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이내 다시 빈 소주잔을 만지작 거리며 입을 삐죽거렸다.
흠.. 이 친구는 이러면 앞으로 1시간 동안 말이 없을 예정인대.
“야 야, 준성.”
한규의 말에도 준성은 소주잔만 굴리며 대답이 없었다.
그의 생각을 대변한 철제 테이블 위의 유리가 도록 도록 구르는 소리가 침묵 속 셋의 사이를 맴돌았다.
그 무언의 불만을 얼마나 들었을까.
슬슬 짜증이 몰려왔다.
“아 그래! 해!”
결국 내가 홧김에 말해버렸다.
“대신 경비는 가성비 있게 갈 거야.”
“너 평소 쓰던 대로 펑펑 쓸 생각 하지 마.”
“캡슐호텔에서 잔다고 찡찡대면 죽인다 진짜.”
“오예!!”
“알겠어!!”
그렇게 그날 그 이야기는 종료되었다.
그리고 비용이 150에서 600으로 불어난 건 1개월 후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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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엔 반대했다. 당연했다. ‘가성비 배낭여행’에 600만 원이 가당키나 한 금액인가.
하지만 준성은 강력하게 ‘기왕 가는 거 기갈나게 먹고 자고 쓰고 돌아오자!’라고 우겨대었다.
그러면서 수많은 자료영상과 화면을 던져주었다. 유튜브의 여행 브이로그 따위들.
처음엔 관심이 없어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어느 날 정말 볼 게 없어서 한 브이로그를 본 날..
약간은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그 유튜버는 일본의 맛집을 투어 하는 유튜버였다. 오마카세부터 저렴한 가성비 식당까지, 전부 말이다.
그중에서도 눈에 띈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초밥 오마카세였다. 무려 가격이 40만 원인..
하지만 평점이 매우 높은 곳이었고 그 유튜버도 높은 평가를 내린 곳이었다.
그렇게 맛있는 걸 많이 먹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신력 있지 않을까? 따위의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여러 곳들을 보았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나 디즈니 랜드, 이런저런 이자카야나 맛집들..
그러며 점점 내 안의 계획도 변해갔다.
‘가성비’ 대신.
비 효율의 극치인 ‘감성값’으로 말이다.
“그래서 정확히 언제라고?”
한규의 말이 내 생각 말풍선을 터트렸다.
난 살짝 아- 하는 소리를 내다가 핸드폰을 켜 예약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7시 15분, 인천공항 제1 터미널.”
“2 터미널은 가면 안 된다. 거기 아시아나 없어.”
“.. 너희 둘 다 돈은 모았냐?”
내 말에 한규와 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준성은 내게 자신의 핸드폰을 켜 한 어플을 보여주었다.
“이게.. 뭐야.. 너 벌써 환전했냐?”
“야 너도 깔아. 이거 깔고 여기서 발급받은 카드 있을.. 아 내일이면 가는구나.”
“아 괜찮아. 나 이미 은행에서 발급받았어.”
“한규도 발급받았냐?”
“난 8개월 전에 했어.”
“준비성 철저한 놈..”
한규의 준비성에 우리는 혀를 내둘렀다.
그러기도 잠시 우리는 조금 ‘일본에 가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 여행 준비를 하기 위해 해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었지만, 다들 여행 용품도 사야 하고 짐도 싸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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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들 빠트린 거 없지?」
「여권, 보조배터리, 이어폰, 충전선, 지갑, 현찰.」
「다 있지?」
내 카톡에 바로 한규의 ‘ㅇㅇ’이란 답장이 올라왔다. 5분이 흘렀을까, 준성도 이내 자신의 엄지와 함께 배낭 안쪽 사진을 보여주었다.
「진짜 늦지 마라.」
「인천 공항에 사람 존나 많아 진짜.」
내 카톡에 준성이 그렇게 많으냐 반문했고, 그러면서도 ‘그렇게 많으면 불도저로 밀고 가면 됨ㅋㅋ’ 란 농담을 하였다.
난 적당히 웃음으로 답해주며 내 짐을 모두 체크했다.
“여권.. 있고, 보조배터리.. 있고, 나머지 다 있다!”
“자 가자!”
집 문을 열자 10월의 쌀쌀한 새벽 공기가 날 맞이했다.
저번 12월보단 덜 추웠지만, 그래도 꽤나 상쾌하고 쌉싸름한 공기였다.
