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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시간 124. 제16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 백온유, 반의반의 반 외 여섯 작품_문학동네

by 벼리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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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어김없이 손에 책을 들었다.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해마다 ‘젊은 작가상’ 수상작을 읽는다는 것에 조금은 문학적 허영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시류를 놓치지 않고 ‘젊은 작가상 수상작’을 챙겨 읽으며, 젊은 소설가의 시선에서 사회를 바라본다는 그런 마음. 어느새 습관처럼 해마다 소설을 읽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참 좋기도 하다. 언젠가 허영을 느끼며 어려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런 마음이 오히려 문학에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들 수 있다는 그런 내용의 글. 그걸 긍정하는 마음으로 읽은 책이면서 동시에 망설임 없이 ‘북클럽 문학동네’의 8기 멤버십 가입의 시작을 알린 책이기도 하다.


‘북클럽 문학동네’는 ‘이달책’을 선택하여 읽거나 독파 챌린지에서 함께 선정한 책을 읽으며, 완독 후기를 남길 수 있는 좋은 독서 멤버십 프로그램이다. 어느새 8기 회원까지 모집 중이며, 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북클럽 문학동네 멤버십을 신청하였다. 그때 선물로 온 책 중 하나가 ‘제16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이다.

이번 책은 참 다양한 마음을 마주하며 읽었다. 어떤 소설은 정말 중간중간 단어를 찾아가며 읽어야 했고, 어떤 소설은 너무 충격적이라 한동안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인물에 공감할 수 없지만 인물을 바라보며 소설을 읽었다. 북클럽 문학동네 독파 챌린지를 통해 참여한 ‘신형철 평론가님’의 북토크에서 평론가님이 하신 이야기. 인물에 공감되지 않더라도 책을 끝까지 읽어가는 것. 그러함으로 나라는 사람의 반경을 넓혀가는 독서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이번 책은 그런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1. 리틀 프라이드


오스틴은 신장이 백육십사 센티미터인 나보다 키가 작은 극소수의 남자 중 하나였고, 그런 점에서 나는 그에게 미약한 동지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한편으론 릴스 속의 그가 유쾌한 코미디언처럼 행동하는 데에는 아마 이런 상황이 작용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하기도 했다. 외모가 멋지지 못한 남자가 여러 사람에게 호감을 사고 주목받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캐릭터를 그가 아주 잘 연기하고 있고 말이다. 그건 내가 트랜스남성으로서 될 수 있는 한 익혀야 했던, 그러나 전혀 익히지 못했던 것 중 하나였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것도 바로 그런 종류의 자기 연출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괜찮은 남자로 보일 수 있는지, 남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쩌다 다른 직원과 스몰토크라도 주고받고 나면 내가 한 말과 보디랭귀지가 적절했는지 점검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107쪽)

서장원, ‘리틀 프라이드’ 중.


예전에 읽었던 책이었다. 어디에서 읽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는 그냥 그렇게 넘겼던 내용이었는데, 이번엔 이 부분이 아주 오래 기억에 남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받아들이는 미묘한 마음들. 그리고 그 차이를 이끌어 내는 자신에 대한 자존감.


어렸을 때부터 자존감이 높지는 않았다. 공부는 그럭저럭 했지만 예쁘지 않았고, 인기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꼭 이성에게 인기가 있어야 하나 그런 마음이 들기는 해도 그건 어른인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고, 어릴 땐 외모적으로 못생겼단 마음이 자꾸 나를 움츠려 들게 했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내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연출’이었던 것 같다. 유난히 밝은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 최대한 친절한 태도를 갖추는 것, 그리고 타인에 대한 끊임없는 칭찬. 그것이 나를 어느새 다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부족한 자존감이었지만, 그것이 나름의 프라이드가 되어 버린 것.


주인공 ‘토미’는 트랜스남성이다. 어렸을 때부터 남성이라 오해받았고, 커서는 남성을 선택하여 수술까지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스몰토크에 잘 합류하지 못하고 겉돈다. 농담 한마디를 받아치는 일어 더 힘겨운 사람. 연인이었던 혜령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도 토미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너무나 집요한 생각’에 빠져드는 것. 자신은 사랑받지 못할 사람이며, 자신이 취직에 성공한 것은, 편견 없는 사람인 걸 증명하기 위한 사장의 선택이라 생각하는 것. 결국 토미의 이런 집요한 부정적 생각에 혜령은 지쳐 토미를 떠난다. 토미의 회사 동료 오스틴은 극히 작은 키를 가지고 있지만, 항상 당당하게 자신을 연출하여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스틴과 술을 마시면서 토미는 오스틴의 본질적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오히려 그 모습에서 자신 안의 수치심을 본다. 오스틴이 건네는 말, “우리가 비슷하다는 생각”. 그 말에 토미는 아주 진심을 다해 말한다. “아니요, 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전혀 달라요.”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끊임없이 자신을 추락시키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끝내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름을 인지하는 토미. 소설의 제목 ‘리틀 프라이드’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토미의 서사에 공감이 갔다. 사회적 시선에, 스스로의 결단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아질 수밖에 없는 마음에,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고, ‘자기 연출’이 결국 ‘자기’라고 믿어버린 순간들도 생각이 났다. 내가 끝내 지켜야 하는 마음들에 대하여도 생각했다. 나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할까? 나의 작고 소중한 프라이드는 무엇일까?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다.


