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원 에세이_김영사
이석원 작가님의 책은 술술 읽힌다. 그러면서도 메모지를 많이 붙이게 된다. 그만큼 공감 가는 내용이 많다는 것, 어떤 구절에서는 완전히 내 마음을 마주하게 되고, 어떤 내용에서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살짝 얼굴이 붉혀지기도 한다. 그만큼 일상의,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어떤 가족의 모습들이 책 속에 잘 담겨 있다는 뜻이겠지. 책에 몰입하기가 쉽다. 예전에 어떤 선생님께서는 글을 잘 써 술술 읽히게 만드는 것 같다고도 하셨다.
작가님의 다른 책 ‘보통의 존재’를 먼저 읽었지만, 그때는 사실 잘 몰랐다. 내가 작가님의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고 나서였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선택한 책이다.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책의 표지도 들었다. 물론 막연히 제목도 좋았다. ‘슬픔의 모양'.
그것은 분명 사진이라는 왜곡이 부린 마법일 테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슬펐다. 이렇게라도 함께 모일 일이 다시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그때도 나는 이 감정이 진짜인지 아니면 단지 상황에 취해 눈물을 쏟고 있는 것뿐인지 내 마음의 진위를 알고 싶어 했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왜. 가족이니까. 가족은 슬퍼할 만해서 슬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할 만해서 사랑을 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가족이기 때문에 모든 게 가능한 사람들이니까.
슬펐다.
너무 슬퍼서
누가 슬픔이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보면
설명이라도 할 수 있을 만큼. (120쪽)
제목 ‘슬픔의 모양'이 이 구절에서 나온 모양이다. 이 책은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든이 넘은 부모님의 병환과, 그걸 대하는 세 남매의 이야기. 그저 가족이기 때문에 모든 게 가능한 일이 많다할지라도 아픈 부모님을 보면서 느끼는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감정변화들에 대한 이야기.
이틀이 안 되어 다 읽었다. 읽으면서 내내 ‘다행'이라는 감정과 함께, ‘만약'이라는 질문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여전히 고민 중인 화두 ‘늙음'도 함께.
1.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온갖 검사를 받으러 다니는 엄마를 따라다니며 돕고 그 밖에 여러 필요한 것들을 구비해 드린 후 우리는 엄마를 입원시키는 그 긴긴 하루 동안의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친 다음, 입원 병동 근처 복도에 마련된 휴게실에 앉아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누나 우리는 나중에 자식들한테 이렇게 힘들고 긴 도움 같은 건 절대 못 받겠지.
그렇지. 부모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세대는 우리가 마지막이겠지.
그건 내가 나중에 늙고 병들었을 때 지금 우리가 하듯 자식 세대가 나에게 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돼서 한 얘긴 아니었다. 나는 자식도 없는 데다 있다 해도 애초에 그런 걸 기대하는 사람도 아니었거니와, 단지 나는 우리 형제들처럼 늙고 병든 부모를 둔 누나와 친구들이나 내 주변 나와 비슷한 처지의 자식들을 보면(물론 대체로 딸자식들에 한정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다고 어려서 부모와 특별히 잘 지낸 기억이 많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다들 늙고 병든 부모를 위해 헌신할 수가 있는 것인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아무런 대가 없이 부모를 보살피도록 만들었는지 그 연유와 동력이 궁금해서 던진 말일뿐이었다. (231쪽)
이 부분을 읽는데 친구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계신 어머니를 살뜰히 도 챙기는 친구. 출근 전 어머니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가고, 주말이면 어머니를 모시고 여기저기 마실을 다니는 친구. 그 친구의 살뜰함을 볼 때면 때로는 힘겨워보이다가도 그 귀한 마음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의 삶과 그 자녀의 삶까지 복을 받을 거라는 확실한 믿음이 생긴다.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 친구가 그렇게 부모를 보살필 수 있는 연유와 동력은 무엇일까? 문화적으로 뿌리내린 효의 개념으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개인적 심성인 걸까? 그 모든 것을 넘어 그렇게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그녀가 참 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이어어야 할까? 퇴근할 때면 어김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길지도 않은 짧은 대화이지만, 그렇게 엄마와 통화를 하고 나면, 뭔가 할 일을 마무리한 기기분이 든다.. 엄마가 먼저 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바쁜 딸을 위한 엄마의 배려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면서도 또 주말은 어찌어찌 지내느라 전화 순간을 놓치기도 한다. 오랜 시간 혼자 살았던 엄마의 삶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닌데, 참 매정한 딸이다. 나는.