하지만 놀러 갈 것을 생각하니 이 쌉싸름함도 약간 달달한 녹차라테 같은 향기였다.
피로를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감추며, 난 공항으로 출발했다.
내 ‘시리우스가 추락하는 날’로 번 돈 중, 소중한 600만 원을 모조리 날려버릴 비효율의 극치인 여행이 방금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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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여기야!”
저 멀리서 길을 찾는 준성에게 한규와 내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것을 본 준성은 우리에게 호도도 달려오며 숨을 헐떡였다.
“헉.. 헉.. 와 씨 여기 왜 이렇게 넓고 헷갈리냐?”
“야 아시아나 D랑 C로 가라고 쓰여있잖아.”
“어? 내가 도착했을 땐 없던데?”
“너 몇 시에 도착했어.”
“나 4시 반.”
그 말에 난 신나게 웃으며 준성을 놀려대었다.
한규도 피식피식 웃으며 그를 비웃었다.
“하하!! 야! 7시에 비행기가 뜨는데 어떤 프런트가 4시부터 열겠냐?”
“야.. 너 그럼 4시 30분부터 여기에 쭉 있던 거냐?”
“어! 짐 부치려고 해도 짐 부치는 곳도 안 보여서 아무 곳에나 앉아있었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약속시간 10분 전이더라.”
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일단 우리의 짐을 부치기 위해 이동했다.
그야, 이 넓은 곳에서 잠든 준성을 어떻게 찾는가.
우리가 아무리 3시간 여유를 두고 왔어도 공항에서 1~2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짧은 시간임을 저번 여행 때 뼈저리게 깨달았기에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야 야, 짐 안에 전자기기 없지?”
한규의 질문이었다.
“어? 있으면 안 돼?”
“어. 규정 바뀌었더라. 보조배터리나 충전선 같은 거 다 들고 타야 해.”
“아씨.. 다 넣어놨는데..”
한규의 말에 준성이 투덜거렸다.
그 자리에서 짐을 풀려는 준성을 막으며 ‘저기 짐 부치는 곳 안에 들어가서 풀어’라고 내가 말하자, 준성은 앗- 하는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알겠다 대답했다.
그렇게 순탄치 않은 짐 부치기가 끝나고 우린 공항 검색대를 통과해 드디어 인천공항 내부로 들어섰다.
지금 시간은 6시 40분.
2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23번 플랫폼. 한참을 들어가야 해서 준성에게 구경할 거리는 넘쳐났다.
한규는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 기분 좋은지 약간의 미소를 띠곤 이곳저곳 가게들을 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이내 플랫폼에 도착하곤 의자에 앉은 채 창밖을 보았다.
아침 6시가 거의 넘어가는 하늘은 밝은 새벽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저 멀리에서 서서히 노란 물이 올라오는 그 색이 썩 기분 좋은 풍경이었다.
얼마나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었을까.
“아시아나 간사이 도착 항공편 탑승 시작하겠습니다~!”
“앗! 야 야, 타자.”
난 공항을 구경하던 준성과 핸드폰을 하던 한규를 톡톡 치며 탑승을 하기 위한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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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하고 반년 만에 타는 비행기는 꽤나 반가웠다.
창가 자리는 준성에게 양보해 안타깝게 하늘을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땅을 박차는 이륙의 기분을 만끽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이었다.
한규는 자리에 앉자마자 안대를 쓰고 잠들었다. 그리고 준성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작년의 나와 참 닮아있었다. 아이의 뒷모습, 참 오랜만에 보는 어릴 적의 순수함이었다.
“이륙 안내 방송을 드립니다.”
이내 이륙 방송이 나오고 비행기가 이륙하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며 둥실- 하고 공기 속으로 뛰어드는 감각에 이미 쿨쿨 자는 한규완 달리 준성이 움찔했다.
그리고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해를 마주하자, 준성과 난 잠시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타원형의 창으로 바라보는 창공의 빛깔은 정말 청량하고 시원한 하늘빛 유리의 색이었다.
그리고 그 유리를 비추는 태양은 우리의 여정을 응원해 주듯, 구름을 비춰주며 밝은 흰 카펫을 깔아주었다.
그것이 앞으로의 축복을 빌어주는 듯한 풍경이라 난 준성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방에서 하나를 꺼냈다.
필름 카메라.