2. 최애의 아이


이게 유리의 대단한 점이다. 그렇게 밀도 높은 인생을 살았는데 아직 때를 덜 탔다는 거. 어떻게 그럴 수 있는 모르겠지만 유리에게 삶은 신기한 것이고 거기엔 기대와 희망뿐이었다. 그런 순수함이 빛을 내뿜고, 빛은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기에 저절로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뺨에도 쏟아진다. 마치 지금처럼. (중략)

그래서 새해의 첫날, 아침 일찍 일어나 가까운 산에서 해돋이를 보고 집에 돌아와 뜨거운 물로 씻고 떡만둣국과 남은 귤까지 먹어치운 우미는 어떤 충동 없이, 삼십 대 여자의 냉정한 판단력으로 유리의 아이를 가지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242쪽)

- 이희주, 최애의 아이 중.


혈통 매매 자체는 서사적으로 익숙할 수 있지만 이 소설에서 주목되는 점은 혈통거래에서의 루키즘이 신계급주의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잘생긴 것이 계급이고 그러므로 고귀하다. 이는 애정의 척도가 엄격한 시장 논리에 기반하여 소비중심주의로 입증되는 덕질 문화의 현주소와도 맞닿는다. 그런 점에서 일종의 아이돌 관련 상품인 ‘최애의 아이’는 ‘가성비 좋’은 ‘굿즈’로 여겨진다. 공식 굿즈보다 희소하고 특별한 가치를 지닌, 비공식 커스텀 굿즈인 것이다. (280쪽)

- 해설, 최다영, ‘비공굿: 아이돌 2세’ 중.


이번 수상작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소설의 내용적인 측면에서. 하지만 소설의 이야기는 몰입력이 강하고 잘 읽힌다. 심지어 마음 저 밑바닥을 보는 기분도 들게 만들어 준다.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의 행동과 마음에 나의 이해보다 객관적 상황의 인식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게 만들어 준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30대 우미는 20대의 어린 아이돌인 유미를 좋아한다. 유미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화면에 비친 유미의 모습에 열광하고, 굿즈를 사 모으며, 유미의 일상을 관찰하고 행복해한다. 그런 우미는 유미가 너무 좋아 유미의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한다. 아이들 정자 공여 시술이 상용화되어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소설의 배경과 결말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선생님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일론 머스크’의 ‘지능 높은 사람이 늘어나야 문명을 지킨다’는 발언과 기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주셨다. ‘어떻게 이런 생각들이 가능할까’에 대하여 아주 오랫동안 고민했다.

한 사람을 좋아하고 열망하며 완전 사랑에 빠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결혼을 결심하고 아이를 낳으면서도 나는 어떤 생각보다는 그냥 순리적 일상에 따랐던 것 같다. 이 사람을 너무 좋아하니 이 사람의 아이를 낳고 싶어, 그런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런 대사가 나오는 소설의 장면이나 영화를 볼 때면 ‘뭐, 결혼하면 아이 생길 수 있고, 그럼 낳는 거지’ 그런 마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소설의 ‘우미’에게 나는 마음을 줄 수 없었다. 무서웠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의 그 감정에 공감할 수 없었고 오히려 집착 같아서 겁이 났으며 그 마음의 이면엔 30대의 여성이 20대 아이돌에게 빠져 사는 것에 비난의 마음이 있었다.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의 참 좋은 점은 소설에 대한 작가의 수상 소감과 평론가의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는 점이다. 해설을 읽으면서 조금 더 소설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었다.

루키즘이 신계급주의를 반영하고 있다는 구절. 참 예쁘고 아름답고 젊은,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들에 대한 예찬이 나에게도 있지만, 그런 외모적 모습이 하나의 계급이 되며, 고귀함이 된다는 말. 왜, 공감이 가지. 그래,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우리 사회의 일면이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여전히 고민하게 된다.


3. 정리.


제16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유난히 사전을 많이 찾아보면서 읽은 책이다. 이제 내가 더 이상 젊은이들의 어휘와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아주 조금 자괴감에 빠진 것도 사실이다. 몇몇 소설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에 공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끝끝내 읽어낸 것은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한 이해,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좋아하는 영화감독에 대한 무한 애정, 최애의 아이를 가지고 싶은 30대 여성의 마음 등 그 모든 것이 삶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이다. 대상인 백온유 작가님의 ‘반의반의 반’, 강보라 작가님의 ‘바우어의 정원’은 내 이웃의 이야기인 것 같아서 더 잘 읽힌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이 책을 참 잘 읽었다. 나의 이해는 한계가 있어도, 내 이해를 넘어서는 어떤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대하여 엿본 느낌. 그리고 그 내면 마음의 끝에는 이기적인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사실. 결국 나도 어떤 순간엔 그들이 될 수 있다는 마음 등 하나하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래, 이것이 소설의 힘이며 본질이다. 나의 이해의 반경을 넓혀 가는 것.


[이야기 나눠 보기]

1)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무엇입니까? 왜 그 소설이 마음에 들었으며, 어떤 구절이 인상 깊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나의 프라이드는 무엇이며, 내가 끝내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내가 남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장면과 순간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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