엄마와 통화할 때면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늙어서 니들 고생 안 시키려면 건강해야지, 그래서 오늘도 걷고 왔어.”
엄마의 참 좋은 습관을 닮아 나도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서 걷는 것과는 다른, 엄마의 걱정이 엄마 말씀 가운데 느껴져, 마음이 아려온다. 엄마는 참 오래 홀로 사셨지만, 점점 질환에 노출되고, 아픈 시간들이 다가올 때 그 시간을 혼자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선택한 것, 최대한 건강하려고 노력하시는 삶. 그것이 의지와는 별개의 문제라 할지라도, 지금 엄마의 노력은 우리 자식들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 주고 있다.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엄마를 닮아 열심히 걸을 수 있을까? 책 속 작가님의 어머니처럼 자녀의 생일을 위해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고, 밥을 차리고, 그걸 기다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엄마가 나를 위해 하시듯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나는 자식에게 짐이 되진 않을까. 생각이 참 많아진다.
2. 부모의 흔적
만약 그때 엄마와 누나가 구조되지 못해 우리가 영영 이별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아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나는 미술을 했던 누나가 어린 내게 연극을 보여주고 미술관이며 각종 전시회 같은 곳에 데리고 다니는 바람에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을 키우다 결국 그쪽으로 평생의 진로를 잡게 되었다. 또한 엄마에게서 받은 것들은 너무 많아서 언급하기가 다 구차할 정도인데, 그에 반해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은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 오른쪽 무릎 관절이 안 좋은 것과 할머니로부터 아버지를 거쳐 내게로 삼대째 이어져 내려온 그놈의 넓적한 코 외엔 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279쪽)
부모의 흔적은 자녀에게 남기 마련이다. 그것이 양육의 환경이든, 습관이든, 유전적 요인이든, 부모의 흔적은 자녀에게 전달되고 그것이 또 가정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
내가 엄마와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무엇일까? 일찍 돌아가신 아빠의 노년 모습을 나는 볼 수 없었기에, 막연히 그리워하고 좋아만 하는 그 모습 그대로 기억하기에 아빠로부터는 그런 다정함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럼 엄마로부터 어떤 모습을 물려받았을까?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 그러면서도 결국은 서로의 거리를 지킬 줄 아는 그만큼의 표현방식. 그런 건 아닐까? 참 사람들에게 다정하면서도 정작 엄마에겐 좀 더 다정하지 못함을 발견할 때가 있다. 또 자식에겐 한없이 포용적이면서도 엄마에겐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속된 말로 나는 나쁜 년이다.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의 딸은 우리 부부의 어떤 모습들을 닮았을까? 아이는 스스로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카톡으로 슬쩍 물어본다.
“이런 거 시키지 마!!!”
물음에 답변이 단호하게 날아온다. 나는 안 닮은 것 같은 느낌, 그렇다고 남편을 닮은 것도 아닌 것 같은 느낌. 이내 미안했는지, 자신은 엄마의 말하기 능력과 아빠의 잠자기 능력을 닮았다고 답이 왔다. 내겐, 이 작은 답변이 참 다정함으로 다가왔다. 그래, 다정함인가 보다. 스르르 내려오는 흔적들은.
3, 정리
내게 가족이란 늘 행복한 지옥이거나 지옥 같은 천국 둘 중 하나였다. 내가 아는 한 한 번도 중간은 없었다.
책의 표지에 쓰인 가족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다. 나에게 가족은 그러지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 그럴 수 있다는 그런 마음. 지옥과 천국의 모습을 둘 다 가진 공간.
책에는 여느 가정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아프신 부모님의 돌봄에 대한 가족 간의 견해 차이,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사랑의 방식과 자식이 부모를 향한 효도의 마음. 데면데면하여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자녀의 모습과 그런 자녀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모습. 그래서 책이 더 잘 읽혔는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 가족의 모습이었고, 내가 아는 어떤 집의 모습이었기에.
책을 다 읽고, 엄마에게 전화를 좀 더 자주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예전엔 기차 타고, 차 타고 4시간이 걸리는 엄마의 집을 자주 내려갔는데, 주말 딸과 함께하는 맛집 탐방 시간이 늘어나면서 친정 내려가는 일이 줄어들었다. 정말 사랑은 내리사랑인가 보다. 결국은 자녀가 오기를 한없이 기다리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그니 그러지 말아야겠다. 전화도 자주 드리고, 집에도 자주 내려가고, 함께 밥도 많이 먹어야겠다. 시간을 좀 더 가치 있게 그렇게 써야겠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지, 노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부모의 흔적을 자신에게 발견할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이며, 또는 자녀가 있다면 자녀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나의 흔적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