그 시간을 작은 필름 위에 남기고 우린 간사이 공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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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심사를 마친 우린 짐을 찾은 뒤 약간의 정비를 하고 있었다.
“야, 그래서 어디 갈 거냐?”
“어.. 일단...”
한규가 자신의 폰을 보며 계획을 체크했다.
원랜 내가 짠 계획이 있었지만, 여행의 목적이 대폭 수정되며 계획도 완전히 갈아 엎어졌다.
내가 짠 계획 위에 한규가 더 촘촘히 수정을 했었지.
“일단 준성이가 가고 싶었던 수족관 갔다가.. 호텔에 짐 맡기고 밥 먹으러 갈 거야.”
“오오 좋다 좋다.”
“일단 버스표 끊고 올게.”
한규와 준성을 뒤로하고 난 리무진 버스표를 끊었다. 저번과는 달리 꽤 복잡해져 끊는데 애를 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버스를 타고 내가 저번에 갔던 그 수족관으로 향했다.
‘가이유칸’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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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듣는 바닷물의 철썩이는 소리가 귀를 씻어주었다. 짠내음의 바닷바람이 얼굴에 상쾌한 향기를 남기고 내 뒤로 달려 나갔다.
이곳은 두 번째 오는대도 기분이 좋고 두근거리는 곳이었다.
여러 아름다운 생명들의 향연을 다시 볼 생각을 하는 것은 꽤 기대되는 일이었기에, 난 표를 사고 친구들과 함께 옆의 작은 쇼핑몰에서 여러 상품들을 구경했다.
“야 야 여기봐바”
“여기 칼 존나 많아.”
준성의 부름에 다른 가게를 보다 그곳을 돌아보았다. 정말 그곳엔 식칼이나 사시미, 과도 등이 잔뜩 걸려 있었다.
마치 전부 수제로 만든 듯 한, 그런 이미지였다.
옆 가게에서 꾸며놓은 핼러윈 분위기의 조명들이 칼날에 반사되어 별처럼 반짝이는 것이 참 볼만했다.
“야.. 존나 간지난다..”
“저건 다마스쿠스 내. 이건 츠지메고.”
“야.. 이건 하나 갖고 싶은대?”
한규가 한 칼을 보며 관심을 보였다.
올록볼록하게 요철이 있고 밝은 나무손잡이의, 예쁜 은빛의 식칼이었다.
식칼을 들여다보는 한규의 모습과 주황빛 조명들이 날에 깨지듯 파편화되어 비추었다.
“야 이거 얼만지 물어봐 줄 수 있냐?”
“어 잠시만.”
난 점원에게 한규가 보던 칼을 가리키며 가격을 물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9만 엔이요?”
“네. 수제로 만든 거라서요.”
“아.. 네 감사합니다.”
“구매하시게요?”
소름 돋는 얘기에 난 서둘러 말을 둘러댔다.
아무리 600만 원어치 여행이라 해도 첫날에 90만 원 지출은 너무했다.
거기에 경비 숙박비 다 포함해서 600인건대..
“아, 아뇨 지인이 물어봐 달래서요. 지인한태 이야기 좀 하고 올게요.”
난 한규에게 가 조용히 이 사실을 전했다.
“야. 90만 원이래.”
“아 그래? 하긴 쌀 리가 없긴 하다.”
“쩝, 아쉽네..”
내 말에 한규가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 모습에서 미련 있는 어린아이가 살짝 스쳤지만, 이내 한규는 우리를 잡아끌며 ‘다른 곳으로 가자’라고 말했다.
우린 점원에게 작게 인사하고 가게를 나와 쇼핑몰을 더 둘러보았다.
한 바퀴를 돌았을 때쯤.
“어! 야 1시 10분이야!”
알람소리 같은 준성의 말에 우린 서둘러 수족관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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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달라져 있는 나를 주었다.
친구들과 떠들며 감상하는 나, 말이다.
‘저 개복치 저번엔 내 명치만 했는데 이잰 더 커졌더라’ 라던지 ‘저번엔 고래상어가 더 작았다’ 같은 것 말이다.
한규도, 준성도 내 말을 내레이터의 안내처럼 들으며 서로 ‘저 큰 물고기는 잡으면 매운탕 몇 인분이 나올까’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다.
저번에 왔을 때 느낀 씁쓸함과는 또 다른, 우리만의 왁자지껄함이 있는 광경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고래상어를 보며 생각했다.
‘수족관을 깨고 혼자 날아오른 고래상어는 참 외롭겠다’라고.
지난 앨범. ‘시리우스가 추락하는 날’의 키워드였으니깐.
결국 그 앨범의 앤딩은 화자는 갇혀있던 공간을 탈출했지만, 홀로 외롭게 하늘에 서는 것이었다.
답답한 유리 감옥이었어도 6년간 함께 했던 자신을 버리는 것은 참 쉽지 않은 것이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앨범을 만드는 동안 여행을 간절히 원했던 것도, 어쩌면.
또 다른 자유를 원해서가 아니었을까?
“야!”
“왁!”
한규의 외침에 깜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어느새 둘은 수족관의 특산품인 고래상어 소프트 콘까지 사 와선 하나를 나에게 내밀고 있었다.
“야 빨리 받아 녹는다.”
한규 손에 들려있는 소프트 콘은 끝부분이 살짝 녹아 맨질맨질해져 있었다.
난 빨리 소프트 콘을 받아 들곤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먹으려던 찰나, 뭔가 의문이 들었다.
“어어 고맙다.”
“근데 나 이거 먹는다고 했었나..?”
“뭔 소리야, 먹겠냐고 물으니까 네가 그냥 ‘어’만 반복했잖아.”
“그래서 사 왔는데. 먹기 싫음 나 줘 내가 먹게.”
“아! 아냐. 내가 먹을래.”
소중한 공짜 디저트를 뺏길 순 없지. 물론 나중에 나도 하나 사줄 거지만.
기왕 고래상어 옆에서 고래상어 소프트콘을 받았겠다, 난 필름카메라를 꺼내 서서히 녹아 손에 조금씩 떨어지는 소프트콘을 촬영했다. 물론 플래시는 끄고.
찰칵- 하고 어둑한 공간 속 푸른 수족관을 조명삼은 채. 흐물흐물 녹아가는 희고 푸른 피부의 모델이 필름에 담겼다.
난 서둘러 후루룩-하고 소프트콘을 먹으며 친구들을 따라갔다.
그렇게 우린 그걸 순식간에 해치우곤 수족관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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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짐을 맡기고 다음 일정을 향해 달려 나갔다.
지금 시간은 4시 40분. 한규가 먹고 싶어 했던 초밥을 먹으러 가고 있었다.
“야 근대 예약 똑바로 된 거 맞지?”
좀 걱정이 되었다. 인기가 많은 식당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규는 걱정 말라는 듯 내게 자신의 핸드폰으로 예약 메일을 보여주며 대답했다.
“어. 타베로그로 했으니까 됐을 거야.”
“아~ 그럼 다행이네.”
“잠깐.. 이거...”
문득, 한규의 메일창에 한 메일이 보였다.
그 제목은 내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죄송합니다. 예약이 취소되었습니다.]
“야 야야 한규야 잠시만.”
난 그 메일을 눌러보라 말했고, 한규의 폰을 받아 메일을 읽어보았다.
대강 내용은 이러하였다.
[재고 소진으로 예약취소]
“야 예약 취소라는대?”
“뭐?”
“재고 소진으로 예약 취소한대!”
“아니 이게 뭐야!”
한규가 소리쳤다. 그의 표정이 깜짝 놀란 스퀴시 인형처럼 변해버렸다.
큰일이었다. 이 초밥집은 그 무뚝뚝한 한규가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곳인데..
초장부터 흰 빛의 카펫이 어그러질 줄은 몰랐다.
“이게 뭐야..”
한규의 표정은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어트린 아이의 얼굴이 되었다.
난 다급히 구글에 검색해 다른 초밥집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적당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한 곳이 떠올랐다.
한 유튜버의 영상에서 보았던 가게.
“아.. 야 그냥 회전초밥집 가ㅈ”
“야 한규야 여기 어때?”
한규의 시무룩한 말을 덮으며 내가 찾은 가게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있는 도톤보리 구석에 위치한 복어를 파는 집이었다.
다른 가게를 둘러보던 준성도 내가 찾은 가게를 보곤 이곳이 좋겠다며 거들었다.
“복어 파는 집인데 여기 맛있대.”
“너 복어도 먹어보고 싶어 했잖아. 우선순위가 뒤로 밀려서 계획에 못 들어간 것뿐이지.”
“초밥집 대신 여기 가자.”
내 말에 한규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내 답이 나왔는지, 공중에 손을 딱- 하고 튕기며 말했다.
“좋아, 가자.”
“어차피 초밥은 도쿄에 오마카세가 예약되어 있으니깐.”
그렇게 나는 혼자 ‘제발 맛있어라’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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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는 약간의 룸과 작은 테이블 석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작은 공간에 카운터 직원이 3명이나 있는 모습을 보니, ‘이곳도 꽤나 바쁜곳이구나’ 싶었다.
우린 자리에 앉고 복 사시미가 포함된 B세트를 3개 주문했다.
복 사시미란 말에 시무룩하던 한규의 표정도 환하게 돌아와 들뜬 미소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코스가 시작되고 조금 요리를 먹었을 때였나.
“넌 복어 사시미 같은 거 먹어본 적 있냐?”
한규의 질문이었다.
난 ‘아니’라 말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준성은 잠시 젓가락을 돌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준성은 늘 골똘히 생각하거나 고민할 때면 손에 잡히는 작은 것들을 만지작 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저번 첫 약속을 잡은 술자리 때도 그렇고 말이다.
어쩌면 그의 ‘뭔가 만지작 거리는 버릇’은 일종의 로딩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 사시미는 아닌데, 옛날에 아빠가 데려가준 오마카세에서 튀김으로 먹어봤어. 그거 존나 맛있더라.”
“무슨 닭고기도 아니고. 물고기에서 육고기 맛이나!”
“야.. 부럽네. 난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
“내가 이것저것 다 먹어보면서도 아직도 못 먹은 게 있는대, 그중 하나가 복어야.”
“무슨 맛 이었냐?”
한규의 말에 준성이 말없이 젓가락을 돌렸다.
손님이 조금 오가며 가게 안에 공기를 흐렸을까, 준성이 이내 미지근한 공기를 젓가락으로 가르며 탁- 하고 멈추었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음, 감칠맛. 그리고.. 짭조름하고.. 고소하고..”
“그거 말고 별건 없던대?”
“그러냐..?”
한규는 뭔가 실망한 눈치였다.
하긴 코스동안 복껍질 유자절임, 복어 이리 같은 것만 나왔지 살코기는 안 나왔으니 말이다.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그냥 감성값으로 맛있다고 해야 할 듯했다.
“실례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쯤, 벌써 복 사시미가 나왔다.
일단, 감성값을 하나라도 회수하기 위해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온전한 모습은 친구들이 이미 순식간에 집어먹어 찍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모습도 엉망진창으로 재미있어 좋았다.
그리고 나도 카메라를 내려놓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한점 집어먹었다.
맛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직원이 추천해 주는 방법대로 먹어도 은은한 단맛만 느껴질 뿐 딱히 내 취향은 아니었다. 히레사케까지 시켰는데 말이다..
나도 한규와 준성도 모두 ‘회는 무조건 초장과 소주와 함께’라는 이상한 생각 아닌 생각이 있어 이 식문화가 어색한 것도 있었다.
우리 모두 얼마나 고요하게 복어만 씹고 있었을까.
서로의 생각 말 주머니가 가득 차 결국 터져버리고 말았다.
“야, 초장 없냐?”
“이씨 여기까지 와서 무슨 초장이야..!”
“너 어글리 코리안 되고 싶어?”
“그런가..”
준성은 그래도 ‘초장과 어울릴 것 같다’ 따위의 소리를 해대었다.
솔직히. 밍밍하게 먹자니 강렬한 맛이 그립긴 했다.
하지만 내가 동의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규의 젓가락질이 느려졌기 때문이다. 우물우물 씹는 그의 표정은 어릴 적 브로콜리를 억지로 먹던 나의 표정 같았다.
큰 햄버거 하나를 3분 만에 욱여넣는 놈이, 기대하던 음식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보통 그것에 대해 큰 실망을 했단 의미였다.
‘젠장..!’
그냥 회전 초밥집이나 갈 걸 그랬다. 거긴 적어도 여러 종류의 초밥이 있을 테니깐..!
한규나 준성이나 나나 골라먹을 수 있었을 텐데..
초장부터 너무 욕심을 부렸다!
비싸다고 무조건 좋지 않단 걸 또다시 뼈저리게 깨달으며, 그날 저녁 식사가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